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그녀와 나의 경소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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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 쓴 글은 진심을 완전히 전하지 못해.”


그런 식으로 글을 쓰다 보면 몸이 남아 나질 않잖아?”

  

  그녀는 늘 경험을 중시했다.

  

  하지만.

  

  하지만, 아무리 경험에서 진심과 진실성이 우러나온다고 해도 경험해 봐야 할 것과 경험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

  

  그 녀석은 그 선을 넘었다.

  

  불과 몇 초 전, 내 눈앞에서 그녀는 창 밖으로 투신한 것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나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들떠 있었다그러한 속에는 고등학교에 대한 막연한 동경 중 하나인 ‘동아리’에 대한 설렘도 포함되어 있었다처음에는 새로운 경험이라던가 이미지 변화 등을 목적으로 운동계 동아리에 들어볼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운동계에 입부를 신청한 주변의 클래스 메이트들이 모두 상당한 실력자들이었기 때문에, 운동이라고는 학교 체육 시간이 전부였던 나는 입부신청을 할 생각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사실은 문예부에 들어가고 싶었다.

  

  책을 읽는 것이 나의 유일한 취미였고, 글을 써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어느 면에서 말하자면 문예부는 딱 내 천성에 맞는 동아리 활동이었다. 그러나 이에는 단 하나 중대한 문제점이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문예부가 없다. 몇 번이고 교내를 둘러보고, 교실 벽에 붙은 동아리 홍보 전단들을 살펴보았지만, 문예부나 기타 그에 상응하는 동아리 활동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1학년이라도 동아리를 창설할 수는 있다. 거리낌 없이 친구들과 모여 새로 동아리를 만드는 당돌한 녀석들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복잡한 절차가 싫었다. 동아리를 새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지침도, 사람도 없었다. 갓 입학한 상황에서 어떤 선생님께 고문을 부탁드려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그저 두려웠던 것 뿐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부원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어서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 갓 입학해서 ‘누군가의 지도’를 기다리고 있던 내가 ‘누군가를 지도’ 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웠었다.


  나는 그대로 어느 동아리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지도 못한 채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때보다 힘들게, 중학교 때보다도 적은 책을 읽으며 1년을 지냈다.


  그리고 다시 새학년의 신학기였다. 후배들이 들어오고, 반이 바뀌고, 다시 동아리 모집의 시기가 왔다. 2학년 때부터는 동아리에 보낼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사실상 수능은 앞으로 2년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학급의 분위기도 1학년 때와는 상당히 달랐다. 확실히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져왔다. 그렇게 1학년 때와 다름없이 동아리를 들 생각이 없었던 내게 어떤 동아리 홍보 전단이 눈에 들어왔다.


  ‘신생 경소설부 부원 모집’



  경소설부의 동아리실은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별관-주로 교무실이나 창고들이 있다-4층에 위치해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동아리실이 본관에 주어지지만 그 쪽도 공간이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에, 신생 동아리의 숙명상 이곳에 동아리실이 위치하게 된 모양이었다.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답은 없었다. 단념하고 돌아서기에 앞서 살며시 손잡이를 돌려보자 낡은 문은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곳은 마치 누군가의 서재 같았다. 양쪽 벽에는 얼추 사이즈를 맞춰 구입한 듯한 크기의 책장들이 늘어서 있었고, 책이 빽빽히 꽂혀있었다. 뒤에 우중충한 하늘이 비치는 탁 트인 창을 두고서 약간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원탁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누군가가 책을 읽고 있었다. 이쪽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저기, 여기가 경소설부 맞나요?”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그녀는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무시하는 것인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묵묵히 책장을 넘기기만 했다. 더 이상 질문을 해봐야 별 소용이 없을것 같았고, 무엇보다 책을 읽는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질문을 그만두었다. 책장넘어가는 소리와 창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있자니, 책장에 꽂혀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에 자연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잠시 둘러봐도 되겠죠?”


  물론, 답변은 없었지만 나는 임의대로 그것을 승낙으로 받아들여, 책장에 다가갔다. 처음에 느낀 것은 이상함’ 이었다. 책장에 꽂혀있는 모든 책의 판형이 같았다. 왠만해서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도 레이블이나 제본시기등 여러가지 요인에 따라 판형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책장에 꽂혀있는 책은 그 모두가 같은 사이즈의 책이었다.


  ‘만화책?’


  나는 그 중 한권을 꺼내려고 손끝으로 귀퉁이를 잡았다.


  탁-


  책을 덮는 소리에 흠칫 놀란 나는 손을 책장에서 거두고 원탁쪽을 돌아보았다.


  “, 이정도면 괜찮은 편인가.”


  그녀는 다 읽은것으로 보이는 책을 손에 들고 원탁 위를 폴짝 뛰어 내려왔다. 상당히 날렵하면서도 재미있는 움직임이었다. 책을 집어넣으러 책장으로 몸을 돌린 그녀는 그제서야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어라, 너는?”


  “2학년 7반의 XXX입니다. 입부신청을 하러 왔는데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약간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싱긋 웃었다.


  “1학년 1반 유은별. 내가 경소설부의 동아리장이야.”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단 둘뿐인 경소설부의 부원이 되었다. 나는 내가 2학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경어를 요구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동아리장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끝끝내 나를 ‘선배’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로 편하게 반말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경소설부의 경은 가벼울 경()과 즐거울 경()의 경자야. 가벼운 소설, 즉 ‘라이트 노벨’이라는 의미와 함께 ‘읽는게 즐거운 소설’을 쓰는 동아리라는걸 모티브로 만든 이름. 어때?”


  지금 경소설부의 책장에 산더미만큼 꽂혀져있는 소설들은 ‘라이트 노벨’이라고 불리는 소설들이었다. 약간 만화스러운 삽화가 들어가있는 소설로 청소년에서 청년층을 소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듯 했다. 처음에는 그 규격화 된 모습에서 기이함을 느꼈었지만, 직접 몇권을 읽어보니 일반적인 책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이트 노벨’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읽는게 즐거운 소설’을 쓴다니, ‘즐겁게 소설을 쓰는’이 아니라?”


  나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 소설을 쓰는건 별로 즐겁다고 할 수 없으니까.”


  그 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떤 종류의 비탄 같은 것도 묻어나왔다.


  어느정도 내가 부실의 책장에 있는 책의 제목을 외워갈 무렵부터, 나와 그녀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그 때의 그녀의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도 그 이후였다. 소설을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야기의 흐름이 갑자기 뚝 끊어지기가 일쑤였고, 어느 새 정신을 차려보니 전혀 읽을만한 내용이 아니었던 적도 있었다. 모의고사와 중간고사, 기말고사들이 지나가고 여름방학이 지나 새학기를 맞았다, 나는 작년에 비해 많은 책을 읽었고, 작년보다 성적이 떨어졌다. 하지만, 작년에는 단 한자도 적지 않았던 소설만큼은 벌써 원고지 수백장을 넘기고 있었다

  

  우리의 목표는 각자의 소설을 가을에 있을 축제까지 완성해 책을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우리가 낸 책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로의 작품을 읽고 평가를 해 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학교 축제는 한 달 남짓 다가왔다. 우리의 소설은 클라이맥스를 달리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소설을 씀에 있어서 경험을 매우 중시했다. 가끔은 나에게 무리한 요구-키스 라던가-를 요구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내가 쓸 것이 모두 거짓이 되어버리고 마는걸.”


  그리고 소설의 클라이맥스를 완성시키기 위해 그녀는 부실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내가 약간 느지막히 동아리실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에는 이미 그녀의 몸은 창밖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멍하니 그녀의 비행을 지켜보았다.



  1층을 향해 달렸다.


  계단을 급히 내려오다가 발이 뒤엉켜 굴렀지만 그다지 아픔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대로 그녀의 소설을 끝낼 수는 없었다.


  이대로 ‘나의 소설’을 끝낼 수는 없다.


  나는 전력을 다해서 그녀에게 달려갔다.






이 사이트의 이름을 보고 문득 떠올라서 휘갈겨 봅니다.

뭐 이미 경소설부(라노베부)라는 라노벨이 있기야 하지만 이건 한낱 프롤로그니......


피-쓰


Writer

요봉왕 비취 100식

요봉왕 비취 100식

퍼덕, 퍼덕.

comment (3)

익명 10.06.10. 22:56

미더덕이나 세요!

RanPeace
RanPeace 10.06.14. 15:43

헐 괜찮은데!

광망 10.06.22. 05:34

경문학부가 더 어감이 좋지 않나요?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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