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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정식은 시험에 안 나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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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9 Feb 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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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멍애
협업 참여 동의

 

  이 방정식은 시험에 안 나오잖아요!



  어제보다 괜찮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주문이다. 어제보다 못한 오늘과, 오늘보다 못한 내일이 더 쉽다. 그리고 그보다 더 쉬운 것도 있다. 어제와 별 다를 바 없는 오늘과, 조금 더 칙칙해진 내일이다.


  칙칙한 게 꼭 더 나빠졌다는 뜻은 아니지. 세상에는 칙칙하면 칙칙할수록 더 좋아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


  선생들이 바라보는 학생들의 머리스타일이라던가. 그들이 걸어가는 골목의 도시구획이라던가, 거기를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이라던가, 그것들을 붙잡아서 중성화를 시키는 수의사들의 손이라던가, 수의사같은 번드르르한 직업을 꿈꾸며 구구, 혹은 절절, 하며 우는 학생들의 머리스타일이라던가. 결국 한 바퀴 돌고 만 것이니.


  세상 모든 것은 칙칙하면 칙칙할수록 좋다. 대충대충 두루두루하고, 뭉실뭉실하게. 그렇게 말해도 될까?


  “강 정도는 좀 깨끗해도 될 텐데.”


  발밑의 강물을 바라보며 하린이 중얼거렸다. 흔히 사람들이 ‘똥물’이라고 부르는 강이었다.


  “존나 뛰어들기 싫게 생겼네.”


  그녀는 강에 대고 침을 퉤, 뱉었다. 허멀건 침자국이 아주 빠르게 떠내려갔다. 그녀는 주머니를 뒤져, 구깃구깃한 종이를 집어 던졌다.


  수능 성적표였다, 완전히 망해버린.


  시험이 어려웠으니, 다른 애들도 못 봤을 거다?

  그렇게라도 생각할 수 있는 놈은 비참한 놈들이지만, 비참하게나마 버틸 수 있는 놈들이다.


  조금 더 똑똑한 놈들은, 역설적이게도 그냥 자기가 멍청하다는 걸 인정하고야 만다.


  가망이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자기의 꿈을 대폭 수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두루두루하고 뭉실뭉실한, 왠지 솜사탕 같은 느낌의 ‘꿈’이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 단단하게 굳어서, 손을 대면 베어버릴 듯 한기를 내뿜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인정할 수 있는 놈들은, 비참함을 넘어 고루하지만, 고루하게나마 버틸 수 있는 놈들이다.


  이것도 인정 못하고, 저것도 인정 못하는 사람이 있다.

  어릴 때 천재소리 듣고 자란 하린이 딱 그렇다.

  그녀는 학창시절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다. 타고나기가 똑똑하기도 했고, 그녀에게 희망을 본 부모님의 성화에 온갖 조기교육을 다 받았다. 마침 집안도 괜찮았다. 최고급 교육혜택이 그녀에게 주어졌다. 공부는 물론이고, 예절, 음악, 글 등등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 심지어 호신용으로 쓰라며 유도까지 시켰다. 하린이 생각하기에, 세상 천치를 데려다 놔도 자기만큼 투자해서 자기만큼 공부시켰으면 S대를 갔어야 했다.


  근데, 막상 천재소리 듣는 하린은 S대를 못 가게 생겼다.


  세상에 역설이 한 가득이다.


  절망도 사람을 죽이고, 고독도 사람을 죽이고, 살인마도 사람을 죽이고, 뭐 사람 죽이는 거야 사람 안 죽이는 것보다야 더 많은 세상이래지만, 그 중에서 최고는 역설이다.


  조금 유식한 말로 자승자박(自繩自縛).


  그니까, 지금 하린이 강바닥을 붕어새끼마냥 꿈뻑꿈뻑 쳐다보는 까닭은, 평소에 아가리를 존나 턴 죄라 이 말이다.


  아, 이건 한강각이다.


  하린이 난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대현은 피곤했다. 오늘따라 배달이 많았다.


  “오늘이 수능이었지, 아마.”

  

  올해로 고등학교 2학년인 대현은, 어쩌면 내년에는 수능을 볼지도 모른다. ‘어쩌면’으로 표현하는 까닭은, 그가 공부에 척을 두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그는 학교가 끝나면 배달을 했다. 그게 다 먹고살기 위해서다.


  배달음식을 시키는 집은 대체로 화목하지만, 수능이 끝난 오늘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오랫동안 고생한 자식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뭔가 걸려서 찝찝한 자식의 마음이 영 매치되지가 않는 것이다.


 짜장면과 탕수육이 왔으니 좀 먹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훌쩍거리며 입맛이 없다고 대답하는 자식. 그 둘 사이에서 짜장면은 퉁퉁 분다.


  ‘저거 불면 맛없는데. 사장님이 슬퍼하시겠어.’


  감상은 딱 거기까지다.

  불쌍하다거나, 그런 느낌은 별로 없다. 대현이 싸이코패스라서가 아니다. 그냥, 지금 저 맛있는 음식들이 불도록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연출하는 가족들이, 자기보다 잘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들을 위해 왜 울어주나? 눈물이 넘치나? 눈물도 돈이 있어야 흘린다. 걔네들 눈이 붓든 말든, 나는 짜장면 면발 부는 게 더 아깝다 이 말이다.


  그렇게 배달이 끝나고 집에 가는 중, 대현은 강에 서 있는 한 학생을 목격했다. 교복을 보니 대현이 다니는 청룡남고의 옆에 있는 청산여고의 교복이었다. 가끔 지나치면서 몇 번 봤다. 오늘은 수능날이니까, 고등학교 1,2학년들은 학교를 안 갔다. 학교가 시험장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저 애는 교복을 입고 수능을 쳤다는 건데. 아마 그러면 공부를 꽤 잘 하는 아이였을 거다. 반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은 마인드컨트롤이니 나발이니 하면서 수능날도 교복을 입을 거라고 했다. 평소와 가장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매 점심을 항상 똑같은 걸로 먹는 놈도 있었다. 루틴이라고 하던가?


  왠지 그 애한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예뻐서는 아니고, 아는 사람이라서도 아니고.

  뭔가 느낌이 쎄해서. 그러니까, SNS같은 느낌?


  ‘제발 나 좀 봐 줘요!’라고 하는 듯싶은 느낌이 들어서일까?


  대현은 조심조심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는 무슨 생각이 그리도 많은지, 강에 침을 뱉다가, 중얼거리다가, 아무튼 대현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대현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뒤에 섰다.


  잠시 후, 그녀가 당연하다는 듯이 난간참을 향해 몸을 들이밀었다. 저렇게 해서는 절대 못 떨어진다. 


  ‘쇼를 해라, 쇼를. 떨어지고 싶으면 난간에 올라가서 힘껏 뛰어내려야지.’


  대현은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붙들었다.


  “저기요?”


  그녀가 돌아봤다. 뭔가가 빠르게 움직이며, 대현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대현의 시야가 180도로 회전했다. 그의 시야 가득히 강물이 들어왔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신성한 강이다 뭐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죄다 똥물강이라고 부르는 마을의 강이었다.


  그 다음에 대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멱살을 쥐고 있는 손이었다. 손을 따라 손목으로, 손목을 따라 학교의 문양이 박힌 단추가 들어간 교복 소매로. 그 위에 와이셔츠와, 약간은 유치해 보이는 자줏빛 넥타이. 그 위로 너무 모범생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한 티가 나는 구멍 뚫린 귓불. 귓불을 타고 내려가는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꿈뻑거리는 눈과 입.


  그녀는 마치 이렇게 묻는 듯 했다.


  ‘대체 왜?’


  대현 또한 입을 뻐끔거려서 대답했다.


  ‘저도 모르겠는데요?’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하린과 대현은 똥물강으로 빠져들었다. 역한 냄새가 났고, 숨이 점점 가빠갔고. 뭔가를 설명한 기력조차 스러져가면서.


  아,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지만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절반 정도는 내가 바랐던 죽음, 그러니까. 엄마처럼. 남을 구하면서 죽는 거 말이다.



  대현은 꿈이 싫다. 그는 좋은 꿈을 꾸어 본 적이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일단은 좋은 기억으로 시작한다. 엄마와 나들이를 가는 기억,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을 가는 기억. 내 인생의 짧은 전성기에 대해서. 그 다음에는 불이다. 피어난 불에 집이 불타고, 나를 구하려다 어머니가 죽는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악몽이 아니다. 여긴 기억의 재생일 뿐이다. 이 부분에는 과장이 없다.

  그 다음부터가 악몽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본 적이 없다. 그는 항상 어머니가 나 때문에 죽었다고 했다. 나는 맞았고, 가둬졌고, 혼자 울었고, 어느 순간 안 울다가, 할아버지가 잠든 틈에 그의 지갑을 훔쳐 달아났다.


  그의 얼굴은 수 백가지다.

  나는 그의 얼굴을 너무 많이 알고,

  그래서 그의 얼굴을 모른다. 그래서 그 꿈은 악몽이다.


  얼굴 없는 것이 계속 날 쫒아오니까.


  “흐악!”


  대현이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대현을 끌어안더니, 하린아, 하린아! 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하린아! 엄마야! 엄마. 엄마 알아보겠어?”


  엄마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목이 턱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다. 꿈 때문인가보다.

  그녀를 밀어내려고 손을 들다가, 깜짝 놀랐다. 온갖 굳은 일로 딱딱해져 갈라진 손 대신, 매끈한 여자아이의 손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손톱에는 뭘 바른 것 같았다. 혹시?


  “저기요?”

  하린이 묻자, 아줌마의 눈이 확 커졌다.


  “저기요라니. 왜, 왜 평소처럼 엄마아, 하고 안 하고...”

  “거울 있어요?”  “거, 거울?”

  “핸드폰도 괜찮은데.”


  대현은 아줌마가 건네는 핸드폰을 받아,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모로 보나 여자 얼굴. 이름은 하린. 대충 상황을 알겠다.


  요컨대, 같이 떨어진 두 명의 영혼이 바뀌었다는 거다.


  “하린아! 대체 왜 뛰어내렸어! 엄마가 뭐 잘못했니?”


  옆에서 모르는 아줌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어깨를 흔들었다. 일단, 이 아줌마를 차분하게 만드는 게 먼저일 것 같다.


  “잘못 안 했을걸요?”

  “그럼 왜 뛰어내렸어? 혹시, 수능 때문에?”

  “어, 아마 맞을 것 같기는 한데. 뛰어내릴 생각은 없었을걸요?”

  “근데 왜?”  “사고에요. 사고.”

  “근데 왜 아까부터 존댓말 써? 하린아, 너 평소에는 안 그랬잖아!”

  “아 조금 혼란스러워서... 그나저나, 오늘이 며칠이죠? 아니, 며칠이야?”


  대현이 반말을 하자, 아줌마가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살짝 웃었다.


  “너 하루종일 기절해 있었어!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하루 종일?”

  “그래, 하린아. 하루 조옹일!”

  “혹시, 혹시 말야 엄마. 나랑 같이 떨어진 애 없었어? 이름은 윤대현이고, 청룡남고 다니는 앤데, 고등학교 2학년이고...”

  “있긴 있었다만, 걔는 왜?”

  “걔도 이 병원에 있어?”


  아줌마는 대현의 손목을 살짝 때리며 대답했다.


  “아우, 얘. 그런 애가 어떻게 이 병원에 있니. 이 병원이 얼마짜린데! 그마저도 네 아빠가 병원장이랑 인맥 있으니까 이렇게 VIP룸 쓰잖아!”

  “그럼 걔는 어딨어?”  “어머어머, 애는 걱정한 엄마 이야기는 안 하고 계속 그 남자애만 찾는다? 걔 뭔데? 네 남자친구야, 뭐야?”  “남자친구는 무슨. 아무튼 걔는 어딨어?”

  “너 혹시, 걔랑 뭐 같이 동반자살! 그런거 한거 아냐?! 네가 무슨 다자이 오사무야?”

  “아니 동반자살은 무슨 동반자살이야. 어쩌다가 같이 떨어진거야.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는 또 뭐야.”

  “다자이 오사무를 모른다고? 너 떨어지면서 머리 다친 거 아냐?”

  “아니라니까!”


  대현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팍 질렀고, 아줌마는 깜짝 놀란 듯이 눈을 끔뻑이며, 어머머, 어머머, 하고 있었다.


  조금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몸을 찾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엄마, 미안해. 진짜 나중에 다 설명할게.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알려 줘. 그 남자애 어느 병원에 있는지 알아, 몰라?”  “이 근처에 병원이 두 개밖에 더 있니? 여기 아니면 거, 거기. 청룡대학교병원에 있겠지.”

  “청룡대학교병원? 알겠어.”


  대현은 손을 뻗어, 팔에 꽂혀 있는 링거를 뽑았다. 그리고 환자복을 입은 채로, 복도를 내달렸다. 뒤에서 하린아! 하고 소리치는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목을 죄여오는 느낌에, 하린은 눈을 떴다.


  누군가가 자신의 위에 올라타서,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목을 쥐고 있는 것은 노인이었다. 그는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


  “네가 도망쳐 봤자지.”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서, 하린은 팔을 휘둘렀다. 노인은 계속 중얼거렸다.


  “넌 여기서 죽어야 해. 쓸모 없는 것.”


  하린이 바동거렸지만, 팔을 누르고 있는 노인의 힘은 견고했다.



  “윤대현, 여기 입원해 있죠?”

  “윤대현이요?”  “어제, 물에 빠져서 입원한 사람 있잖아요!”

  “아, 예. 그분이라면 아마 3층에...”

  “고맙습니다!”


  아줌마(엄마)의 추측대로 대현은 청룡대학교 부속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대현은 간호사에게 대충 고개를 숙였다. 간호사는 다른 병원의 환자복을 입고 환자를 찾는 대현을 아주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제발, 최악의 상황만은 피해야 하는데!’


  대현은 사고로 부모를 잃었다. 그러므로 보호자는 할아버지로 되어 있다. 자신을 증오하는 할아버지 말이다. 만약 할아버지에게 연락이 갔다면, 그래서 할아버지가 대현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면, 정말 아주 끔찍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의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병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몸에 올라타 목을 조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하린이 들었을 몸뚱이는 힘없이 바동거렸다. 대현이 외쳤다.


  “그만해!”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을 마주치자, 대현은 마치 커다란 뱀이 자신의 몸을 조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저항할 수 없다.


  어린 시절의 모든 트라우마가, 그렇게 속삭였다.


  너는 저 노인을 이길 수 없어. 라고 말이다. 어떤 과학적 근거도, 산술적 근거치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 강력한 확신이었다.


  “가정사다. 끼어들지 마라.”


  할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대듯이 말했다.


  “이런 녀석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해. 내 딸을 죽인 놈이다.”


  그 순간, 대현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말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안 죽였어.”

  “방금 뭐라고 했냐?”  “걔가 안 죽였다고.”

  “네 녀석이 뭘 안다고?”  “알아. 걔는 엄마를 안 죽였어. 엄마는...”


  내가 죽였어,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걔는 아무 죄가 없어. 해코지는 나한테 해.


  그렇게 생각하며, 대현은 하린의 몸으로, 조금씩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할아버지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봤다.


  그렇게, 아주 무서운 얼굴은 아니었다.


  툭 밀면, 툭 밀릴 것 같은 그런 모습.


  “방해하지 마! 애는 애미를 죽인 놈이다!”

  “걔가, 죽인, 거, 아니라니까, 할아버지!”


  노인은 뜻밖에 말에 당황했다. 노인의 팔에서 힘이 조금 풀어졌다. 깔려 있던 하린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대현의 몸이 하린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그녀는 자기를 깔아누르던 할아버지의 멱살을 쥐고, 그대로 뒤집었다. 유도 기술인 ‘메치기’를 누워서 시전한 듯한 자세였다. 대현의 힘에 하린의 기술이 더해지자, 노인의 몸은 너무나도 쉽게 부딪혔다.


  하린은 두어 번 콜록콜록대더니, 손바닥을 툭툭 쳤다.


  “할아버지, 패드립은 좀 선 넘었잖아. 우리 엄마 멀쩡하게 잘 살아 계신데.”


  그러더니, 그녀는 천천히 대현에게로 다가왔다. 대현은 바닥에 앉은 채로, 쓰러진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렇게, 쉽게 넘어지다니?


  대현은 할아버지가 쓰러졌다는 것에 당황스러웠고, 자신의 몸이 자기에게로 다가온다는 것이 놀라웠다. 분명 그 안에 든 것은 하린일 테다.


  “네가 감히...!”


  할아버지가 일어나서, 하린에게 손가락질했다.


  “...감히 나한테 거역해!”


  그러자 하린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서요?”

  “뭐? 너, 내 딸이 너 때문에 죽은 걸 잊은 거냐?”  “모르겠는데요.”

  “뭐...뭐?”  “모르겠다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할아버지는 씩씩거리더니,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하린에게 달려들었다. 하린은 몸을 비틀어 쉽게 할아버지의 공격을 피한 다음에, 슬쩍 안다리에 발을 집어넣었다. 할아버지는 거기에 걸려 비틀대더니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할아버지, 진짜 깡이 좋네요. 어떻게 이 젊고 튼튼한 몸뚱이에 시비를 걸지? 남자 몸 최고! 아무튼요, 한번 더 들어오시면 그때는 기술 겁니다. 다리 하나쯤 나갈 수도 있어요.”

  “이...이 자식이!”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냥 나갈래요, 아니면 한 대 더 맞고 나갈래요?”


  하린이 그렇게 묻자, 할아버지는 잠깐 고민하더니, 뒷걸음질로 병실 밖으로 나섰다. 대현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 그에게 하린이 다가왔다. 하린은 넘어진 대현에게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자신의 몸이 신기하다는 듯이, 와오. 하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딱 쳤다.


  “야.”

  “예?”


  대현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하린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 끝에는 휴지가 매달려 있었다.


  “내 얼굴로 울지 마라. 가오상하니까.”


  대현이 그제서야 소매를 들어 얼굴을 닦으려고 했다. 하린이 그런 대현을 제지했다.


  “야! 야 이 씨바롬아! 그렇게 닦으면 피부 다 상하잖아! 너 내 피부에 들인 돈이 얼만지 알아?”

  “어... 얼만데요?”  “아나, 그걸 모르니까 저러지. 가만 있어 봐.”


  하린은 휴지로 조심조심, 대현의 피부를 문질렀다. 그림이 참 이상했다.


  “저, 이건 좀.”

  “어허. 가만히 있으래도.”

  “예...”

  “일단 미안하다.”

  “뭐가요?”  “네 할아버지 팬 거. 어쩔 수 없었어. 그게 내 성격이거든. 근데, 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할아버지가 널 죽이려고 들어?”

  “그게요...”

  “됐다. 말하지 마. 노인네들 생각을 젊은이가 대체 어찌 아냐? 에효.”


  대현은 고개를 숙인 채로, 뭔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뱃속을 뭔가가 쿡쿡 찌르는 느낌, 그러면서도 뭔가 시원한 듯한 느낌이었다.

  하긴, 대체 누가 알겠는가?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심상을.


  그저 이것도 꿈인가,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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