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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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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17 Jun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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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호워프



 우리 동네에는 왕이 살고 계신다. 왕의 이름은 로봇왕.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고조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 그 증조할아버지의 할머니의 고조할아버지부터 지금까지 그분의 이름은 로봇이셨으며 왕이셨고, 합쳐서 로봇왕이셨다는 것이다.

 "헤일 투 더 킹." "헤일 투 더 킹!"

 그분이 지나가실 때면 동네 사람들은 늘상 뜻도 모르는 그런 주문을 읊조리곤 한다. 그러면 로봇 왕께서는 그의 위대한 일곱-손가락을 드시곤 한다. 그리고 늘 똑같은 음색으로 입을 열지도 않은 채 말씀하신다.

 "Notification: 나는 왕이니라!"

 그러면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이어진 다음, 그날 왕께 보고할 것이나 여쭈어볼 것이 있는 사람들이 나와 왕께 하고픈 말을 하게 된다.

 "폐하, 쇤네는 밤골에 사는 김뫼라고 하옵죠."

 "Notification: 네가 주민번호 4078호임을 인지하였음을 알리노라."

 "예, 그게 제 호패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다름이 아니고 제가 작은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서산쪽 땅 네 마지기 말인뎁쇼. 그쪽 사는 김가네 마름 놈이 그쪽 땅은 인세가 아직 내어지지 않은 땅이니 뭐니 어쩌구 하면서 제 땅을 지네 땅이라 해쌓고 지랄이지 뭡니까!"

 "Question: 김가네 마름은 정확히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어…… 대머리인 그 김가네 마름인뎁쇼."

 "Declaration: 78 유전적 우성성을 식별 근거로 인식. 주민번호 12298호임이 확인됨, 4078호와의 분쟁 확인."

 정말로 아주 잠시 후, 약 0.78초 후에, 왕께옵서는 명쾌한 판정을 내어놓으신다.

 "Implement: 성호대전 1089-56-7894에 의해 네 땅임이 확인되었다. 허나 분쟁의 소지가 있으니 12일 이내에 관청에 세금, 혹은 그에 준하는 서류를 제출하라. 하지 않을 경우 너는 말소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Notification: 나는 왕이니라!"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왕께옵서는 그 뒤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셨다. 그 판단은 모두가 받아들일만한 것이고, 완벽한 것이다.

 간혹 이기적인 무지렁이들이 이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분의 가슴팍에서 튀어나오는 진짜 우레를 보면 보통 그 무지렁이가 지리고 마는 것으로 일이 끝나곤 하게 된다. 아니면 몇 년에 한번 꼴로 나오는 인간 숮불갈비가 되던가.

 "헤일 투 더 킹." "헤일 투 더 킹!"

 떠나가는 왕께 드려지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주문들. 그런 주문들을 듣노라면 한가지 의문점이 드는 것이 타당한 일일 것이다.

 "근데 헤일이 뭔 뜻이야?"

 "서방님도 참, 것도 몰라요? 높으신 분들은 자라고 카는, 이름이 두개 있다 아입니까. 로봇왕의 함자가 바로 헤일인 것이요."

 "아하!"

 고개를 끄덕이는 뒷산 감자농꾼의 얼굴을 볼작시면 나는 자연스레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정말 무식하군! 잘 듣게. 헤일이란 사실 고어로 파도를 일컫는 것이네."

 "파도요?"

 "파도. 그 왜, 바다에 그것 말일세."

 "바다라카믄 이화호처럼 큰 호수 말입니까.

 "큰 호수랑은 다르지! 짠 물이 흐르고, 집채만한 물고기가 산다네."

 "아무리 훈장 형님 말씀이라도 이건 못 믿겠습니다. 물고기가 짠 물서 어떻게 삽니까?" "맞아요! 우리 서방님 놀리지 마시라예!"

 그렇게 핀잔을 주던 여편네가 혀를 한번 차고 입을 다문 걸 보니. 내 얼굴이 그만 울그락푸르락해진 모양이다. 하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든 이 부부 잘못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로봇왕 폐하께옵서는 저 먼 산을 향해 가시는 모양이었다. 장터는 곧 폐하께옵서 등장하기 이전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가고, 나 역시 그러하였다.

 이렇듯 삶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페하께옵서는 늘 그렇듯 살아계실 것이며, 사악한 오랑캐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고, 날씨나 쓰잘데기없는 것들만 질문하는 동네 무지렁이들에게도 현명한 대답을 해주실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집에 돌아갔을 때 조카딸이 던진, 너무나 멍청하여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운 질문에 차마 대답할 바를 찾지 못하였다.

 "삼촌! 질문이 있어요."

 "말해봐라."

 서당 아이들이 외울 고어 따위를 준비할 생각에 머리가 꽉 찼기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그러나 조카딸은 아주 집요하고, 교활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저번에 서당에서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된 사람이 되기 위해 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그렇지."

 "그런데 그러면 페하께옵서도 학문을 하시나요?"

 "응?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아니, 이상해서요, 폐하도 분명 사람이신데. 그러면 가끔 이상한 생각도 한단 소리잖아요? 그런데 삼촌은 저번에 폐하는 항상 옳은 말만 한다고 하셨단 말이에요."

 "바보같으니! 폐하는 당연히 옳은 말만 하시지."

 "하지만 폐하도 사람이……."

 "얘야. 여기서의 '누구나'는 '폐하를 제외한 사람 누구나'를 말한단다. 누구나가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폐하까지 포함하는 건 아냐. 하지만 말할 때마다 그렇게 정확하게 말해서야 불편해서 어디서 살겠니.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지."

 "어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폐하는 제외란 거다."

 "왜요?"

 "하늘의 뜻이란다."

 "음…… 왜요?"

 "폐하는 하늘의 아들이시니까 그렇지!"

 "왜…… 그렇죠?"

 "하늘의 뜻이니까."

 "잘 모르겠어요."

 명쾌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모른다는 말만 늘어놓는 조카딸에게 질려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 큰 소리를 치고 말았다.

 "나도 더는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모르겠다. 폐하께옵선 다 아시겠지."

 "그러면 폐하께 그걸 전부 질문하면 되나요?"

 "그거라니?"

 "폐하께옵서는 항상 완벽한 판단을 내리시는지. 학문을 쌓으시는지. 쌓으신다면 어떻게 하시는지. 폐하께옵서도 훈장님 삼촌이 있으신지. 등등요."

 "바보 같으니! 폐하는 할 일이 너무나 많으시단다.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질문으로 폐하를 괴롭히려 하다니! 너도 인간 숮불갈비가 되고 싶은 거냐!"

 "아, 아뇨."

 겁먹은 조카딸을 보며 나는 짐짓 근엄한 척 몇 가닥 나지 않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래, 그렇다면 삼촌 그만 괴롭히고 잠이나 자려무나."

 나는 울먹이려는 조카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호롱불 아래서 서류 조각을 보았다. 참 웃기는 생각이다. 폐하께 그런 쓸데없는 거나 물어보려 하다니. 대체 그게 무슨 쓸모란 말야.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왜인지 조카딸의 말이 제법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폐하께 한번도 질문을 드려본 적이 없었다. 왜였을까?

 생각해보면 질문할 거리는 넘쳐나는데 말이다. 조카딸이 한 바보같은 질문이라던지. 내가 스물아홉이 되도록 결혼할 마땅한 처자를 만나지 못한 운명의 장난을 어떤 도깨비가 친 건지.

 한번 물어볼까? 하지만 그 생각을 하니 부끄럽게도 나는 너무나 설레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동네 사람들 앞에서 그게 무슨 꼴이람. 안 될 일이지.

 그러다가 문득 나는 손바닥을 친다. 아, 그렇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거처하시는 동네 뒷산에서 그 일에 대해 몰래 물어보자. 그러면 되겠지.

 흥분을 가라앉히며 나는 일단 잠을 자기로 하였다. 그리고 서당 아이들에게 치룰 고어 시험 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 나와 함께할 처자에 대해 로봇왕 폐하께 질문할 생각을 하다간 코를 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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