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경소설과 청소년문학 - (2) 라이트노블은 청소년소설이 될 수 있는가? ①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경소설과 청소년문학>은 총 4주에 걸쳐 기고될 예정이며, 각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 청소년문학의 본질과 한계

2) 라이트노블은 청소년소설이 될 수 있는가?

3) 한국의 청소년소설은 라이트노블과 교류가 가능한가?

4) 경소설 필드의 확장을 위하여

  

 

  청소년문학 시장은 크게 두가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동/청소년문학'시장으로서 기존사회에 잡혀져 있는 필드를 말할 수 있고, 또 하나는 <해리포터>를 포함하여 독자층 스스로가 선택한 필드가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사회적인 반응이 다르다는 점도 있지만, 그전에 이런 '장르'를 가르는 기준이 다르고, 기준에서 요구되는 '목적'이 다르다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현상으로 '아동문학/청소년소설'과 '라이트노블'을 가르기에는 이 분야에만 몰려있는 특징적인 성격, 즉 '장르소설(특히 판타지소설)'이라는 중간단계의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갑자기 청소년소설과 라이트노블 사이의 관계에서 왠 '장르소설'이야기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은 이 논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본 글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일본과 한국 등지에서 십대가 선택하여 씬이 형성된 '라이트노블' 레이블의 소설적 특성이 흔히 청소년소설로 불리는 ‘판타지’와 ‘교양소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의 단초를 밝히고자 합니다.

 

 

  1. 한국사회 속에서의 청소년소설과 판타지소설

  해리포터의 열풍이 지나간 이후 청소년문학시장에 등장하는 많은 소설들을 들춰보면 아주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1)장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엄청나게 많은 판타지/SF소설들이 청소년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속속들이 출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현상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려면 1980년대 한국 청소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ABE/ACE/금성주니어공상과학문고 등 문고전집 시장 세대의 성장과 세대론적 이야기를 해야하지만 우선 이 부분은 생략하고 약술하겠습니다.

  상상력'을 중심 키워드로 하여 청소년소설의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은 한국에서는 10년도 안된 일이지만, 외국 교육계에서는 굉장히 많은 논의와 발전이 있었던 분야입니다. 여기 청소년소설에는 우리가 잘 아는 판타지명작들, 예를들면 <나르니아 연대기>나 <어스시 연대기> 등이 모조리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유럽의 문화적 전통과 신화적 뿌리에 그 기원을 가지고 현대적 상상력을 청소년들에게 일깨워줄 수 있습니다. 이는 이미 오래전에 톨킨이 <<On Fairy Stories>>와 <On Fairy End>>라는 에세이에서 피력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는 상상력에 기반한 '판타지소설'이 어떤 미적 효과가 있는지까지 언급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판타지소설은 그 자체로서 사물에 '새로운 시선'을 부여하여 독자들의 마음을 씻어준다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상상력'의 청소년문학은 여기에 기대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교조적 내용의 선악구도는 사실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제대로된 논점이 잡히지도 않은 '판타지소설의 청소년문학론'에 대한 아주 중요한 실마리는 사실 이미 어느정도 윤곽이 나와 있습니다.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긴 하지만, 게임과 만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판타지 '문화'의 서브컬처를 익숙하게 접했던 세대들이 지금의 20~30대, 국내에서 가장 깊이있는 판타지팬덤 독자들입니다. 또한 이 세대가 위에서 언급한 ABE/ACE등 1980년대 판타지소설 전집 문고류의 수혜자 세대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현직 판타지소설가, 게임시나리오 작가 세대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판타지소설 속에 녹아있는 문화코드를 실제로 체득한 세대입니다. 또한 이들은 그 문화가 RPG게임의 '클리셰'로 굳어지기 이전의 문화코드를 다양한 책과 문화를 통해서 흡수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만들고 생성해나간 '한국의 판타지소설씬'이 그 유명한 PC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r.jpg

PC통신에서 판타지소설 동호회가 생성되고 활성화되기 이전에

청소년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향유하는 소설시장의 크기는 한정돼 있었습니다.

이전 세대에서 어떤 시장이 있었는지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가장 분명한 현상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영도의 <드래곤라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분명 <드래곤 라자>를 필두로한 판타지소설의 등장은

독자/팬덤향유자 스스로의 움직임에 의해서 형성된 씬에서 창작되고 점유된,

(단순하게 '소비'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현재 활동중인 판타지작가/게임시나리오작가들의 출신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겁니다.)

최초의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2. 판타지소설 - 성장이라는 코드

  이런 세대에게 청소년 판타지소설은 '재밌습니다'. 왜냐면 이들은 전통적인 유럽의 문화코드를 읽을 수 있는 눈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거중 하나는 최근에 이례적인 판매고를 올린 닐 게이먼의 <샌드맨>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찰스 킹즐리나 루이스 캐롤의 작품이 유럽 청소년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까닭은 문화적 전통(정령,엘프,마법등을 포함하여) 위에서 청소년의 코드에 맞는 작품들을 써나갔기 때문입니다.(예를들면 성장, 사랑, 우정 등) '재미'라는 이 주관적인 영역을 하나의 보편적 틀로 가둘 수는 없겠지만, 재미라는 것은 독자의 '코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경소설이란 무엇인가>를 참고하시길) 우리나라에서 톨킨이나 루이스등 판타지의 독서 연령대가 올라가는 이유, 그리고 판타지팬덤에서 주로 읽힐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 '문화적 전통'이 철저하게 유럽적인 색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 청소년소설의 핵심은 '성장'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톨킨이 언급한 '상상력의 시야 회복'이라는 표현은 '어른이 아이로 성장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상상력이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이는 19세기 영국의 낭만파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장'이라는 코드는 독일의 교양소설Bildungsroman과 엄청나게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모든 청소년소설이 교양성장소설일 수는 없지만, 교양성장소설은 대개 청소년권장도서에 포함됩니다. 볼프람에서 시작된 서사의 흐름에 의해 교양성장소설은 태생부터 '근대적 리얼리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리려면 독일 교양소설의 역사를 이야기해야하는데, 아마 그것만으로도 논문 하나의 내용이 나올터이니 이정도에서 맺겠습니다.)

 

 

 WOLFRAM.jpg

중세 판타지문학의 백미이자, 독일 교양소설의 효시가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기사서사시 <파르치팔>이라는 점은

판타지와 성장소설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하나의 상징에 가깝습니다.

 

 

  3. 미적형식으로서의 교양소설, 판타지소설, 그리고 라이트노블

  '청소년소설'이라는 것은 장르용어가 아니라 교육학적 용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교양소설과 판타지/SF같은 장르소설, 그리고 교조적인 도덕소설 등이 모두 '청소년 소설'의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말씀드리고자하는 것은 그런 방대한 청소년소설의 카테고리 안에서 몇몇 분야의 작품들은 '판타지소설'과 '경소설'을 잇는 중요한 열쇠가 될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판타지소설'과 '교양소설'은 모두 청소년소설의 영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실제로 두 팬덤 사이의 소통이 매우 용이합니다. (이 접점이 일본 경소설에서 매우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청소년문학의 영역 안에서 '판타지소설'이라는 것은 절대다수가 '학부모 구매층의 권유'가 아니라 '독자들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처럼 말이죠. 톨킨의 <호비트>와 리처드 애덤스의 <워터십다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판타지소설은 청소년들에게 선택된 '장르문학'입니다. (게다가 어른도 포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뚜렷한 미학적 쟁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코드화/클리셰화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유럽의 청소년 정서'와 상호교감합니다.

 

  교양소설은 판타지소설의 효시에 가깝습니다만, 그보다 중요한 점은 '성장'이라는 코드가 작품 전체를 잡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원래 '유토피아'라는 기본 설정이 상정됩니다. '성장소설'에는 근대소설에서 보여지는 '리얼리티' 즉 '내적 갈등'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갈등은 '극복되어야할 시련'에 불과할뿐, 세계와 주인공 사이에 봉합이 불가능한 괴리로 남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교양소설의 본질'입니다. 교양소설은 근대 소설이 아닙니다. (즉, 문단소설도 될 수 없으며, 대개 청소년소설로 포함됩니다. 일례로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이 문학작품이지만, '청소년/대학생소설'로 권장되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교양소설'과 '판타지소설'은 분명 클리셰에 의한 내적형식이 상당히 뚜렷한 장르이지만, 이 둘이 한 작품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작품은 제가 <경소설이란 무엇인가? (2)>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두 내적형식의 각각의 팬덤을 만족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즉, 청소년소설의 시장은 애초에 다양한 '내적형식의 장르'를 한 카테고리로 묶어야하기 때문에 시장문화의 특성상 이런 내적형식을 가진 장르들의 교차가 상당히 빈번하게 드러납니다.

 

  성장과 판타지. 이제 우리는 이 두개의 성향이 일본의 경소설에서 하나로 뭉쳐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소설과 성장소설의 이러한 복잡한 '청소년소설적 특성'을 뭉쳐놓은 장르가 바로 '용자물'이라는 장르입니다. <로도스도전기>, <드래곤퀘스트>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서브컬처 전반에 퍼져있는 '용자물'이라는 분야에서 주인공은 결코 '먼치킨'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성장속도가 먼치킨이긴 합니다) <로도스도전기>를 예로 들자면 본작에서 주인공은 '판'이지만, 가장 강력한 영웅은 따로 존재합니다.

 

rodoss.jpg

이 작품의 '영웅들'은 베르도나 아슈람, 카슈같은 전설적인 인물들입니다.

심지어 판은 스스로를 '자유기사'라고 부릅니다. 판은 '영웅'이 아니라 '용자'인 셈입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성장하는 주인공 커플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지,

그 위치에 자신을 대입하는 게임판타지와는 그 성향이 다릅니다.

 

 

  이렇게 본다면 같은 선상에서 라이트노블은 주목 가치가 심히 높아집니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용자물’이 판타지소설과 합체하여 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판타지’가 일본에서는 소설로 먼저 부흥한 장르가 아니기때문이며, 서브컬처에 혼합되어 ‘장르형식’으로 굳어진 채 들어오는 1970~1980년대 소드&머슬/하드보일드판타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좀더 정확하게는 이 문화에 기반한 TRPG시스템이 1980년대 초반 일본에 본격적인 상륙이 시작됐던 것이 문화적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즉 이런 ‘용자물’은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유입된 클리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점은 이런 용자물 외에도 존재하는 경소설의 스타일 중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이 에도시대부터 발전했던 ‘소설’이라는 장르의 연장선상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소설 전통 안에서 ‘라이트노블’은 현재 일본의 청소년들에게 가장 적합한 코드들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동양의 경소설과 유럽의 판타지소설은 어떤 면에서 같은 층위에 있는 다른 장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카이게’ 같은 장르는 일본 경소설 전통의 가장 독특한 부분이며, 가사이 기요시가 <공의 경계 :해설>에서 말했듯이 일본적 전기소설의 전통에 리바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신전기로망’도 모두 경소설의 전통 안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판타지소설이 중세 유럽문화와 라틴적 전통에 기반하여 청소년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코드를 만들었듯이, 일본의 ‘라이트노블’ 역시 현재의 청소년들 혹은 젊은이들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코드를 일본 전통에 아주 충실히하여 생성합니다. 유럽식 판타지가 ‘새로운 시야를 만드는 창’, 교양소설이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일본과 한국의 경소설 전통은 애초에 이와는 완전히 다른 출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②에서는 일본 경소설의 기원이 판타지/청소년소설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또한 한국의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추적해볼 예정입니다.

Writer

현서/푸른꽃

현서/푸른꽃

과도한 상상력은 비참한 최후를 예방한다!

comment (2)

돌사육사 11.06.30. 22:47
잘 읽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라이트노블은 청소년소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문제는 대부분 청소년소설은 청소년의 자의적인 의지로 구입하는 경우보다는 학교의 추천도서나 학원 혹은 부모님의 권유로 구입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할 수 있지요.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대한민국에서 라이트노블이 청소년소설의 역할을 분담할 날은 요원하리라고 생각됩니다.
뭐, 앞으로 우리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는 날을 기대해야겠지요.
현서/푸른꽃
현서/푸른꽃 작성자 돌사육사 11.06.30. 23:19
네. 말씀하신대로 '부모'와 '학생'의 소비층이 이원화된 상태인 것은 분명합니다만, 필드가 겹친다는 것은 정말 주목해봐야할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청소년소설'이라고 부르는 카테고리는 대개 일본에서 만들어진 '아동문학'(이 어휘 자체도 일본에서 만들어진 어휘입니다)을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일본에서는 근대소설의 형성 과정에서 '아동문학'과 '판타지문학'의 경계 자체가 사라진 상태로 시작됐지만, 한국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이 문제는 다음 글에서 다룰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사실 해리포터 이전에도 1990년대 '에반게리온'의 수입으로 이같은 현상이 한번 일어났지만, 정부와 사회에서 애써무시한 현상이 있었죠. 결국 90년대 애써 무시한 현상이 2000년 해리포터로 '폭발한'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요.
권한이 없습니다.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