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로봇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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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18 Jun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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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호워프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한다. 곤히 잠든 조카딸을 채근해 서당을 열 준비를 한다. 곧 찾아올, 공부할 생각은 아주 뒷전이고 놀 생각만 하는 악동들로 서당은 오늘도 그득해질 테다.

 서당을 생각하다가 문득 나는 마당 너머로 펼쳐진 산천을 뒤덮은 꽃을 본다.

 "허, 경치 한 번 좋구만."

 초라꽃이 온누리를 덮은 고을, 고어로는 실영이라 불렀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 고을은 탁주로 유명한 탁주골이었고. 또한 그보다는 살찐 밤나무로 유명한 밤골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곳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폐하께옵서 머무시는 수도였다.

 옛날 훈장님이라면 그러한 이름이 잘못되었다며 틱틱거렸을 테다. 하지만 나는 고을의 이름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마을 아이들이 품기 마련인 저 먼 세상에는 뭐가 있을까 하는 걱정 따위도 내 안중에도 없었다.

 "뭐가 있긴 뭐가 있어. 죄다 오랑캐뿐이지."

 지어를 남겨두고 가버린 형은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 말대로였다. 밤골과 외따로 떨어진 몇몇을 제외하면 존재하는 건 먹지못할 초목과 초목을 누비는 몇 안되는 오랑캐들 뿐. 밤골이 바로 세상의 전부다.

 아낙들은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사내들은 농사를 짓는다. 가끔 오랑캐 전역을 누비는 이야기꾼이나 상인들의 이야기며, 잡패들의 공연을 보고 글을 읽는다. 그것이 삶의 전부인 것이다. 그리고, 가끔 고어 시험을 보는 것도 잊을 수는 없겠지.

 "오늘 고어 시험 있는 거 다 알지?"

 "훈장님, 미루면 안되요?" "미뤄요!"

 "하, 말도 안되는 소리."

 비명을 지르며 징징거리는 학동들 앞에서 짐짓 때리지도 않을 회초리를 꺼내며 호통을 쳐본다.

 "베끼면 죽는다. 틀려도 죽는다. 알지?"

 "모르지롱!"

 "어떤 놈이야!"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심히 거슬리지만 나는 회초리를 드는 대신 딱 한번만 봐주기로 하였다. 이건 내가 자비롭기 때문이지. 결코 팔다리 관절이 아침마다 아파오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늘 어른을 놀려먹기만 하는 이 악동들을 단죄할 힘이 내게 조금만 있었더라면……! 하지만 나는 곧 서른을 앞둔 몸이다. 팔팔한 어린애 팔십명을 상대하기란 내겐 너무 벅차기만 하다.

 그렇기에 시험이 끝나고, 서당이 끝났을 때의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어젯밤 그렇게 염원했던 폐하와의 만남이고 뭐고 그냥 죄다 때려치우고 슬며시 오수를 즐기고만 싶다.

 "삼촌!"

 ……하지만 신이 나서 달려오는 조카딸 때문에 아마 그건 불가능할 듯 싶다.

 "서당에선 훈장님이라고 부르랬잖아."
 
 "애들 다 집에 갔잖아요! 아무튼간에, 삼촌 어제 한 이야기 기억하세요?"

 "안된다."

 "네?"

 "안된다."

 "뭐가요! 말 들어보지도 않았잖아요."

 "폐하께 쓰잘데기 없는 질문 드린다는 거라면, 안된다는 말야."

 "왜요?"

 "넌 무슨 말만 하면 항상 왜, 왜만 반복하는구나."

 "삼촌은 안된다. 안된다만 반복하시구요!"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잠시 숨을 가다듬은 다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 어린 백성을 설득하기 위해 입을 털어보기로 하였다.

 "잘 듣거라. 로봇왕 폐하께옵서는 하는 일이 많아. 그런데 우리가 쓰잘데기 없는 질문을 드리면 그분께옵서 언짢아 하시지 않겠니."

 "쓰잘데기 없는 질문 아닌데……."

 "하, 맞대두, 훈장인 나를 믿어라."

 그 말로 조카딸이 고개를 끄덕였기만 했다면, 나는 평화로이 약주 한 잔에 오수를 걸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조카딸은 엉뚱한 소리를 해온다.

 "그러면 삼촌은요?"

 "응?"

 "방금 '우리가 쓰잘데기 없는 질문을 드리면'이라고 했잖아요. 삼촌도 질문이 있다는 이야기 아니에요? 삼촌은 무슨 질문을 드리려고 했어요?"

 가끔 나는 조카딸의 예리함에 졸도할 것만 같은데. 이때가 바로 그때다.

 '내,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

 내가 곤란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조카딸에게 무한한 증오를 불태우며, 나는 고개를 저어본다.

 "알았어! 가면 되잖냐 가면!"

 "네?"

 "간다 이거야! 뒷산 가자구."

 낮잠은 물건너갔군. 한숨을 쉬며 손짓하자 조카딸은 신이 나서 달려나온다. 어서 오라며 손을 끌고 서당 바깥으로 나를 이끈다.

 숨을 몰아쉬며 언덕을 오른다. 시냇물과 근처에 우거진 버드나무 사이로 나무거둥이 도톰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사이로 이어진 상인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그 발자취를 따르다 보면, 궁전이 나온다. 결코 녹이 슬지 않는 강철 궁전.

 "헤일 투 더 킹!"

 "Notification: 나는 왕이니라!"

 궁전에서 나온 폐하를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조아린다. 그런 나를 지긋이 바라보시며, 폐하는 세 개의 눈동자를 굴리신다.

 "Identification: 주민번호 7090호, 198호. Question: 무슨 일로 왔는가?"

 폐하의 영롱하고 당당한 자태를 뵈니 가슴이 벅차올라 그만 울음이 나올 것만 같다. 그러나 여기서 울음을 울 수는 없다. 나는 최대한 내리깐 목소리로 대답한다.

 "폐하, 다름이 아니라.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폐하의 모습은 어딘지 싸늘하다. 우레를 기운차게 뿜으시는 대신 어딘가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신다.

 "Declaration: 허가받지 않는 왕궁 출입은 금지되어 있노라."

 폐하의 말에 나는 어젯밤 먹었던 시루떡이 튀어나올 것만 같이 놀란다. 금지된 일을 범하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아니, 그,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폐하. 그런 줄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처벌이 두려워 몸을 떨게 된다. 그러나 폐하의 입에서 나온 옥음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Notification: 왕궁 출입과, 질문을 약 삼십 분 간 허가함을 알리노라."

 "오오오. 감사합니다 폐하!"

 그 말이 어찌나 자비로운지, 무릎을 한번 더 꿇고만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내가 그 여운에 잠겨있기가 무섭게 조카딸이 빼꼼 머리를 내민다.

 "응, 그러면요 폐하, 질문에 대답 좀 해주세요."

 "아, 아니, 지어야!"

 "폐하는 하늘의 아들이라고 하시는데. 간혹 이상한 생각도 하시나요?"

 "Question: 이상한 생각의 의미를 정의하라."

 "음, 그러니까. 잘못된 판결 같은 거요. 그런 걸 안 하기 위해서 사람은 학문을 닦는다고 하잖아요. 폐하도 학문을 닦으시나요?"

 그 멍청한 질문을 내가 수정할 기회를 잡기도 전에, 폐하께옵서는 빠르게 대답하셨다.

 "Declaration: 내 판단의 평균 성공률은 99.9999888912%이며, 오차율을 줄이기 위해 항상 데이터 갱신을 하고 있노라."

 "네?"

 "Transfer: 100만 번의 한번 꼴로 나는 그릇된 판단을 하며, 그리고 이를 고치기 위해 항상 수양하노라."

 "아아!"

 폐하께옵서 잘못을 하신다고? 잘 이해가 가지는 않는 말이다. 그러나 하늘의 아들이라고는 해도 간혹 선비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왕의 역할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폐하! 그리고 다른 질문이 있는데요!"

 "잠깐만 지어야!"

 "네?"

 나는 조카딸을 만류하며 잠시 폐하의 발을 바라본다. 아무튼 폐하께서 조카딸의 허황된 질문도 받아주시는 걸 보니 나도 부끄러움을 잊고 질문할 용기가 샘솟는다. 조카딸이 허황된 질문을 던지기 전에,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저 폐하,  저는 스물아홉이 먹도록 연이 닿지 않아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래서야 훈장의 위엄이 떨어지는 것은 둘째치고, 팔자에도 없는 홀아비 신세가 너무 안쓰럽지 않습니까?"

 "Implement: 질문의 요지를 말하라."

 "그러니까 저는 언제쯤 참한 처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까?"

 폐하는 말이 없으셨다.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듯, 생각을 하시는 듯 가만히 계셨을 뿐이다. 늘상 바로 대답을 해주시던 모습과는 달라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폐하?"

 "삐-"

 "네? 삐-?"

 "삐-- 삐-- 삐삐삑! MEMORY OVER LOCATED!!!!"

 나는 그 기괴한 소리에 놀라 순간 예의를 잊고 폐하를 본다. 그리고 더욱 놀라고 만다. 폐하께옵서는 기괴한 거품과 이상한 소리를 내고 계셨다. 그리고 춤을 추는 듯 빙글 도시다가는 마침내 엄청난 고함을 지르시는게 아닌가.

 "SEGMENTATION FAULT!!!!!!!!!"

 "폐하?"

 폐하께옵서는 입에서는 검은 거품을, 눈에서는 적색 빛을 뿜어대시면서 늙은 수탉처럼 끔찍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와 조카딸은 다만 당황하여, 누군가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어쩔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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