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살인마.
Write- 11:49 Jun 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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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TERS
- By 다이노씨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두터운 외투를 벗고 가벼운 복장으로 길거리를 나섭니다. 해변가는 도시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대피해 온 연인들과 가족들의 웃음으로 가득합니다. 즐거움이 계속 되었던 계절,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그리 반갑지는 않았지만, 장마도 찾아왔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사람들이 짜증을 부립니다. 저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젖기 위해 거리로 나섭니다.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에게도 저는 신경 쓰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비가 무척이나 많이 내리던 그날 저희 가족은 살인마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런 기척 없이, 마치 그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나타나 아버지를 자르고 어머니를 찌르고 동생을 갈랐습니다.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오열은 저의 하찮은 눈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했습니다. 붉은 물을 밟으며 도망칩니다. 거리는 전혀 벌어지지 않습니다.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숙소비를 아낄 모양으로 렌트카를 빌려서 렌트카에서 잠을 자오던 것이 후회가 되었지만, 그것을 정한 제 가족은 이미 값어치를 지불해버렸습니다. 차박차박 튀기는 빗물이 짜증나나 봅니다. 저를 따라오던 그 사람이 속도를 높입니다. 애초에 체육이란 분과 거리가 아주 먼 저였습니다. 단숨에 머리채를 잡혀 땅바닥에 던져지듯이 쓰러졌습니다. 머리가 부딪혀, 이마에서 피가 흘렀지만, 그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무참히 칼을 휘둘렀습니다. 다행히 빗나간 칼끝이 저의 머리카락만을 자르고 지나갑니다. 기회였습니다. 저는 있는 힘껏 그 사람을 떠밀고 반대쪽 골목으로 뛰어갔습니다. 그 사람이 쫒아오는 소리가 빗소리에도 묻히지 않고 정확하게 저의 뒤를 때립니다. 심장이 멈추질 않습니다. 쿵쾅쿵쾅 뛰는 제 심장소리가 처벅처벅하는 발소리에 묻힐 즈음 저는 다시 한 번 잡혔습니다. 한산한 거리에 가득 찬 빗소리를 뒤로한 체 막다른 벽에 갇혀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뛰지 않았습니다. 이미 독안에 든 쥐를 무시한 대가였습니다.천둥이 꽈앙 하고 하늘을 때립니다. 놀란 그가 욕을 내뱉으며, 틈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죽기 살기로 그 사이로 파고들었습니다. 마구 휘두르는 그의 칼에 팔이 베였지만 출혈이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급하게 아무 집 대문이나 발로 걷어차면서 뛰었습니다. 쿵쿵 거리면서 온 힘을 다해 차보았지만 매정한 사람들은 내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그는 웃고 있었습니다. 절망한 제 표정이 보여주듯, 저는 더 이상 뛸 힘도, 소리칠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을 때에 대문을 열고 누군가가 나왔습니다. 그 사람은 주저앉아 있는 제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고 다급한 표정으로 그 사람을 덮쳐가는 살인마를 향해 들고 있던 우산을 휘둘렀습니다. 무기력하게 찢겨진 우산 뒤로 목이 잘려진 그 사람이 쓰러집니다. 손에 쥐고 있던 만 원짜리 두 장이 땅바닥에 떨어져 젖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제 마지막 희망의 침몰 같이 느껴져서 저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그때였습니다. 다시 한 번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천둥이 치더니, 골목 끝에서 제 쪽을 향해 차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살인마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죽이러 오지.” 하고는 반대쪽 골목길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온 몸에 힘이 풀려 쓰러졌습니다.
“흐윽…….다행이다…….”
그것이 제가 마주 달려오던 차에 치여 목숨을 잃기 직전에 한 말입니다. 그 사람들의 조치는 빨랐습니다. 여름날 장마에 가려진 제 혈흔들은 눈 깜짝 할 사이에 하수구로 빨려들어갑니다. 어두컴컴하고 꽉 막힌 트렁크에 머리가 깨진 채로 놓인 제 육신은 곧 파도가 휘몰아치는 해변에 던져집니다.곧 그 엄청난 압력에 온 몸이 부러지며 저는 수면 아래로 빠져듭니다. 점점 어두워지는 그 곳에서 피 냄새를 맡은 어류들이 몰려듭니다. 툭 튀어나온 주둥이로 제 몸을 물어뜯습니다. 처음에는 두,세 마리이던 그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는 모습에 수백 마리의 고기들이 때 아닌 만찬을 즐깁니다. 그 아니꼬운 광경에 큰 고기들이 화가 났던 모양입니다. 커다란 주둥이를 벌려 제 몸을 그대로 삼켜버립니다. 위 속에서 녹아가며, 살인마가 마지막에 남겼던 말을 생각해냅니다.
“다시 죽이러 오지. 다시 죽이러 오지. 다시 죽이러 오지. 다시 죽이러 오지. 다시, 다시, 다시, 다시,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죽이러 오지.”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평소의 가면을 벗어 던집니다. 가식적인 모습은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제각기 그들이 원하는 곳을 찾아듭니다.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올해는 반갑게도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기쁨을 감출수가 없어 미소를 흘립니다. 저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젖기 위해 거리로 나섭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신경 씁니다. 모든 사람들은 저에게 한번쯔음 눈길을 받게 됩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그들 모두를 지켜보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죽이러 오지.”
확신에 찬 그 한 마디. 그는 다시 올 것 입니다. 아, 찾았다!

흠. 인상 깊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