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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41 Sep 1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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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칸나기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점심도 처먹었겠다. 교실로 돌아와 클래스메이트들의 소란스러움에 젖어들어 셜록 홈즈 전집을 독파하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왁자지껄한 와중에도 어떻게든 셜록 홈즈의 활약상을 더듬어 나가려는 그 때. 옆에 앉아있던 여자애가 불현듯 고개를 쳐들더니 이렇게 외쳤다.
"좋아. 음악을 하자."
"뭐?"
갑작스럽다기보다 어이가 없어져서 녀석에게 시선을 던진다.
어깨 정도 길이로 다듬은 단발머리, 깔끔하게 일자로 자른 앞머리, 거기에 반짝 반짝 빛나고 있는 눈동자와 우리 고등학교의 교복이 잘 어울리는 단정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인, 말하자면 약간 예쁘다고 말해주지 못할 것도 없는 여자애.
참고로 내키지는 않지만 내 소꿉친구라는 녀석이다.
소꿉친구는 내 어이없다는 시선이 보이지 않는 건지.
"그러니까 밴드부를 만들거야."
고집스럽게 말할 뿐이었다.
이런저런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한 가지 질문.
"너 연주할 줄 아는 악기나 있냐?"
그리고 돌아온 대답
"하모니카."
하모니카? 의외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것도 아니고, 하모니카는 따로 집 근처 학원에서 배울 수 있을 만한 물건도 아닌데.
호오. 놀라워하면서 다시 물었다.
"하모니카? 언제 배웠냐?"
"─가 멋지니까. 해보고 싶어."
무려 미래가정형이냐.
"근데 음악이라니, 애당초 무작정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음악이란 건 그리 쉽게 배울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이미 배우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딱히 배울만한 장소가 없다는 접근성의 문제도 있다.
그런게 왜 갑자기 음악이야?
"하지만 해보고 싶은 걸!"
소꿉친구는 왠지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는 얼굴로 외치고 있었다.
뭐야. 이 녀석, 언제부터 이렇게나 뜨거운 뮤직 소울을 갖게 된거지?
"방과 후마다 부실에 모여 티타임 같은 거 해보고 싶다!"
방금 한 말 취소. 어째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깊이 약 30m 정도.
"무슨 헛소리냐."
또 인터넷에서 이상한 걸 보거나 먹은 모양이군. 내 소꿉친구라는 녀석은 이렇게 어딘가의 잘못된 매스미디어 매체에 영향을 받곤 떠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경우, 진지하게 상대해주는 쪽이 지는 거라는 걸 그간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알고 있긴 하다만.
일단 하나 태클 걸자면 초장부터 네놈이 하는 이야기는 음악하고 관계가 없다. 이 자식.
"역시 부원이 문제겠지. 가장 먼저 필요한 캐릭터는 부잣집 아가씨."
"의미를 모르겠는데. 그보다 아직도 그 소재로 대화하는 거냐."
"케이크를 가져와줄만큼 부자여야 해."
그러니까 그건 음악이랑 상관 없잖아.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진지해지면 안돼. 진지해지면 안된다고. 라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면서도.
"무엇보다 부잣집 아가씨라는 캐릭터는 실존하지 않아."
태클 걸었다. 아무리 바보라도 이 정도의 현실감각은 있겠지.
역시나 소꿉친구는 내 대답에 따로 불평은 하지 못하고 불만스럽게 볼을 부풀렸다.
다행이다. 이 정도의 현실감각은 갖추고 있는 것이로군.
현실에 부잣집 아가씨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하하.
그리고
"그럼 안타깝지만 부잣집 아가씨는 포기하고, 부잣집 도련님."
"먼저 그놈의 부잣집이라는 허들부터 낮춰."
참지 못하고 들고 있던 주홍색 연구의 모서리로 소꿉친구의 이마를 타격했다.
아욱! 하는 소리와 함께 소꿉친구는 다운. 일단 오늘의 대화는 여기까지.

다음날.
여전히 시간은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밥도 먹었겠다. 이번에는 사소한 사건으로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먼저 세계최초로 발매된 아르센 뤼팽 전집 누락본 에피소드를 보고 있을 때였다.
뒤늦게서야 급식을 먹고 온 건지, 교실 문앞에서 내 쪽으로 소꿉친구가 타박타박 걸어왔다.
그러더니 소꿉친구는 내 앞에 서자마자.
"좋아. 밴드부는 포기했어."
눈물을 머금은 목소리로 그리 선언했다.
거기에 대한 내 감상은 그래서 어쩌라고? 하지만 무시하면 계속 떽떽거릴게 분명했으므로.
"그러냐. 축하한다."
건성으로 답해줬다.
그리고
"허나, 밴드는 포기했을지라도 아직 음악은 포기 안했어! 이번에는 노래야!"
목소리에 온도가 있다면 아마 백열하는 태양빛 근처 코로나 정도의 온도가 아닐까 의심되는 텐션으로, 소꿉친구는 확 밝아진 얼굴로 떠들기 시작했다.
책에 얼굴을 묻고 한숨. 그래. 그래. 이번에는 노래…….
"노래?"
"응! 목표는 노려라 아이돌!"
아이돌, 영어로 하면 idol. 사전적 의미로는 흔히 '우상'이라고 표현. 대중적으로 통하는 의미는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인기를 가진 녀석들이 보통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국내에서는 보통 10~20대 젊고 잘생기고 예쁜 남자여자들을 가져다 놓고 노래를 부르게 만들면 아이돌이라고 하는 것 같지만.
"네가 아이돌을 한다고?"
"왜, 무슨 문제 있어?"
나는 조용히 소꿉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풋.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큭."
"뭐, 뭐야? 왜 웃어?! 왜 웃는 거야?!"
"아, 아니 그게 크, 크크큭."
"왜 웃는 거냐고?!"
투닥투닥. 한참을 웃고 맞고 하기를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소꿉친구가 내 팔의 관절을 꺾고 있었다.
"흠흠. 그래서. 아이돌을 한다고 치고, 너 노래는 잘 부르냐?"
왠지 모르게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부어오르기 시작한 팔을 문지르면서 물었다. 노래라면, 녀석과 노래방을 가본지도 오래됐구나. 생각해보니 딱히 녀석의 노래 실력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닌터라, 뭐,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 생각 같은 것도 없고, 본인이 잘부른다고 주장한다면야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닌가 싶긴 하지만.
내 질문에 소꿉친구는 훗훗훗 낮게 웃는가 싶더니
"못불러!"
당당하게 답했다.
"당당하게 답하지 마."
"하지만 괜찮아. 요즘 아이돌은 노래 실력이 없어도 될 수 있으니까!"
전국의 모든 아이돌 그룹을 적으로 돌리는 발언이었다.
"기계음만 집어넣으면 어떻게든 해결 될 거야! 왠지 요즘은 기계음을 왕창 집어넣은 노래가 인기를 끄는 것 같거든! 전혀 이해 안되지만!"
전국의 기계음을 적으로 돌리는 발언이었다. 아니, 이 경우엔 아이돌 팬인가. 아무래도 좋다만. 역시 대중의 취향이라는 건 이해가 안되네! 하고 외치는 모습이 소꿉친구답다면 다운 모습이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노래 실력은 있어야할 거 아냐. 한 번 불러봐라. 판단해주지."
이래봬도 소녀시대의 노래를 좋아하고 있다. 딱히 팬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고 있으니까 팬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적어도 현 아이돌 그룹에 대항 할 수 있을만큼 노래 실력이 있는지 정도는 판단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는 소리다.
참고로 나는 이래봬도 고전 노래를 좋아하는 편이다. 비틀즈 노래 같은 거. 소녀시대는 아무래도 좋다는게 본심이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힘차게 목을 가다듬은 소꿉친구는
"─────!"
그간 녀석에게서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이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목소리처럼, 울리고 울려퍼져. 종래에 같은 반에 있던 아이들은 전부 우리를 주목했다.
옥타브가 하나하나 올라가고 내려올때마다. 가사가 한 글자, 한 글자, 울릴 때마다. 반 아이들을 비롯해, 나까지. 우리는 같은 것을 생각하고야 말았다.
이 녀석의 노래는 진짜다.
진짜로………
"OK. 잘 알았다. 너한테 아이돌은 가망이 없어."
못부른다.
어느새 반 아이들 전부가 귀를 틀어막고 괴로워하는 얼굴로 교실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엄청난 파괴력이다. 퉁퉁이 콘서트급이다. 예전에 같이 노래방 가서 들었을 때랑 전혀 달라진게 없잖아.
아니, 오히려 파괴력이 증강된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참고로 난 그간 소꿉친구와 어울려주며 들어온 노래이기 때문에 그나마 피해가 경미했다.
다행이다.
"뭐? 어째서! 내 노래가 그렇게 이상해?"
흔히 자기가 부른 노래는 자기가 직접 평가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이번엔 그 수준을 넘지 않았나? 이 녀석은 정말로 자기가 부른 노래가 어느정도의 파괴력을 지녔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소꿉친구 녀석이 상처받지 않도록 말을 골랐다. 아무리 서로가 스스럼없는 소꿉친구 사이라고는 해도 대놓고 너 노래 진짜 못부른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앞에서 아이돌 같은거 가망 없네~ 하고 악담을 쏟아부워버린 것 같지만, 그건 이제와서 아무래도 좋았다.
고민고민하고 나는 마침내 소꿉친구가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스레 말했다.
"개인적으로 음치 속성 캐릭터는 좋아하는 편이야."
"의미를 모르겠어!"
뭣이? 내 하늘 같은 배려를 멀리 뻥 차버리는 소꿉친구였다.
어쨌거나.
"아이돌 같은 거 그냥 안하면 되잖아."
솔직히 말해 더 이상 놀아주는 것도 귀찮으니까. 덮어놨던 아르샌 뤼팽 전집을 다시 펼쳐들었다.
소꿉친구는 옆에서 칭얼거리며 "아이돌 되고 싶은데에……"라며 떠들었지만, 그대로 무시.
그런 건 전부 허상이야.
요즘 10대들이 전부 그런 허상을 쫒다보니 사회가 병들고 프로파간다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내 말해놓고도 의미를 모르겠지만, 소꿉친구에게도 별로 와닿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녀석은 그냥 부루퉁한 얼굴로 침묵했다.
그래 조용히 있는게 최고지.
오늘 하루 이야기도 여기까지.


며칠 후.
점심시간. 나는 빅토리아 시대의 금발 로리 탐정이 등장하는 라이트 노벨을 뒤적거리다가 옆에서 뒹굴거리는 소꿉친구에게로 시선이 미쳤다.
뒹굴뒹굴, 아무리 점심시간이라지만 할 일 없이 뒹굴거리는 소꿉친구의 모습이 보기 못마땅해져서 입을 열었다.
"너 음악한다고 하지 않았냐?"
뒹굴뒹굴뒹굴뒹굴 뚝. 소꿉친구가 엎어졌던 고개를 쳐들었다.
"음악?"
"밴드부니 아이돌이니 한다고 했잖아?"
그, 뭐더라. 음악은 포기할 수 없어! 였던가? 하여간.
그러자 소꿉친구는 알았다는 듯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귀찮아졌어."
단칼에 답했다.
"그러십니까." 하고 답해줬다. 내 대답에 소꿉친구는 다시금 뒹굴뒹굴뒹굴, 전신으로 귀찮아 광선을 뿜어내고 있는 모습이 정말 할 일 없는 녀석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뭐, 예전부터 이런 녀석인건 알고 있었지만. 음악 타령도 얼마 가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내 소꿉친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는지 따위야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벌써 이번 같은 음악 타령을 그간 얼마나 반복해왔는지.
그래도 이번에는 제법 짧게 끝났다는 것에 감사해하며, 다시금 책을 들여다보려는 그 순간.
힐끗. 시야 바깥에서 끊임없이 뒹굴거리던 소꿉친구가 움직임을 멈추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이번엔 또 뭐야? 라고 생각하면서 마주 바라봐주려니.
"좋아."
소꿉친구가 말했다.
"뭐?"
반문했다. 이 녀석이 뭐라는 거야?
그러자 소꿉친구는 스웨덴 백야에 떠올라 있는 태양 따윈 발로 차줄만큼 환한 얼굴로.
"결정했어. 문예부를 만들자."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라이트 노벨을 바라보며 그딴 헛소리를 지껄여왔다.
.
.
.
"응? 왜 그래?"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꿉친구 녀석.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좋아. 이런 건 예전부터 몇번이고 있어온 이야기라고.
소꿉친구가 힘차게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번에는 소꿉친구에게 또 어떤 말을 해줄까……라고.

Writer

칸나기

칸나기

네. 나기 여신님 귀엽죠. 저도 좋아해요.

comment (2)

회중시계 11.09.16. 21:04
적절한 페러디에 웃음을.

글을 다 읽고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은 경소설은 이런 느낌.

재밌게 읽었습니다.
칸나기
칸나기 작성자 회중시계 11.09.17. 01:10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이런 느낌의 가볍다 못해 방방 뛰는 소설이 쓰고 싶네요!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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