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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앉은 그대 -1

by 눈추추 posted Jan 11, 2017 (19시 39분 1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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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귀.

 

외로움보다는 두려움이컸다. 그를 향해 뻗어오는 구원의 손길과 관심어린 시선은 폭력과 방치로 길들어진 그에겐 그저 부담스러웠다. 누가 알까? 저녁이 되면 마지못해 집에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악몽과 같은 저녁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작은 소년의 마음을. 그러나 간절한 바람에도 결국 해는 지고 집 앞 가로등은 켜진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하게 빛 바란 창밖으로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그림자는 일렁인다.

 

 소년은 그게 무서웠다. 아니, 조금씩 떨리는 작은 몸에서 터지고 갈라진 입술과 피멍의 아픔이 선명해져 가는데 괜찮을 리가 없었다. 그 두려움에 조금이라도 도망치고자 소년은 목언저리까지 덮여있던 이불을 얼굴 위로 들어 올린다. 그럼에도 두려움은 가슴에 남아 소년은 더욱 웅크리며 귀를 막는다. 하지만 천천히 문이 열리는 그 나지막한 소리는 귀가 아닌 심장을 파고 들어와 그에게 끝나지 않을 긴 악몽을 속삭인다.

 

 사막과 같았다. 메마름이 영원할 것 같았던 걸음의 연속. 학교와 집 이 좁디좁은 반경과 폭력으로 길들여진 소심하고 무력한 아이 하나. 그러나 사막의 밤에 별을 바라볼 희망 없는 나그네가 작은 꿈을 가져보듯 소년도 이 악몽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불시착한 그의 인생에 어린왕자는 없었다.

 

-

 

 

손목시계의 알람이 울린다. 그러면 소년은 눈을 뜬다. 아직 벗어나지 못한 잠에 손을 허우적대며 손목시계를 찾으려 하지만 피멍이 든 팔목은 마음처럼 쉽게 움직여지진 않는다. 한참이 지나 알람이 꺼지고 나서야 소년은 손목시계를 집어 든다. 그리고 시계의 오른쪽 버튼을 누른다. LED의 옅은 빛을 발한다. 소년은 그것을 흐리멍텅하게 바라본다. 

 

새벽 어귀였다. 자신이 덮고 있는 이불 옆을 바라본다. 작은 단칸방에 깔린 두개의 이불중 하나는 온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채 비어져있다. 서랍이 열려있고 물건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을 봐선 아마 자신의 아버지는 조금 전에 도박판으로 돌아갔거나 술을 마시기 위해 떠났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래도 소년은 혹시 몰라 문 앞의 신발장을 바라본다. 낡아 빠진 한짝의 운동화만 덩그러니 남았다. 혹시 화장실에는? 은근한 걱정에 긴장된 시선을 화장실로 옮겼다. 그렇지만 열려있는 문은 한기만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없다. 챙길 것은 미리 가방에 싸 놓았다. 결심한 시간은 다가왔고 나설 채비는 이미 마쳤다. 이제 행동으로 옮길 때, 하지만 소년은 침을 삼킨다.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눈앞에 찾아왔다.  소년은 일어서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소년은 망설이고 있었다.

 

학습된 무기력이 그를 엄습했다. 잊었던 통증은 다시 기어올라 그의 머릿속을 갉아먹는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고장 난 로봇처럼 끊임없이 이 물음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답을 낼 수가 없다.

 

아니, 소년은 알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자신은 결국 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는 것. 가느다란 삶을 이어갈 가시적 목표였을 뿐이라는 것. 결국 떠나지 못하고 이대로 잠이 들어 아침이 되면 소년은 변함없는 하루를 맞이할것이다. 그리고 다짐뿐인 이 결심은 저녁 어귀에 다가와 소년에게 은근한 용기를 불어넣을것이다.  변하는건 없었다. 그럼에도 소년은 여기 남아 있었기에.

 

무형의 목줄이 그를 억죈다. 

 

그냥 죽는 게 어때?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했을 때 끈적한 물음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자괴감과 우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것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로 다가와 소년을 집어 삼켰다.  역겨움에 토악질이 순간 올라온다. 깜짝 놀란 소년은 서둘러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숨을 멈춘다. 그럼에도 토악질은 시작되고 틀어막았던 손바닥 사이로 삐져나와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에 쏟아버렸다. 마치 속에 담겨있는 감정들을 올려 보내듯 처절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년의 감정은 그렇게 한다고 사라지는 것들이 아니었다. 다만 잠시 아래로 가라앉을 뿐이었다.

 

십여 분 남짓하게 지났다. 소년은 눈물과 입가를 닦으며 벽에 지친 몸을 기대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진정이 된 후 풀린 눈동자로 방을 바라본다. 무질서하게 열려있는 옷장과 바닥에 버려지듯 던져진 옷가지들, 그것들 위에 덮인 역겨운 덩어리

 

속을 게워내 허무함만이 두둥실 떠다니는 소년은 잊었었던 어제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사월 초입 어쩌면 쌀쌀하다고 느껴질지 모르는 초저녁의 학교, 소년은 세상과 격리되듯 홀로 우두커니 책상 위에 걸터 앉아있었었다.

 

사실 매일이 그랬다.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돌아가면 소년은 그저 교실 어귀를 돌아다니며 학교 안을 맴돌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떤 일이 그에게 닥칠지 잘 알고있었고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모든 것들이 그에겐 막연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년은 하루의 절반을 그곳에 앉아 하염없이 흘려보낼 뿐이었다. 고요함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교실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고정 된 채 소년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게 참 좋았다. 눈을 돌리면 시계가 째깍 하고 그의 시선을 따라온다. 가끔 창 밖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벽을 타고 기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자신을 위협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의미 없는 메아리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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