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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Feb 0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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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묵계
 

그날은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나는 문득 멈춰 섰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두 건물이 이어지는 자리에서 작은 집이 나를 반겨줬다. 그 안의 작고 맑은 눈동자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동자의 주인은 소녀였다. 작고 가냘파서 툭하면 부서질 것 같은 그런 소녀 말이다.


거적때기만 걸치고, 상자로 만든 지붕에 비를 피하고 있었다. 소나기가 그런 지붕을 비웃듯 소녀의 머리를 사납게 때리고 있다. 나는 그 모습에 발이 잡혀 소녀에게 새로운 지붕을 선물해줬다. 물론 임시였지만, 이순간만이라도 비를 피한다면 좋을 것 같았다.


“어째서 이곳에 있니?”


우산을 소녀의 머리 위로 한 채 나는 물었다. 소녀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집에서 쫓겨났으니까 여기에 있어요.”

“친구 집이라든지, 찜질방에 가면 되잖아.”


내 말이 우스웠던 걸까? 소녀는 까르르 웃었다. 자세히 보니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입만 웃고 있는 소녀였다.


“친구들은 집이 있지만, 그건 모양새가 집일뿐이에요. 친구들의 집은 모두 다른 사람의 소유거든요. 그 소유자들은 반드시 친구들의 집보다 더 큰 것을 가지고 있어요. 집은 물론이고, 자동차나 직업… 커다란 몸뚱이까지요!”

“그럼 지금 집은 마음에 드니?”
“글쎄요. 적어도 이 집은 저의 소유이긴 하네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좀 추워요. 빗물이 따갑기도 하고요. 아, 조금 더 우산을 옆으로 해주실래요? 빗물이 새네요.”

“이런. 주문이 많은 아가씬데.”


소나기가 내린지는 3시간도 더 전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소녀를 위해 열심히 우산을 들었다. 소녀는 여전히 티 한 점 없는 맑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특이한 사람이에요.”

“나? 내가 왜?”

“저 같은 것을 위해 우산을 들어주고 있잖아요.”

“그런 소리는 하지 마.”

“아니요. 저는 돌아갈 곳도 없는 아이에요. 한번 쫓겨난 집은 다시 돌아갈 수 없거든요.”

“그건 슬픈 일이네. 하지만 가족이 미처 너를 찾지 못한 건 아닐까? 내가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줄게.”


소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전 가족이 아니었거든요. 그저 보기 좋은 장식품이었을 뿐이에요. 나머지는 밥만 축내는 생물로 생각할 뿐이었고요.”

“…….”


의문이 들었다. 소녀의 말에 의문이 든 건 아니었다. 왜 사람들은 이 아이를 장식품이나 밥만 축내는 생물로 본 걸까?


“왜… 사람들은 널 처음 볼 때는 누구보다 소중히 대하고, 싫증이 나면 버리는 걸까?”


말한 직후 나는 깜짝 놀랐다. 속마음이 그대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은 입에서 떠난 뒤였고, 소녀는 내 말의 답을 구하려고 생각에 잠겼다.


“사람의 마음은 한때라잖아요? 언젠가 그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한때라니……넌 그 때문에 버려졌잖아.”

“그 덕분에 아저씨가 말한 가족이란 걸 얻었기도 하죠. 물론 저는 가족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집은 얻었어요. 저를 맡아주셨던 가족들은 이런 상자로 훌륭한 집을 만들어주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널 버렸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아.”

“너무 그러지 마세요.”


소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게 있다면 그녀의 억양이 약간 흐트러졌다는 것 정도? 내 말이 심했다는 건 알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넌 싫증나면 버리는 그런 게 아니야. 같은 공간에 살면서 생활했다면 그것은 가족이고, 이것에 따르면 네 말대로 넌 가족이 아니야. 그리고 너의 소유자들도 가족이 아니지. 널 물건 취급했으니까. 진짜 가족은 그런 게 아니야.”

“저는 가족이 될 자격이 없어요.”

“아니. 너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도 가족이 될 수 있어. 똑같이 숨쉬고, 이렇게 소통할 수 있다면. 그런 의미에서 난 너를 가족으로 삼고 싶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거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그럼 저의 집은 어떻게 되나요?”


뜻밖의 지적에, 약간 주춤했지만 나는 숨을 고르고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이 소녀를 데려가면 나는 소유자가 된다. 나는 소녀를 위해 집을 마련해줄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그 집을 집의 모양만 본뜬 잠자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랑 같은 집에 살면 되잖아.”


그러니까 그냥 집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 그럼 소유자라는 것도 불필요한 것이 되니까. 남은 건 가족과 우리의 집, 그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할게. 나의 가족이 되어주지 않겠니?”


소녀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소녀는 뭐라고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엔 붉은 홍조가 떠올라있었다.


“……고마워요.”


그 한마디가 내가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크로스백에서 수건을 꺼내 그녀의 털을 닦았다. 소녀는 내 팔에 앉았다. 귀여운 강아지였다. 하얀색의 털을 가진 나의 새로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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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을 샀으면 끝까지 키웁시다!.

comment (2)

묵계 작성자 12.02.05. 20:15
허.. 허탈하다. 라한대란 거 소재가 없는 줄 알았어. 망했다. 망했다!!
로사기간티아 12.02.05. 21:59
와 느낌 좋네요! 처음에는 조금 색다른 설정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상황인줄 알았는데, 강아지 모에화라니 뭔가 훈훈하면서 뭉클뭉클합니다. 대상을 의인화해서 노리는 반전은 흔하면서도 매번 통수 맞는 기분으로 읽는데요, 이 글은 억지스럽기 보다는 자연스레 읽히는 느낌입니다. 잘 읽었어요.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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