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수컷 모기와 함께 샤워 하자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15:06 Jul 04, 2011
  • 3555 views
  • LETTERS

  • By 더워드









<수컷 모기와 함께 샤워 하자>



 

생각해 보라. 혹은 상상해 보라. 망상이라도 좋다.

인간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동떨어진 공간. 차량이 분주히 운영되는 도로로 뛰어들면 차에 치여 죽는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발전소 구역에 들어갔다가 감전사고에 휘말릴 수 있다.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비유하자면 그렇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숲에 들어갔다. 산이다. 산 속의 숲. 그냥 들어간 것도 아니다. 마구 헤치면서

여-러-가-지 것들과 동화된다.


 

때는 여름이 다가오는 소리.


울창하게 펼쳐진 숲속은 벌레들로 인산인해다. 보통 나무도 아니다. 아름드리 드리워진 아교목이 복잡하게 꼬인 모양. 그렇게 얽히는 문양, 한 가운데. 그곳은 거미줄도 쳐져 있고, 장수풍뎅이도 기어 다니며, 개미가 개미집을 짓기 위해 먹이 또는 흙을 나르는 역할을 한기도 한다. 자연의 공간이면서 인간을 배척하는 곳이기도 해서 내 몸이 여기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묘할 정도다. 물과 기름의 관계다. 땀으로 비축이며 온갖 벌레들과 뒤섞인다. 들어가기 전에는 아마도 굉장히 무서울 것이라 생각했으나 사실 그렇지가 않았다. 들어가기까지가 문제였지, 일단 들어가고 나서는 생각보다 그리 찝찝하지는 않았다. 물론 오른손 검지에 들러붙는 거미줄과 거미의 다리 느낌이 조금 소름 돋는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었다. 아직 햇살이 나무 사이를 찌르는 낮의 풍경. 허나 도저히 빛을 볼 수 없다. 다른 공간에 눈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후비적후비적. 맞닿은 가지들이 피부를 괴롭힌다. 어딘가 긁혔다. 집에 돌아가서 약 발라야지. 여기 있다는 건 아픔을 느끼기 위함인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애매하다. 확실한 건 요리사의 명을 받든다는 사실이다.


 

“푸헤핫.”


 

비명이 절로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같이 사는 여자일 뿐인데. 명령은 명령이라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느낌? 아니, 협박의 느낌.


 

“주연아 뭐하는감, 실내화는 찾았어?”

“......기다려.”


 

정색을 하며 맞받아쳤다. 남의 속을 읽지 못하는 녀석에게 남의 속을 읽는 듯한 발언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그런 일련의 사건들. 그나저나 그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뿌듯하기도 하다. 정신 나갔구먼.


 

물론 이게 내가 가진 전부이기도 하다. 전부를 잃는다면 그건 전부를 잃는 것이다. 결국 논점은 진짜 전부는 과연 어디까지인가로 옮겨진다. 그리고 이 여자도 포함하는가, 까지도. 어쩌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전부가 있지 않을까, 라는.


 

헛소리를 흩뿌리는 걸 보면, 머리가 어떻게 된 것만 같다. 뾰롱.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검은색 벌레들이 뇌속을 파먹는 미래가 환영이 되어. 머리카락이 전부 자벌레들의 안착 장소로 변한다. 실을 뽑자. 눈 속에서 눈물샘이 어떤 벌레와 화학작용을 일으켜 누런 실과 피가 되었다. 그래서 눈물 대신 실과 피가 뿜어져 나온다. 뽀각. 아마도 사과를 맞은 벌레처럼 이 세상에서 배척 돼 버릴지도 모른다.


 

“우, 우우왓! 찾았다.”

나는 손을 들어 요리사에게 보여주었다. 당장 이곳을 빠져나오고 싶다. 말도 안 돼. 사상 초유의 사태, 미증유. 안개가 눈앞을 가리듯. 흘러내리는 그것은 먼지, 또는 미션을 완료해서 느껴지는 엄청난 뿌듯함. 결코 이 여자를 향한 마음은 아니다. 어쩌면...맞을지도. 그런데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아아, 부끄럽다. 생각 자체가. 아니다. 응. 그래.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지 말자. 글쎄.


 

“어디 봐봐.”

“이거 맞잖아.”

“아닌데.”

“뭐어?”

“아니라고.”

“하얀색 실내화라고 했잖아.”

“내가 언제. 난 노란색이라고 했지.”

“나의 유일한 무기인 내 주거 구역 영영 떠나기 선언을 발동 해버릴까?”

“밥 없음. 끝.”

“아앗. 죄송함. 제가 잘못했음.”

“죄송할 시간 있음 얼른 찾던가. 시간 잰다. 스탑워치다!”


 

그렇게 외치며 요리사 여자는 전자식 손목시계를 자랑스럽게 보이며 터치한다.


 

“여기 흐르는 이 시간, 5분이 데드라인이다. 만약 5분이 지나도록 찾지 못한다면 오늘 저녁 없음.”

 


빨간 공간이 움푹 들어간다. 순식간에 초 단위에서부터 숫자가 상승세를 펼치며, 공포를 발산.

사실 이 여자는 우리 집에 산다...고 아까 말했지 참. 아니, 말했던가? 중요한 건 같이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주제에 이름도 모른다는 거다. 주워왔다는 과거는 없다. 당당하게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왔다는 과거는 있다. 그런데 어째설까. 그렇다 하더라도 머리를 삐죽이 올려 세운(머리핀 하나로 고정, 머리핀 두 개로 포인트, 이런 게 3쌍 정도 된다, 구세대가 보면 정신 사납지만, 패셔니스트가 보면 그럴듯해 보일듯한) 여자아이가 혼자 사는 나의 집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나는 이 집에 살겠다.’ 라고 외치면서 눌러앉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의 차원을 뛰어넘었다.

그래서...그 때 단지 그녀의 이름이 궁금해서 물었을 뿐인데, 머리를 얻어 맞았다. 난 그녀를 향해 당장 꺼지라고 윽박질렀지만, 꺼지지 않고 묵묵히 요리를 했다. 요리를 먹어보았다.


 

이 여자아이를 우리 집 요리사로 명했다. 일요일은 네가...짜파게(......자중) 이제부터 너는 요리사다. 그러니 우리 집에서 살아라. 아니 명령이다. 허락이 아니다. 동기가 섭섭할 정도로 축 늘어지지만.

주택에, 그도 아니, 어, 음, 동거?

이상한 생각이 아니라고. 가 아닐까, 도 아닌듯, 도, 도, 도, 도도도도. -정신이 붕괴.

그렇게 되었다. 알고 보니 가까운 학교에 다니는 듯하다(라는 클리셰). 우리 학교에 다니는 듯. 같은 반은... 아니다(재미 없는 클리셰).

 


그리고 이 사건과 연결되는 최근의 일이다. 때는 로망의 하굣길. 순식간에 우리 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삐죽이 머리를 내 앞에서 살랑살랑 흔든다. 그녀는 숨을 후- 내뱉고, 내게 말했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실내화를 잃어버렸다. 그리곤 덧붙이는 말이, 실내화를 찾아주면 특별히 맛있는 밥을 해주고, 찾아주지 않으면 1주일 내내 밥 없다고. 이 요리사 여자의 밥을 1주일 내내 못 먹는 건 고문이었다. 문자 그대로 협박이다. 이정도면 이미 핍박 수준이다. 인권단체에 일러바쳐야 할 상황, 이라곤 해도 정말 그런다면 자승자박의 길을 걸을 뿐이겠지. 애초에 들어주지도 않을걸? 이 여자. 삐침 머리를 해서는. 이런 깜짝 미션을 선사해 주는 건 문제다. 처음의 그 기세에 눌려 이 꼴을 당하는 건 그야말로 자업자득. 나를 죽여라 놀이.

 


“노란색을 찾으란 말이다. 노란색.”


 

노란색. 노란색을 찾고 있다. 노란내 나는 실내화란 말이지. 어디 보자. 냄새를 맡아보았다. 없다. 아직 없다. 존재할 리 없는 걸까. 검은색의 봉투가 꽃처럼 지면에서 피어나와 있고.

처참하게 박살 난 하얀 TV 조각들.

어디서 왔는지 그 출처가 불분명한 돗자리의 은빛 조각.

그나저나 저 여자의 실내화가 왜 여기 있으며, 이걸 또 왜 찾으려는 걸까.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좀 어이없지. 맛있는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이런 짓을 하다니.

적절하게 유추해 보자면...


첫째, 실내화 한짝 살 돈이 없다. 둘째,...... 이건 직접 내뱉는 편이 좋겠다.


 

“사실 없는 거지?”

“으응?”


 

얽히고설킨 갈색가지 사이를 올려다보며 던지는 의문. 아직까지 말하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민감한 문제는 서서히 그 사실을 밝혀나간다, 가 내 좌우명이다. 즉흥적이라서 믿을 순 없지만. 어쨌거나 이쪽에서 먼저 솔직하게 나오면, 그런 사실은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방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그렇다고 나와 같이 자는 것도 아니고. 땀땀땀.


 

“날 놀려먹기 위한 수작 아니냐고오.”


 

나는 거실. 요리사는 나의 방. 어딘지 익숙하다. 항상 요조숙녀는 남자의 무엇인가를 희생시키지. 그게 자신의 동기인지 협박인지가 다를 뿐이고. 내 방에서 그녀의 가방을 보았을 때다. 땀땀땀. 송곳, 커터 칼, 과도, 식칼 등등의 도구로 마구 그어져 있었다. 처참한 모습이다. 그만큼의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실은 왕따가 아닐까.

그것도 같이 사는 사람이. 그렇다면 풀어야 한다. 남에게서 동정을 발견하면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의 나는 달래고 어르어 주기 위해 실내화를 찾는 협박에 넘어가 주었다.


 

“지금 뭐라고?”

 


라고 반격. 하하. 흙이 내 등 뒤로 뿌려진다. 흙먼지가 안 그래도 찝찝한 결계를 업그레이드. 인간이 들어갈 곳이 아니다라는 확신과 왕따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런 짓을 서슴없이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가르침을 느꼈다. 기분 나빴지만, 정작 흙을 뿌린 당사자는 도도하군.


 

“우케겍.”


 

이런 성격이라서 당연하지 않을까도 싶다. 녹아들지 못한다. 내가 숲 속에 처음 녹아들지 못했던 것처럼. 그러나 지금은 녹아들었다. 서서히 해가 진다. 녹아드는 것도 여기서 마무리 지을 시간이다. 인간과의 경계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억지로라도 녹아들었지만, 그건 미운오리 새끼 기분인 거다. 은밀히 이루어진다 해도 상관없다. 당연한 거다. 대놓고 괴롭히는 아이는 없다. 그런 아이가 있다면 선생님께서 가만히 놔두지 않는 상황을 만끽해야겠지.

봄 소풍도 못가고, 운동회도 못가고, 전학도 못가고, 우주도 못가고, 죽음에도 근접할 수 없는. 비가 우수수 떨어지는 날이면 눈물을 흘리는 지박령이 된다는 상황까지는 오버해 버렸다. 헛소리지만, 거짓말이지만, 청춘포인트... 는 아니지만.

(주의 - 과도한 패러디는 정신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괴롭힘을 나에게 푸는 거다, 라고 합리화 시키면 정말 멋이 없는걸. 스트레스 상담사한테나 상담 받으라고(중2병 증세 발발중). 그녀가 직접 숙박비를 내지 않는 한 내게 책임은 없다. 책임은 원래 무거운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길고 지속될 때 무거워진다. 그래서 나도 곧 무거워지려고 했다. 훌훌 털어놓지 않음 견디지 못할 만큼. 경계가 흩어지는 공간에 놓이길 바랐다.

난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벌레를 무척 싫어한다. 정말 싫다. 기어 다니는 모든 것은 싫다. 특히 인간에게 달려드는 것들은 지긋지긋하다. 모기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공부했을 정도다. 난 내가 나를 안다. 적까지만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명언을 직접 실험해 볼 수 있는 거다. 실험은 성공하지 못한듯 모기는 여전히 달라붙는다.

지금의 내 상태는 몇 방을 물렸는지 모를 절체절명.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왜 내가 널 괴롭힌다고 생각해?”

 


하는 행동이 딱 그렇잖아, 라고 상처를 줄 수도 있겠지만, 악역을 굳이 맡을 필욘 없다고 생각한다. 배역이 정해져 있다면 비록 덜떨어지고 평범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 조연이 되고 싶다는 주인공은 결코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역시 주인공 같지 않다. 결국 나는 주인공이라고 외치면서 정작 조연인 주인공이 되는 걸까. 그건 싫은데. 싫지만, 요리사가 지금 묻잖아. 왜 괴롭혔다고 생각하는지. 그런데 굳이 묻지 않아도 되지 않나? 그게 슬픈 사실이지.

 


“실내화를 찾는 이유를 내게 말하지 않았지. 동기가 없어. 그리고 어떻게 이곳에 네 실내화가 있지? 그 과정이 없어. 음,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날 괴롭히지 말아줘’다.”


 

진실로 다가간 말에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지만, 표정관리를 하기 위해 화장을 머금은 눈을 꼭 감는다. 왜 이런곳에서까지..., 이해 못하겠으나 예쁘니까 상관은 없다. 이미 이해의 범주를 뛰어 넘은 걸지도 모른다. 음흉한 웃음 따윈 지금의 상황에서는 나오지 않아. 음하핫.

 


“오늘 저녁식사를 포함한 1주일간의 밥. 없어.”

“좀 봐주세요.”

“존댓말 쓰지 마. 기분 나뻐. 근데 착각하는 게 있어서 확실히 말해두는데.”

 


감독님처럼 위엄 있는 자세를 잡으며, 숲계를 향해 당부의 말씀 한마디.


 

“괴롭히는 거 아니야.”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그럼 그게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지.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는 필요 이상의 장난이라도 성행하는 건가. 그나저나 같은 또래의 아이를 마치 어른의 입장에서 내려다보는 것만큼 재밌는 건 없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논외의 이야기는 차치하고, 기를 쓰고서라도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싫은 모양이다. 착각 하고 있는 거라면, 나 자신을 먼저 전면 부정하게 되겠지만.


 

철덕 들러붙었다. 거미였다.

다리에는 개미가.

목에는 장수풍뎅이.

허나 개의치 않는다.

일단은 현실에.

몸을 맡긴다.


 

“괴롭히는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하자면, 괴롭힘 당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지.”

“....................................................... 

.......................................................”          *위의 문장에 : 돌발적인 커밍아웃. 이거야 말로 묻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먼-저 괴롭혀서 괴롭힘 당하려고.”


 

여자는 눈을 살짝 내리깔면서 말했다.


 

“음..., 그게 그거 같은데.”


 

내 말 뒤에 ‘그렇지 않아!’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여자아이라는 전개는 없었다. 리얼리티라도 자랑하려는듯 과거를 첨가해서 설명조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결여 돼, 그걸로 우리의 대화는 싱겁게 끝났다.

노을 진 하늘 때문인지, 비적비적 금빛을 쪼개는 가지들 사이로 여자 요리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표정. 그저 빛일까 아님 진심일까.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빛을 고르고 싶다. 진심일 확률이 없지 않지만.

지금까지 함께 살았던 그 모든 시간이 고통으로 변할 것만 같다. 묻지 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내뱉은 후라서 철회할 수도 없는 노릇. 소설이었으면 삭제라도 했을 텐데.


 

흙먼지가 침투해 뿌연 안개를 만드는 공간을 헤치고.

푸른 잎과 갈색 가지들을 제치며.

나왔다.


 

“할 말이 없다. 나중에 이야기 하자.”


 

그렇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툭 던졌다.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는 사실 없다. 지금 당장의 상황을 넘기고자 적당히 한 말이다. 나중이 되더라도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우니까. 커밍아웃을 해도 가족끼리라면 함께 살아가야 한다. 아무리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도 그것이 도저히 못 견딜 정도라면.

경찰서에 신고하면 그만이다.

아직은 아닌듯 하다. 비록, 거미와 장수풍뎅이, 개미들을 뒤집어썼다곤 해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자.”

노란색 실내화를 내밀었다. 이런 소소한 목적이 나를 지탱해 주기에.

반응하는 요리사 아이. 실내화에는 인격의 다른 측면이 적혀 있었다. 고통을 당하기 위해 애쓰는 건 마치.

십자가의 녹슨 못에 박힌 손바닥처럼. 머리를 조여 오는 가시 달린 식물의 태생처럼, 거기 흐르는 피의 붉은 색체처럼, 진지함이 결여된 상처의 거짓부렁처럼, 요리사의 또 다른 쾌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처들이. 움켜쥐며 앗. 하면서.


 

“어...”

여자 요리사의 눈에서 붉은 빛이. 아마도 흙먼지가 들어가서 눈을 괴롭히는 게 아닐지. 그런 게 확실하지 않을는지. 확실하지 않다면 아까전의 노을빛처럼 뭔가 찝찝함이 남는다. 뒤집어 쓴 벌레들보다 더욱 찝찝한 무엇인가가.


 

“고마워.”

말했다. 이게 아닌데. 그러니까 고마워라는 말을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더욱 주인공 같아질 것이다. 그러나 고마워에서 끝. 아마도 허무한 결말이 예상된다. 그나저나 이럴 땐 정말 뭐라고 해야 할까. 가장 전형적인 대사를 뱉어보고 싶다.


 

“오늘 식사는 별미로 부탁해.”


 

헷, 웃으면서 화알짝.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다는 듯이.

그렇게 기대를 가득 담아 주인공 행세를 해보았다. 내가 생각해도 그닥인 것 같다.


 

“싫은데.”

흥!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데요. 이걸 어쩌죠? 라고 물어본들 무엇을 어떻게 언제 어디서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걸.


 

“어째?”

“넌 한 것도 없잖아. 노란실내화가 한 짝 내게 도착했지만, 이건 미완성! 두 짝이야, 두 짝. 전부 완성 되면 식사를 내줄게.”

“없어. 없다고! 하얀색 실내화 한 짝과 노란색 실내화 한 짝뿐이었어.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어. 미션을 완료했다 치고, 그냥 밀고 나가주면 안 될까? 그냥 한번만 봐주면 안 되냐고.”


 

간절한 부탁은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법. 고개를 돌리고 몸을 비비적, 점점 아래로 떨어지는 금빛 하늘에서 투영된 것 마냥 역광을 그리는 여자요리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순간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건 환상도 뭣도 아니리라. 확신 안에 감추어진 반전도 뭣도 없다. 애초에 그런 거겠지. 처음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장단에 맞춰 힘썼다는 이야기. 배우가 되었었다. 연기의 한 측면을 만끽했었다. 우리만의 놀이, 딱 그 느낌.


 

“시계를 봐.”


 

뒤돈 상태에서 그녀의 오른손이 뻗어서 튀어 나왔다. 축 쳐진 손가락들. 그 손목엔 시계가 붙어 있다. 가까이서 보란듯 기절했던 손이 까닥거린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았는데. 뭘 어쩌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까이 가보았다.


 

“더 가까이.”

 


눈동자를 시계에 갖다 붙였다.


 

“좀 떨어져.”


 

떨어졌다.

음. 이제야 보이는군.

그러니까.

시계의 스톱워치가, 없어. 움직이지도 않고, 처음부터.


“스톱워치가 0. 애초에 재질 않았군요.”

“중간에 꺼버렸다.”


 

아! 그걸 놓쳤다. 아, 그렇구나. 내가 실내화 미션에 몰두하고 있을 때.

미처 그런 판단의 미스조차 파악하지 못하도록 그 순간을 노린 거였다. 엄청난 고단수다. 칭찬 해주고 싶어질 정도다.

-사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다 애송이. 날 괴롭혀줘.”

마지막 문장은 나중에 해석하고.

“뭘 악당 같은 대사를 내뱉는 거야. 언제부터 그런 역할이었다고.”


 

그러면서 웃는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음 분위기라... 초록색으로 둘러쌓인 공간을 보았다. 이곳은 인간이 있을 곳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인간이 있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소쩍새의 울음소리.

 바로 옆.

유연하게 철썩이는 시냇물,

 사방팔방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사사사 춤추는 소리,

 상승하강세로.

봄 말의 따뜻한 바람기,

 생명의 존재감을 뽐내듯.

땅바닥에 기어 다니는 *얇고 긴 다리의 거미들,

 색기를 서로 논하려는 듯.

붉은 색체의 이름 모를 열매들,



(*참고 - 주로 산 속 시냇물 부근에 서식하는 이 괴이한 거미의 이름은 장님거미<통거미라고도 부른다>다. 몸통이 깨알처럼 작고, 보통의 범주를 넘어서는 아주 긴 다리를 7개, 8개 지닌다. 7개인 이유는 부상을 당할 경우 다리가 잘 빠지기 때문이라고. 복부 끝에 실젖이 존재하지 않아 실을 뽑지 못해 길을 찾지 못한다는 의미로 장님거미가 되었다고 한다) 

1통거미-1.jpg 



 






그러한 분위기 가운데에 요리사와 나,

우리가 있다.


 

산이라고 해서 자연이 전부 잔존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발을 들였기에 콘크리트가 회색을 덧칠한다. 인위적인 색이었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 부자연스러운가, 아니면 자연스러운가.

인간은 자연이 아닌가?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인간이 자연에서 탄생했다면 인공물도 결국 자연에 속하는 게 아닐까. 무엇이 자연인가, 사전적 의미의 자연으로는 아무것도 단정 짓지 못한다. 정의도 결국 인간이 내리는 것이니까. 기준이 사라져서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면, 노을빛에 의한 얼굴의 붉어짐. 색의 굴절. 흙먼지에 의한 눈시울의 붉어짐. 감정의 굴절. 그 모든 것이.

과연 그녀에게 비친 그런 감정의 표현이 자연에서 우러나온 것일까? 자연이 표현한 것이라면 그것도 자연스럽다. 연기의 여부조차 차치하게 된다.


 

“아아~ 재밌었어. 피곤하니까 집에, 가자.”


 

그녀가 말했다. 중요한 건 이거다. 과정에서 나온 결론. 나는 이 요리사의 음식을 사랑한다. 집으로 가는 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는다. 이대로라도 좋다.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면, 그렇게 하겠다. 말이 나오지 않아서 어색한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수순이라면, 결국 자연스러운 것이 되겠지.


 

뒤에선 모기가 쫓아온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암컷 모기였다. 피를 쭉쭉 마시기 위한 저 몸부림. 아아아으악. 싫다.


 

“속으로 식사 생각만 하는 더러운 녀석.”


 

이 대사 누구의 것일까요? 1번 나, 2번 요리사. 문맥상 둘 다 어울리겠지만, 내가 아니었다. 답 2번, 그녀. 아아. 그러니까 배고프다고! 모기가 아니라 내가.


 


 

집.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는다. 욕실에 들어갔다.

하얀 욕조 위에 작은 생명체가 있다. 너도 목욕 하려고 들어왔니? 묻고 싶어졌다. 모기였다. 산에서부터 달라붙어 집까지 친히 배달된 모양이다. 엄연한 주거침입이었다.

방금 전에 때려서 기절 시킨 수컷 모기다(암컷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법으로 다스릴 수 없으니, 힘으로라도 정당방위 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그랬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다리가 꿈틀거린다. 마치 곧 쓰러질 복서가 숨겨진 힘을 쥐어짜내듯 비틀대는 다리로 버틴다. 그래서 내심 “이녀석 대단한걸?” 이라고 내뱉었다. 농담이 아니라 대단하다, 정말로. 그래도 아니 돼, 아니 돼. 암컷이 너 때문에 나의 소중한 피를 빨러 올지 모르는 일이잖아? 커플의 싹은 자른다. 방심하지 않는다.

생명이란 신비한 것이지, 암. 자연의 힘이다. 샤워 장치를 열었다. 샤워기에서 물이 폭포수를 쏟아낸다. 그러나 물줄기는 모기를 직접 타격하지 않았다. 조금 우회했다. 내 몸을 맞추고 튕겨져 나온 물방울들이 모기의 주변을 질척하게 만들 뿐이었다. 잘 걷지도 못했다. 서서히 조여 오는 자연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몸을 씻으면서, -나(상쾌함)->모기(재해)-, 물보라에 허덕이는 수컷 모기를 바라보았다. 나와 똑같은 성별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토록 작은 존재라니. 마치 또 다른 나의 자아 같다.


 

그나저나 암컷은 침이 있어 누군가를 찌르러 가는데, 그럼 그건 가학증의 한 측면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기보다 모성애겠지. 도저히 가학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의 관점이라면, 어쨌든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피를 빨기에 가학증이 아닐까도 싶다. 그곳에 쾌락은 없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공간이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순전히 잘못 짚은 기준이다. 아마도 평생. 쭈욱-, 생각해 봐야 할 주제이리라. 화장실의 문을 여니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혀가 맘대로 쾌락에 젖는 상상에 빠진다.

이렇다니까.

이런 대사 싫지만.

나는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기절 직전의 수컷모기를 박제(!)해서 인터넷 모 사이트 창작 테마란에 박제한 사진을 올려 평생 소장해 버리고 싶다는 왠지 모를 이상한 망상에 빠지며,

물기어린 축축한 발로 화장실 문간을 나섰다.










 

<수컷모기와 함께 샤워 하자 - 끝.>

 

 

 

 

 

 

Writer

더워드

내 이름은 윤석영이다.

comment (1)

수려한꽃
수려한꽃 11.07.18. 23:22

제목만 보았을 때엔 어딘가 맛이 간 글이 아닐까 기대했었고, 내용은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네요. 말하는 '나'나, 부조리한 '여자 요리사'의 언행이나, 이 혼돈한 서술과 내용에서 조리있는 해답을 바라는 게 되려 부조리는 아닐지, 하는 생각. 글을 쓰시는 데엔 대단히 많은 품이 들어갔을 것 같지만, 언뜻 보기엔 난해한 내용일 뿐이죠. 바로 그 부분이 매력입니다. 마음에 드는 분위기입니다. 잘 읽었어요!

권한이 없습니다.
prev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62'이하의 숫자)
of 62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