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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축제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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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24 Aug 0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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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더워드

뻔뻔한 게 좋다. 

뻔뻔하면 뻔뻔하게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뻔뻔한 여자가 있다.

뻔뻔하게 살던 여자다.

지하철의 한 구석.

온 몸의 진동을 타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듯이

그렇게 뻔뻔한 문장을 쓰고 있는 여자.

다가가 보았다.

너무 뻔뻔해서 그 뻔뻔함이 한껏 발휘되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다.

"무엇을 쓰는 것인가."

나는 물었다.

그것도 아주 뻔뻔하게.

나는 뻔뻔한 사람이 좋다.

그래서 나조차도 뻔뻔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뻔뻔하게 말해보았다.

"응? 누구세요..."

뻔뻔하게 물었으니, 뻔뻔하게 나오는 건 당연한 뻔뻔함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런 뻔뻔함이 묻어나오는 대화가 너무나도 좋은 거다.

세상은 뻔뻔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뻔뻔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

뻔뻔하게 반말을 했다.

너무 뻔뻔해서 아무도 몰입해 줄 것 같지 않은 뻔뻔함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쳐다본다.

쳐도보는 것도 뻔뻔함이 있어서 쳐다보는 거다.

뻔뻔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지속했다.

"그러니까 무엇을 쓰냐니깐. 궁금하다고."

"......제발 비켜주세요. 방해 되네요."

탁.

빼앗았다.

그녀가 쓰고 있던 노트를 빼앗았다.

"꺄악! 이거 왜 이래?!"

"헤헤. 잠깐만 좀 보자고."

온갖 손짓 발짓을 해보이며 내게 덤벼들었지만, 나는 강하다. 운동 선수다.

그렇기에 그 강함을 여기에 써먹어야 할 때이다.

그런 뻔뻔함.

황홀한 뻔뻔함.

그 속을 헤짚는다.

보았다.

뻔뻔하게 사생활 치매를 했다.

이렇게 하니까 녀석의 얼굴이 벌게진다.

정정하자.

이 여자는 별로 뻔뻔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눈에는 뻔뻔하게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뻔뻔함은 나에게 있어 정당한 행위를 부과한다.

소설인가?

"어이, 너 작가냐?"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그런 빌어먹을 질문 하지덜 말고 그 노트를 내게 주게."

여자는 답했다.

그런 답은 역시 뻔뻔함 때문에 가능한 답일까?

지하철의 뻔뻔함.

누군가는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얼굴이 다 빨개지지 않았을까.

지금의 행위.

정말이지 부끄럽지만, 뻔뻔함이 있어 가능한 것이리라.

우리들의 뻔뻔함은 거기 있었다.

불꽃놀이가 한창 일어난다. 

아직도 뻔뻔함이 일어난다.

여자 아이와 만나서

불꽃놀이의 창 밖을 바라본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인간이 되었다.

인간이 되는 뻔뻔함.

나는 그런 뻔뻔함을 원한다.

어떻게 이런 시간이 지속되었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런 시간 속에 넣었는가.

지금은 아직 모르겠지만, 결코 알 필요도 없는 물음이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것을 계기로 헌팅을 했다? 뭐 그런 느낌이다.

그러나 헌팅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진귀한 광경이다.

호기심이다.

점점 늘어나는 나의 이 뻔뻔함에 그녀의 얼굴이

빨개지는 사태까지 이르기를.

나는 간절히 바랐다.

결국 노트는 돌려주었다.

그 노트에는 나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소설가였다.

지하철을 타고 축제 놀이에 참가하러 가는 중이었다.

이름은 오나연이었다.

나연이는 나보다 나이가 1살 어렸다.

그래서 더더욱 좋았다.

뻔뻔함이 자리한 곳은 어디고 좋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뻔뻔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꽃놀이 축제를 가는 것도 그렇다. 사실 혼자 가는 뻔뻔함을 가장한 솔로 놀이는 아닐 터이지만, 그래다 하더라도 어쨌든 뻔뻔함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곳이 아닐까 싶어서다. 그곳에는 연인들이 많다. 딱 봐도 열차 내의 사람들은 연인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들만 연인이 아니다. 친구도 아니다. 처음 만났다. 아니, 애초에 나 혼자 뿐이었지만. 그런 것들을 생각할 여력은 없다. 그저 뻔뻔함을 지속하고 싶다.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쨌거나 상당히 힘든 여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뻔뻔함은 뻔뻔함을 낳겠지. 그렇게 믿는다. 믿고 있다.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녀도 함께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는 떨어졌다. 그녀는 결코 나처럼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진 못했다. 나의 뻔뻔함은 단지 그녀의 노트에 스며들었을 뿐이다.

사랑이다.

뻔뻔한 사랑이다.

이것은 내가 염원해 왔던 사랑의 꽃이다.

이런 망상은 언제나 했었다.

빼앗아서 무엇인가를 적어주자.

나의 신상이 좋겠다.

그것도 뻔뻔하게.

언제나 뻔뻔하게 생각해 왔으니까 당연하게도 뻔뻔하게 현실로 나타난 게 아닐까. 매표소가 나왔다. 이곳은 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사지다. 절이 평평하게 늘어서 있다. 한국 정통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다. 뻔뻔하게도. 이곳에서 불꽃 놀이를 연다고 한다. 나는 걸었다. 매표소 앞에서 표를 구입하려던 찰나. 뒤에서 어떤 여자가 끼어들었다. 그녀였다. 뻔뻔하게 끼어든다. 이 사람 원래 뻔뻔한 사람이었구만. 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사드릴게요."

나는 뻔뻔하게 그렇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그녀는 반말로 내게 그렇게 말했다.

반말이다.

반말.

"존칭을 좀 사용하라고. 우린 초면이잖아?"

"누가 먼저 반말을 했는데?"

하앍.

그렇다지만, 뻔뻔스러움이 가시지 않는 이 상황.

아마도 나의 뻔뻔함은 세계 최강이 아닐까.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여기 표 두 장 주세요."

선수 쳤다.

그러니까 우선 내가.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벌써 떠나고 없었다.

"하이고야."

한탄 어린 한숨이 새어나왔다.

도대체가. 사람의 무시도 정도가 있는 거다.

사주겠다는 걸 굳이 거절하면서까지 나를 떠나다니.

물론 진지하게 생각하자면, 모두 자업자득이다. 결코 나 혼자만이 이룩한 일이다. 이것은 정말이다. 자가당착. 그렇게 자신을 뭉개버리면 된다. 뻔뻔함에도 정도가 있다.


밝은 빛이 허공을 향한다. 몇 갈래로 갈라진다. 반짝 거린다. 수놓는 하늘의 풍경. 검은색 배경의 후덥지근한 날씨 속 찬란함이다. 영롱한 눈빛으로 그 하늘을 올려다 볼 그녀를 상상해 본다. 그러나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 애초에 그녀는 얼굴이 없었다.


얼굴이 없었기에 나는 뻔뻔함을 가장할 수 있었다.

달걀귀신 처럼 얼굴이 없어서. 

만약 얼굴이 있었다면, 나는 결코 그런 짓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뻔뻔함을 무기로 내세운다지만,

지하철에서 어떻게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건 있을 수 없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있을 수 있었던 건 나의 뻔뻔함과 얼굴 없이 돌아다니는 그녀의 뻔뻔함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유전자 변형으로 인해 얼굴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선생님은 얼굴을 도려내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말할 수 있는 입과 숨 쉴 수 있는 코,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질 수 있었지만, 눈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은 눈이 아닌, 4감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뭐, 그런 과거를 알게 되는 시점은 조금 뒤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뻔뻔한 사태를 만끽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진지하게 생각해서 뻔뻔함은 뻔뻔함을 낳는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정말로 그렇다.

끼리끼리 논다고들 한다.

뻔뻔한 사람은 뻔뻔한 사람끼리 이끌린다.

나는 전화를 넣었다.

그녀의 전화번호였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는 듯 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 이면엔 초록색깔

노란색깔,

보라색깔,

등등의 빛이 얼룩을 형성했다가 

지나간다.


반짝 거리는 그곳에 그녀가 서 있었다.


"오. 여기 있었군."

"에?"

깜짝 놀란 듯이 그녀가 돌아본다.

"하하. 방금 전에 핸드폰 넣을 참이었어."

아직까지는 안 넣었지만, 게다가 너는 나에게 전화를 해주지 않았고 그럴 틈도 없었지만. 그런 뻔뻔함이 좋았어. 이상한 현상은 일어날 기미가 없지. 단순히 너의 그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찾았다. 결단코 찾겠지만, 지금 또한 만남은 이루어졌다. 이건 운명이다. 한순간이지만, 그것이 폭죽처럼 터진 게 아닐까.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대체 왜 나를 쫓아오는 거야? 죽고 싶어?"

라면서 경계를 그득 안는다. 잠깐. 그렇게 긴장할 것 없다. 우리 모두는 뻔뻔한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진지하게 생각해 봐. 우리는 뻔뻔함 속에서 만난 거야. 그 뻔뻔함이 우리를 축제로 인도한 거지. 뻔뻔한 축제!"

"자꾸 뻔뻔한 소리 할래? 내 얼굴이 너의 그 내면의 뻔뻔함보다 훨씬 뻔뻔하다는 거 모르니?"

그렇다.

그녀는 존재한다.

뻔뻔하게 존재한다.

존재 자체가 뻔뻔함이다.

그래서 도저히 이길 수 있는 뻔뻔함이 남아있지 않다.

뻔뻔함이 남는 순간 나연이에게 전부 먹혀버린다.

그래서 그저 그렇게 넘기기로 했다.

"저걸 봐. 하늘을 보라고."

이것은 뻔뻔함의 극치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망연히 바라보는.

그런 뻔뻔함.

결코.

그 날 밤 축제는

뻔뻔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끝났다.

Writer

더워드

내 이름은 윤석영이다.

comment (1)

수려한꽃
수려한꽃 11.09.10. 22:30
'뻔뻔함'으로 가득 차 있는 글이네요. 뻔뻔하게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나와, 달걀귀신같이 맨들맨들한 민낯을 가진 여자와의 뻔뻔한 만남은, 평범치 않은 상황에서도 별 일 아니라는 듯 뻔뻔하게 말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글 군데군데 빈틈이 휑하니 보이지만, 그 휑뎅그레한 느낌도 뻔뻔하게 넘어갈 수 있는 너그러운 분위기입니다. 앞으로도 둘은 잘 지낼 수 있겠죠?

의도된 오타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생활 치매'와 '정통 문화'는 고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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