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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라이트노벨은 무너져가고 있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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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을 말하기 앞서,

 라이트노벨 작가를 지향하는 지망생, 더 나아가 창작자로서, 그리고 독자로서 지금 우리는 편협한 길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생각해서 이 글을 씁니다. 이 칼럼은 제가 라이트노벨을 처음 접한 시점부터 수 년이 흐른 지금까지 가져온 마음을 털어놓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다시 한 번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편의상 아래의 내용은 반말로 적겠습니다.


1. 

라이트노벨 작가지망생들은 오늘도 각 출판사가 지향하는 스토리나 독자가 어떠한 것을 원하는지를 갈구하고 있다. 거유나 로리같은 단순한 캐릭터 코드로 시작해 독자를 자연스레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클리셰까지 연습과 토론을 반복하며 다음 공모전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나는 과연 이 것이 옳은 문화인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그 캐릭터의 외모나 성격을, 더 나아가 그 캐릭터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모에' 라는 단어로 귀결시키고 정립시켰다. 사랑 앞에선 그 무엇도 거리낌 없고 설사 피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소녀는 단순한 '얀데레' 가 되었고 좋아하지만 그 마음을 내비칠 수 없어 차갑게 구는 여자아이를 우리는 '츤데레'라 부르게 되었다. 캐릭터간의 구별이 사라졌고 모에라는 것은 그 캐릭터의 이름을 뒤덮었다. 그리고 우리는 예전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다가서는 캐릭터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수 많은 토론과 칼럼은 이 단어에 대해 파고들기만 할 뿐 본질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변명으로 '출판사와 독자가 이러한 것을 원하기 때문에' 라는 말이 떠돌게 되었다.

클리셰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은 '판에 박은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 (출처: 두산백과) 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클리셰를 연구한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따라 그 클리셰들은 꼬아지고 세련되어 갔지만 결국 클리셰는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것이 라이트노벨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어쩌면 그건 우리가 보아온 수 많은 라이트노벨. 그리고 그 중에서 우리를 라이트노벨로 빠져들게 한 그 이야기들이 이러한 장면들을 보여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예가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까.


2.

 내가 처음 라이트노벨을 접할 무렵은 아래의 세 작품이 대세이던 시절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접한 것은 하루히였고 그 때의 나는 라이트노벨이란 것이 생소하고 또 창피해 (표지에 나온 하루히의 모습이 왠지 창피하게 느껴졌다. 여자아이가 그렇게 크게 그려진 책을 사는 것은 처음이었으니) 카운터에서 뒷 면으로 내고 책을 다시 건네받았다. 읽었을때 가장 먼저 들었던 것은 '재미있다' 였다. 하루히나 미쿠루가 사랑스럽다던지 쿈이 되고 싶다던지 같은 생각은 없었다. 단지 재미있었고 저런 세상이 현실에도 존재하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그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책을 사서 보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재미있었고 현실에서 느끼지 못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많은 사람들이 되물을 것이다. "왜? 그럼 판타지 소설이랑 다를게 없잖아?" 아니 극명하게 다른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일부 판타지 소설 제외) 두 번째는 주인공이 자진해서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아닌 '타인, 특히 이성의 도움을 받아' 무언가를 해낸다는 점이었다. 그 무렵 내가 보았던 '드래곤 라자' 나 '룬의 아이들' 같은 소설과는 주인공의 태도부터가 달랐다. 판타지 소설 속의 주인공은 강했고, 수 많은 동료들이 그를 따랐으며 위엄있었고 포기하지 않았다. 후치 네드발은 여전히 씩씩했고 조슈아는 천재였다. 그리고 그들은 현실로 불러오기엔 너무나도 아득한 판타지세계에 살았다.

하지만 라이트노벨 속의 주인공은 왠지 나랑 비슷하다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주인공을 변화시켜주는 동료들이 있었다. 강자 -> 더 나은 강자 가 아닌 약자에서 강자가 되는 이야기였다. 바보같은 개그와 함께.


3.

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이라는 것은 참 달기 쉬운 명찰이었다. 관련 커뮤니티에서 이야기를 쓰고, 관련된 이야기로 채팅을 하고, 신작들을 사 읽는 것 정도면 충분히 자칭 '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 이 될 수 있었다. 이어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도 빠져들게 되었고 미연시또한 알게 되었다. 나스 키노코를 알게 되었고 한 땐 사람들이 니시오 이신을 천재라고 추앙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일부 사람들은 그렇다.) 마니악한 사람들은 야마가타 이시오나 나리타 료우고 같은 작가들도 좋아했다. 좋아했다. 중요한것은 이 단어였다.


나 또한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고 그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매 권이 발매할 때마다 사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작가의 작품을 사서보았고 관련 물품들도 조금은 소장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소설에 나온 캐릭터를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다. 주인공도 아니었고 여주인공도 아니었다. 악역으로 등장했다가 조연급으로 비춰지는 한 캐릭터였다. 그 캐릭터가 등장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고 어떤 내용으로 전개될 지 혹여나 그 캐릭터가 죽지는 않을지 생각했다. 래핑을 뜯는 그 순간까지.

이렇게 나는 한 명의 독자였고 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고 이야기와 캐릭터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 땐 나와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4.

주변의 시선은 좋지 못했다. 우연히 학교에서 라이트노벨을 가져왔다가 들킨 어떤 아이는 오타쿠에 저질 취급을 받으며 그 학년 내내 놀림감거리가 되었다. 나는 라이트노벨과 애니메이션, 만화에 빠져있다는 것을 주변 친구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창피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라이트노벨 겉 표지에 혀를 내밀고 웃고있는 소녀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입 밖으로 "나도 보는데……."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한국의 학생들은 일본이란 나라에 미미하게 라도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고,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에 안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중학교, 고등학교의 문화는 연예인과 드라마, 영화였지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아니었다. 소설이래봐야 한물 간 귀여니의 늑대의 유혹이라던지 같은 여성향 소설이 전부였다. 그래도 내심 품고있던 생각이 하나 있었다.

보면 다들 즐거워 할 것이고 나루토나 원피스같은 애니메이션 정도는 수용하고 있으니 언젠간 라이트노벨도 취미로서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이 생각이자 작은 소망은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깨부수어졌다. 


출판사는 점점 자극적인 소설을 찍어냈고 그것을 수용해줄 사람은 지망생과 마니아들 뿐이었다. 점점 더 마니아들을 위한 소설만이 나왔고 마니아가 되지 못한 마니아들은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오타쿠' 라는 이 세글자는 이젠 되돌릴 수 없는 하나의 낙인이 되고 말았다.


5.

일본에서 왔으니 일본껄 따라가야한다고들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개 오랫동안 글을 써온 지망생들이거나 발이 넓은 독자 혹은 이쪽 계통에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본 것을 보고 좋아했으니 당연히 그 쪽 문화를 따라가야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지만 캐릭터는 한복을 입었고 한국 이름을 썼다. 가슴은 컸고 안경모에라는 타이틀을 달고 때로는 벗고, 음란한 말을 했다. 나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재밌다 라는 말은 더 이상 나올 수 없었다. 

수 많은 지망생과 일부 독자들이 외쳐온 '캐릭터 소설' 이 진짜 나타나고 말았다.




위 세 작품은 라이트노벨의 시초격이 되는 소설들이다. 은영전, 슬레이어즈, 구인사가 어떻게 보면 다른 여타 SF, 판타지소설과 다를게 없었던 이 세 소설은 라이트노벨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사람들은 그런다. 라이트노벨이다. 경 소설이다. 가벼운 이야기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세 작품을 아는 사람들은 과연 이 것들이 가볍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슬레이어즈는 사람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겠다.) 

시대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이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일본의 라이트노벨은 변화해갔고 그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점차 변해갔다. 대표적으로 연령층이 변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트노벨을 보고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껀덕지는 남아 있었다. 

근데 우리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시작해 <내 여동생은 이렇게 귀여울리 없어>, <하이스쿨 DXD> 등 변화하기 이전의 라이트노벨은 모른 채 이미 크게 변화해버린 라이트노벨을 바라보며 라이트노벨이 이런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형적으로 캐릭터에 집착하는 이야기를 낳게 되었다. 어떻게든 매력있게 어떻게든 빠져들게, 하지만 결과는 짜깁기로 이루어진 가짜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리고 새로이 마니아로 접어드는 사람들이 이 것을 즐겁다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점점 더 기형화 되고 집착하게 되고 

무너져간다.



6.

나는 무섭다. 라이트노벨을 좋아하는 것으로 학창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라이트노벨을 좋아하고 있다. 그렇기에 무섭다.

라이트노벨이란 것이 혐오가 담긴 시선을 더해 더 이상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출판사의 목적과 다르더라도 당장의 판매량과 인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학적 기교도 수준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원했고 바라보았고 사랑했던건 무엇이었나.

단 한번쯤은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라이트노벨이 한국에서도 애니메이션으로 당당하게 방영되고,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더 나아가 영화로도 제작되는 일을.

웹툰은 왜 그 수 많은 사람들이 별점을 누르고 인기를 얻는데 라이트노벨은 그렇지 못할까 생각해보지 않았나.


조금은 아쉽다. 너무 먼 길을 와버린 것 같아서. 지망생이고 독자고를 떠나 그 때의 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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