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시나브로 내리는 소나기의 여름(수정)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20:20 Jul 26, 2010
  • 5178 views
  • LETTERS

  • By 칸나기

눈에 보이는 것은 지금이라도 비를 뿌릴듯 새까만 하늘,         

혀를 스치는 것은 진하디 진한 적란운의 맛,         

피부를 어루만지는 바람의 냄새,         

손에서 단단히 느껴지는 자전거 핸들의 감촉,         

주변을 지나치는 자동차의 엔진소리.        

여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완연한 여름에 매미는 곧 있으면 내릴 소나기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함께 숨을 죽인다.        

냄새. 여름냄새.        

발에 걸리는 페달은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힘차게 나아가고, 그럴때마다 여름 특유의 미지근한 바람이 피부에서 체온을 앗아간다.        

시원하다.         

덜컹.         

목적지에 도착한 소녀는 그대로 기세를 줄이지 않고 자전거에서 뛰어내리다시피 내려 바닥에 발을 딛고 달린다.        

그렇게 녹이 슨 커다란 청색 문 앞에 도착한 소녀와        

"시우야! 나 왔어!"        

───매미는, 힘차게 울기 시작한다.





"으앗! 너 꼴이 왜 그래?"

문을 열자마자 등장한 수연이의 몰골에 나는 깜짝 놀라며 한 걸음 후퇴했다.

"으으… 빨리 좀 열어주지. 그렇지 않아도 소나기 내리기 전에 오려고 페달을 엄청 밟아댔는데!"

내 얼굴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원망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수연이는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다.

아까부터 내리기 시작한 소나기로 직격탄을 맞았는지 얇은 반팔 위로 살구색 피부가 비쳐보이는게……

"너 엄청 신기하다."

"뭐가?"

화가 난 건지 앙칼진 목소리로 되묻는 수연이에게 나는 그냥 평소 말하는 그대로

"아니, 보통 비 맞은 여자애라고 하면 야해보이는데. 너 색기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이는게 진짜 굉장……"

퍽. 맞았다.

수연이는 방금 그 말로 더욱 자극을 받은 모양인지 

마치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샤아! 하고 외치며 양 손을 들고 나를 적대하는 포즈를 취해보였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자, 여기 타올."

수연이의 춉을 맞은 덕택에 욱신거리를 이마를 부여잡으며 타올을 건네주자, 수연이는 궁시렁 거리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탈의를 시작했다.

꼼지락거리며 반팔을 벗고, 속까지 푹 젖은 탓인지 질척거리는 브래지어까지 벗어 던진 수연이가 타올로 닦기 시작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나는 방금까지 하던 일을 퍼뜩 떠올리고는 주방으로 달려갔다.

"야! 이수연! 라면 끓였는데 먹을래?"

팔팔 끓는 라면 냄비가 올려진 가스렌지를 끄고 현관문을 향해 묻는다.

그러자 수연이가 빼꼼 주방으로 고개를 내민 채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몇개 끓였는데?"

"2개"

"그럼 먹을래."

"좋아. 내 방에서 반팔 티셔츠 아무거나 골라 입고 거실로 나와."

"옛썰!"

우당탕 소리를 내며 (아마도) 내 방으로 달려가는 수연이를 발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다가, 나는 현관문 앞으로 나갔다.

"역시나……"

현관문 앞에는 바로 방금 전에 수연이가 탈피해놓은 허물들이 그대로 방치되어있었다.

젖은 반팔 티셔츠, 브래지어, 플리츠 스커트, 그리고 레이스가 달린 귀엽고 앙증맞은 팬티까지.

나는 조용히 그걸 바라보다가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어디까지 벗은 거야 그 녀석."

아무리 그래도 내 방 옷장에 여자 팬티라는 물건은 없……지는 않구나.

휴우…. 한숨을 내뱉은 나는 부엌에서 라면이 담긴 냄비를 거실로 가지고 나와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숟가락 젓가락을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놓을때 쯔음, 짜잔하고 수연이가 내 앞에 등장했다.

"어때?"

어떠고 자시고, 수연이는 내 말대로 옷장에서 적당한 반팔 티셔츠는 찾아 입은 모양이지만…

"너 아래는?"

수연이의 옷차림은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반팔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다는 파격적인 차림이었다.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음, 전혀 낫띵. 치마도 바지도 입고 있지 않은 전위적인 차림이다. 특정 페티쉬 마니아를 노린건지는 몰라도 나는 그런 수연이의 모습에 눈쌀을 찌푸렸다. 다른게 아니라 녀석이 입고 있는 반팔 티셔츠는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었다.

"걱정 마!"

수연이는 반팔 티셔츠를 휙하니 들춰보였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깜짝놀라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 또 아니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수연이는 분명 방금 전에 앙증맞고 귀여운 팬티까지 탈의한 상태. 자연히 그 아래에는.

"팬티는 확실하게 입고 있으니까!"

분명 내 옷장에 있을 사각팬티가 걸려있었다.

정말 귀여운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녀석이다. 

"그래서 무슨 라면이야?"

"안성탕면."

"이런 이단!"

수연이가 주먹을 휘둘러왔다. 그런 부당한 폭력에 어울려줄 의무는 없으니 나는 그대로 피했다.

"갑자기 무슨 짓이야?!"

"라면은 푸라면 이외엔 인정할 수 없어!"

"안성탕면이 제일 싸서 샀을 뿐이거든."

마침 행사중이었고.

"겨우 단 돈 몇백원에 영혼을 팔아치운 더러운 자본주의의 노예!"

그런 목적도, 맥아리도 없는 욕을 들어줄 의무 따윈 역시나 없는 만큼, 나는 그냥 수연이의 말을 무시한 채로 김치가 들어있는 반찬통의 뚜껑을 열었다.

화악 하고 풍기는 묵은지의 냄새가 좋았다. 솨아아아 밖에서 내리는 소나기의 빗소리가 즐겁다. 그러고보니 여름이다. 켜놓은 TV에서는 의미 없는 버라이어티 쇼가 계속 되고, 방청객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그래서 안 먹을거야?"

자리에 털썩 주저 앉으며 묻자, 수연이는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배고프니까 먹을래."

"……푸라면 이외에는 안먹는거 아니었냐고…."

무의미한 싸움은 그만두고 우리들은 말 없이 젓가락과 접시를 들고 라면을 한 젓갈씩 뜨기 시작했다.

침묵이 찾아왔다.

쏴아아아아.

그저 밖에서 내리는 소나기 소리만이 들려올 뿐인 점심.

와하하하하!

TV에서 들려오는 버라이어티 방청객의 웃음소리.

달칵거리기를 얼마, 수연이가 문득 이런 말을 해왔다.

"방학숙제 다 했어?"

"응. 다 했어."

그걸로 우리들의 대화는 사라진다.

조용히 라면을 먹을 뿐인 시간을 보내고, 다 먹은 그릇의 뒷정리까지 끝내자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오후 3시 30분. 여전히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나갈 수는 없다.

"그럼 이제부터 뭐하지?"

소파 위에 앉은 수연이는 양 다리를 파닥거리면서 그런 말을 했다.

뭐하지…라.

"적당히 TV라도 보고 있는게 어때?"

나는 조금 있다가 밀린 설거지를 처리해야 하니까 한가하게 놀아줄 시간은 없어. 라고 덧붙이고 난 뒤. 수연이가 어질러놓았을 것이 분명한 내 방을 정리하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수연이가 이런 나를 바라보며 갑작스레 툭하니 이렇게 내뱉었다.

"야한 짓 하자."

그대로 쾅 하고 거실 탁자에 무릎을 부딪혔다.

"?!?!"

아픔을 꾹 참고 몸을 웅크리고 있으려니, 이번에는 말 뿐만이 아니라 수연이가 천천히 다가와 내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싸아 하고 차가운 느낌이 등골을 타고 전신에 퍼진다.

더운 여름. 수연이의 차가운 손바닥이 기분 좋았다.

"무슨, 말이냐."

후우 후우. 심호흡. 간신히 아픔을 가라앉힌 내가 말하자 수연이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냥. 심심하니까. 서로 할 것도 없잖아?"

"나 설거지 해야 되는데."

그 전에 네 녀석이 어질러 놓은 방도 청소해야 하고.

"그럼 다하면 할 거야?"

"다해도 안 할 거다."

"칫."

겨우 포기한 건가. 수연이는 의외로 고집이 센 녀석이라서 여기서 또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고 경계했지만.

여전히 소파 위에 앉아 다리를 파닥거리며 딴청을 부리는 행동을 보니, 더 이상 무언가를 할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뭐. 괜찮겠지. 

수연이를 그대로 방치하고 내 방으로 올라가려고 몸을 돌린, 바로 그 순간.

퍽.

내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윽?!"

뭐지, 갑자기 몸이 무겁다. 마치 내 위로 무언가가 올라와 있는 것 같은 그러한 느낌에 고개를 돌린 순간.

읍.

내 입술을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드러운 무언가가 덮어 눌렀다.

따뜻하다. 그런 감각이 뇌리에 울린다. 쏴아아. 창밖에서 들려오는 것은 소나기의 빗소리,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푸하.

서로의 입술을 떨어트린 우리는 잠시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골랐다.

"하아……."

나도 모르게 열띤 숨소리가 목을 타고 올라온다. 

그것은 수연이도 마찬가지인지, 발갛게 물들어있는 수연이의 얼굴은 숨소리를 흘리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져들어야 할까. 아니면 상황에 맞지 않게 갑자기 귀여워 보이기 시작하는 수연이의 모습에 응해줘야 하는 걸까.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고민하는 내게 수연이는 여전히 사과처럼 발갛게 물든 얼굴로 말했다.

"……할, 거지?"

귀엽다. 창문을 때리는 소나기의 빗소리, TV에서 울리는 무의미한 웃음소리.

몸을 일으켜 리모콘으로 TV를 껐다. 돌아보자, 거기에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뻣뻣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는 수연이가 있다.

나는

"……방으로 올라가자."

"……응!"

역시 수연이에게 약하다.



비는 그쳤다.





나도 소꿉친구 있었으면 좋겠다.

모름.. 이스피나가 더 추가해달라고 해서....



Writer

칸나기

칸나기

네. 나기 여신님 귀엽죠. 저도 좋아해요.

comment (3)

요봉왕 비취 100식
요봉왕 비취 100식 10.07.26. 20:26

주인공이 불구임에 틀림 없..

이사가 잦은 현 사회에서 소꿉친구 같은 것은 그저 먼 나라의 꿈같은 이야기인 것 같네요 :(

수려한꽃
수려한꽃 10.07.26. 20:43

소꿉친구가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그냥 없어요....
rook 10.08.01. 22:15
누나 없는 사람은 누나에 대한 로망을,
여동생 없는 사람은 여동생에 대한 로망을,
소꿉친구가 없는 사람은 소꿉친구에 대한 로망을 키우게 되나 봐요.
권한이 없습니다.
prev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60'이하의 숫자)
of 60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