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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 - 한국 경소설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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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블엔진의 출범

  2011년, ‘청춘의 상상, 시동을 걸어라!’라는 모토를 달고 영상노트에서 야심차게 출범한 노블엔진에서 많은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창작 경소설이 아직 국내에서 큰 활로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레이블의 출현은 여러모로 볼 때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레이블이라는 것은 비단 창작 필드를 활성화시킨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각 레이블의 분명한 색채를 가져간다는 출판적 제스처이기도 하기 때문에 올 한해의 창작 경소설필드는 상당히 재미있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노벨배틀러>, <일편흑심>등 경소설에서 생각할만한 아이템을 던져놓은 노블엔진은 시드노벨과 다른 몇 가지 성향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일단 시드노벨이 일본 라이트노블의 어법에 충실히 따라가는 작품들을 선별하고 있다면, 노블엔진의 작품들은 비교적 넷상의 하위문화 연대가 익숙한 국내의 환경에 친숙한 작품들을 발굴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뉘앙스가 아직까지는 상당히 강하게 감지되고 있습니다. (시드노벨과 노블엔진의 레이블 비교에 대해서는 앞으로 조금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본격적인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노블엔진의 색깔을 강하게 감지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으로써 <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는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도 상당히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반시연이라는 작가의, 그것도 인터넷상에서 연재된 경력(?)이 있는 작품을 경소설 필드로 끌고 들어왔다는 점에서부터 여타 경소설과는 약간 프로세스가 다른 점이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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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엔진에서 출간한 창작 경소설은 여러가지면에서 생각거리들을 던져줍니다.

이 작품들도 차후에 차근차근 특징들을 살펴보겠지만, 전반적으로 일본적인 경소설의

만화적 흐름을 지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물론 지양 후에 지향점은 차후의 출간작들을 보며 읽어야겠지만요.

 

 

  2. 빛 : 인터넷 판타지소설, 경소설로 수혈하기

  반시연 작가의 <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는 근본적으로 한국 판타지소설의 자양분에 가장 크게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콘텐츠, 아이템으로서 ‘한국 판타지소설적인 무엇’을 가져왔다는 것이 아니라 작풍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장과 정서가 바로 대한민국의 ‘십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에 극도로 친근한 배경을 깔아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이 부분입니다. 한국 판타지소설 필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 한국 학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문장과 표현들, 이를테면 순수의 외묘를 묘사할 때 ‘미용실에서 평범하게요’라고 스스럼없이 내뱉을 수 있는 문장들은 번역이 걸려있는 일본 경소설의 문장과는 그 맛이 매우 다릅니다. 게다가 한국 경소설은 일본의 그것들처럼 ‘만화에 하이브리드된 형식’을 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점은 작품의 가독성을 엄청나게 높이고 과감한 생략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덕분에 이 작품은 제가 읽어본 국내 창작 경소설 중에 가장 경쾌한 호흡을 가진 텍스트로 꼽게 됐습니다. (경소설로 분류되지 않는 임경배 작가의 <헬릭스>를 제외한다면)

 

  경소설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소설책으로서 이 작품을 바라보려 한다면 이 부분은 본작에서 반드시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PC통신부터 시작된 구어체 기반의 소설 텍스트가 경소설로 넘어오면서 비로소 어느 정도의 친화력을 갖춘 이야기스타일로 구축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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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이 캐릭터가 누군지 바로 눈치채셨나요?

그렇다면 이 캐릭터가 치밀한 얀데레라는 것을 어디서 캐치하셨는지요?

 

 

  3. 그림자 : 그래서 이것은 경소설인가?

  경소설의 특징을 연극적 미학의 범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캐릭터소설’의 성격으로 한정한다면 -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캐릭터성이 강조되는 것이 경소설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한다면 - <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가 과연 캐릭터성이 두드러지고 훌륭한 캐릭터 디자인에 성공한 작품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장고(長考)에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본작을 끌고나가는 캐릭터는 크게 셋입니다. 비지 / 반장 / 순수. 세 명의 학생들의 삼각구도로 보이는 이 작품은 사실 삼각구도가 아니라 대립관계입니다. 순수라는 캐릭터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베아트리체처럼 이상화된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지만, 베아트리체로서의 순수가 비지에게 내리는 은총은 사실 없습니다. 이 부분은 이 작품의 기본 장르 컨셉이 ‘사이코패스 미스터리’로 한정하게 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비지가 가지고 있는 ‘평범 트라우마’의 외상으로서 숭배되는(?) 순수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지의 외상을 덮어줄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로 그려집니다. (이 점에서는 순수가 심리스릴러에서 흔히 등장하는 은총의 캐릭터로 그려질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비지는 어떠한 이유도 없이, 그 트라우마를 해소할 수 있는 ‘일상 온라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실제로 작품의 후반부는 이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순수’라는 캐릭터성과 ‘일상 온라인’의 트라우마해소, 상반된 성격의 충돌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스릴러적인 사이코패스 장르물의 성격을 와해시켜버렸습니다.

 

  분명 작가는 이것을 심리 스릴러 미스터리물 등의 장르적 컨셉을 잡아 그린 작품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짧은 챕터들의 대다수는 상당한 심리 미스터리적 요소가 강하게 감지되고, 오히려 미스터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클리셰들은 사라짐으로 인해서 작품에서 ‘스토리’를 제외한 많은 부분이 미제로 엉켜있는 모순된 상황들이 종종 목격됩니다. 이를테면 결벽적이고 치밀한 반장의 캐릭터와 비지가 충돌하는 접점들은 양자간의 아무런 심리적 ‘캐릭터성’을 보장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것을 보통 소설에선 내적동인이라고 합니다.) 즉 비지의 캐릭터성은 상당부분 노출된 상태지만, 반장의 캐릭터성이 ‘얀데레’라는 모호한 클리셰로 묶이므로써, 두 사람이 ‘순수’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대인관계의 태도’를 핵심으로 삼는 미스터리물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남게 됩니다.

 

  반장의 경우는 그나마 비지와의 이벤트를 통해서 간접적 심리상태와 배경들을 유추해낼 수 있지만, 순수의 경우는 훨씬 상태가 심합니다. 경소설에서 ‘평범함’은 ‘평범한 자체’가 캐릭터성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작품의 장르적 배경엔 이능력이라는 펄프적 요소가 깔려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본작에서 순수의 캐릭터는 ‘순수하고 평범하다’는 캐릭터성을 그대로 표현하여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성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반장과 비지 사이에 낀 순수라면 어떤 면에서 그녀가 가장 이능력스러운 캐릭터성을 가져야하지만, 이에 대한 어떤 이벤트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현대 경소설의 특징이 ‘한권 분량의 완성된 구조’라는 것은 이야기가 한 묶음으로 엮인다는 의미 이외에도 캐릭터의 심상이 한 권 안에서 온전히 정돈되어 있다는 점도 포함됩니다. (물론 이 점은 시리즈 끝까지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작품 초반에 순수를 통해서 은총을 구하고자 착란적 움직임을 보인 비지는 작품 중반부터 ‘일상 온라인’을 통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해소할 방향을 찾게 됩니다. 이 시점부터 순수는 작품에서 본의아니게 ‘캐릭터로서 배제’됩니다. 이 작품에서 어찌보면 핵심 열쇠가 되야할 캐릭터는 그렇게 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비지에게서 멀어집니다. 일상온라인을 작가가 주요 이벤트 아이템으로 끌고나가려 했다면 순수가 채워주지 못하는 트라우마의 잔존이 있든가, 아니면 순수가 그 안에 있어야합니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얀데레 캐릭터 반장이 메워줄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왜냐면 둘다 외상을 가진 존재로서 기댈 수 있는 ‘키스톤 콤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복잡한 문제는 사이코패스 미스터리물이 가지고 있는 장르의 방향과 이 작가가 작품을 창작할 당시의 배경이 낳은 상황의 미스매치에서 일차적으로 산출된 것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가볍게’ 다루는 경소설로서 보자면 캐릭터의 구도관계와 캐릭터의 내적 동인이 분명하지 않다는, 경소설로서는 치명적인 문제를 노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캐릭터의 내적동인을 삭제해버리기를 즐기는 니시오 이신의 작품들처럼 하나의 스타일리시한 이벤트로 캐릭터를 묶어버릴만한 타이트한 상황도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경소설이기 때문에 본격 미스터리정도로 타이트하고 복잡한 상황은 연출할 필요가 없지만, 이런 자잘한 상황들을 한번에 묶어주는 것이 ‘캐릭터’라는 점도 경소설의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여러모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루마 히토마의 <미군과 마짱>은 본작보다 훨씬 복잡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지만, 두 주인공 캐릭터의 내적동인을 하나의 확정된 과거로 공유시켜 제시하므로써 전체의 모든 이야기를 간결하게 끌고나간다는 점은 이 작품을 읽어볼 때 되새겨볼만한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4. 일러스트레이션

  이런 캐릭터의 문제는 결국 일러스트에서 복잡하고 중층적인 문제로 터져나오게 됩니다. 분명 작품의 일러스트를 ‘단컷’으로 봤을 때는 상당히 훌륭한 일러스트레이션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작품을 읽고 난 다음에도 표지에 그려진 캐릭터가 반장인지 순수인지 명쾌하게 잡아내기 어렵다는 점은 캐릭터 컨셉의 커뮤니케이션이 (작가/일러스트/편집자 모두 포함하여)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로 남습니다. 일단 캐릭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기믹’이 전혀 없습니다. 분명 작품 내에서는 반장과 순수, 적어도 두 명의 히로인에 대한 기믹들은 여기저기에 포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에 그려진 일러스트에서 이런 기믹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일러스트레이터 Tiru는 그런 상황에서도 캐릭터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려 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애초에 캐릭터가 분명하게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러스트레이션에 들어갔기 때문에 문제는 피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지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보면 풀린 넥타이에 샤프한 수트를 입고 있는데, 이것이 시니컬하고 주먹다짐이 잦은 고등학생캐릭터를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광기적인 사이코패스를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의상이 가지고 있는 간접적 표현력이 캐릭터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제스처가 분명하게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러스트가 작품의 명확한 ‘씬’을 제시하는 데에는 한계가 생기게 됩니다. 기믹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아이콘’에 가깝습니다. 이 작품의 일러스트에서 의상을 제외한 기믹이 없다는 점은 ‘경소설 일러스트’로서 가지고 있는 매력이 온전히 발휘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이루마 히토마의 <미군과 마짱>에서 마짱의 캐릭터 일러스트에 그녀의 상처와 데미지가 없음에도 붕대가 그려지는 컨셉 일러스트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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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마짱>의 대다수의 표지 일러스트에서 마짱은 언제나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어떤 특정한 심리적 외상을 가진 - 특히 유년기 트라우마 - 캐릭터는

측면을 바라볼 불안감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면컷은 따라서

일종의 광기를 함의할 수 있으며 '붕대기믹'은 이것과 시너지를 일으키는 일러스트로 표현됩니다. 

 

 

  5. 그러나 아직 이르다.

  <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는 분명 캐릭터성이나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 ‘완성된 작품’이라고 보기는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출신이 ‘경소설 작가가 아니라서’인 것이지, 작가적 재능이 떨어져서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생생한 문장과 표현, 경쾌한 호흡은 이제껏 출간된 어느 국내 경소설 작품보다도 산뜻합니다. 그리고 그 배경이 오히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경소설 필드가 아니’라는 점에 기인한다는 사실은, 정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위 ‘판타지소설’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폄하는 여기서 거론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바라본 ‘인터넷/판타지소설’의 문장과 화법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친근성은 이 작품에서 불안정하지만, 분명하게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부분이 보입니다. ‘미용실 가서 “아줌마 평범하게요.”라고 하면 ’그렇다면 이거지‘라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잘라줄 것 같은 머리모양이다.’같은 문장을 능청스럽게 쓸 수 있는 필드가, 경소설계에서 형성된다면, 자기동일성과 문화의 층위에서 친밀감을 찾는 경소설/장르소설 독자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지, 그 잠재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경소설의 스타일’의 한 가지는 분명하게 집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채 글을 마칠까 합니다.

 

 

Writer

현서/푸른꽃

현서/푸른꽃

과도한 상상력은 비참한 최후를 예방한다!

comment (4)

다이노씨
비밀글입니다. 다이노씨 11.05.24. 00:16
[비밀글입니다.]
흑빛날개 11.05.27. 11:15
이 좋은 글에 왜 댓글이 없는가.
돌사육사 11.06.30. 22:53
잘 읽었습니다.
너죽어는 그 재미와 매력이 강한 만큼 한계도 뚜렷하게 드러냈지요. 무엇보다도 인터넷연재본에 비해서 출판연재본이 조금도 나아진 점이 없다는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것은 책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구성원이 작가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반증일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앞으로 한국형 경소설의 많은 발전을 기대해봅니다.
투명한빛
투명한빛 12.03.15. 06:47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접해보고 싶은 작품이군요.
[미군과 마짱]은 1권만 읽어봤네요. 여러모로 자금의 사정상, 최근의 라이트 노벨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조금 아플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이 총체적으로 고무적인 방향과 효과를 띤다는 점은 저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네요. 저도 언젠가 그런 일에 보탬이 되고 싶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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