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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소설과 청소년문학 - (2) 라이트노블은 청소년소설이 될 수 있는가?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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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를 통해 바라본 아동문학과 소설, 서브컬처의 유연성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사랑을 받는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故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를 꼽아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을 들라고 한다면,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꼽아도 크게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미야자와 겐지는 일본 문학사에서 굉장히 독특한 위치에 자리한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처럼 스마트한 근대인도 아니었고, 다자이 오사무처럼 고뇌하는 인간상과도 어느정도 거리가 있었던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들은 현재 일본의 ‘아동문학’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이 ‘어린이를 위해 창작하지 않았다’는 점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제스처로 남게 됩니다.

  일본아동문학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은하철도의 밤>이 ‘어린이를 위한 작품이 아니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고 민감한 사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미야자와 겐지의 문학적 포커스는 ‘어린이’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그것은 유럽의 근대소설이 일본에 유입된 이래 아마도 가장 앞자리에 있을 ‘동화작가’로 평가받는 겐지의 작품이 전혀 ‘동화(童話)적이지 않다’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동화적’이라는 표현은 앞의 글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계몽’과 ‘교육’에 목적을 둔 교조적 관점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앞으로 보겠지만 이는 판타지와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즉, 일본은 미야자와 겐지라는 ‘축복’ 속에서 애초부터 교조적 동화는 동화의 전부가 아니라 하나의 ‘부분’으로서 유입됩니다. (이 부분에서 일본과 일본의 ‘근대’에 대한 개념이 첨예하게 부각되기는 하지만, 제가 일문학사와 일본 사상사를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으므로 일단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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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어린왕자>보다 먼저 창작됐으며,

일본인 어린이들은 유럽의 아동소설보다 더 강렬하게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은하철도의 밤>은 <어린왕자>와 상당히 닮은 점이 많습니다. 작품의 내적 형식이나 내용도 그렇고 작품의 초점이 ‘어린이’가 아니라 ‘인간’에 맞춰져 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이점은 애초부터 ‘어린이에게 읽힐 목적’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이라는 테마로 상정돼 있기 때문에 독자층은 자연히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그 시점이 옮겨집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은하철도의 밤>을 읽은 많은 작가들이 어른이 되고 그 작품을 다시 읽고 거기서 ‘인간적 영감’을 받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는 그 커다란 증거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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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이 작품의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다는 점은 오히려,

청소년소설+환상소설로서 원작이 애니/만화 등 서브컬처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가를 알 수 있는 간접적 척도가 됩니다.

 

   <은하철도의 밤>과 <은하철도999>는 공통점 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습니다. 겐지의 소설은 죽은 친구의 영혼과 함께 남십자성으로 은하철도를 타고 가는 환상풍 이야기이고, <은하철도999>는 불멸을 갈구하는 소년이 인간의 본질에 대해 깨달으면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다소 SF판타지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얼핏 전혀 다른 테마일 것 같은 두 작품 사이에 중요한 공통점은 의외로 ‘서사적 성격’에서 드러납니다. 그것은 은하와 철도라는 두 환상적 하이브리드에 의한 모든 사건의 시작이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은하철도999>는 어린이들이 보기에 매우 어려운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는 <어린왕자>도 마찬가지의 평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점때문에 한국 아동문학 연구자들은 생떽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연구하지 않습니다. 이는 앞으로 살펴볼 아동/청소년소설의 발전 양상에서 두 나라가 얼마나 다른 결과를 만드는 지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은하를 날아가는 기차와 상상이 열려있는 무수한 존재들과 인간의 만남의 ‘경이감’을 통해 호기심을 받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아이들의 옷처럼 상상력이 자라날 여지’가 남아 있어, 나이를 먹으면서도 다시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줍니다.

 

    ‘교육’의 텍스트로서 어린이소설 혹은 아동소설이 부모에 의해서 독서된다면 그것은 근대적 아동문학의 전형일테지만, 어린이일 때 ‘강요받아’ 읽게된 책이라도 성인 때 ‘다시읽기’ 혹은 ‘다시 창작하기’로의 결과를 이끌어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건 어른이 된 ‘본인이 스스로’ 그 작품에 영감을 받고 선택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는 어린이문학이면서 동시에 어른에게 읽힐 수 있는 ‘톨킨의 몽상 이야기’와 거의 비슷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아동문학의 가장 거대한 산이 ‘미야자와 겐지’라는 점에서 일본 아동문학이 가진 교조성은 완전한 지배력을 상실합니다. 즉 지분을 갈라서 가져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서 일본 애니메이터와 만화가들을 자극한 작품들이 ‘교조적 동화’보다는 ‘상상의 이야기’에 추가 맞춰지면서 (<은하철도999>부터 <하록선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기 작품들, 그리고 <원피스>까지 모조리 포함됩니다.) 책에서 애니메이션과 만화, 다시 게임으로 예술매체가 넘어가서도 이 지류는 결국 살아남아 새로운 씬을 형성에 영향을 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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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원작이

청소년소설의 카테고리에 포함돼있다는 점은

이 시점에서 반드시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책(혹은 이에 준하는 서브컬처)에 영감을 받아 새 텍스트를 창작한다'는 모티베이션은 일본 서브컬처 작가들에게서 굉장히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일본의 서브컬처는 워낙 복잡하고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어서 이 자리에서 모두 이야기할 내용은 아니지만, 일본 아니메의 대부 미야자키 하야오의 걸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도입부로 시작하여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의 <크라바트>식의 로맨스를 거치며, 르귄의 <어스시>같은 언령마법 테마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일본에서 아동문학(눈치채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아동문학이라는 말은 판타지문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이 애니메이션 같은 중요한 장르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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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완벽한 성공 뒤에는

유럽의 '청소년 판타지소설'에 지대한 영감을 받은

한 일본 애니메이터의 작품편력의 여정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가족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주 ‘소비층’이 청소년층이라는 점에서 이 역사는 그리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게다가 미야자와 겐지라는 ‘상징’을 통해서 일본에서 동화책은 어른도 언제든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의 상상적 여지를 남겨두게 됩니다.) 라이트노블이라는 일본의 레이블 소설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사회학적 소산’이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면(즉, 라이트노블의 기원이 ‘근대소설’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라는 가정을 한다면)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아동/청소년 소설이 라이트노블 레이블에 간접의 간접으로나마 받은 수혜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미야자와 겐지는 근대소설 작가도 아니고, 교육학을 공부한 아동문학 전문작가도 아닙니다. 이 독특한 위치는 20세기 초엽 일본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독창적인 작품 <은하철도의 밤>이나 <주문 많은 요리점>같은 작품을 탄생시켰고, 20세기 일본 틴에이저 예술텍스트에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작풍이 에도시대의 ‘소설’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좀더 긴밀한 연구가 필요하며, 아쿠타가와의 ‘전기적 소설’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드러나는 ‘경소설적 특징’(특히 일본 극 역사의 미적 형식에 합류된)을 살펴봐야 이 시기 소설들이 경소설 - 즉 라이트노블 - 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좀더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테지만, 그의 유산들이 라이트노블의 '필드형성'에 모종의 영향을 주었음을 유추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1920~1930년대 일본 작가들에게서 발견되는 일련의 ‘라이트노블적 단서’들은 유럽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라 당대 일본 내에서 자체적으로 일어난 문화적 결과물에 더 가깝습니다. 미야자와 겐지가 소설을 썼던 이유를 생각해보더라도, 영문학도였던 나쓰메 소세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시선을 옮기는 방식을 보더라도, 또한 아쿠타가와의 <지옥변>에 드러나는 비근대적 요소를 보더라도, 이는 근대문학이 메이지 유신 이전의 ‘소설(小說)’과의 단절을 의미할 수 없다는 혐의를 부여하게 만듭니다. 이 부분은 좀더 면밀하고 치밀한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라이트노블의 큰 특징인 ‘연극적 속성(캐릭터)’과 서사의 역전관계의 발견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라이트노블이라는 스타일은 그런 문화적 거대한 줄기의 하나, 즉 사회학/서지학적으로 지리적 위치가 좌정된 '아동/청소년 콘텐츠'라는 거대한 카테고리의 지류에 위치해있으며, 비주얼 세대에 적합한 어법과 상상적 유희를 사용하는 사회적 문법을 공유합니다. 사실 ‘형식’이라는 것, ‘장르’라는 것은 그 뿐입니다. 그 안에 담긴 문화적 전통은 아무리 하이브리드와 크로스오버시대라고 하더라도 그 문화에 가장 적합한 형식을 취할 뿐입니다. 좀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라노베'라는 것은 청소년 소설의 고종사촌 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필드에서는 '청소년소설의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넓은 필드의 문화적 용인이 이루어져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글이 길어져서 나눠서 올립니다. 다음 글에서는 일본 상황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비자'와 '구매자'가 분리됐던 한국 아동문학의 흐름과 그에 반대되어 등장하는 '경소설'의 지표에 대해서 말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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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서/푸른꽃

현서/푸른꽃

과도한 상상력은 비참한 최후를 예방한다!

comment (2)

lyul 11.07.18. 00:27
우리나라는 뭔가 벽이 있는듯하군요. 조금씩 경계가 옅어지고 있지만은.

근데 우리나라 라노벨을 보면 특정층을 노리고 만든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현서/푸른꽃
현서/푸른꽃 작성자 lyul 11.07.18. 09:20
다음 글이 바로 거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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