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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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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5 Jul 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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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rook

"허허, 폐하께선 그런 얼토당토않은 소문을 그대로 믿을 분이 아니건만..."

고풍스런 갈색 머릿결에 보기 좋게 수염을 기른 중년이 중얼거리자 가신들 역시 동조를 나타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냥 손놓고 있을수도 없는 사안인지라 다들 고심하는 듯하였다.

"영주님, 하오면 ‘그 분‘을 왕도로 보내어 저희의 뜻을 폐하께 알림은 어떠하올런지."

가신 중 한명이 조심스레 의견을 말하자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그 분이라 함은...?"
"엘리시아 카르멜 경 말이오."

순간 실내의 분위기가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그 산만함은 영주가 손으로 제지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분명 좋은 생각이오만 그녀는 이미 기사 작위를 반납한데다 이 영지에도 그저 잠시 들른 게 아니오."
"허면 명령이 아닌 요청을 하는 형식으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영주로서 영지를 방문한 손님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지요."

단순히 영지를 찾은 객에게 하는 부탁치곤 비중이 너무 무겁지만, 하고 영주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좋소, 지금으로썬 달리 방법도 없으니 그리 합시다."

영주가 허가하자 좌중은 이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붉은 마녀 엘리시아 카르멜.
출신지 불명, 나이 불명 등 거의 모든 것이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그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릿결 색과, 그와 같은 빨간 옷을 입고 다녀서 붉은 마녀라고 불리우는 그녀는 과거 레오나르프 왕을 곁에서 보좌하며 나라의 각종 문제(이를테면 외교나 내정과 같은)들을 해결하였고 오크나 엘프, 드워프 등 이종족들과의 영토 분쟁까지 해결하는 공적을 세우는 등 놀라운 수완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영지나 작위를 마다한 채로, 오직 제자 한명과 함께 대륙 이곳저곳에서 떠돌아다닌다는 소문만 무성한 그녀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그녀가 변방에 가까운 영지인 다르텐에 찾아오자 영주는 기뻐하며 그녀에게 귀빈 예우를 해주려 했으나 그녀는 단호히 거절한채 영지 내에 있는 숲에 스스로 작은 오두막을 지어 한동안 머무르는 중이었고 영주와 가신들은 그녀에게 영지의 위기라고 볼 수 있는 이 문제의 해결을 부탁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영주의 명령을 받은 서기이자 비서인 한스는 호위병 둘과 함께 그녀가 산다는 오두막을 찾아 숲을 들어갔다.

"붉은 마녀 경은 대체 어떤 분일까요?"

영주의 비서라는, 영지 내에서는 꽤 높은 지위에 속한 한스였지만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지위의 고위에 상관없이 인기있는 사내였다.
때문에 병사들과도 꽤나 허물없이 지내고 있었다.

"글쎄, 들리는 소문으론 꽤 잔혹한 분이라고 하더군. 그 즐겨입는 붉은 옷도 적들의 피칠갑으로 그리 된것이라고..."

한스의 말에 호위병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와는 또 대조적으로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라고도 하지. 그 근엄한 국왕께서조차 가까이 두고 싶어할 정도였으니."

남자란 위험한 장미에 끌리는 법이라 했던가.
경비병들은 그녀의 잔혹성에 대한 말은 까마득히 잊은 표정으로 "오오..."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런저런 잡담을 하는 사이 어느덧 붉은 마녀가 산다는 오두막에 도착한 한스 일행은 먼저 서로의 복장을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점검해주었다.

"흠, 흠!"

좀 긴장한 듯한 한스는 헛기침을 하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나무로 된 문을 두드렸다.

똑똑-

"지금 나가요~"
"응?"

젊은 나이로 영주의 비서까지 오른 한스인지라 그 능력이나 냉정함에서 있어서 꽤나 인정받는 편이었고 자신 역시도 그런 면에선 자신감을 가진 한스였으나 그러한 그조차 놀랄 정도였으니 호위병 둘은 오죽했으랴.

"무슨 일로 오셨죠?"
"아, 아... 죄송합니다. 혹시 엘리시아 카르멜 경이십니까?"
"네, 제 이름입니다만...?"

그도 그럴 것이 소문대로라면 그녀는 백발 성성한 얼굴 가득 주름진 노인의 모습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 활약해왔을 터이다.
그런데 정작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오두막 문을 열고 나온 건 많이 쳐줘도 20대 남짓한 여인이 아닌가?
윤기 흐르는 붉은 머리칼과 빨려들어갈 듯 깊은 눈동자,
그 모습을 한동안 넋을 잃고 보던 한스는 작게 헛숨소리를 내고는 침착한 표정으로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전 이 곳의 영주이신 쿤 벨로스 데폰 백작님의 비서 한스라고 합니다."
"백작님의... 그렇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오두막 안으로 들어온 한스는 그녀가 알려진 소문과는 꽤나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가 권하는데로 실내 창가에 위치한 나무 의자에 앉았다.
카르멜이 물을 가져와 한스에 건넨뒤 의자에 앉자 한스는 차근차근 현재 영지의 위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고 카르멜은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끝까지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에 열중하는 매력적인 그녀의 모습에 정신이 아찔해진 한스는 이야기 도중에 자주 물을 마셨다.

"...해서 이것이 영주님께서 마련하신 이번 의뢰의 선금입니다."

이야기를 마친 한스가 호위병 중 한명이 들고 온 상자를 받아 그녀에게 열어보여주었다. 상자 안엔 대륙 어디서나 통용되는 금화가 가득 차있었고, 가치로 환산한다면 평범한 소비 수준의 사람이 수년 간은 놀고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상황이 많이 안좋은가 보군요."

카르멜이 선금으로 내민 상자를 보며 말하자 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희로서도 왕국의 영웅과도 같으신 카르멜 경께 되도록이면 불편을 끼쳐드리고 싶진 않았지만... "

하지만 이 쪽은 영지의 존망이 걸려있다, 라는 숨은 뜻을 모르진 않으리라.

"좋아요, 맡도록 하겠습니다."

선뜻 수락의 의사를 밝힌 그녀의 말에 한스 일행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정말이십니까?!"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의 수락에 한스와 경비병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고 몇 번이고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뒤 돌아갔다.
한스 일행이 돌아가자 카르멜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큰 소리를 내려는지 쉼호흡을 크게 한번 내쉰 뒤 양손을 동그랗게 입쪽으로 모았다.

"스으읍... 켄레만──────!!"

카르멜의 입에서 사자후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의 엄청난 고음이 나오자 주변의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리고 놀란 새들이 날아 도망가버릴 정도였다.

"부르셨습니까───! 스승님───!!"

카르멜의 외침엔 못 미쳤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라고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굉장한 크기의 목소리가 대답했고 곧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엄청난 속도로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아니 거의 날아들었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켄레만이라 불리운 소년은 동안으로 보이는 얼굴에 비해 체격이 꽤 좋은 편이라서 이렇게 달려드는 것을 멀리서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꼭 사람을 습격하는 맹수로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때가 온 것 같구나."
"흠... 그렇다면 등이라도 밀어드릴까요?"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켄레만의 머리위에 혹부리가 생겼다.

"가자, 제자."
"..넵"

이 노인네는 농담도 안 통한다니까, 라고 중얼거리다가 머리위에 혹부리 한개를 추가하는 켄레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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