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기다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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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소리가 들린다. 아직 차갑다. 이 비가 끝나면 여름이 온다. 눈을 헤집고 지나치는 것이 있다. 헤드라이트다.


  나는 다시 버려졌다. 그녀는 잠깐 기다리라고 중얼거리며 마지막 우유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모를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고양이를 판단하지 않지만, 고양이는 언제나 주인을 판단한다. 입 벌려 말하지 못할 뿐, 그들의 눈빛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농담을 건네듯 손을 뻗어오는 소녀가 있다. 교복을 입은 어깨에서 김이 솟는다. 코웃음을 치고 골목에서 빠져나온다. 비에 적셔졌다.



  그들은 언제나 날 외롭게 한다.


  나는 태어난 날을 기억한다. 어머니가 있었다. 품속은 따뜻했다. 여름을 닮은 어머니의 품. 나는 쓸데없는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따뜻한 품은 여름처럼 겨울로부터 나를 감싼다.


  그 무렵 우리를 돌보고 있던 것은 어떤 소녀였다.


  소녀는 세심하게 우리 가족을 보살폈다. 세 남매 몫의 그릇은 모두 예쁘게 이름이 적혔다. 나의 이름은 원과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걸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지하철역에서 나의 이름을 본 적이 있다. 남자가 여자의 뺨에 입을 맞추는 그림이었다.


  소녀는 매일 저녁 우리를 돌보았다. 소녀는 다른 일을 하는 도중에도 우리 가족을 곁에 두었다. 어머니는 가끔씩 소녀의 품에 안겨 부드럽게 울었다. 나와 형제들은 모두 어머니를 따라 소녀의 곁에 머물곤 했다.


  가끔씩은 소녀가 그녀의 어머니와 싸우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우리들을 털을 모아 소녀에게 들이밀었고, 소녀는 그때마다 우리 가족이 지내는 방의 문을 잠갔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소녀를 위로하듯 애교를 부리곤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죽음을 경험해야만 했다. 형은 빨리 죽었다. 소녀는 너무 추워지기 전에 우리들에게 바깥세상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형에게는 너무 일렀다.


  우리는 소녀와 함께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그날따라 하늘이 맑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현실보다 느리다. 우리의 눈이 그것을 볼 때 이미 지나가버리고 만다. 하지만 바람이 얼굴을 쓸며 보는 하늘은 닿은 듯한 느낌을 준다. 기분이 좋았다.


  형은 나보다 더 기뻤던 것 같다. 그는 평소의 조심스러움도 잊은 채 소녀의 품속에서 바동거렸다. 소녀는 당황하더니 그를 놓치고 말았다. 형이 그리 멀리 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곳에 사나운 개가 있었다.


  어떻게 생긴 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맞닥뜨린 적의에 떨고 있었다. 그 개가 천진스레 다가간 형의 목덜미를 물었을 때 나는 소녀의 품을 파고들었다. 소녀가 다급하게 무언가를 외쳤고,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그날 형의 무덤을 만들었다.


  소녀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땅을 파헤치고 그 안에 형의 시신을 뉘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인사를 시킨 후 조용히 흙을 덮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몸이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후 소녀는 방문을 잠그고 자기 몸을 파고들었다. 소녀는 홀로 의지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상처를 핥으며 소녀의 곁을 지켰다. 우리들은 소녀의 품에 안긴 채로 잠들었다.


  소녀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온종일 방안에서 우리 가족과 뒹굴 거리기도 했다. 겨울이 되자 소녀는 매일 입던 교복을 더 이상 입지 않았다.


  소녀는 더 예쁜 옷들을 입기 시작했다. 소녀가 머플러를 두르고 다닐 때쯤 그녀에게 애인이 생겼다.


  그녀의 애인은 키가 무척 크다. 처음 그를 본 것은 소녀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사진 속에서였는데, 그는 그녀보다 두 배는 키가 커 보였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도 그의 사진을 만지작거렸고, 이유 없이 베개나 우리들을 끌어안고 침대 위를 뒹굴곤 했다. 나는 그녀의 컴퓨터 속에서 그와 그녀가 입 맞추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런 그가 처음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모두 당혹스러웠다. 그가 현관에 서자 큰 키가 더 돋보였기 때문이며, 또 고양이와 있으면 재채기를 쉴 수 없는 사람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고양이 알레르기라는 병이 있었다. 그는 이십 분도 채 못 되어 우리 집을 떠났다. 그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재채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가슴을 세게 두들겼던 걸 보면 숨도 막히는 듯 했다. 결국 그녀는 그를 데리고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우리 가족은 집 안에 홀로 남겨졌다. 그녀보다 그녀의 어머니가 먼저 집에 돌아왔고, 그날 저녁은 그녀의 어머니가 챙겨주었다. 그녀는 그날 밤 늦게 돌아왔다.


  그녀는 점점 더 멀어졌다. 그녀보다 그녀의 어머니가 식사를 챙겨주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녀는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으쓱할 뿐, 그녀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누나와 내가 한껏 그녀에게 애교를 떨고 몸을 부벼 봐도 그녀는 그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녀에게 특별히 악의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우리보다 더 사랑스러운 존재를 찾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주는 애정이 식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와 우리가 함께할 수 없었을 뿐이다.



  우리는 버려졌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우리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누나와 나는 들떠 있었다.


  어둑해질 무렵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겨울바람이 찬 강변이었다. 그녀는 품에 안고 온 따뜻한 우유를 접시에 부어주었다. 누나와 나는 정신없이 우유를 핥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우유에는 입도 대지 않은 채 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시 다녀올게, 라고 말하며 평소처럼 어머니와 우리들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달려갔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아직 많이 남은 우유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녀가 고양이를 싫어하게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얼굴은 차갑다기보다는 뜨거웠다. 우리를 버리는 것에 대해 마지막까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특별히 악의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들이 얼마나 나약한 고양이들이었는지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리라.


  그 날 밤은 잔혹했다. 우리 가족은 돌아가는 길에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누나는 달랐다. 어머니는 떠나야 한다고 말했고, 누나는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누나는 마지막으로 내 뺨을 핥으며 찾으러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어머니를 따랐다. 누나의 모습이 그녀와 너무나 닮아서 믿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추위를 견디는 법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온기가 사그라진 건 새벽이었다. 이제는 많이 자란 내 몸을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태양이 뜨고 나서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어머니의 시체 속에서 나를 꺼낸 것은 아직 어린 소녀였다. 소녀는 키가 컸다. 그러나 재채기는 하지 않았다. 소녀의 가족들도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고양이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시체는 찾지 못 했다. 그녀가 하는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침에 개의 시체를 치우는 사람들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 사람들이 어머니를 주워갔을 거라 짐작한다.


  소녀는 주인이 입었던 것과 같은 교복을 입었다. 소녀도 매일 어디론가 나갔으며, 어둑해질 무렵에나 돌아와서 나를 끌어안고 공부를 하곤 했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다. 여름이 왔다. 여름은 항상 따뜻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차가운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소녀의 가족들은 어딘가 잠시 떠나는 듯 했다. 나는 소녀가 아는 사람의 집에 맡겨졌고, 그 후로 다시는 소녀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소녀는 아마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나도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한 것들은 모두 죽는다. 고양이인 나도 그 정도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소녀와 소녀의 가족들은 틀림없이, 아주 잠시 동안이라도 누군가에게 버림받았으리라.


  날은 언제나 따뜻했으므로 집을 나서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소녀가 알던 사람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도시에는 먹을 것을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얇은 봉투를 찢으면 조금 짜기는 하지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조용히 숨죽이고 있으면 들쥐들이 처마 밑을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도시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지하로 이어진 거대한 굴에서부터 구름보다 높은 곳들까지. 나는 그 사이를 쏘다녔다.


  정해진 잠자리는 없었다. 밤이 되면 주변에서 적당한 곳을 골라 몸을 웅크렸다. 가끔 개가 유달리 크게 짖는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 밤에는 헤어진 슬픔을 헤아려 보았다. 사랑한 추억을 되새겨 보았다. 외로움 때문에 목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고양이는 주인을 선택할 수 없다. 주인에게 선택되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헤어지는 순간도 정할 수 없다.


  이런 슬픈 생각들 때문에 나는 소녀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소녀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눈은 초점이 풀린 상태였고 술 냄새도 났다. 소녀는 익숙한 옷을 입고 있었다. 몽롱한 채로 나는 소녀를 따라나섰다. 그날따라 밤이 차가웠다. 그래서 소녀를 따라 나섰으리라.


  소녀는 홀로 살고 있었다. 2층 베란다와 굵은 나뭇가지가 가까워 언제든 집을 드나들 수 있었고, 먹을 것도 구할 수 있었다. 그녀도 내 먹을 것을 챙기지는 않았다. 그저 새벽이나 오후에는 소녀의 품에 안겨서 어리광을 부릴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


  소녀는 나를 특별히 아끼거나 챙기지 않았고, 그렇다고 나를 귀찮아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계절이 바뀌어도 그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그녀가 늘 입던 교복을 더 이상 입지 않게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겨울이 왔다.


  나는 따뜻한 집 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베란다 문은 자주 닫혔고 소녀도 추운 바깥보다 따뜻한 집을 더 좋아했다. 베란다를 긁는 나를 안쓰럽게 여겼는지 소녀는 고양이 사료를 사주었다. 딱히 바랄 것 없는 생활들이 이어졌다.


  소녀도 애인이 있었다. 그녀의 애인은 중키에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가 소녀를 데리러 집에 와서 나를 힐끗 쳐다보았던 적이 있다. 소녀는 그에게 입 맞추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얼마 전 일이다. 소녀는 며칠 째 집에서 나가지 않았었다.


  그는 시끄럽게 문을 두들겼다. 괴상한 고함 소리도 질러댔다. 그녀는 문을 열었다. 그가 신발을 신은 채로 집안에 들이닥쳤다. 그는 그녀의 팔을 잡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녀가 격렬하게 저항했다. 내 형을 물어 죽인 개를 기억해냈다. 나는 쓸데없는 차이를 두지 않았다. 그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할퀴었다. 그의 한쪽 눈에서 피가 흘렀다.


  그는 두꺼운 비명을 지르며 집을 나갔다. 소녀는 재빨리 문을 걸어 잠갔다. 소녀가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다음 날 그녀는 핸드폰을 받았다. 핸드폰도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줄 처음 알았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그녀는 종일 나를 끌어안고 다녔다. 목적지가 있는 발걸음은 아니었다. 그저 천천히 도시를 돌아다녔다. 해가 저물어 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버려졌다. 이번에도 그녀가 나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먹구름이 보인다. 비가 내렸다. 겨울을 두 번 보내며 익숙해진 건지 여름이 가깝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비 오는 골목 사이로 따스한 빛이 쏟아진다. 그 사이를 걷는 나는 온통 검게 비추어진다. 온몸이 흙물에 젖었다.



  아까 그 소녀가 보였다. 소녀는 큰 창문에 서서 나를 보았다.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녀가 어머니를 불렀다. 소녀의 어머니도 나를 보더니, 소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거센 빗줄기 사이로 소녀가 달려온다. 소녀는 나를 꾹 끌어안는다. 빗소리가 사방을 메운다. 소리, 소리가 나를 감싼다. 이 비가 그치면 해가 뜨겠지. 여름이 오겠지. 따뜻했다. 아니, 더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은 이런 것뿐이다. 아쉽지만, 고양이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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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수려한꽃
수려한꽃 11.07.18. 23:31

충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쪽은 개라면, 고양이는 보통 시크하면서도 새침하게 주인을 따르는 이미지죠. 이 두 종을 화자로 한 이야기는 앞선 이미지에 갇히는 경우가 매우 많지만, 요 글은 고양이가 '애완'동물, '반려'동물이란 한도를 벗어나서 인간과 동등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게 좋았습니다. 고양이는 소중한 존재임미다. 고양이는 차캅니다 냥이는 죄가 없습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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