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경소설이란 무엇인가? (1)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경소설이란 무엇인가 (1)



   문학이론에서 작품의 장르를 구분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작품의 구성미를 가늠하고 작품의 밀도와 조형성을 추구하는 내적 형식을 파악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작품이 사회 안에서 얽혀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해서 장르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보통 전자의 방식으로 작품을 파악하는 방식은 갖춰진 형식미를 추구하는 장르, 이를테면 근대소설이라든가 중세 서사시, 또는 판타지나 SF 등 장르의 역사와 어느 정도 규격이 형성된 작품들을 이야기할 때 주로 인용되고, 후자의 방식으로는 사회소설, 세태소설, 풍자소설 등 작품이 사회 안에서 읽히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로 말합니다. 작품을 내적으로 보느냐, 작품 외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장르를 규명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라이트노블’이라는 애매한 장르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흔히 ‘경소설’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일본에서 주로 창작되고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읽히고 있는 이 소설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 작품의 내적 형식을 바라보느냐, 아니면 작품과 사회 속의 관계에 대해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관점이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우선, 전체적인 문학사 안에서의 ‘소설’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우선 살펴본 다음에, 우리가 ‘경소설’이라고 부르는 일군의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형식’을 파악하고, 이 경소설 소설군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서 간략히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1. 근대소설과 서사문학

  형식미를 추구하는 예술(Art)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보면 아주 오래되었고, 짧다고 본다면 대단히 짧습니다. 예술(Art이므로 혹은 기술이나 기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에 어떤 이상적인 비율을 보여줄 수 있는 형식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고대 그리스시대로 소급됩니다. 당시에 예술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조각, 건축, 회화 뿐만이 아니라 말하는 방법, 글쓰는 방법 등 어떤 ‘기술이 요구되는 모든 것’을 일컫는 용어였습니다. 이 중에서 웅변의 말을 꾸며주는 수사학(Rhetoric)은 그리스시대부터 로마까지 중요한 예술로 취급되었는데, 여기서는 ‘상대를 설득하기에 좋은 화법’이나 ‘적절한 어휘를 고르는 방법’등을 다루었습니다.


rhetoric.jpg 

수사학은 당대에 교양으로 요구되는 하나의 '기술'이었으며,

'기술'이라는 말은 곧 예술과 동의어였습니다.

 Art의 어원 Ars는 그리스의 Tech ne라는 말(지금의 Technic)의 라틴어 번역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훌륭한 예술작품’ 혹은 ‘고전’이라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완벽한 구성미와 형식미가 갖춰지는 시기는 유럽의 관점에서 볼 때 근대사회 이후입니다. 소위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작품 안의 은유적 밀도가 깊고 작품 전체가 온전한 완전성을 갖춘 작품으로 정의되는데, 이것은 특히 문학에 있어서 영국 신비평과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이 강하게 드러나는 19세기 후반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소설의 ‘형식’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전’이라고 말하는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작품’의 근거는 이런 고전미에 기반하고 근대소설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적 형식의 특징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소설의 개연성’, ‘주인공의 성찰과 반영’, 그리고 ‘플롯’, ‘현실성’과 같은 것들은 사실 문학, 특히 ‘소설’이 가진 보편적인 특징이 아닙니다. 이것은 17세기부터 드러나는 근대소설의 특징이며, 현대까지도 유지되는 ‘리얼리티’라는 미적 형식입니다. 중세의 대표적인 작품인 크레티엥, 볼프람, 토마스 경의 <성배 이야기>에는 우리가 말하는 근대소설에서 말하는 미적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작품들에는 주인공의 반성과 반영, 성찰, 인과관계에 의한 플롯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소설’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서사시’라는 장르용어를 씁니다. 마찬가지로, 라퐁텐이나 아이소포스(이솝)가 썼던 우화작품들도 ‘소설’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우화’라는 용어를 씁니다. 이것들은 ‘소설’이 아닌 것이 아니라 ‘근대소설(Novel, Roman)’이 아닌 서사장르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동양에서 말하는 ‘소설’의 어휘와 유럽에서 말하는 소설Novelle, Roman의 어휘가 과연 동일어가 되는지를 살펴봐야겠지만, 일단 차후의 칼럼에서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중세의 서사시가 근대적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여 읽을 가치가 없는 문학이라는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parzifal.jpg 

제가 가장 좋아하는 유럽문학 작품인 볼프람의 <파르치팔>은

근대소설에서 빈번히 말하는 리얼리티가 없습니다. 즉 '플롯'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중세의 가장 훌륭한 문학작품입니다.

<파르치팔>은 인간이 신에게로 가기 위해 쌓아야하는 덕목, 

즉 ,'교양'을 통한 성장과 영적 상승을 보여줍니다.

'보여준다'는 말이 뜻하는 바대로 중세 서사시는

계시Vision에 의해서 내러티브를 이끌어나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문학 이론과 문학사에서 주로 조명하는 ‘근대적 소설’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외부의 소설에 대한 언급이 새로운 방식으로 가능해집니다. 즉, 우리가 주로 ‘문학적 소설’이라고 부르고 있는 근대소설의 외부에 있는 소설들, 경소설을 포함하여, 이를테면 추리소설이나 SF, 판타지 등은 ‘문학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 형식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배척해야하는’ 소설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 장르소설을 포함한 ‘비근대소설군’의 작품들을 다루는 방법론에 있어서 현재 우리가 ‘서사시’를 다루는 방법과 마찬가지의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들 소설들은 ‘근대소설’의 장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새로운 미적 형식’을 포함하고 있는 소설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장르소설의 내적 형식

   일반적으로 ‘장르소설’이라 불리는 일군의 작품들은 역사가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100년을 넘는 장르들이 퍼져있는 만큼 연구도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각 장르의 몇몇 눈에 띄는 문예가들에 의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장르소설들의 내적형식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경소설의 내적 형식’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장르소설의 내적형식을 잠깐 살펴볼까 합니다.

  내적형식이라는 것은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어떤 규격이 완성된 장르의 요소들을 전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위에서 말씀드린 근대소설의 경우 아래의 요소가 내적 형식의 핵심이 됩니다.


  1) 세계는 신화시대와는 다르게 균열된 세계이며,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영웅적 퀘스트가 소멸된 상태다.(문제적 개인의 등장)

  2) 주인공은 그러나 끝없이 그 세계를 희구하면서 균열된 세계의 부조리에 맞선다. (내적갈등)

  3) 그리고 주인공은 1)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모습을 통찰하고 파악하게 된다. (리얼리티)

  4) 2)의 추진력에 의해 주인공은 파국의 결말을 향해 싸워나간다.(플롯)


   이것은 헝가리 문예이론가 게오르그 루카치가 말한 ‘근대소설의 내적형식’을 간단하게 풀어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적형식은 각 장르소설에도 좀 다른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아래의 명제를 잠깐 살펴보죠.


  1) 세계는 애초에 완전한 세계다. 이 세계는 현실에 드러난 하나의 낙원과 같은 평온상태를 가진다.(2차세계)

  2) 이 세계의 완전성을 지탱하던 균형이 무너지는 초월적 존재의 등장으로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모험의 발단)

  3) 초월적 존재를 제거, 혹은 해소시키기 위해 그것을 찾는 모험이 시작된다. (탐색 모티브)

  4) 주인공은 이 과정에서 평온에 이바지한 동료들의 도움을 얻어 초월적 존재를 이 세계에서 추방시킨다. (영웅적 행동)

  5) 세상은 다시 평온을 되찾고 영웅은 신화화되어 세상에 동화된다. (해피엔딩)


  이것은 W.오든이 정리한 톨킨의 소설, 판타지에 대한 내적 형식입니다. 오든은 톨킨의 소설이 이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유럽에 퍼져있는 ‘영웅적 민담’과 굉장히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유럽형 판타지소설의 기본 골격은 ‘민담과 비슷한’ 이 구조를 가지고 퀘스트라는 기본틀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하나만 더 살펴보도록 하죠.


  1) 우리의 문명은 역사속의 진보가 이루어놓은 혜택으로 구축된 세계다.(외삽)

  2) 문명은 ‘진보’의 연속이기 때문에, 인류의 기술문명은 과거와 다른 시점의 인류 속에서 충돌을 가질 수 있다. (에피스테메)

  3) 인류는 보편적이므로, 도덕, 공동사회에 대해 ‘문명의 이기’, 인류의 관계에 대해 갈등하고 조율하려 한다. (리얼리티)


  이것은 로버트 하인라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가 말하는 1950년대의 ‘고전SF'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방향입니다. SF가 ’과학문명을 통한 미래경‘으로 표현될 수 있는 까닭은 인류의 문명은 끊임없이 진보를 추구하며, 기술과 인류는 비례적인 발전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명제, 그럼에도 인류는 그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전망이 투영되기 때문입니다. 과학소설은 그러므로 인류 자체에 대한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예시의 마지막 괄호는 내적형식의 코어라고 할 수 있는 어휘들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작품의 ‘완성도’ 혹은 ‘분석이나 비평’등을 행할 때 좋은 작품이냐 아니냐를 구분짓는 근거 중 가장 큰 잣대로 이것들을 주로 살펴본다고 하면 얼추 맞는 표현이 될 것입니다. 내적형식은 문학상이나 소설 심사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축이기도 하며, 장르독자의 범위와 관계없이 작품의 내적 조형성을 다듬는 데에 가장 좋은 이해방식으로 통용되기도 합니다.


hobbit.jpg 

J.R.R 톨킨의 <호빗>은 유럽 민담을 완벽하게 소설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따라서 '현대인의 신화'라는 찬사를 받기 마땅합니다.

장르소설 독자도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 대답하기 굉장히 곤란해합니다만,

사실 <호빗>이야말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환상 이야기'에 대한 소설적 대답입니다.

톨킨은 자신의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내재적 리얼리티'라는 표현을 쓰며,

근대소설과 다른 성격의 리얼리티가 판타지에는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3. 경소설의 내적형식

   자, 그럼 경소설은 과연 내적형식이란 것이 존재할까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물음입니다. 왜냐면, 만약 경소설이라는 것이 내적 형식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경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미학’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으며,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작품의 구성미라든가 구조를 엿볼 수 있는 지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이트노블’이라고 부르는 장르 자체가 그 시작부터 스스로의 역사를 만들며 하나의 팬덤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출판업계와 팬덤계가 공존하며 만들어 놓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어’이기 때문에 형식적인 접근으로 그것을 찾아내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분명 모든 경소설은 다양한 장르의 요소들을 포섭하고 있지만, 다른 팬덤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오로지 ‘라이트노블’이라고 불리는 팬덤 안에서만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내적 형식이 존재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캐릭터소설’이라는 용어입니다.

   일본에서 이미 ‘캐릭터소설’이라는 말이 경소설계 안에서 대두가 되고 있었지만, 이런 이론적/미학적 내적형식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경소설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적인 요소’들이 작품의 미적 구성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근대소설이든 다른 장르소설이든, ‘내러티브’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내러티브는 플롯이냐 스토리냐를 떠나서 인물이 세계 안에서 사건을 만들어나가는 어떤 흐름을 지칭합니다. 근대소설에서 ‘플롯’이라고 부르는 것은 위에서 보여드린 바대로, 인물과 세계의 충돌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내적인 동인 혹은 계기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작품을 만드는 핵심이 ‘주인공 vs 세계’가 됩니다. 그런데, 경소설의 범주에 들어가는 상당수의 작품들은 내러티브에서 이 공식이 과도하게 깨어지게 됩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캐릭터때문입니다.



wolf.JPG 

과연 이 이야기에서 '호로'가 빠지고

그 자리에 누군가 다른 존재로 대체할 존재가 있을까요?


  경소설에서 캐릭터는 모든 사건의 발단이자 결말입니다. 따라서 리얼리티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소설은 ‘세계 속에서 주인공이 부조리를 겪는다’라는 내적갈등에서 플롯이 전개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캐릭터의 본성 자체가 이야기의 출발점’이 됩니다. 제가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는 <단탈리안의 서가>라든가, 이미 세계 안에서 힘을 잃어버린 늑대여신의 존재가 주인공 장돌뱅이에게 영향을 주는 <늑대와 향신료>, 본인 안에 숨겨진 힘 자체를 각성하면서, 힘과 연관된 가문을 수호하는 내러티브로 출발하는 <쿠레나이>, 죽음의 메신저로서 망자와 부닥쳐야하는 숙명을 안은 채 이야기가 시작되는 <사후편지> 등의 작품들은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이것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은 <스즈미야 하루히>겠지요. 이 작품들에서는 ‘이 인물이 빠지면’ 작품 진행이 불가능하며, 더불어 이 인물이 다른 성격의 캐릭터로 대체될 수도 없습니다. 근대소설이 ‘보편적 개인’을 이야기하면서 주인공의 자리에는 제가 들어갈 수도 있고 여러분들도 들어갈 수도 있다면, 경소설의 인물들은 ‘작품의 본질로서의 아바타화된 캐릭터 그 자체’를 그려냅니다. 이 캐릭터는 도통 대체가 불가능입니다. <늑대와 향신료>에서 로렌스 자리에는 다른 장돌뱅이 상인이 들어가더라도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물론 스토리가 달라지겠죠. 하지만 호로 없이 이 작품은 성립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늑대와 향신료> 외전이 로렌스 없이도 진행가능한 것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소설의 내적형식의 제1원리에는 아래의 명제가 도출될 수 있습니다.


  "캐릭터가 가진 속성 자체가 세계에 던져지므로 인하여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 명제는 연극의 제1명제이기도 합니다. 즉, 경소설은 근본적으로 ‘연극적 속성’을 필연적으로 안고 있는 ‘소설’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왜 경소설이 연극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연극성’(캐릭터)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 - 어찌보면 가장 핵심적인 질문일 수 있습니다. - 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요소들과 역사적 사건들이 얽혀있으니까요. 이에 대한 이야기 역시 차후에 칼럼에서 따로 공간을 할애하여 자세히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캐릭터가 부각되는 대표적인 소설팬덤이 ‘경소설’쪽이라고 말한다면 딱히 반박할 이야깃거리를 찾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연극성’이 경소설의 필요조건일 수는 없지만, ‘연극성이 있는 소설’은 ‘라이트노블’의 충분조건은 될 수 있다는 말이죠. 따라서 경소설의 문학적 깊이나 미적 구성도, 혹은 형식적 특성을 이야기하려 한다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다들 아시겠지만 작품의 캐릭터에 집중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햄릿’이 없는 <연극 햄릿>을 상상할 수 없듯이, 퍽이 없는 <한여름밤의 꿈>을 상상도 할 수 없듯이, 히어로와 히로인이 없는 해당작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작품이 있다면 그 작품은 분명 ‘조형성이 있는 경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4. 경소설의 장르적 범위

   지금까지 경소설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성’이 경소설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지를 간접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런 ‘캐릭터의 연극적 요소’는 모든 경소설에 드러나는 요소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은 경소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징’중 하나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극적 캐릭터’에 포커스를 맞추어놓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범주의 다른 소설들 중에서도 ‘경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스펙트럼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집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읽는 소설 중에 가장 캐릭터성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포함되어 있는 찰스 디킨즈의 소설들은 모두 ‘경소설’의 범위에 포합시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어린왕자>도 물론 경소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린왕자’ 자체가 모든 이야기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꼬마흡혈귀> 역시 마찬가지로 캐릭터가 내러티브 전체를 끌고 가는 ‘경소설’로 분류되버립니다. 우리시대를 풍미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성과 내러티브를 뜯어보면 이 역시 ‘경소설’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prince.jpg 

우리가 눈을 감고도 떠오를수 있는 이 쓸쓸한 캐릭터가 없었다면

장미와의 다툼도, 어른들의 세계에서 떠날 수 있는 모험도,

사막에서 뱀과의 이상스런 대화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들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왕자>는 세계고전문학에, 그리고 <꼬마흡혈귀>는 어린이문학에, <연금술사>는 현대문학에 들어가는 작품들이지만, 이런 ‘세계고전문학’이나 ‘어린이문학’같은 분류는 ‘미적 형식’에 의한 분류가 아니라 바로 ‘사회와 작품의 관계’에 기반한 장르구분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소설 팬덤의 독자들은 이런 류의 작품들 수용에 굉장히 자연스럽습니다. 그 점에서 일본 문학과 경소설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작가가 바로 나쓰메 소세키와 미야자와 겐지입니다. 이들은 ‘사회적 관계에 의한 문학작품의 팬덤’이 나눠지기 이전 상태에서도 경소설에 가까운 작법으로 두 씬 모두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미적 형식을 뛰어넘어서 경소설이라는 장르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위의 문제들과 더불어 아직 풀지 못한 난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경소설’로 취급되면서도 캐릭터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소설입니다.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내적 형식을 분석하면 ‘캐릭터 소설’보다는 ‘장르 로맨스’에 더 가까운 면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pilot.jpg  

이 작품은 '히로인'의 엄청난 미모를 캐릭터에 투영하는데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강렬한 추격씬에서 두 남녀의 극적 대화를 엮으므로써,

로맨스만이 다가설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을 몇번씩 연출해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경소설이 가진 이 복잡한 성격을 풀기 위해서는 이 글의 첫 번째 명제로 돌아가, ‘형식으로서의 예술’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사회 안에서의 예술’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이 경소설 팬덤 안에서 수용이 가능한지, ‘캐릭터가 없는 경소설은 어떻게 독자와 반응하는지’ 등에 대해서, 이에 대한 이야기는 2부에서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부에서 계속)


Writer

현서/푸른꽃

현서/푸른꽃

과도한 상상력은 비참한 최후를 예방한다!

comment (6)

개념봉인 11.03.09. 13:1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곳에도 소개하고 싶은데 퍼가도 될까요?
현서/푸른꽃
현서/푸른꽃 작성자 11.03.09. 13:18
개념봉인님// 네. 물론입니다. 근데 이 칼럼은 반쪽짜리 칼럼이기때문에, 주말에 2부가 올라오면 같이 가져가시는게 좋을것 같기도 하고, 먼저 가져가시더라도 일요일쯤 올라올 2부를 참고하셔야될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이글의 마지막부분에 나온 문제들에 대한 것은 여전히 남아있을테니...
다이노씨
비밀글입니다. 다이노씨 11.05.24. 01:04
[비밀글입니다.]
헤헤 11.05.30. 21:47
전근대문학의 문학적 가치는 통시적인 관점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근대시대에 오히려 퇴보해서 전근대문학을 한다면 그게 어떤 문학적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현서/푸른꽃
현서/푸른꽃 작성자 헤헤 11.06.19. 17:45
바로 그 문제때문에 저는 '전근대적'이라는 표현 대신에 '비근대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강명관 교수의 저서를 읽어보면 '한국문학사의 근대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굉장히 반성적 질문이 담겨있습니다. 전근대시대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퇴보'겠지만, 그 '전근대'라는 것들을 유럽중심주의적인 '근대'가 아닌 동양의 독자적 역사관 위에서의 '비근대'로 관점을 옮겨놓으면 엄청나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선이 생깁니다. 이건 저희 세대의 국문학자들의 풀어가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투명한빛
투명한빛 12.03.15. 05:54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알고 있는 지식이 적은 저로써는 피와 살이 되는 정보네요.
뭐랄까... '경소설'이나 '라이트노벨'에 대해서 흘러다니는 미비한 지식수준만을 가지고 있는 분들 중에 해당 주제에 관련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라면, 추천을 해드리고 싶네요.
더불어서 저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라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글을 쓰게 될 때, 생각을 깊게 할 때 종종 생각날 것 같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