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세계 최강의 보모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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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6 Jul 3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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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춥앵

7.

 

 

후일담이다.

보모의 잠자리에 조그만 변화가 생겼다. 열일곱 김보모 군의 하루는 얼굴에 아침햇살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베란다에서 자게 되었다.

원룸에 여자애들이 너무 많아 스스로 베란다를 택한 것이다. 얼마 전에 인터넷 쇼핑으로 마련한 침낭은 꽤 성능이 좋았다. 거기다 커튼까지 쳐놓으면 의외로 자기 공간까지 생긴다.

………행복해 보이려고 자기합리화 하는 건 결코 아니다.

보모는 침낭에서 나와 베란다의 문을 열었다. 속옷 차림의 용미가 바지에 다리를 넣다가 넘어졌기에 다시 문을 닫았다. 이번에는 검은색인가. 어른이 되었구나, 소녀여.

“아빠! 들어오세여! 뿌힛!”

옷을 입은 용미는 활짝 웃으며 보모를 원룸으로 끌어들였다. 벽에 걸린 커튼 너머에서 잠옷 차림의 치미가 하품을 하며 등장했다. 원룸 벽의 커다란 구멍이 보모의 마음을 또 다시 아프게 했다. 방주인 아줌마한테 영원히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보모는 그런 생각을 하며 TV를 켰다. 좁아터진 자취방이지만 TV는 있다. 며칠째 아침뉴스를 주시하고 있건만 그 사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지하철 사건의 이야기다.

그 날, 붕괴한 철로를 걸어서 역에 도착한 보모에게 웬 노인이 명함을 건네 왔다. 옆에 있던 꽃님이가 칼 같은 경례를 했다. 그녀의 상관인걸까. 노인은 꽃님이의 경례를 받더니 순식간에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명함에 뭐라고 쓰여 있었더라. 아마도 특수재해방지국 카테고리 데모닉, 이라고 쓰여 있었지? 무슨 뜻인지 몰라서 대충 주머니에 꾸겨 넣은 기억이 있다.

“그렇게 큰 사건이었는데….”

인터넷 검색 순위에도 올랐다가 자꾸 사라지는 걸 보면 아무래도 수상한 냄새가 난다.

“…정부에서도 쓸데없는 소란은 막고 싶은 거겠지.”

시민들이 알아봐야 불안에 떨 뿐이다. 문제의 사건은 부실공사로 인한 단순붕괴 사고로 매듭지어진 듯 했다.

“아빠! 용미 부업 열심히 할게여! 식비 벌게여! 색종이 넣을게여!”

용미는 최근 비닐봉투에 색종이 넣는 부업을 시작했다. 자신의 식비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저런 일거리는 어디서 잡아왔나 싶지만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폐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오히려 사랑스럽다.

슬슬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한다. 보모는 세수를 하려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흐냐아아…♡”

맹세한다. 보모는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쾌감어린 표정을 본적이 없었다. 밤에 이불 뒤집어쓰고 부모님 몰래 보던 야구동영상에서 조차 없다. 시원한 물소리에 맞춰 삼각형의 고양이귀가 부르르 떨었다. 달타냥은 아마도 그녀의 삶 최초로 비데를 사용하고 있었다.

보모는 조용히 화장실 문을 닫았다.

뒤통수로 벽을 두들기며 딱따구리를 흉내 냈다.

딱, 딱, 딱, 딱.

정신이…, 아득해…, 진다…….

 

“……………………………………………………하응!”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보모를 현실로 끌고 온 것은 다급히 문을 두들기는 소리였다.

“보모! 학교 가자! 빨리 가야해! 우리 늦었다니까!”

빛나다. 빛나가 학교가자며 보모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 걸까. 보모는 황급히 시계를 확인했다. 1교시 시작까지 겨우 십 분 남았다.

“으아악! 빛나! 잠깐만 기다려줘! 지금! 패, 팬티만 입고! 아니! 교복 입고 나갈게!”

“팬…티…? 보모? 아니지? 아닐 거야. 보모가 아침부터 여자애들 가득한 원룸에서 알몸으로 하나 둘 셋 체조 같은 걸 할리 없잖아. 아하! 아하하하하!”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렇지? 난 보모를 믿으니까. 보모는 고자니까. 그치? 그치, 보모? 맞다! 보모! 나 며칠 전에 재래시장 가서 잘 드는 손도끼를 하나 장만했는데….”

“이 아가씨야! 그런 걸 왜 샀는데?!”

새집 지은 머리조차 만질 시간이 없을 것 같다. 교복을 대충 걸친 보모는 현관을 향해 달려 나갔다. 식탁에 앉아있던 잠옷차림의 치미가 말했다.

“보모, 실망이야. 된장찌개 이런 식으로 밖에 못 끓이니?”

“하하하! 죄송…, 은 개뿔! 이봐! 당신은 출근 안 해?!”

“아침밥 안 먹으면 급식 때까지 힘들단 말이야.”

“시끄러우니까 당장 씻고 옷 갈아입어! 나중에 양호실 가서 확인한다!”

이 도대체 무슨 개판이란 말인가. 보모는 눈물을 머금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 너머에 교복차림의 빛나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다. 앞집 옥상 난간에 선 꽃님이도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설꽃님! 그런 곳에 서 있지 마! 떨어지면 다치잖아!”

“뛰자! 택시 잡아야 할 것 같아!”

“보모! 내가 아끼는 민트색 브라세트는 세탁 해놨니?”

“아빠! 공부 열씨미 해여! 우리 존재 파이팅! 그리고 올 때 메로나!”

“보모오오! 히냐아앙!”

아침 댓바람부터 소란스러운 파워원룸 207호.

지금 김보모 수난시대의 막이 올랐다.

 

 

epilogue.

 

 

칠흑이 내려앉은 밤.

고층 빌딩의 꼭대기에 한 소녀가 서있었다. 긴 머리칼이 밤바람에 나부낀다. 도시의 야경은 아름답다. 밤의 장막 사이로 색색의 인공조명이 빛을 발했다. 본래 이 시간은 그들의 것이 아닐 것인데.

문명의 힘. 인류는 어둠조차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었다.

“진짜 화려하게도 부숴놨네.”

소녀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것은 며칠 전에 붕괴된 한강 유역의 철로다. 엉망이 된 철로는 이미 수복작업에 들어가 있었다. 몇 달 후에는 정상운행이 가능해지겠지. 새삼스럽지만 인간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녀는 바닥에 앉았다. 내려둔 기타를 끌어안고 줄을 튕겨본다. 짧은 음들이 하나로 이어져 애달픈 멜로디를 자아낸다. 좀 오래된 곡이다. 캐스커의 21세기 모노리스.

소녀가 반주에 맞춰 흥얼거렸다.

안타까운 곡조가 바람을 타고 별하늘로 흩어져간다.

 

벤치 위의 노신사 아무 말 없이

담배에 불을 붙이곤 지친 몸을 쉬네요

시들어진 꽃들을 어루만지며

세상을 이긴 승리자에 탄식을 하고

흐릿해진 하늘을 보며

어린 시절 꿈들은 한숨이 되 가고

끝도 없이 이어만지는

폭풍우의 계절은 눈물을 뿌리네

 

역사라고 불렀죠

파괴를 믿고 화폐를 믿고

과학이란 종교를 믿었는데

누구를 탓 할까요 버려진 낙원

신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답니다

위대했던 인류의 꿈은

자신의 관을 직접 만들어 갔고

끝도 없이 올려간 탑은

예정된 싸움 속에 무너져 버리죠

 

이윽고 마지막 음이 서늘한 밤공기에 녹아들었다.

“와아. 다음 앨범에는 이런 우중충한 곡도 수록해 볼까?”

기지개를 켠 소녀는 엉덩이를 털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기타를 어깨에 메고는 호쾌하게 돌아선다. 어두운 공간에 발소리가 뚜벅 거리며 울린다. 가느다란 뒷모습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뭐, 마지막까지 열심히 놀아봐. 용사님들.”

소녀가 쿡쿡 거리며 웃었다. 빌딩 위의 인기척이 천천히 사라졌다.

이제 그곳에는 적막한 어둠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때는 21세기의 어느 봄이었다.

 

 

인류 멸망의 날까지,

231일 - .

 

 

 

- Fin -

 

comment (4)

춥앵 작성자 12.07.31. 18:28
하여간 난 이제 라노베 쪽은 접으려고 해.
게임문학상이나 청소년 문학쪽 알아봐야지.
이미 에피소드2를 절반이상 작성했지만 이건 풀지 않을거얌..
앗녕.
아디오스!
수려한꽃
수려한꽃 12.07.31. 19:43
이거 모아서 장편회랑 게시판으로 옮겨도 됨?
춥앵 작성자 수려한꽃 12.07.31. 19:45
그렇게 합시다 헤헤
샛여울 12.07.31. 21:53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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