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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der Nest]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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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41 Jul 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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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rook

올해 F기업에 입사하여 이사를 하게 된 나는 부동산 업자로부터 전세 아파트를 소개받게 되었다. 매우 저렴한 데다 상당히 질 좋은 주거공간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땡잡았다는 기분으로 전세금을 지불한 뒤에 일사천리로 계약을 진행했다. 물론 대개 이런 집에는 으레 무슨 귀신이 나오느니 이웃 사람이 시끄럽다느니 하는 소문이 있기 마련이지만 애초에 그런 건 신경 쓰지 말자는 주의라서.

만족스럽게 아파트를 올려다보고 있는데 아랫층 쯤에서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난 손이라도 흔들어볼까 하여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기분 탓이겠지.

 


무사히 짐을 옮겨준 이사센터 직원에게 요금을 치른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눌렀고 곧이어 띵, 하는 맑은 울림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거기엔 한창 나이 때의 여고생─단정한 단발머리의 안경 쓴 교복소녀가 있었다.


“......!”

“아, 안녕?”


초면인 남자가 빤히 자신을 보고 있던 것이 부끄러웠는지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황급하게 뛰어나갔다. 하하, 귀여운 것. 나는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올라갈 층을 눌렀고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잠깐만요!”


아를 몇 번이나 발음했는지를 무심코 세어보려다가 황급히 열림 버튼을 눌렀다. 외침의 주인공은 어깨 언저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갈색의 롱헤어를 한 여성이었다. 아까 여고생보다는 조금 더 성숙한 느낌의 성인 여성이었다. 20대 중반쯤 되었을까?

스르르릉,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하아, 하아, 휴우우우. 고맙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목례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단둘이라는 상황을 의식하자 살짝 몸이 더워졌다. 그녀 역시 비슷한 기분이 들었는지 엘리베이터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1초가 1분처럼 느껴진 그 침묵을 깬 것은 물론 나, 가 아니라 그녀였다.


“새로 이사 오신 분이세요?”

“네, 1002호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역시 사람은 첫인상이지.


“아... 오늘 오신다는 분이 그쪽이시구나.”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순간 그녀의 표정에서 미묘한 변화가 있었지만, 별다른 추궁은 하지 않았다.

곧이어 10층에 도착하자 그녀가 먼저 내렸다.


“전 1004호에 살아요.”

“아, 이웃이시구나. 앞으로 잘 지냅시다. 이따 떡 돌리러 갈게요.”

“후후, 기대하고 있을게요. 멋진 오빠”


왔다아아! 플래그 왔다아아아!

이크, 무심코 옛버릇이.

그녀는 인사를 한 뒤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천사는 1004호에 사는구나.


경비실에서 받은 열쇠로 잠긴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자 다시 봐도 맘에 드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으로 찍어도 좋을 만큼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살과 멀리 보이는 조그만 산 몇 개, 그리고 무엇보다...


“이쁜 언니들이 많다는 거지.”


흥분한 나머지 무심코 혼잣말까지 나왔다. 이사센터 직원의 말로는 근처에 여고와 여대가 있어서 주변에 여성의 인구밀도가 상당하다고 한다. 짐짓 점잔빼면서 듣긴 했지만 뭐, 여자 싫어하는 남자가 있을까. 거기에 특히 이 아파트는 미인들이 많아서 통칭 ‘미소녀 아파트’라고 불린다고 한다. 여대생들도 많다는데 왜 굳이 미소녀로 이름 붙었는지는 일단 논외로 치고, 실제로 방금 만난 애들만 해도......우헤헤헤.


딩동, 헤헷취! 험험.


갑작스레 울린 현관벨소리에 사레가 들렸다.


“켁켁... 누구세요?”

“아, 경비실입니다.”


문을 열자 늙수그레하지만 짧게 잘 다듬어진 수염과 인자한 눈매를 가진 노인이 서 있었다. 복도식 아파트여서인지 현관문을 열자 복도의 길을 막는 형태가 되었다.


“그...... 혹 알고 오셨는지...?”


노인은 인자한 눈웃음을 유지하며 내게 물었고 난 피식 웃으며 호탕하게 말했다.


“집에서 귀신 나온다는 거요? 에이,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하하하”


그러자 노인의 그 실눈과도 같던 눈매가 갑작스레 도끼눈이 되었다.


“왜, 왜 그러세요?”

“모르고 오신거면... 허허, 이거 부동산 김씨 그 친구가 또 순진한 청년 하나 낚았구만.”


한숨을 내쉰 경비실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들─‘미소녀 아파트’에 관한 비밀 이야기들을 들으며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2009년 4월 6일자 피해자 유성훈의 자작소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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