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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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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21 Jul 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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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레트라

 "야 이 새끼야, 내 말좀 들어봐."

 친구와 급식을 먹다가 내 말을 듣지 않는 친구를 향해 수저를 휘두르며 말했다. 수저의 밥알이 친구 얼굴에 튀었으므로 잠시간 험악한 눈빛이 오가다가 친구가 숨을 크게 내쉬고 고개를 살짝 비스듬하게 내리면서 내 눈을 올려다 봤다. 짜증 섞인 그 모션은 들어줄테니까 말해보라는 의미다.

 "나 어제 신기한 능력이 생겼다."

 친구는 다시 수저를 들었다.

 "진짜야 병X아, 듣는다고 말 했잖아."

 "말한 적은 없다."

 그런 의미로 친구눈에 구멍을 뚫어버리고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아무런 이유도 없고 특별한 이펙트도 없었는데 그런 능력이 생겼어."

 친구가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진실은 통하는 법이다.

 "뭔데."

 "어떤 여자든 내가 원하는 여자를 울릴 수 있는 능력이다."

 "병…."

 친구는 내 수저를 보고 말을 그만 두었다. 대신 다 먹은 식판을 들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시행해봐."

 

 뭐 시행해 보고 싶긴 하지만 이 학교에 딱히 아는 여자애도 없고, 난데없이 울릴 수도 없고. 아, 그렇지만 역시 내가 울릴 수 없다는 생각은 전혀 조금도 아주 약간도 들지 않는다. 그냥 오늘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까 나 능력이 생겨있어! 나 오늘 부터 이능력자야! 이렇게 되어있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저기 뭐시기 열도의 소설이나 만화처럼 이능 학원 배틀을 할리는 없겠지. 설마 눈물을 흘리게 하는 걸로 무슨 싸움을 시키진 않을 것 아닌가. 만약 정말 배틀을 시켜 먹는다면 마치 배틀로얄에서 냄뚜를 무기로 주는 것 만큼이나 잘못 걸린 상황이다.

 일단 나도 친구와 급식실을 나왔다. 우리 학교가 남햑교인 것도 아니고 남녀 공학인데도 울릴 여자가 없다니 좀 그렇다? 공학이지만 남녀 분반이고 층마저 다르니 여자애를 만날 기회도 전혀 없다? 동아리가 아니면 만날 수가 없는데 내가 다니는 동아리는 순전히 남자 뿐인 영화촬영동아리니 말 다했다. 영화에 여자가 필요하지 않냐구? 그런게 어디있어? 여자가 안나오는 걸 찍으면 되잖아?

 "담임 선생님 울려봐."

 친구가 매점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과연, 담임도 그렇게 생기긴 했어도 여자는 여자. 내 능력의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담임은 좀 그렇다. 능력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고 아직 능력에 대해 정확한 정보도 없는데 기왕이면 인간의 눈물을 보고 싶다. 여자를 울리고 싶어. 이쁜 여고생을 울리고 싶어. 아 지금까지 남녀 공학 2년을 뻘로 다녔구나 나는! 내 고등 인생에 후회가 포풍처럼 쏟아진다. 여자를 울리고 싶어 여자를 울리고 싶어 여자를 울리고 싶어 앙앙.

 친구는 매점의 그 수많은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매점 앞에서 정석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정석이는 여자의 눈물을 좋아했다. 문자로 난 여자가 눈물을 흘리는게 좋아. 라고 종종 말해서 날 재미있게 했었다. 그냥 쌩변태지만 내 능력을 반가워 하지 않는 걸 보면 아직도 안 믿는가 보다.

 땡그랑. 어머! 어, 어?

 그나저나 기왕 생긴 능력을 잘 써야 할텐데, 정말 이능 배틀 시키는 건 아니겠지… 만일 그렇다면 내가 주인공 일텐데, 보통 주인공이란건 허섭쓰레기 같은 능력 하나 던져주고 위기의 순간에 우어어 하고 약속 받은 기적이 나타나는 법이니까. 너무 뻔해서 하품이 나온다. 가요의 사랑이야기 만큼이나 진부한 진행 아닌가!

 데굴데굴떽떽떼구루루

 근데, 능력의 한계와 특성등 세부적인 것은 잘 모르겠다. 오늘 아직 능력을 실제로 써본 적도 없다. 다만 수족을 움직이듯 자연스럽게 능력이 발휘되는 것만 알고 있지 이것이 어떻게 발휘되거나 안되거나 하는지 어떻게 응용되는지는 전혀 모른다. 그러니까 어느정도 거리의 여성을 상대로 발휘 가능한 것인지 중간에 장애물이 있어도 발휘 가능한 것인지를…….

 "으, 으앗!"

 갑작 스러운 상황에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내 가랑이 사이로 뭔가 부드러운? 거대한? 물체가 들어왔다. 그리고 날 위로 순간적이지만 살짝 들어올렸다. 마치 말뚝 박기를 하듯 처음 보는 여자애가 내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들이 박은 것이다. 아니 왜. 황당한 상황에 딱 하고 굳어 버렸다. 여자애는 머리를 박고 그냥 멍하니 있다가 말을 했다.

 "저기요 몸 좀 치워주세요…."

 그 떨리는 목소리는 많이 부끄럽다는 말이다.

 "네가 고개를 들면 되잖아."

 "아, 그렇군요."

 여자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명찰 색을 보니 노란색, 나와 같은 2학년이란 말이다. 가만 근데 이름이 왜 이 모양이야? 이노예. 이런 볼만한 이름이네. 아래를 내려다 보는 이 여자애도 내 명찰을 봤는 듯 싶다. 그러더니 갑자기 빠른 속도로 다시 고개를 숙여서 내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려고 했다.

 "아니 아니 왜 또!"

 "좀 비켜봐…."

 그러면서도 제딴에도 부끄러운 가보다. 아니 왜 부끄러운 짓을 사람도 많은 매점에서 하냐고 이 녀석. 제정신은 아닌 정신이군. 나는 재빨리 노예의 어깨를 잡고 들어 올렸다. 노예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다. 그치만 울 것 같지는 않다. 뭐 내가 능력을 쓰지 않고 있으니.

 "뭐 땜에 그러는데?"

 "네 뒤로 음료수가 굴러가서…."

 머리에 망치로 맞은 듯 한 충격이 몰려온다.

 "그러면 뒤로 돌아가서 주으면 되잖아."

 "아 그렇네."

 깨달음을 얻은 여자애는 내 뒤로 돌아서 음료수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보지도 않고 그대로 쪼르르 건물로 달려갔다. 흥, 눈물나게 해주지 바보녀.

 꽈당! 동화같은 효과음과 함께 노예는 열리지 않은 유리문에 머리를 세게 박고 뒤로 풀썩 주저 앉았다. 뭐야 설마 유리가 투명해서 못 본거야? 하여간 이번엔 울음이 터지겠다 싶어서 일으켜 세워줄겸 확인차 달려가봤다.

 "야, 괜찮아?"

 "아, 괘안아 괘안아."

 발음은 안 괘안아 보인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다. 얼굴이 붉다 못해 터질 것 같은데 눈물은 조금도 흘리지 않았다. 이 녀석 보통 강적이 아니다! 항마력이 제법 높은 녀자구나. 노예는 내가 내민 손은 잡지 않고 혼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복도를 쪼르르 달려갔다. 왠지 넘어질… 넘어졌다.

 "동민아 거기서 뭐하냐?"

 매점을 헤치고 승리한 정석이 손에 빵과 우유를 들고 유유자적하게 걸어왔다.

 "방금 여자애 이노예냐? 너랑 아는 사이야?"

 정석은 노예가 사라진 복도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그냥 넘어져서 일으켜 세워줬는데."

 "흠, 그래? 하여간 저 애는 좀 그런데."

 "뭐가 그런데?"

 "아, 좀 맹하고 푼수 같고 자주 넘어지고 실수하곤 하니까 이름도 그렇고, 그래서 여자애들 사이에서 거의 왕따나 마찬가지야."

 "그래? 얼굴이 저렇게 귀여운데?"

 "귀여워 보였냐? 그래도 여자애들이 보기에는 또 다른 법 아닐까?"

 하기는 그럴 수 있다고 납득했다. 남자들 사이에서 짜증난다고 인기 없는 애들이 여자한테는 또 인기가 엄청 많은 경우를 지금 까지 셀 수 없이 봐왔으니까 그 반대의 경우를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실수 투성이인 여자가 남자에게 인기가 많을 수도… 있나?

 "참 정석아."

 "왜?"

 "빵좀."

 "육백원."

 "뭐?"

 "육백원이라고."

 "이런 망할."

 

 

 

 

 

 "동민아, 10반에 가서 프린트좀 돌리고 와주렴."

 쉬는 시간 교무실에 갔다가 긴급 퀘스트를 받았다. 나는 학교의 착실한 셔틀이므로 몬스터의 명령에 따라 10반으로 프린트를 들고 갔다. 10반 부터는 여자반이다. 아마 13반 까지가 문과 반이고 14반이 이과반인가 할터다. 여자애 반에 가는 건 처음이기 때문에 약간 긴장 되지만 어려울건 없다. 이런건 부끄러워 하는 쪽이 손해 보는 것이지. 까짓거 종이 쪼가리만 올려두고 나오면 되는일인데.

 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노래 불러봐! 안 그럼 못나가!"

 교탁에 종이 쪼가리를 올려두고 나가는데 아마조네스들이 날 가로 막았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레이드? 몬스터는 담임이 아니라 나였나 보다. 교탁에 쿨하게 종이를 두고 나가려던 나의 소박한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반 애들이 전부 주위로 몰려들어서 날 구경하고 있다. 처음엔 한 두명 그러던 것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순식간에 할짓 없는 애들이 전부 몰려들어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모였으면 뭐라도 해야하는게 당연한 이치 누군가 무책임 하게 내 뱉은 돌, 아니 말에 개구리 아니 내가 맞아 죽게 생겼다. 노래를 부르라냐?

 "노래!"

 "노래!"

 "노래해!"

나 노동민 최고의 위기다. 안부르면 리얼 맞아 죽을 분위기. 오늘 여자반은 사냥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듯 하다. 그때 여자애들 어깨 넘어로 아는 얼굴이 보였다. 노예! 10반 이었던 것인가! 나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고 신은 나를 도우셨는지 노예와 눈이 마주쳤다. 내 간절한 눈빛에 노예는 수학책을 꺼냈다. 아냐! 책을 빌려달라는게 아냐! 내 2차 시도에 노예는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아냐! 네 알몸이 보고 싶은게 아냐! 아, 근데 솔직히 보고 싶긴 하다. 내 3차 시도에 노예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는 사이 여자애들은 점점 포위망을 좁히더니 이제는 내 볼을 꼬집거나 때려본다. 누구야? 방금 때린넘! 노예는 그 무리 뒤로 오더니 조용히 말했다. 기운이 없다.

 "저기, 지금 뭐하는 거야? 그냥 보내주면 안될까?"

 도움을 청한 내가 바보 였다. 그러나 노예는 꾸준히 말했고 세번째에서야 몇몇이 돌아봤다. 그러나 그들은 노예를 정말로 차갑게 내려다 보더니 정말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넌 뭔데 끼어들고 난리야?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

 "아 존나 찌질한 년이…."

 "야, 찐따. 안꺼져?"

 여자애들도 생각외로 입이 험했다. 그들은 노예를 탁하고 밀쳐냈다. 노예는 뒤의 책상에 콰당하고 부딫혔다. 그러나 나하고 눈이 또 마주쳐버렸다. 이번엔 의도한게 아니었다. 그만하라는 눈빛을 급하게 보내봤지만 눈빛으로 무슨 말이 더 되랴? 이렇게 둔한애 하고는 특히나. 노예는 이번에도 밀쳐졌다. 순간 울컥 했다. 정석이가 말한대로 노예는 거진 왕따나 다름이 없었다.

 "니들 전부 울려버릴거야!"

 내 외침에 전부 스탑! 한 2초 그러더니 전원 폭소.

 "우, 우,우,우우우…."

 숨쉬기도 어렵나 보다.

 "우,우…려 울려봐!"

 난 전부에게 눈물을 흘리게 했다. 갑자기 누군가가 하품을 했다. 그러더니 하품이 하나씩 퍼지면서 전부 하품을 했다. 전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악어 눈물 만큼.

 "자자, 못 울렸으면 이제 그만 노래 부르도록. 시간 없다고?"

 방금 그게 내 능력? 내 능력? 내 능력? 오 갓, 뎀! 이게 뭐야! 보통 전사란건 항마력이 낮기 때문에 마력에 약할텐데! 그렇다는 건 내 능력이 겨우 그 모양이란거? 하, 하, 하아 실망스럽군…….

 결국 노래를 부르고 나와야 했다. 울긴 울었는데 내가 울었다. 마법 반사 까지 있을 줄이야.

 노래를 부르고 나온거야 치욕스럽긴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영 찜찜하다. 분명 노예라는 여자애 때문일 것이다. 세상 처음으로 여자애들도 그렇게 못되게 굴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노예가 그런 취급을 당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긴 그렇게 갑갑한 사람을 이성이 아닌 동성이 본다면 화가 날만 할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여자애는 남자애와 사고 방식이 다를 테니 더 그럴 수도 있다. 분명 귀여운 척 한다던가 내숭이라던가 그런 핑계로 따돌리고 있겠지. 그래도 노예는 귀여웠다. 진흙속에서 피는 꽃 처럼 분명 그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 보통 일은 아니다.

 

 어둠은 순식간에 쉬이 하고 찾아왔다. 평소보다 더 일찍 찾아온 것은 짙은 먹구름 때문이다. 야자 시간 내내 나는 정석이와 농담이나 따면서 창밖의 비내리는 운동장을 쳐다 보며 소일 했다. 공부해야 하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안든다. 비내리는 날의 나는 비 내리지 않던 어제보다 센티멘탈하다. 우수에 찬 나.

 그런데, 세상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만일 여자라면 내가 세상을 울리면 비가 내리게 되는 걸까? 비는 세상의 눈물. 아니 어쩌면 눈물 잃은 자들의 눈물 일 수 있다. 강해지고 강해지려 애쓰다 보면 눈물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비와 함께 운다. 가슴으로 운다. 울고 싶지만 눈물이 흐르지 않아 느껴지는 고통. 나 또한 그런 기억이 있어서 알고 있다. 비는 내 능력과 똑같은 존재다 울고 싶은 모두를 울릴수 있다.

 그렇다면 나도 울고 싶은 존재를 울려야 마땅 한 것이다.

 자연에서 깨달음을 얻은 우수에 젖은 나. 너무 멋지군.

 그러나 환상에서 순식간에 깨버렸다. 벌써 10시가 지나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정석이는 끝나기도 전에 튀어버렸다. 우산이 없다. 우산이. 이런 환장할. 교실 불도 꺼지고 수사 아저씨가 빨리 꺼지라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가방을 줏어 들고 집까지 뛸까 했는데 집까지 이만 저만한 거리도 아니고 젖고 싶지 않다. 분명 가방 안까지 몽땅 젖으리라. 좀더 비가 잦아들면 가기로 하고 학교 운동장 옆의 코딱지 만한 공원으로 달렸다. 슬레이트 지붕에 장대비가 쏟아져 시끄럽다.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아서 이 안까지 빗물이 들어 올 것 같지는 않다. 나는 MP3이어폰을 귀에 꽂고 볼륨을 높였다. 빗소리 보다 더 크게, 그리고 여유롭게 벤치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궁상맞지만 뭐가 어때서?

 

 내 얼굴위로 뜨거운 빗물이 하나 둘 떨어졌다. 아니 떨어진 것 같았다. 그 느낌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약 15분쯤 졸았던 것 같다. 이렇게 아무데서나 잘 수 있는 것도 내 능력중 하나일까? 어디 가서든 적응을 잘할 거 같아 뿌듯하다. 그리고 옆으로 누워 운동장을 바라보던 얼굴과 몸을 돌려서 천장을….

 "으아아악!"

 깜짝 놀라 MP3를 내동댕이 쳤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 귀신이 나를 벤치 뒤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자 그 여자 귀신은 젖은 머리를 천천히 넘겼다. 하얀 이마가 드러났다. 노예다.

 "하, 야! 거기서 뭐하는 거야? 놀랐잖아."

 내 성이 섞인 외침에도 노예는 씩 하고 웃었다. 그런데, 가방도 없고 신발도 없고 양말도 없고 마이도 없고 우산도 없다. 그리고 빗물에 폭싹 젖어 있다. 눈치 빠른 나는 무슨일이 일어 났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MP3를 주워들었다. 아직도 빗줄기가 세다. 노예는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 살짝 덜덜 떨리면서 자꾸 벌어지고 있었다. 깊은 곳에서 안타까운 기분이 솟아 올라온다. 

 학교의 모든 학생에게 이러한 민감한 상황에 대해서 각자가 죄가 있는가 라고 논하면 누구나 나는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찝찝하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고 별로 말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싫다. 그냥 일어나서 가버릴까 말까 고민이 된다. …역시 차마 가버릴 수는 없다. 의외로 노예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매점에서, 교실에서 봤던 애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긴 처음 보는 애라도 그렇게 엉키면 기억 할 수 밖에 없다.

 "그냥 별일 없었어."

 노예가 그렇게 말하고 내가 누웠던 벤치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봤다. 나는 그녀 옆에 서서 짙은 어둠만 있는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노예의 거친 숨소리만이 내려치는 빗소리 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러나 나는 왜 그런지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약간의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에 그저 옆에서 원하는 만큼만 서있을 것이다.

 다시 또 십분. 천년 같이 긴 시간이었다. 빗소리만이 살아 있는 회색빛 세상에서 노예와 나는 정지 한듯 앞만 바라 보고 있었다. 노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아도 좋아."

 나는 노예가 예전의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노래 처럼 눈물이 나오지 않아 울었다. 그런 노예의 알듯 말듯한 애매한 말에서 나는 어떠한 처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도와달라는 것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아무말 도 하기 싫은, 그래도 누군가가 제발 자기를 알아 줬으면 하는, 그럼에도 너무 강하기 때문에 마음이 굳고 굳어서 마치 어떤 자극이 와도 감각이 없는 것처럼 되어버린, 그런 자신이 너무나 싫은, 싫은….

 "세상이 날 위해 울어주고 있잖아. 나 한사람을 위해 울어주는 세상위에서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

 평소 같으면 얘가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라고 생각했겠지만 노예를 이해하고 있고 조금 전에 내가 생각 했었던 것이고 또 어둠과 비는 그런 알듯 말듯 애매한 말도 수긍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너 같은 애가 나를 위해서 화를 내주기도 하잖아?"

 오늘 교실에서 내가 노예 때문에 울컥 했던 것을 눈치 챘나 보다. 나는 조금 부끄러워져서 노예에게서 약간 떨어져 앉았다. 노예는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뭔 말을 하는건지 나도 참. 잊어줘."

 노예는 맨발로 일어났다.

 "우산도, 신발도 없이 어디 가려고?"

 "여기 평생 있을 수는 없잖아…."

 노예는 젖은 잔디를 맨발로 밟았다. 그 좁은 어깨 위로 장대비가 쏟아 졌다.

 '울고 싶어.'

 들렸다.

 "내가 널 울려줄거야."

 이 얼마나 바보 같은 말인가! 노예는 멍청한 표정으로 뒤돌아서 나를 쳐다봤다.

 "믿지 못하겠지만, 난 오늘 아침 부터 어떤 여자든 울릴 수 있는 능력이 생겼어! 그니까. 울고 싶다면 울게 해줄게!"

 노예는 다시 내 앞으로 왔다.

 "울게 해줘, 한번 만이라도 크게 울고 싶으니까."

 나는 진심으로 노예를 울렸다. 빗물이 노예의 얼굴을 타고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노예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노예는 휘청 하더니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빗물이 내 볼을 타고 흘렀다. 뜨거웠다. 또 그렇게 십분을 앉아있었다.

 "고마워."

 

 비는 약해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있다.

 

comment (3)

카샤피츠 10.07.24. 09:05

초반의 상황에 독특한 맛이 있었는데.

 

조금 뒤로 가니까 설정이 제멋대로 설정되어 있어서 하차.

 

....

레트라 작성자 10.07.24. 10:16

지웠다. 제멋대로 설정이 뭔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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