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미친 빌과 귀신늑대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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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덩이가 비명을 지르자 빌은 주저 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화염병에 직격당한 총병은 뒤통수가 쪼개진 채 땅에 엎어져버렸다. 뒤이어 폭음과 함께 총병의 몸이 들썩거렸다. 주변의 병사들은 질린 표정으로 시체를 바라보았다.

 

 “대오를 유지하라!”

 

 반복되는 빌의 명령에 병사들의 고개는 즉각 원래대로 돌아갔다.

 

 “갈고리!”

 

 키체커의 외침이었다. 이번엔 빌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병사들은 갈고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았다. 총이나 도끼가 사람 대신 걸렸다. 대신 익인들도 멍청하게 갈고리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들은 즉각 밧줄을 놓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갔다. 뒤이어 투창과 돌, 화염병이 다시 낙하했다. 시론이 다급하게 외쳤다.

 

 “방패! 방패를 가져와! 죽은 놈 거라도 가져와!”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상병이 생기고, 전사자가 생겼다. 옷에 불이 붙은 병사들 위로 동료의 망토가 날아다녔다. 축차적인 손실. 그러나 빌은 여전히 같은 명령만 반복했다.

 

 “대오를 유지하라!”

 

 뾰족한 수가 없다지만 시론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서 있기가 싫었다. 그는 당장 빌에게 달려가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후퇴해야겠어!”

 

 시론은 억지로 빌을 끌고 갈 각오까지 했다. 빌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래. 슬슬 가자.”

 

 빌 대장이 어떤 거부의 말을 꺼내던 뒤로 잡아당기려던 시론은 예상외의 대답에 잠깐 말하는 것을 잊었다. 그는 다급히 물었다.

 

 “어, 대장. 이거 환청은 아니겠지?”
 “왜 늑대들이 덤비지 않는 것 같나?”

 

 빌의 엉뚱한 반문에 시론은 당장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입만 벙긋거리더니 간신히 말을 꺼냈다.

 

 “모, 모르겠는데.”
 “늑대들은 우리에게 밀집대형을 취하게 했어. 그리고 익인들은 미리 준비한 무기를 사용했지. 늑대들은 처음부터 우릴 간단히 이길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어. 여기까진 이해했다. 그런데 그 다음 순서는? 나라면 지금 이 상황에 늑대들을 돌격시킨다.”

 

 시론은 창병들의 창으로 눈을 돌렸다. 어느 사이엔가 창촉은 꽤 높은 각도로 겨누어졌다. 익인을 찌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늑대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부 숲으로 도망쳐버렸기 때문이다. 빌은 몸을 천천히 돌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손발이 안 맞는 건가. 어쨌든 빈틈을 기꺼이 이용해야겠지. 숲 쪽을 경계하면서 아군을 물릴 것을 홀더 대위께 건의하겠다.”

 

 대형이 다소 망가지더라도 일단 늑대들이 달려오지만 않으면 문제없다. 오히려 숲과 거리를 둬야 늑대의 기습적인 돌격에 당하지 않는다.

 

 “어찌됐든 결정타가 안 나오니 다행이다.”
 “결정타?”
 “그래. 우릴 완벽히 격퇴하려면 뭔가 결정타가 될 만한 것을 준비했을 텐데, 익인들에게 그 정도 여유는 없었던 모양이다.”

 

 시론의 입이 벌어졌다. 빌의 지적이 타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빌이 아니라 그보다 더 높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어, 대장? 이 근방에 밀조장이 있었어?”

 

 빌은 뜬금없는 질문에 눈만 껌뻑거렸다. 밀조장? 있지. 항상 거래하는데. 시론은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말을 끝맺었다.

 

 “털렸나봐.”

 

 그 순간 빌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맛봤다. 국왕의 세금을 피해 만들어진 비밀 술 창고들. 빌은 바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익인들이 들고 오는 것은 어린애만한 통들이었다. 그 통은 자체의 무게만이 아니라 내용물도 지극히 위험하다. 빌은 즉시 가장 강력한 화력을 주문했다.

 

 “경포, 앞으로!”

 

 빌의 지시에 따라, 대형 한복판에 있던 경포가 즉각 앞으로 나왔다. 포병들은 곧 상황을 이해했다. 재앙이 다가왔다. 그들은 재빨리 대포의 각도를 조절하고, 자포를 포신에 끼웠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그들은 귀를 막았다.

 

 “쏴!”

 

 사람의 몸까지 울리는 포성이 터졌다. 세 명이 들 수 있는 대포라고 해서 약한 건 아니다. 수십 발의 산탄이 허공을 찢자마자, 느릿느릿하게 날아오던 커다란 술통들이 폭발해버렸다. 하늘에서 불벼락이 쏟아졌다. 겨우 70야드 앞. 병사들 사이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또 온다!”

 

 키체커의 경고였다. 용케 맞지 않은 술통들, 터지지 않은 술통들이 다가온다. 병사들은 서둘러 총탄과 화살로 표적을 겨누었다. 몇몇 익인은 기어이 떨어졌다. 그러나 빌은 계획을 대폭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익인들이 술 창고를 털었다면 술통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고 봐야 한다. 생각할 시간이 모자란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한다.

 

 “경포, 재장전! 서둘러라!”

 

 빌의 지시와 달리 포병들의 행동은 다소 굼떴다. 그들은 포신 내부의 새카만 그을음을 정신없이 닦아내며 외쳤다.

 

 “그을음이 너무 많이 꼈어! 거기다 포탄 부족!”

 

 빌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는 신속하게 지시했다.

 

 “부상병은 화약과 탄환을 경포에 넘겨라! 납 남은 놈들은 즉시 총탄을 주조한다! 아니, 자포에 돌멩이라도 대신 쑤셔 넣도록!”

 

 화약통에서 검은 가루가 빈 자포로 쏟아진다. 탄환과 화약 사이에 끼워 넣을 나무 마개는 즉석에서 제조가 힘들어서 결국 녹인 납을 얇게 펴서 대용품으로 쓴다. 문제는 이게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급한데 언제 불 피우고 납 녹이고 원하는 형태로 굳히겠는가. 빌은 결국 경포의 화력을 포기했다. 시간이 없다. 그는 대열 한복판으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키체커, 틸리! 술통 들고 오는 놈을 최우선으로 제거해라! 그리고 전군, 철수 준비!”

 

 

 

*
 셀레스테는 산책하는 것처럼 걸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과 귀는 전장의 소란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다급한 전장이 먼발치에 존재한다. 나무가 타는 냄새. 술 냄새도 난다. 피와 땀의 냄새는 당연하다. 화약 냄새가 제일 지독하다. 병사들은 거듭되는 고난 속에서도 계속해 고함을 질렀다. 나의 왕이여! 그리고 죽거나 다친다.

 

 신기한 족속들이다.

 

 西파롤의 왕이라면 셀레스테도 들어봤다. 요절한 선왕의 아들이며, 북부의 왕으로 등극하기 일보 직전의 군주. 그의 옷에서 떨어진 보풀을 우려낸 물이 병자를 낫게 했다는 강력한 군주. 하지만 저 병사들 중 그 왕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병사들은 그의 고함소리를 들었을까? 그가 입은 갑옷을 보았을까? 그와 같은 빵을 먹었을까? 아직 전쟁도 없는데. 병사는 왕의 이름으로 소녀를 방해한다. 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셀레스테는 웃어버렸다.

 

 숲. 셀레스테는 점점이 이어진 핏자국과 부러진 나뭇가지들, 그리고 동족의 냄새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컴컴하고 습한 숲속에서 그녀는 곧 동족들을 발견했다. 총에 맞고, 창에 찔리고, 도끼날에 베인 늑대들. 쓰러져서 헐떡거리는 늑대들 중 다수는 이미 가망이 없다. 셀레스테는 그들 한복판으로 걸어갔다. 곧 거대한 덩치의 괴물늑대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원형으로 선 거대한 식인괴수들에게 소녀는 짜증부터 냈다.

 

 “왜 여기 있는 거지?”

 

 셀레스테의 질책에 괴물늑대들은 앓는 소리를 냈다. 장창에 무리하게 돌격했다가 피투성이가 된 괴물늑대가 그들의 앞으로 나섰다. 셀레스테는 그를 노려보다 말했다.

 

 “그럼 쉬울 줄 알았어?”

 

 용기 있게 나선 괴물늑대는 다시 뒤로 물러서야 했다. 셀레스테는 숲 밖을 가리키며 지시했다.

 

 “익인들이 틈을 만들어주니 빌만 물고 와. 인간들 전부를 상대할 필요는 없잖아.”

 

 음울한 신음소리가 무리 속에서 새어나왔다. 셀레스테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면서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겁먹은 늑대들은 모두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늑대들은 화약 냄새가 싫었다. 완전무장한 건장한 남자가 싫었다. 괴물늑대들이 있다고 해도 집단이 된 인간은 상대하기 어렵다. 괴물늑대는 인간에게 절대적인 식인괴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사냥에 한정한 이야기.

 

 셀레스테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사냥이라고 생각해!”

 

 괴물늑대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셀레스테는 계속해서 외쳤다.

 

 “뛰어나가! 가만히 있으면 놓쳐! 신도 내려주기 어려운 기회를 낭비하지 마!”

 

 늑대들의 시선이 교차했다. 셀레스테가 하는 말은 이해했다. 익인들이 술통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밀집대형에 이런 재앙은 또 없다. 지금이 기회다. 하지만 괴물늑대들은 쉽게 나서지 못했다. 그들의 두꺼운 가죽도, 억센 발톱도, 강력한 턱도 집단을 상대하기엔 부족하다. 집단이란 적을 극복하기에는 근소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다.

 

 셀레스테는 인간의 왕을 떠올렸다. 얼굴도 못 본 왕과 희미한 명예와 그날의 일당을 위해 죽는 병사들. 그런 것보다 확실한 동기부여가 늑대들에게 주어질 수 있다. 그녀는 괴물들에게 약속을 상기시켜주었다.

 

 “봄에는 내가 낳을 새끼가 보고 싶겠지?”

 

 결정타였다. 결국 괴물늑대들은 하나둘씩 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부하들은 셀레스테를 곁눈질하더니 그 뒤를 따랐다. 눈에 보이는 보상, 눈에 보이는 대장. 셀레스테는 한숨을 내쉬었다. 타향의 늑대들을 집단으로 움직이는 경험은 그녀에게 낯선 것이지만, 통솔문제는 해결되었다.

 

 마지막 늑대가 사라지자 셀레스테는 땅바닥에 털썩 앉았다.

 

 셀레스테의 짝은 미친 빌을 셀레스테에게 갖다 바치려 했다. 빌은 살기 위해 발악하듯 저항했다. 빌의 동료들은 대장을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귀신늑대들은 일개 개인에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셀레스테는 늑대들에게 그녀의 짝이 해내지 못한 일을 강요했다. 익인들은 삶의 터전을 지킨다. 개척민과 병사들은 돈과 왕의 명령으로 싸운다.
 이유는 많다. 모두 죽여라.

 

 죽은 자의 왕이 속삭이는 느낌이다. 이것은 과연 내 의지인가. 셀레스테는 결코 평범한 사냥이 아닌 복수극을 돌아보았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사냥과 복수를 동일선상에 놓아야 하는지부터가 문제다. 죽은 자의 왕이 듣는다면 폭소할 고민거리다. 죽음은 평등하다며?

 

 셀레스테는 사고를 그만두었다. 상상력은 지성 있는 것들과 신령한 존재들의 필수조건이지만, 눈앞의 문제가 최우선이다.

 

 빌이 코앞에 있다.

 

 

 

*
 늑대, 늑대, 늑대.

 

 빌은 말 그대로 미칠 것 같았다. 철수를 건의하기가 무섭게 늑대 울음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빌은 즉각 건의를 철회했다. 무질서한 도주는 늑대들의 밥이 되겠단 소리다. 하지만 홀더 대위는 빌이 꺼낸 철수방안을 강행코자 했다.

 

 “요새! 요새까지만 도망치면 승산이 있어!”

 

 보기 드물게 요새화된 락토 개척촌은 분명 보병대에게 있어 좋은 안식처다. 게다가 수호자도 있다. 사실 빌도 그걸 주목해서 철수를 건의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빌은 자신이 강력히 건의한 방안을 곧바로 뒤집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까지 느꼈다. 홀더 대위는 빌이 철수를 제안했단 사실만 주목했다.

 

 “늑대는 성벽을 뛰어넘지 못해!”
 “그 성벽 보기도 전에 우리가 물려갈 겁니다.”
 “아냐, 할 수 있어! 자네도 할 수 있다고 했잖아!”
 “늑대만 아니라면 가능합니다.”
 “늑대까지 고려했던 계산 아닌가?”
 “적어도 지금보단 숲과 거리를 벌려놓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출발하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옥신각신할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지금 당장 철수해! 늑대가 문제라면 더 빨리 철수해!”

 

 무장하고 대열까지 갖춘 채 늑대보다 빨리 뛰라니, 절대 무리다. 속도가 안 나는데다 익인의 술통이 직격하면 대참사가 벌어진다. 술통을 포기하고 속도를 높이기 위해 대형을 포기한다 해도 장창병은 속도가 느려서 무기를 포기하거나 보병대 전체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

 

 어느 쪽이든 좋을 것이 없다. 빌은 다시 강력히 주장했다.

 

 “철수는 절대불가입니다. 대형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자네 미쳤나! 술통에 맞아 죽어!”
 “기필코 술통의 접근을 막겠습니다.”
 “어떻게!”

 

 빌은 포기했던 경포의 화력을 다시 되살릴 계획이었다. 그리고 홀더 대위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작전을 내놨다.

 

 “역공을 걸겠습니다.”

 

 홀더 대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찔끔찔끔 익인들을 공격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역공? 게다가 늑대까지 있는데? 홀더 대위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혼란스러운 것은 알겠네만, 절대 무리야.”
 “숲은 괴물늑대들의 은신처이지만 전장은 아닙니다. 그 덩치가 숲 속에선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그리고 평범한 늑대는 병사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익인들도 자신들의 숲 안에 불을 지르는 건 힘들 테고, 설령 술통을 떨어뜨리더라도 타격은 줄어들 겁니다. 무엇보다도, 숲은 당장 갈 수 있습니다. 요새는 멉니다.”

 

 홀더 대위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요새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빌은 점잖게 말을 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늑대가 숲 밖으로 나오기 전에 우리가 숲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제길, 죽은 자의 왕의 주사위놀이를 즐기는 건가? 자네란 사람은 도통 갈피를 못 잡겠군! 작전회의 때는 곧 죽어도 밀집대형을 해야 한다더니 익인이 오고 나선 내 작전에 동의하질 않나, 결국 밀집대형을 갖추니 철수해야 한다 말하고, 이젠 철수를 철회하고 숲으로 들어가자고?”
 “모두 합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익인이 눈치를 깠으니 밀집대형 작전을 밀어붙이지 못했다. 늑대들이 끼어드니 밀집대형을 갖출 수밖에 없었다. 늑대들이 물러가니 화염병 세례를 피하고자 철수를 건의했다. 늑대들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하니 철수를 철회해야 했다. 미친년 변덕처럼 계획이 수시로 바뀌긴 했지만, 그 이유는 어린애도 알 수 있는 논리다.

 

 빌은 홀더 대위가 자꾸 엉뚱한데서 시간을 잡아먹자 결국 비상수단을 쓰기로 결정했다. 마침 시론이 홀더 대위의 등 뒤로 돌아가 있었다. 최고참인 시론은 똑똑했다. 그는 빌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안다.

 

 “뒤!”

 

 빌이 소리치자 홀더 대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커다란 돌덩이였다. 피할 틈이 없었다. 급작스러운 충격에 홀더 대위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자신에게 날아온 돌덩이가 익인이 던진 것인지 누군가 잡고 휘두른 것인지 알지 못했다. 분간해내더라도 별로 상관은 없었겠지만. 주변 병사들은 앞만 보느라 정신없으니 목격자도 별로 없다. 있어도 감히 끼어들 엄두가 안 난다. 시론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이런! 저 망할 익인 놈들이!”

 

 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췄다.

 

 “지휘관 부상인가. 치명적이군. 방패 위에 눕혀드려라. 사기에 직결되는 문제니까 주변 병사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해.”

 

 시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보이게 가려두란 말이지. 빌은 가장 중요한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내가 지휘하겠다.”
 “창병중대 부중대장은?”
 “그 친구보단 내가 계급이 높지. 여차하면 윽박질러보마. 이건 비상사태고, 부중대장이 어떤 전장에서 얼마나 싸워왔든 인간 아닌 것들과 싸운 경력은 내가 더 위다.”

 

 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빌은 한 도시에 도전했다. 괴물늑대를 잡았다. 대륙의 북쪽 끝과 남쪽 끝을 오가며 전혀 다른 대륙도 보았다. 부중대장이 잠시만 우물쭈물해도 지휘권은 빌이 낚아챌 것이다. 좀 과묵해서 그렇지, 말발과 경력이라면 빌도 남들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빌은 다시 대형 앞으로 나섰다. 총에 크게 데어본 경험 때문일까. 늑대들의 속도가 느리다. 아직 보이지 않는다. 빌은 소리쳤다.

 

 “중대, 사격중지!”
 “사격중지!”

 

 한 병사가 복창하자 총성이 조금씩 멎었다. 빌은 하늘을 보았다. 아직 깨끗하다. 술통은 보이지 않는다. 빌은 도끼를 양손을 꽉 쥐며 소리쳤다.

 

 “돌격준비!”
 “돌격준비!”

 

 병사가 또 복창한다. 도끼 위에서 총을 놓는다. 개목걸이 같은 멜빵으로 대충 묶어놓은 총을 대각선으로 멘다. 도끼를 양손으로 잡고 들어올린다. 준비 완료.

 

 빌은 숲 속의 암흑을 향해 소리쳤다.

 

 “돌격!”

 

 빌의 발이 제일 먼저 떨어진다. 그는 곧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부하들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들은 괴성을 지르며 도끼를 하늘로 쳐들었다. 얼떨떨한 분위기의 창병중대에도 곧 돌격명령이 떨어졌다. 시론은 광적으로 소리쳤다.

 

 “돌격! 살고 싶으면 돌격!”

 

 부분적이고 발작적인 돌격이 이어졌다. 요행히 몇 개의 자포를 장전하는데 성공한 포병들, 그리고 게드 장로가 제일 마지막으로 그 뒤를 따랐다. 창병들은 함성을 지르며 무조건 앞으로 뛰어갔다. 이미 보이지 않게 된 빌과 총병들을 뒤따르며. 시론은 이제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다시 배틀크라이를 외쳤다.

 

 “이런 제기랄, 나의 왕이여!”

 

 동시에, 저 앞에서 늑대들의 비명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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