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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19 Jan 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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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Kaleana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는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파악하거나 추측하는 것이, 아니면 적어도 그러려고 시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그가 말했다. 그의 말은 혼잣말, 혹은 나에게 걸고 있는 말 사이 어디께엔가에 애매하게 걸쳐 있었다. 그는 여전히 탁자 어디께엔가에 시선을 고정 가져다놓고 있었고, 왼쪽 손목을 잡은 채로 다리 위에 양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자폐적, 물론 그건 대체로 폭력적인 규정이긴 하지만, 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마치 이곳에서 하는 이야기엔 어떠한 몸짓도 불필요하고, 혹은 오히려 해로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나 또한 그가 굳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걸 부정할만한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무언가 부자연스러웠다. 단지 관습적인 모습에서 조금 어긋나갔기 때문이라면 특별히 신경쓸만한 것도 아니었으리라. 그건, 예컨대 반대로 그가 일반적인 사람들 이상으로 부산하게 떠든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그 부자연스러움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렇게 따지고나도 그건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감정적인 편견일 뿐인게 아닐까, 그런 결론만 남곤 했다.
 "선생님?"
 그런 생각이 조금 길었던 모양이다. 그는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그렇게 쿡 찌르듯 한 마디를 뱉고 나서, 마침 잘됐다는 듯 이야기를 이었다.
 "예를 들어서, 바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전 선생님이 그렇게 추측하려는 시도가 자연스러운 것인가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잠깐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제 생각에는 그게 가장 개연성이 높은 설명일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그의 추측은 틀렸지만, 어쨌건 그런 설명이 개연성이 가장 높을 것이라는 추측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나는 대충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을 숨기고,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겠죠."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떤가요?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추측해보실 수 있나요?"
 "글쎄요."
 나는 잠깐 그의 모습을 살폈다. 사실 살피려고는 했으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로 표정 없는 모습이었다보니 거기서 무슨 유의미한 것을 끄집어낼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서 굳이 따져보려고 하다가, 그의 물음이 일종의 넌센스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수현 씨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그리고 제가 어떤 추측을 할 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겠죠."
 "비슷하네요."
 그러고나서 그는 정말로 살짝, 보일듯 보이지 않을 듯 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테지만, 어쨌건 그가 대충 그렇게 반응한 것은, 솔직히 말해서 조금 싱거웠다.
 "그렇지만, 이야기들에 대해서 대체로 개연성이 높아보이는 추측들을 끌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정답이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죠. 감정에 대한 추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했다고, 심지어는 공감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확실한 것이라고 보장하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 남의 말에 속아넘어가는 사람은 없겠죠. 어디까지나 개연성은 개연성이니까요."
 "추측은 추측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죠."
 그러고나서 그는 잠깐 뜸을 들였다. 그는 마치 저 멀리 앞에 나서 가서는, 그리고 거기에서 돌아서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내곤 했다. 사실 그는 이미 결론과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 모두를 생각해놓고 있는 것이고, 그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단지 그 과정과 결론에 대한 설명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그건 그가 자주 이야기했던 것처럼 관계의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에 포함되는 부분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그가 장황하게까지 늘어놓는 이야기는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타인에 대해서 끝내 알 수 없다고 굳이 말하는 것은 단지 사실의 반복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개연성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실제로 얼마나 개연적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추측하는 자신의 기대일 뿐이지는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만약 그것이 개연적이라면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동과 그 사람의 생각 혹은 감정에 대해서 일정한 경험적인 추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렇다면 그 추론을 해낼만한 자료가 있다는 것이겠죠. 그렇지만 우리는 원칙적으로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개연성을 통해 추측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기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필요 이상으로 다양한 법이라, 그런 기대는 기대일 뿐 그다지 좋은 추측이라고도 할 수 없죠."
 결론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다. 분명 타인의 생각 혹은 감정에 대한 추측에는 자신의 기대가 투사되었다는 측면도 있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그것 뿐이라면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굳이 이유를 찾자면,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것처럼 타인의 생각 혹은 감정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거나, 적어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겠죠."
 내가 답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자신이 늘어놓는 그런 추론들이 정작 그 자신에게는 꽤나 무기질적일 뿐인, 그런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파악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역설한 그는 정작 내 반응와 태도를 기계적으로나마 살피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니까, 전 데카르트가 동물이 기계라고 말 한 것에는 이런 의미도 있다고 봅니다. 입력이 있으면 그에 걸맞는 출력이 있는, 즉 예측 가능한 대상으로서의 동물. 우리는 인간이 그런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타인을 그런 인과와 결과의 모형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인간이란 예측에서 벗어날 때도 있는 게 아닌가요? 이야기했던 것처럼 추측이라는게 단지 개연적이거나 혹은 기대일 뿐이라면 그렇게 예측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필연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고요."
 대충 그렇게 한마디 하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이미 논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 만약 그런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 하나를 위해 그는 길을 에둘러가며 하나하나 그 근거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텐데. 어쩌면 그는 그가 내리려는 결론 앞에서 날 꼼짝 못 하게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그렇죠. 그렇지만 제가 의도하는건, 우리가 타인을 받아들일때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그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기대를 개연성으로 추정하는 것 뿐이고, 즉, 그런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종의 일탈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실제로 어떤가 하는 것과는 별개로, 단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에게 편하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마치 동전을 집어넣으면 캔커피를 떨어뜨려주는 자판기처럼, 그는 타인이 그런 존재이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숨겨진 바람이야 어쨌건, 그가 지금 의도하고 있는 것은 분명 관계라는 것 일체에 대한 조소일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건, 굳이 타인 뿐만 아니라 저 자신의 생각과 감정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겁니다. 제 생각에 생각, 혹은 감정이라는 것은 나라고 하는 자아에 밀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표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타인이 제게 맞게 재단되는 것처럼 제 자신의 생각도, 감정도 그렇게 재단당하고 있거나 혹은 그 생각과 감정이라는 틀이 저 자신을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그 사실이 수현 씨한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거죠?"
 나는 조금 정형화된 질문을 꺼냈다. 그의 이야기를 일부러 끊어 잘라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가 그런 말을 하는 동안 내게는 일종의 조바심 같은 것이 들었다. 그는 약간 혼란스러운 것처럼 고개를 들었고, 물론 내 시선과 눈을 맞추지는 않았지만, 어쨌건 이제 테이블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얼굴 곁을 스쳐 방의 벽 어디께엔가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과 감정을 걷어내고 나면 자기 자신이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겁니까?"
 그가 물었지만 나는 답할 수 없었다. 일단 나로서는 생각과 감정이 자기 자신이란 존재에게서 그렇게 명확하게 분리될 수 있는 것인지부터가 의심스러웠고, 동시에 그가 굳이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는 이유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건, 그의 말을 부정하려고 하는 동안, 혹은 그가 하려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럴듯한 답을 생각하려고 하는 동안 상담 시간은 끝이 났다. 나는 일단 다음 상담까지 시간을 벌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당황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신경증에 시달리는 이들도 많이 봐오기는 했지만, 관계 혹은 자신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의심해오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말을 신경증의 일종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혹시 수술의 그의 심중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라고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면 다음에 뵙겠습니다. 저도 아직 생각이 정리가 덜 되서요."
 그러면서 그는 별다른 반응 없이 상담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그의 뒷모습에서 어쩐지 실망감 비슷한 것이 섞인 쓸쓸함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만약 그가 다음에도 이곳을 찾는다면, 그에게, 설령 그것이 단지 자기 변호에 불과할 뿐이라고 하더라도 무언가 해명을 할 수 있겠지, 라고, 일단은 그렇게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는 최근 뇌출혈을 겪었고, 이 상담이라는 것도 뇌출혈이 그의 지적 능력 혹은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추정해보기 위함이었다. 그의 뇌출혈 병변은 일반적으로 언어 중추가 위치해있는 곳에 산발적으로 나타났지만 그에게서 특별히 언어 장애가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황하고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늘어놓는 증명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단지 습관 차원의 문제일 뿐 언어 기능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물론 뇌의 구조는 개인차가 있으니까, 실제 그의 언어중추는 병변 바깥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고, 뇌출혈이 발생한 부위는 내가 아직 모르는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쨌건 그에게 특별히 눈에 띄는 기능적 결손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굳이 뇌출혈이 남긴 후유증을 찾아내기보다는, 일단 그가 물어오는 질문에 대해서 답하는 것이 더 중요할는지도 모른다.

 그러고나서 예정되어 있었던 다음 상담 회기에 그는 찾아오지 않았고, 나는 의사들로부터 그의 뇌출혈이 재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수술은 별 문제 없이 끝났다고 했지만, 나는 첫 수술에서부터 어떤 문제, 어쩌면 수술 상의 실수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을 조금 했다.

 그러고나서 한달 정도 뒤에 그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내담자의 신분으로 상담실에 찾아왔다. 나는 상담실 안으로 들어온 그에게서 굳이 달라진 점을 찾아내려고 했지만, 물론 그는 한달 전의 그와 같은 사람일 뿐, 특별히 달라진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자리에 앉았고, 무언가 말을 기다리는 것처럼 내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전 회기에서는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는가, 그렇게 묻지 않았었나요?"
 그를 기다리면서 읽었던 메모에 쓰여있었던 말이었다. 그는 약간 생각해보는 듯 하다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동안 무언가 답을 얻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한달 전의 그가 짓고 있었던 무표정한 진지함과 같은, 그런 느낌을 풍기지 않았다.
 "동생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는데, 제가 감정적으로 조금 바뀐 것 같다고 하더군요. 예전에 비해서 밝아졌다고 해야 하나, 가벼워졌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예전 같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예전 같지 않다고 하면 대체로 좋지 않은 것에 쓰는 말이긴 하지만요."
 아마 그 무거운 진지함이 걷혀나가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한달 전의 그의 모습을 끄집어내 지금의 그와 비교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굳이 따져보면 이전에 비해 조금 짧은 문장들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말했다.
 "그때 했던 말은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기가 무엇인지, 혹은 그런 것이 실재하기는 하는지 어떤지 하는 것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생각도, 감정도, 의식도 저 자신을 담지하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우습지만 전 뇌출혈을 두 번이나 겪었고, 그래서 제가 의식할 수 있는 생각도, 감정도 이전의 저와는 다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만약 생각이나 기억, 감정 같은 것이 절 구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 뇌출혈이라는 사건 때문에 이전의 저는 죽었다고 해야겠죠."
 "그렇지만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이야 원래 변화하는거 아닌가요?"
 내가 물었다.
 "그런 식의 생각 혹은 감정의 변화는 연속적인 것이지만, 뇌출혈이라는 사건은 일종의 그 연속성을 단속시키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제 의식의 연속성이란 끊겨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전 이미 죽은 과거의 저를 지금의 저 자신과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어쩌면 그런 생각 자체는 한달 전에도 이미 가지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때부터 뇌출혈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과거의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니, 어쩌면 과거의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무엇을 잃어버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보시기엔 어떤가요? 이전의 저와 지금의 제가 다른가요?"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한달 전의 수현 씨나 지금 여기 와 있는 수현 씨나 특별히 달라보이지는 않는데요."
 조금 가벼워진 것 뿐 그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거나,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물론 그런 판단을 보증할만한 이유 같은 것은 없다. 어디까지 바뀌어야 전혀 다른 사람이고, 어디까지는 아직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이전에 그가 말했던 것처럼 내게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타인일 수 밖에 없는 그는, 결국 원인과 결과의 총합으로서의 기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행이네요."
 그가 말했다. 나는 그게 그가 좋아하는 방식의 냉소이리라고 생각했다. 타인에게 자신이 이전의 자신과 동일한 것이냐고 묻는 것은 결국 그가 이전에 그렇게나 불신했던, 타인이라는 존재의 불완전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 않은가.
 "어쩌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공상이거나,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속적이지 않은 것을 연속적이라고 착각하고, 이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동일하다고 기만하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 자아든 감정이든 생각이든 기억이든 뇌의 작용일 뿐이고, 이 뇌가 이전에도 있었던 뇌고, 저 뇌와는 다르다고 말 할 수 있을 뿐이지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 동일성을 보장하는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 식의 의문은, 사실 심리학을 전공한 나 또한 비슷하게 품었던 적이 있다. 인간성, 혹은 인격이란 순전히 신경의 작용일 뿐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기억, 혹은 추억, 또는 사회적 관계라거나 하는 것에서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이들에 대해서 냉소했었다. 그런 것들은 자아를 지탱하기 위한 것으로서는 너무 취약한 것들이었으니까.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저는 두 번의 사건을 통해서 이미 두 번 죽은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죽음이라는게 다른 의미로 느껴지더군요. 저는 제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죽음이란 그렇게 자기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의 문제는 뇌출혈로 인한 병변 따위가 아니라 뇌출혈과 수술이라는 사건 자체에서 입은 정신적 외상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사건을 겪으면서 들어온 의심이 그의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일 뿐이고, 또한 이성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상태라면, 그런 외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오히려 힘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고 실험이 있어요. 행복 기계라는 것을 만들어서, 버튼을 누르면 자신의 뇌에 행복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을 투입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거죠.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 기계로 만족할까요?"
 그를 설득할 수 있을만한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 나는 문득 떠오른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그 실험을 제안한 철학자는 그러지 않을거라고 했죠. 왜냐하면 사람이란 진실을 찾으려고 하는 본질적인 욕망이 있으니까요. 만약 인간에게 있어서 뇌가 전부라고 하면 수현 씨처럼 생각하는게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진실, 혹은 외부의 현상과 환경이라는건 말 그대로 뇌 바깥에 있는 거죠. 그러니까, 뇌라는 것만으로는 자아를 전부 설명할 수 없어요."
 그는 잠깐 생각해보는듯 하더니 반문했다.
 "그렇지만 뇌에 생긴 문제가 인간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건 사실 아닌가요?"
 "한달 전에 수현 씨 스스로도 말했던 것처럼, 인간성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자아를 설명할 수는 없죠. 자아라는 개념을 유지하는데는 외부적 진실 혹은 사실 같은 것도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단지 뇌 뿐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는, 여전히 내 옆 어딘가를 바라보면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걸 보면 확실히 그는 한달 전의 그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도 그는 특별히 감정적으로 반발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건 아마 조금 더 생각해볼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는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상담은 다음 회기에 계속할 수 없을까요?"
 약간 조바심이 들기는 했지만, 일단 그런 이야기를 들은 이상 생각이 다시 극단적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세요."
 내가 승낙하자 그는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를 따라나가다가, 나는 문득 문 옆에 서 있었던 한 여자와 마주쳤다. 그 또한 그 여자와 마주쳤지만, 단지 잠깐 눈길을 주었다가 크레졸 냄새로 가득한 복도를 휘적휘적 걸어가버렸다.
 "전 수현 오빠 동생인데요,"
 그가 복도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 여자에게로 의문 섞인 시선을 보내자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술 이후로 오빠 성격 같은 것들이 달라진 것 같은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고보니 그도 자신의 동생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었노라고 말했었다. 동생으로서 그가 걱정되었을 수도 있고, 또한 그가 자신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성격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건 뇌출혈 혹은 수술로 인한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제 생각에는 아마 수술 자체에 대한 충격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싶어요."

 잠깐 난 시간을 쪼개 수현은 유현이 있는 병실을 찾았다. 수술이 막 끝난 그녀는 중환자실에 누워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병원 침대 옆에는 아마 그녀의 부모일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갑작스레 찾아온 한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가, 그가 입고 있는 하얀 가운을 보고 아마 정기 검진으로 온 의사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들의 그런 시선을 무시할 수 없어 그는 그녀의 의식 반응들을 몇가지 점검했지만,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임상심리전문가로 이제 막 병원에 들어온, 갓 서른께가 된 여자가 뇌경색이라니 우습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쓰게 웃었다. 그러나 사람이 병에 걸리는게 아니라 병이 사람을 덮치는 법이고, 그러니 그게 우스운 일이라고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는 가운에 손을 꽂은 채로 누워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렇게 병이라는 것에 대한 감상에 잠깐 빠져들었다.
 다행히 수술은 특별한 문제 없이 끝났다. 뇌경색으로 쓰러지기는 했지만, 그 쓰러진 장소가 병원 안이었던 덕분에 그에 따른 병변은 그리 크지 않았다. 뇌라는 것은 모호한 존재라 깨어나지 않은 이상 무슨 후유증이 남을지 알 수 없는 법이지만, 그래도 아마 영구적인 후유증 같은 것은 남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추측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사실 이전에 바람의 영역일지도 모른다고, 그 또한 생각하고 있었다.
 신경외과와 임상심리라는 것은 겉보기처럼 맞닿아있는 분과는 아니지만, 이따금 그녀와 만나는 동안 그는 그녀에게 일종의 동질감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분과의 비슷함 같은 것은 핑계 정도나 될 수 있을 뿐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 동질감이라는 것도 일종의 연정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게 차마 그녀의 수술을 맡아 집도할 수 없었던 이유였으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와, 그리고 그녀 옆에서 여전히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뒤로하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는 복도를 걸어나가면서 어쩌면 그녀가 꾸고 있을지도 모를 꿈에 대해서 상상했다. 물론 그런 상상에는 그녀의 뇌 활동이 어떤가, 뇌 영상 촬영 결과가 어땠는가 하는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


오랜만이네요.

comment (1)

사이드이펙트
사이드이펙트 12.01.27. 08:54
문체 자체도 제글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껨이 안되네요 ㅠㅜ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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