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어쨌건 거기 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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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Jan 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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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Kale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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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요즘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누군가라는 말이 참 막연하고 순진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저는 그에 대해서 누군가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일단 저를 쫓고 있으니 사람이긴 할 터인데, 결국 그정도가 제가 그에 대해 아는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하는 것 또한 모릅니다 - 물론 생각해보면 성별의 구분 같은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아실는지, 어떨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시는 어떤 의미로, 폐쇄적인 시골 같은 곳보다는 개방적이라는 느낌이 있고, 그래서 어떤 종류의 사건들도 해결 가능성이 있는, 일견 그런 곳으로 비춰집니다만, 사실 바로 그런 종류의 개방성이 오히려 사람을 더 두렵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순진하게 시골과 같은 곳을 예찬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옳을 겁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장소적 특성과는 상관 없이 공포는 상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 특성이 공포를 감쇄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런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선 제가 처음, 제가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당신은 제가 쫓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제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당신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는 것도 타당할 겁니다. 그러나 제 입장에서는, 설령 당신에게는 무의미하게 느껴질지라고 해도 이러한 부분들을 밝히는 것이 유의미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러한 제 기억들이 단순한 망상 같은 것이 아니라 - 사람들은 정당한 의심들에 대해서도 그것이 망상이라거나, 심지어는 정신분열증적 착상이라고 폄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위협이며 제가 그것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점을 면밀하게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파트 바로 뒤쪽, 작은 산책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특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잠깐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산책로는 꽤 잘 꾸며져 있었고(보도블럭 같은 것도 멀쩡하게 깔려 있었으니까요), CCTV도 몇 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산책로의 옆에는 야트막한 산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산책로라는 특성을 따지자면 그건 오히려 훌륭한 것이라고 해야겠지만, 저는 바로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상당히 어두웠지만 아직 가로등은 켜지지 않은 때였습니다. 실상 가로등이라는 것들은 대체로 신통치 못해서 설령 켜져있었다고 해도 그리 다를건 없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은 겨울이고, 그래서 빛이 사라지자 대기의 차가움이 푸르스름하게 주위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몸을 조금 움츠리고 있었고, 아파트 단지 안으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저는 누군가가 저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뒤에서 저를 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자체도 신기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것을 육감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굳이 그걸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를 물어야 한다면, 아마 제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발소리 혹은 옷깃 소리 같은 것을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지만 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조금 기분이 나빠졌을 뿐 특별히 경계하는 마음이 생긴다거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그때는 단지 사소한 착각이라고 생각했지요 -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쫓기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순진한 착각의 과장 따위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그 순간 도시에서 혼자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깨달았습니다. 차가운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역시 그 공간 속에 홀로 서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더 잘 보여줍니다. 저는 그 산책로에서 잠깐이나마 멈춰 섰고, 돌아서 뒤쪽을 바라봤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제 감각을 가리고 착각케 하고 있었던 것, 즉 몸의 움직임이 멎으면서 저는 제가 혼자라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았고, 따라서 도시에서 어쩔 수 없이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제가 누군가에게, 물론 그건 전적으로 우연이겠습니다만, 지목당해 쫓겨야 한다면 느끼게 될 감정이 어떤 것인지 체감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것은 아직 단지 자그마한 단초였을 뿐이고, 그때 저는 단지 기분이 나빠져서 아파트 단지로 걸음을 서두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후에도 저는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저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저를 쫓는 자 또한 보다 대담해졌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산책로에서 그자의 존재를 깨닫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저는 바로 그 산책로에서, 또한 비슷한 시간에 누군가 뒤에서 동전을 떨어뜨리는 소리 같은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바람소리 같은 것을 동전이 떨어지는 금속음으로 착각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저는 분명히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심지어 산책로에 떨어져 있었던 500원짜리 동전을 아직 가지고 있기까지 합니다. 물론 제가 돌아본 순간에 저를 쫓아, 동전을 떨어뜨리기까지 했던 바로 그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근처의 기물 같은 것을 잘 알고, 바로 몸을 숨길 수 있는 자리에서 동전을 떨어뜨리고 도망쳤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여간 중요한 것은, 그는 제가 그의 존재를 눈치채는 것,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는 점입니다. 그게 단순한 장난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상대가 공포에 시달리는 것을 관찰하고 즐기면서, 천천히, 천천히 다가가는 그런 정신질환적 살인마가 이 도시에 전혀 없으리라고는 당신도 증명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바로 그자에게 제가 운 나쁘게 지목되었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결국 어쨌건 희생자는 있어야 하니까 말입니다(그걸 단순히 확률상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순전히 통계론적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최근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제 집 앞에 섰을 때 엘리베이터 하나가 밑에서 올라와서 제 집이 있는 층에서 멈춰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제가 사는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둘이니까요). 저는 그때 잠깐 문만 열어둔 채로 무슨 걸음 소리나 그런 것이 들리지 않는지 기다려봤습니다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자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만히 있었던 것 뿐인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이런 일들이 일상적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습니다. 어쨌건 누군가가 저를 노리고 있거나 최소한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최대한 CCTV의 사각을 피해서 돌아다닌다거나,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만, 역시 누군가가 굳이 하려고 한다면, 특히 죽이려고 한다면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생리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범인일 가능성이 있는 자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사실, 저에게 어떤 원한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저는 그다지 사교적인 편이 아니고, 결국 사교적이지 않다는 것은 원한을 살 일 또한 별로 없다는 의미이니까요. 물론 살인자들 중에는 잠깐 부딪쳤다거나, 내키지 않는 시선을 교환했다거나 하는 정도로 원한을 품는 이도 있겠습니다만, 그가 그런 것에 원한을 품을지 어떨지 하는 것은 저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요즘 떠들썩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마 당신도 뉴스 따위를 통해서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그리고 당신이 그 뉴스를 주의깊게 봤다면 그 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그 도시에 제가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실 겁니다). 바로 20대 여성이 도끼에 머리가 찍혀 살해당한 사건입니다. 당신은, 바로 그 희생자가 제 친구였다고 한다면 어쩌면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는 이미 이야기했다시피 그다지 사교적인 편이 아니고, 그 친구라는 것도 사실상 친구이기보다는 학창시절에 저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관계였다고 해도 사람들은 쉽사리 그걸 친구라고 부르곤 하니까요(저는 제가 이 글에서 그 여자를 친구라고 부르는 것이 신문 혹은 방송의 영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조사할 겸 해서 신문에 났던 범죄들에 대해서 꽤 많은 기사를 조사했으니까요.). 어쨌건, 그 여자는 머리에 도끼 - 수사 결과에 따르면 그리 큰 도끼는 아닌 것 같다고 합니다. - 에 머리가 찍혔을 뿐더러 생식기 따위를 범인이 집요하게 괴롭힌 흔적 또한 있다고 합니다만, 그런 상세한 부분 따위를 이 글에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흥미가 있으시다면 기사를 조금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기사에서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힌트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부디 저를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여간, 저는 그 여자를 살해한 살인범이 저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살인범이 희생자를 집요하게 쫓아다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어쨌건 혹시 그랬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여간 저는 그것을 단서삼아 저를 쫓고 있는 그자를 역추적해보기로 작정했습니다. 당신은 왜 제가 경찰 등의 도움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나 의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는 경찰에도 연락해봤고, 어쩌면 살인사건의 바로 그 용의자가 저를 노리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고 설명하기까지 했습니다만, 그들은 그런 단서에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역시, 누군가가 죽이고자 한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위에서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산책로 옆에 있는 야산이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굳이 범인이 이 근처에서 저를 지켜보고자 한다면 CCTV가 설치되어 있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것보다는 산 속을 근거지로 해서 활동하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저는 몇 번이나 바로 그 산책로에서 누가 제 뒤에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돌아볼때마다 번번이 그자를 놓쳤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산책로 근처 어딘가에서 그가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손도끼를 하나 챙겨 품 속에 넣고 야산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왜 손도끼냐면, 식칼 같은 것은 무게가 별로 없어 제가 상대를 찌른다고 해도 한 번에 큰 상처를 입히기도 힘들고, 오히려 무게가 있는 도끼에 비해 다루기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끼라면 무게감있게 휘둘러 단박에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기사에 나와있었던 범행 방법에 은연중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저는 철물점에서 구한 도끼를 들고 집안에서 휘두르는 방법을 연습해보기까지 했습니다. 확실히 직접 잡아보니 식칼 같은 것에 비해서 확보할 수 있는 길이가 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몇번 휘둘러봤는데, 물론 이미 살인을 여러번 겪은 자를 얼마나 상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스러웠지만, 그래도, 설령 아무리 상대가 남자라고 해도 도끼를 들고 있는 앞에서 쉽게 접근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간 그래서, 저는 도끼를 들고 낮 시간을 잡아 산책로 근처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가 번번이 돌아봤었던 바로 그 지점, 그리고 일전에 동전이 떨어져 있었던 지점을 살펴 그 근처 야산 기슭에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놀랍게도 실제로 그 근처 산으로 올라가는 길 가에서 사람이 한 명 들어갈만한 토굴 같은 것을 발견하기까지 했습니다. 범인은 저에게 자신의 존재를 일깨운 뒤 그 굴로까지 도망쳐 올라가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제 시선을 피해왔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올라가는 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비탈 벽면에 굴이 파여져 있었던 것을 보면, 설령 제가 그자를 쫓아 산으로 올라간다고 해도 쉽사리 들키지 않도록 미리 대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여간 저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산을 조금 더 돌아보았습니다. 산책로 바로 옆에서, 어떻게 생각하면 늘 지나쳐오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역시 산이라는 공간은 생경한 곳이었습니다. 보통 산을 가리고 있는 나뭇잎들이 모두 사라진 겨울이지만, 그래도 그런 나무들 사이에는 무엇이든, 얼마든지 숨어있을 수 있을 듯 했습니다. 예컨대, 모든 것이 밝혀져 있고 통제되는 것처럼 생각되는 도시 또한 바로 한 발짝만 더 걸어들어가면 산과 같은, 그런 종류의 통제되지 않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공간에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산에 오르는 동안, 범인이 마음먹고 저를 습격해 산 밑으로 굴러떨어뜨려버리면, 제 시체도, 어쩌면 제가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영영 알려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는 친척이 없으니까요.
 저는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곧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렇지만,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해서 탐색을 거기서 그만 둘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굳이 도끼까지 마련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적어도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정도의 각오는 이미 한 상태였습니다.

 그 다음날에도 저는 산에 올라 산을 휘휘 둘러보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는 여기에서 다시 당신에게 제가 분명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바로 다음날, 제가 산에 올라갔을때 저는 나무들 사이에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자의 눈빛은 똑똑히 보았지만, 그자의 얼굴이 어떤 모습인지 하는 것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자는 역시 옷에 달린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으니까요.
 무슨 용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품 속에 가지고 있었던 도끼를 빼어들고 바로 그자를 향해서 뛰어들었습니다. 그자도 제가 도끼까지 준비해서 달려들자 놀랐는지 산 밑으로 전력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상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하는 것은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건 그자는 저보다 체력적으로 나은 모양이라 저는 그자를 끝내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나서, 정신을 차리고나자 저는 제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도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벌써 그자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자가 제가 가지고 있는 도끼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어떤 도구를 동원하게 될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제 도끼 말고 보다 더 효과적인 무기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혼자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저와 함께 행동할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쨌건 이제와서 경찰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거기다 누가, 누군가가 절 노리고 있는 것 같으니 도와달라고 한다고 해서 선선히 도와주려고 하겠습니까? 그 누군가가 어쩌면 살인범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저는 그리 사교적인 편이 아니라서, 실질적으로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저는 정기적으로 그 산을 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전 저와 동창이었던 여자입니다. 사실 그와의 관계라는 것도, 이번에 살해당한 그 여자의 관계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깥에서는 친구라고 불리지만 그 또한 저를 끊임없이 괴롭게 했던 인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작은 회사에 나가는데, 산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빨라 늘 퇴근할 때면 산을 넘어 집으로 향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일단 특정한 시각에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그를 이용해 제가 하려고 하는 조사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도움까지는 받지 못하더라도 일단 저 말고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자체가 도움이 되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여자가 산을 지나가는 때를 기다려, 그 여자를 앞세워 산을 다시 둘러볼 참이었습니다. 어쩌면 일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자는 산 어디에선가 저를 지켜보고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제대로 그자에게 선제공격을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역시 7시에 산책로에 들어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되도록이면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금 거리를 두고 소리죽여 산을 따라올라갔습니다. 그를 일종의 방패로 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건 저는 그 여자와 마주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일만 더 번잡하게 만들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의깊게 산길 근처를 살펴보았지만, 역시 어두워서 산 속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그자를 찾아내는 것은 힘들듯 했습니다. 손전등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그걸 썼다간 여자에게 들키고 말테니까요. 결과적으로 저만 일방적으로 그자에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저는 최대한 긴장한 상태로 산길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산 중턱쯤에 올랐을 때 그자가 저희를 덮쳤습니다. 의외로, 저는 이미 긴장한 채 그런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리 놀라지 않았습니다만, 제 앞에서 올라가고 있던 여자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산비탈로 뛰어내려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자는 그 여자를 단박에 잡아채, 들고 있었던 도끼로 그 여자의 머리를 내리찍었습니다. 그건 정말로 순식간이었습니다. 저는 어두운 중에서도 도끼에 찍힌 여자의 두개골 사이로 뇌수와 피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것과 마지막 비명을 내지르지 못한 채 입을 벌리고 꺼억거리며, 어두운 산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그자는 제가 여자까지 대동한채 자신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제 저를 괴롭히는 놀이가 지루해진 것일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그가 저 대신 그 여자를 먼저 노렸던 것 또한 그의 실수였습니다. 저는, 그가 여자의 머리에 깊게 박힌 도끼를 빼는데 그자가 신경이 팔린 순간을 노려 그의 머리에 도끼를 휘둘렀습니다. 그건, 그에게 있어서는 찰나의 방심이었을 겁니다. 아마 저도, 잠깐이라도 방심했다면 결국 머리에 도끼날이 박힌 채로 죽어가야 했겠지요.
 저는 도끼를 다시 품 속에 챙겨들고 산을 뛰어내려왔습니다. 도끼날에 묻은 피와 기름이 옷에 스며드는 것이 불쾌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쨌건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저를 쫓았던 그자 뿐만 아니라, 그자에게 죽은 여자 또한 제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사람을 죽였다는 가혹한 죄책감 이전에 제가 그자에게 쫓기면서 느꼈던 공포감에서 또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젖어들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제가 그자를 죽인 것은 어디까지나 제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애썼습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이 두 건의 살인 사건은 아직 신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굳이 원한다면 당신이 신고해도 좋습니다. 당신도, 이 글을 읽으셨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당신에게 굳이 누군가의 죽음을 가지고 거짓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쯤에서 저는 제가 굳이 당신을 위해 이런 글을 쓰는 이유를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당신도 이미 예감하고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자를 분명히 죽였지만(저는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죽어가는 모습은, 역시나 끔찍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누군가가 저를 쫓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를 쫓고 있었던 자들은 한 명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제가 죽인 자는 실제로는 저를 노리고 있었던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어쨌건, 누군가가 여전히 저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더 적극적으로 저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미 제 집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고,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침대 아래나, 혹은 화장실이나, 하여간 제 눈에 띄지 않는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최근 집 안에서 이상한 부스럭거림이 들린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자가 이제 제 지척에까지 이르렀는데도 저는 아직 그의 의도를 모르고, 그가 언제까지 저를 괴롭힐 것인가 하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저는 이제, 이전까지 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자를 찾는다거나, 저항할만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굳이 하자면 못할 것도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제 일종의 탈진상태에 빠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런 탈진이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어쩌면 제 마지막 남은 기력일지도 모르는 기운을 짜 내 당신에게 이 글을 남겼습니다. 혹시 시간이 나신다면, 제가 이미 죽었는데도 아직 경찰에 알려지지 않은 경우를 대비해 저에게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죽는것보다도, 죽어서도 결국 아무도 모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저를 더 두렵게 합니다.
 연락처와 주소는 아래에 첨부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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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는 누구보다도 가까이에.

comment (1)

창공의마스터
창공의마스터 12.01.30. 20:34
으허어... 한겨울에 이 무슨 ㅎㄷㄷ한 스릴러인가요... 마지막의 작가의 말은 오히려 제목이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응, 솔직히 말해 사족이에요.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흠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좋은 글이네요. 경회보다는 미스테리 하우스에 실리는 편이 낫지 않나 하는 느낌은 들지만, 이렇게 좋은 글로 창작공간을 채워주시니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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