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지는 청소년 소설과 라이트노벨의 문제의 문제
Write- 16:26 Dec 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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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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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청소년에게 그 어떤 라노베라도 선뜻 권할 수 있는 저로서는 위래 님의 문제제기가 솔직히 생뚱맞게 들립니다. 조금 더 정리된 발제문을 올려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먼저 '지금의 청소년이 어떤 소설을 원하고 무엇을 읽고 싶어하는가를 알고 싶다면 우리는 최근에 유행하는 라이트노벨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청소년이 되었든 대중이 되었든 독자가 선호하는 소설은 대개 통속소설이며, 라노베는 그런 통속소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라노베가 주로 청소년들이 향유하는 문화며, 또 통속소설 중에 차지하는 비중이 나날이 커지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이 원하는 소설'이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또 '여러분의 책을 짚게 될 청소년에게 여러분은 어떤 글을 보여줄 것인가?'라고 물으셨는데, 그것은 어떤 작가든(심지어 순수소설 작가라 해도) 마찬가지 대답을 내놓을 겁니다. 그 대답이란 '재미있는 소설'이죠. 같은 의미에서 작가가 독자에게 져야할 책임은 딱 한 가지뿐입니다. 재미있는 소설을 내보여야 한다는 거죠. 만약 작가에게 그 이상의 책임을 요구한다면(예를 들어 도덕적/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을 쓰라고 강요한다던가) 그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될 겁니다. 작가 입장에서는 썩 즐거운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최근 유행하는 라노베 중 자신있게 권할 것이 있는지는 좀 생각해 봐야할듯. 일단 최근 유행하는 게 뭐죠? 제가 유행에 둔해서 ㅡㅡ
1.
'라노베는 그런 통속소설 중 하나에 불과'라고 하셨지만 청춘소설이 라노베가 가진 일면에 불과한 것처럼, 통속소설이란 점 또한 라노베가 가진 일면에 불과합니다. 비록 그 일면이 매우 비대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요. 따라서 라노베를 통속소설의 한 카테고리로 격하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2.
재미있는 소설에 대한 생각은 모두가 다르며, 청춘소설에 대한 고민, 청소년에게 어떤 소설을 보여줄까 하는 고민들은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책임감'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이 글의 논조는 잘못되었지만요.

2.청춘소설에 대해 고민하거나 청소년에게 어떤 소설을 보여줄까 고민하는 것이 재미있는 소설을 만들어낼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고민들은 작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재미를 창출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뿐입니다. 그것은 라노베가 아닌 청소년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려령의 완득이나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가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쓰여졌을 것 같지는 않네요. 제가 작가 본인이 아니라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2. 재미에 대한 기준을 통속적인 재미에 한정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장르소설이 곧 통속소설인 것은 절대로 아니죠.

장르나 포맷으로 작품의 성질을 따지는 일을 왜 지양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르나 포맷은 어떤 작품을 특정하고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한 개념일 뿐인데요. 본격소설(순수소설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만)과 통속소설을 구분하려는 의도를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야 말로 '그릇된' 일이라고 봅니다.
2. 물론 모든 SF나 판타지가 통속소설은 아닙니다만(덧붙여 통속소설이 아닌 SF나 판타지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하죠), '장르의 코드'는 오히려 통속적인 재미를 보장하는 요소를 지칭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적유희를 좋아하는 본인이지만 위래 쨩이 꺼낸 이 이야기는 너무 무익하다.
왜 무익한 이야기라고 단정짓냐면, '권할 수 있는 라이트노벨'이 '좋은 라이트노벨'이라는 전제로 시작하는 이야기에 전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래 쨩은 좀 더 완곡한 어조로 이야기했지만은, 아무튼.
청소년 소설에 반발감을 느껴 읽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위래 쨩이, 읽는 것을 권할 수 없고 방치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라이트노벨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우리가 무언가 실수를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묻는 것부터가 앞뒤가 이상하지 않은가?
훈육적 목적으로 써진 소설이 싫었던 위래 쨩은 어째서 훈육적 가치, 말하자면 꼰대적 태도로 라이트노벨의 방향에 대해 타진하고 있는가?
아무리 위래 쨩이 완곡한 태도를 취한들, 위래 쨩이 이러한 질문을 발화한 순간부터 무언가 어긋나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라이트노벨, 혹은 소설의 보다 나은 미래를 고민할 만한 떡밥은 무수히 많은데...
기본적으로 라이트노벨을 읽는 독자는 라이트노벨을 '놀이'의 대상으로 접근하지 '공부'의 대상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이는 라이트노벨이라 불리지 않는 소설을 비롯해 음악 영상등 많은 문화적인 매체들의 공통점입니다. 굳이 라이트노벨로 한정지어서 생각하실게 아니라는 거지요. 그리고 '공부'의 대상으로 비춰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글쓴이가 본문에서 언급했군요.
앞서 언급한 메체들은 수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쉽게 말해 명작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작품들은 글쓴이가 바라는대로 재미와 거기에서 철학적인 깨달음을 제공하거나 최소한 화두를 던집니다. 하지만 그런 철학적 화두와 깨달음을 제공치 않아도 재미라는 요소 하나만으로 많은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굳이 재미를 추구하는 놀이에서 억지로 그런 요소들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스포츠 관람의 예를 들어보죠. 스포츠 관람 역시 재미를 추구한다는 대 전제를 깔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야구 관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야구의 대단함을 전달코자 할때 야구 관람은 어떠한 교훈이나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야구관람은 바람직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그러한 가치를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대부분의 다른 스포츠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지 야구만의 가치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사람들이 인정해주길 원하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욕구이나 그 방법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새로운 가치를 지니기를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서브컬쳐란 메인스트림이 아니기 때문에 붙는 것입니다. 날것으로 말해 '취향이니 존중해 주시죠.' 라는 말을 에둘러 하는 것이지요. 서브컬쳐는 서브의 위치에서 메인스트림과 영향을 주고 받는 것으로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외려 메인스트림으로 편입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물론 서브컬쳐가 메인스트림을 잡아먹고 메인스트림이 된 경우도 수없이 많습니다만(가까운 예로 소설이 그렇군요.)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서브컬쳐의 영향이 확대되었기 때문에지 서브컬쳐가 메인스트림을 계몽한 결과로 보긴 힘듭니다. 글쓴이가 라이트노벨의 재미를 다른사람이 알아주는걸 바라듯이 라이트노벨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싫다고 거절할 수 있음을 생각해 주십시오. 물론 읽지도 않고 거부하는 경우는 불만스러울 수 있습니다만 그 역시 개인의 취향이니 존중해야지요. (읽지도 않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약간 다른 이야기입니다. 허나 읽지도 않고 가치판단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어떠한 유의미한 요소가 있으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면 그건 오지랖이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을것 같습니다.)
덧붙여 저는 글쓴이에게 한국에서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스티븐 킹의 창작론에 관한 책을 읽어보길 권합니다.
10대 청소년이 주 고객이라 주장하며 따라서 주인공이 고등학생이어야한다고 공모전에 주장하는 시드노벨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