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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y tear]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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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21 Jul 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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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rook

흡혈귀──.
불사의 수명으로 시간을 유린하면서,
생물의 피를 탐하는 불길한 밤의 종족.

좀 비Zombie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들에겐 이성이 있다는 점.
피에 대한 갈망을 제외한다면 인류와 다를 바 없는, 아니 그 이상의 존재인 그들은
수십, 수백, 심지어 수천 살에 이르기까지,
고위층에 위치한 흡혈귀일수록 영겁의 시간 동안 마법이나 완력과 같은 그들 고유의 능력 뿐만 아니라 지식과 부,
그리고 인간들의 정점에 설 수도 있는 권력까지도 손에 넣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미 먹이사슬에서도 인간의 아득히 위에 위치해있던 흡혈귀였지만 그들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바로 태양.
마늘이나 십자가 등과 같은 고전적인 방법에 대한 파훼법을 이미 터득한 그들조차도
태양만큼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물론 뇌나 심장을 파괴한다면 곧 죽어버리겠지만.

제 아무리 강대한 권능을 지닌 고위 흡혈귀여도 태양빛 앞에선 단 십수 초만에 흔적도 없이 불타버린다.
그리고 이 때 흡혈귀는 사라지기 직전에 자신의 권능이 담긴 정수를 남기게 되는데
흡혈귀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들은 그것을 '블러디 티어'이라고 불렀다.

이 눈물을 마시면 흡혈귀의 능력─ 예를 들어, 한 손으로 자동차를 들어 올린다던가,
총알이 몸을 꿰뚫어도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 되버린다.

그리고 지금, 한 흡혈귀가 내 눈 앞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것도 태양빛 아래에서.
겉보기엔 긴 은발머리를 가진 여성이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온몸에서 이글거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소리라는 표현은 아마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자는 고통에 찬 비명소리를 질러댔다.

이제 10초 경과, 통상의 흡혈귀라면 이제 곧 사라질테지.
난 그런 재미없는 감상을 품으면서 담배불을 붙이다가 흡혈귀와 눈을 마주쳤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눈빛으로 흡혈귀는 날 향해 미친듯이 외쳤다.

"아흑! 뜨... 뜨거워!! 사, 살려줘─! 제발!"
"......"

불쌍하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무섭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저건 인류의 적,
괴물,
흡혈귀.

"제발──!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들어줄게! 돈? 권력? 아니면 영원한 생명?"

마치 이야기 속 악당처럼,
흡혈귀는 필사적으로 내게 유혹의 단어들을 퍼부었다.

"아, 아니면──! 모, 몸을 원하는 거야?!"
"......"
"자, 봐! 인간 계집 중에서도 이런 몸매는 흔치 않다구! 그러니까 제발!"
"...... 거 참."

간혹 특수한 성벽 때문에 흡혈귀 사냥꾼을 하는 놈들도 있는가 보다.
잡아오는 여자 흡혈귀들은 열이면 열, 저런 소리를 한다.

난 담배연기를 허공으로 뱉은 뒤 흡혈귀에게 다가갔다.

"...살고 싶나? 괴물."

입술이 다 타버렸는지 이젠 말도 못하고 그저 끅끅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살려주면 무엇을 할텐가, 또 그 빌어먹을 흡혈 행위를 하고 다니겠지."
"으읍! 읍!"

정신없이 고개를 젓는 흡혈귀를 보며 실망감이 들었다.
보통 햇빛에서 이정도 버티는 흡혈귀라면 최소한 중견급의 흡혈귀일터.
흡혈귀들은 너무 오래 살아서 머리가 어떻게 된건지, 품위나 자존심 등을 목숨보다 더 중시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굉장한 수치로 여긴다.

그래서 흡혈귀 중에서도 머리가 좋은 놈들은 거짓말을 해야할 상황에 닥쳤을 때,
'거짓말은 아니지만 전부를 말하진 않는다'라는 느낌으로 말한다.

하지만 헛다리를 짚었는지 이 여자는 이런 간단한 유도에도 넘어가버렸다.

─흡혈귀가 흡혈을 하지 않겠다고?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군.

"...그렇다면 울어봐."
"믑─?!"

그럼 그렇지.

나의 말에 흡혈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눈물이 나올리가 없다.
흡혈귀가 눈물을 흘리는 때는 오직 태양에 고통받으며 죽어갈 때뿐이니까.

"못 알아들었어? 어디 한번 울부짖어 보라고. 그래서 눈물이 나온다면, 살려주지."
"큿, 큽, 흑......!"
"분해? 분한가? 그야 먹이사슬의 하위종에게 농락당하려니 분할테지."

이제 슬슬 시간이군.
난 스톱워치에 찍힌 숫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22초, 생각보다 오래 버티는군. 그동안 재미 좋았지? 이제 주를 영접할 시간이다."

철컥,
양복의 안쪽주머니에 안에 있던 권총을 꺼내 여자의 이마를 향해 겨누었다.

"나...나도...조, 좋아서..."
"......뭐?"

입술이 다 타버린 상태에서 말을 할 수 있다고?
난 당황한 나머지 조금 주춤했다.

"나, 라고, 좋......"

이젠 성대까지 타버렸는지 입만 뻥긋거린다.

─나, 라, 고, 좋, 아, 서, 흡, 혈, 귀, 가, 된, 게, 아, 냐.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지만 뜻은 통했다.
순간 털끝만한 양심이 날 갈등하게 했지만 난 마음을 다잡고 방아쇠를 천천히 당겼다.

그러다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 흑...... 흑, 흑."
"......피눈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있을리가...

곧 정신이 돌아온 난 서둘러 입고 있던 외투로 흡혈귀...
아니, 그녀의 몸을 햇빛으로부터 가려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피부가...
더 이상 태양빛에 불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띠리리리링!

어느샌가 땅에 떨군 꽁초를 발로 비비 끄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찰칵) 야호~! 임무는 완수했어, 제크?"
"......이봐, 에밀리."
"엥?"
"기적이 일어났다."
" 기저─억? 못 알아듣겠는데요! 자세히 좀 말씀해주시기 바란다. 오바!"

방금 일어난 일을 전화 속의 여성, 에밀리에게 순차적으로 보고했다.

"... 음, 음, 그건 확실히 기적이구만."
" 어떻게 생각해?"
"흐~음. 글쎄, 제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대발견인데. 일명 '흡혈귀도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라는 느낌?"
"가능한 일인가, 그게."
"...이보쇼, 댁이 말씀한 건데."
"......"

그 동안 내가 죽여온 흡혈귀들도 다들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단 말인가.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밀려왔다.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누가 거짓말이라고 해줘.
난 휴대전화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헛구역질을 했다.

"크...우욱, 욱...!"
"......"

부드러운 손길이 등에 닿음을 느꼈고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흑, 큭, 미안, 미안..."

난 그녀를 안은채 정신없이 울었다.

"인간, 약속대로 소원을 들어주겠다."
"죽여줘... 날, 날 죽여줘..."
"그건 왜지?"
"소원이다, 난... 난 살인자야."
"...흠, 곤란하군."
"곤란하다고...?"

나의 물음에 그녀는 양손으로 나의 어깨를 잡아 거리를 두게 한다음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모처럼 다시 인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 몸께선 그동안 흡혈귀로 살아서인지 물정 모르는 아가씨가 됐단 말이지."

...너 아까 돈이니 권력이니 하지 않았냐.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하는데."
"응?"
"에... 흠, 흠! 어때, 죽을 정도로 죄책감이 든다면, 평생을 아름답고 가련한 이 몸을 위해 봉사하는 건?"

철컥, 난 말없이 땅에 떨어진 권총을 주어들어 관자놀이를 겨누었다.

"우와아아앗!? 기, 기다려펀치!"
"커흑?!"

복부에 닥쳐온 엄청난 고통에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 이제야 죽여줄 마음이 생긴 건가."
"틀려!"
"이름..."
"죽을 바엔 이 몸의 부하가......뭐?"
"앞으로 당신에게 내 목숨을 맡기겠다. 그러니까 이름을 말해줘."
"음! 좋은 대답이야. 에또, 이 몸의 이름은────"

 

방금 맞은 보디블로 탓인지 점점 정신이 흐릿해진다.

"──이야. 알겠지?"
"...아아."

모르겠지만.

"아, 맞다."
"응...?"
"구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뭔진 모르겠지만 기운내, 이제부터 그대는 내 부하니까. 후훗."

그 순수함으로 가득한 미소를 보며 난 처음으로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똑바로 하라구."

그러니까 이건,

"대답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지만,

"... 네, 주인님."

분명,

"그건 너무 식상하잖아~! 음... 요즘 유행하는 거 없어?"
"있긴 한데."
"그럼 그걸로 해봐."

좋은 이야기겠지.

"Yes, My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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