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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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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 부서지는 게 슬프려면 그 뭔가에 애착이 가야 하는 법. 덕분에 민음사 본 기준으로 250페이지 가량인 이 소설은 150페이지 가량의 1부를 세계를 그려내고 매력을 보여주는데 온전히 소비했다.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마을 우무오피아의 다양한 풍습, 언어, 생활 등을 보여주는 게 사실 이 자체로 인류학 자료로 쓰일 수도 있을 느낌이 없지 않은 정도다. 아마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이 노골적으로 삭제하고 두루뭉실하게 만든 아프리카의 풍토를 온전히 살려내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이렇게 드러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생각 때문에 처음에 책을 집기 전에는 꽤나 따분한 글일 줄 알았다. 와 섬세하게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표현하는 필체 와 리얼리즘 와 탈식민주의 권력의 억압 소리 내지 못하는 서발턴 와…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재밌는 글이었다. 어떤 의미로 보자면 인기 있을 만한 구조의 이야기라 재미 있는 게 당연한가 싶기도 하지만, 그게 딱히 나쁠 건 없으니까. 영웅 서사를 충실히 따르는 글이고, 영웅은 언제나 그렇듯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주인공 오콩코 역시 그렇다.


오콩코는 자수성가형 인물이고 근면성실하지만, 게으르고 유약한 아버지를 둔 덕에 언제나 모든 방면에서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그런 강박관념 덕에 해서는 안 될 선택을 몇 번 하기도 하고, 결국 자신보다는 아버지를 더 닮은 맏아들과 갈라지게 되는 등 주요한 파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글을 읽고 있으면서도 어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축제 때 다들 노는 게 짜증난다고 마누라 패고 있는 장면이라거나, 마누라한테 화풀이로 총 쏘는 장면이라거나, 마누라가 밥 안 해놨다고 패는 장면이라거나…


이런 것만 보이니 페미라고 하는 건가??


뭐 어쨌든 작가도 그런 독자의 내적 갈등을 유도한 면이 분명히 있다. 본인이 밝혔듯 이 글은 서구의 제국주의의 피해를 드러내는 폭로문인 것과 동시에, 자기네 나이지리아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교육적인 글이니까. 오콩코가 구세대의 정신을 지켜나가며 백인들을 쫓아내려고 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버지와 갈라서는 맏아들을 그냥 무시할 순 없는 측면이 있다. 그 성정에 그런 일을 겪고 포용적인 기독교인을 만났으니 포섭될만도 하지.


물론 포커스는 맏아들이 대표하는 의식하진 않더라도 백인의 앞잡이가 되어가는 아웃사이더들이 아니라 마을이다. 그렇게나 융성하던 마을이 점차 몰락하고 주인공을 포함한 대표들이 농락당하는 걸 보면 어쩔 수 없이 답답한 분노가 터진다. 민족의 상상을 위해선 문학이 필수적이란 말이 이해가 가는 게, 애국심이 점차 희석되고 있던 와중에 이 글을 읽고 묘하게 일제강점기가 떠오르며 짜증이 좀 났었다. 쿳시가 비판한 것과는 별개로, 역시 무리짓기를 위해선 타자의 악마화가 필수적인 것 같다.


좀 붕 뜬 얘기를 했으니 좀 더 하자면, 사실 이 글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리얼리즘 소설이라기보단 판타지처럼 읽혔던 것 같다. 가상의 대륙을 배경으로 한 부족과 주술이 살아 있는 환상의 대륙 이야기 같은 느낌으로. 그 가치가 무너져가는 2부는 확실히 현실적이었지만, 동떨어지게 느껴지는 1부와 주술이 이야기 속에서 실제로 무게감을 갖게 되는 3부는 확실히 판타지스럽다. 사실 3부에서 주술이 ‘당연하게도’ 위력을 잃고 무기 앞에서 참피처럼 쪼그라들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마술적 리얼리즘스럽게 위력을 갖는 걸 보고 조금은 싸했다. 박씨전 생각난다고…


마지막 말은 조금 개인적 푸념이었고, 결국 전체적인 이야기에선 주술이 작은 발악일 뿐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세계의 갈등을 자기 안에 품은 영웅은 최후를 맞고, 그 최후를 보고 저주를 들은 (“저 남자는 우무오피아의 가장 훌륭한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너희들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이젠 개처럼 땅에 묻힐 것이야……” (p.243)) 판사의 짧은 독백ㅡ이 부분은 정말 아체베가 표현하고자 했던 걸 매우 효과적으로 압축해놨고, 그 자체로 인상적인 마무리여서, 그대로 아래에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자신이 집필하고자 하는 책 속에서 그는 이 점을 강조할 것이다. (...) 전령을 죽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는 읽을거리일 것이다. 그에 대해 거의 한 장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한 장 전부는 아니어도, 어떻든 몇 개의 문단은 가능할 것이다. 이것 외에도 포함할 것이 너무나 많아, 자세한 사항은 과감히 잘라 내야 할 것이다. 그는 많은 생각 끝에 이미 책의 제목을 정해 놓았다.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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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

글 잘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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