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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살아있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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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57 Feb 0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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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채명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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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전설의고향을 엄청 좋아했다. 구미호편을 하는 날에는 숨을 이불까지 준비해 두고 어머니가 빨리 퇴근하시도록 졸라서 피곤해 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티비를 봤다. 그 당시에는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만큼 어렸을때부터 오컬트를 좋아했다. 초등학생때부터 15금의 오컬트물을 빌려 봤고 지금도 영화는 공포물이나 오컬트물이 아니면 보지 않는다. 이런 오컬트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유령이나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해서 막연하게 만나고 싶다는 로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실제로는 절대로 바라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내가 마치 오컬트물의 주인공인 냥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어떤 유령이나 오컬트 현상을 마주치더라도 침착하게 행동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그런 주인공을 동경해왔다. 그렇게 되고싶어서인지 몰라도, 속으로는 유령을 만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 적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한 덕분이었을까. 나는 지금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왔던 그 상황에 직면해있다. 즉 방 안을 들여다 본 순간, ‘유령과 눈이 마주쳤다.

@

우와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빌라 전체가 울릴정도로 큰 소리를 질렀다. 일단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령이라니, 실제로 유령이라니! 믿을 수 없다. 아니 믿을 수 없다는 것 이전에 저 유령이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다. 무서워서 다리가 떨린다. 최고의 공포. 태어나서 이만큼 떨었던 적은 없었다. 누구에게 혼나더라도, 누구에게 맞더라도 이만큼 무서운 적은 없었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공포. 다리가 풀려 도망칠 수도 없다. 바지와 마룻바닥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다. 온몸에 털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털은 삐죽하게 서있고,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유령에 대한 공포가 온몸을 뒤덮는다. 순수하게 무섭다는 감각. 공포영화가 사운드로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은 어린애의 장난이다. 대체 저 유령은 뭐지? 왜 갑자기 나타난거지? 아까까지는 없었잖아? 유령빌라라는 소문을 듣고 자기 동료가 있다고 생각해서 나타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빨리 사라져줬으면 좋겠다. 이집은 내집이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집이다. 이것보다 우선 과연 저녀석이 나의 목숨을 빼앗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오컬트영화의 흔한 패턴이다. 생명이 위험하다. 도망치려고 뒤를 돌아봤지만 걸을 수가 없다. 풀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 기어서라도 도망가자. 기어가기 위해 팔을 땅에 짚으려고 했으나, 팔 또한 풀려서 말을 듣지 않는다. 바닥의 오줌은 점점 그 범위를 넓혀간다. 미치겠다. 어찌할 방도가 없다. 단지 저 유령이 내 목숨을 빼앗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내 자신이 이렇게 멍청했다니, 유령을 만나봤으면 좋겠어? 물리치고싶어? 다 중2병 환자의 개소리였다. 실제로 겪지 않는다면 이런 공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최악이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

틀렸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벌벌 떨려서 살려달라고 말 할 수 조차 없다. 손조차 힘이 풀여 움직이지 않는다. 무릎을 굽힌 채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줌을 지리며 목숨만을 살려달라는 기도밖에 할 수가 없다.

저기... 괜찮아요? 어디 아픈가요?”

뭐라고 하는거지? 알아 들을 수가 없다. 아니 문장 자체는 이해를 할 수 있었지만 그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살려주는 것인가? 적어도 일단 죽이려는 태도는 아니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지... 119에 전화 할 수도 없는데... 일단 숨은 쉬는 것 같네요.”

조금씩 손끝의 감각이 돌아온다. 손가락이 약간씩 움직인다. 좋아, 팔만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테다.

일단 숨을 깊게 들이쉬세요. 몸이 이래서야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됬다. 손목이 움직인다. 이대로라면 일분안에 팔 전체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할까. 주머니에는 벽지를 자르기 위한 가위가 있다. 이 가위로 저녀석을 찔러? 그것 좋다. 그렇게 하자. 일단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오른손으로 주머니의 가위를 움켜쥐었다.

땀도 많이 흘리시네요. 이거 열까지 있으신 것 같은데, 일단 침착하시고...”

이때다. 오른손이 모두 움직인다. 주머니에서 가위를 꺼낸다. 저녀석이 눈치 챌 수 없게 아주 조금씩 움직여 허벅지까지 가져온다. 들키면 안된다. 들키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가위를 허리 부근까지 가져왔다.

...”

무엇보다 순발력이 관건이다. 단 한번의 도전. 저녀석이 피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크게 한번 숨을 쉬고

그대로 그녀석의 얼굴을 찔럿다. 아니 아무것도 찌르지 못한 채 가위는 허공을 갈랐다. 아아... 모든 것이 끝장이다. 앞으로 죽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도망 칠 수도 없고 저항할 수도 없다. 이것으로 모두 끝이다. 내 마지막 공격은, 이렇게 허무할만치도 소용없이 끝나버렸다.

... 미안하지만 저 유령이라서요... 그런 물리적인건 소용 없거든요... 그나저나 아까보다는 안색이 좀 나아지셨네요. 해치지 않으니까 안심하시고 숨을 천천히 들이쉬세요.”

일말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한테 호의를 보이는건가? 거기까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를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조금씩 입술이 움직인다. “하는 소리가 조금씩 새나온다. 조금 있으면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말해야 할 것은, 그녀석이 무엇을 묻던 간에 한가지밖에 없다. 이것이 마지막 희망이다. 이조차 소용 없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게 될 것은 자명하다.

말 할 수 있겠어요? 다행이네요. 일단 누군지 물어봐도 될까요?”

... 살려.... 주세요...”

살려달라는 말이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마치 내 입이 살려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제발, 제발 이 녀석이 이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기를... 제발, 제발! 내 인생의 마침표를 이렇게 허무하게 찍을 수는 없다. 아마 두 번다시 이렇게 절박한 소원은 없을 것이다. ‘살려달라라는 소원을 이렇게 절박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두 번다시 있을까.

후후후, 해칠 생각 없어요. 처음 봐서 무서워하시는 것 같은데, 일단 침착하시고 제 말 들어보세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조금 안심이 된다. 긴장도 조금씩 풀려 조금씩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갑자기 졸음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

시야가 흐리다. 자고 일어난 기분이다. 아니 실제로 잠든 것 같으니 자고 일어난 것이 맞겠지. 어쨋거나 악몽을 꾼 듯한 기분이다. 그것도 아주 무서운, 최악의 가위에 눌린듯한 찝찝함이 온몸을 짓누른다.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더 이상 꾸지 않았으면 하는 최악의 악몽이다. 몸이 너무나도 쑤신다. 애초에 이런 이상한 자세로 잠이 들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 애초에 내가 왜 이런 이상한 자세를 하고 자고 있는거지?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본다. 우선 분명 배가 고파서 김밥집에서 밥을 먹고, 힘들게 4층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문이 잠겨있어 의아해 했지만 곧 다시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와서 고개를 들었다. 그 다음에... 뭐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후에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기억상실인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단기 기억상실이 꽤나 유행한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이 젊은나이에 기억상실인가? 알츠하이머 환자가 나오는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되어버리는 것일까? 갑자기 혼란이 온다. 대체 나는 뭘 한거지? 고개를 들고 그 후의 기억이 너무도 몽롱하다. 분명 신발을 벗고 고개를 들고 그리고...

? 일어났네요? 이제 좀 안정이 되나요?”

저건 뭐지? 왜 우리집에 저런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있는거지? 그것도 꽤나 이쁘장한 여자다. 나한테 저런 여자친구가 있을 리가 없는데... 그런데 뭔가 이 여자의 모습이 이상하다. 약간 투명하면서, 뭐라고 해야하나 생기가 없는 것처럼 창백하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듯 한...

어머 또 벙어리가 되었네요. 아까는 말 잘하더니.”

이 아, 이게 아니다. 조금씩 상황파악이 되기 시작한다. 아까 나는 유령을 만났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고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점차 기억이 난다. 아까 그것은 악몽이 아니다. 가위 따위도 물론 아니다. 진짜로 일어난 일이다. 방금 전, 태어나고서 최고의 공포를 맛봤다. 전신에 오한이 들기 시작한다. 털이 삐쭉삐쭉 서고 닭살이 돋는다.

그렇게 긴장하지 말라니까요. 일단 대화부터 해요. ?”

무슨...”

더 이상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긴장감이 온몸을 적셔온다.

우선 겁먹지 말기! 나는 당신을 해칠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 긴장하지 말고 릴렉스!”

...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할말이 없다. 잘 생각해 보면 아무리 유령이라지만 나 멋대로 겁먹고 그것도 모자라 죽이려고 하지 않았는가.

... 알았어. 일단 알았어.”

드디어 말이 이어지네요. 다행이에요. 후후.”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는 유령씨가 꽤나 아름다워 보였다는 것은 꽤나 나중에 꺠달은 일이다.

... 아까는 미안해. 찌르려고 해서.”

괜찮아요. 당연한 반응인걸요. 보다시피 유령이니까요.”

... 그래?”

굉장히 쿨한 유령이다. 생전에 남자 한둘은 가볍게 휘두르고 다니지 않았을까 의심되는 미모에 이런 성격이라니, 나 정말 못된짓을 했구나.

그래요. 우후후. 뭐 어쨋거나 진정된 것 같아 보이니 다행이에요. 그런데 저건 어떻게 할꺼죠?”

유령씨는 아까 기절하기 전, 내 사타구니로부터 방출되어 아직도 나를 원천으로 추측할 수 있을법한 웅덩이를 가리켰다. 즉 오줌이라는 것이다.

아니 저... 저건 어쩔 수 없었어! 아니 갑자기 유령이 튀어나오니까! ... 그러니까 무서워서...”

아아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겠다. 아마 지금 내 얼굴에 주전자를 올리면 부글부글 끓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붉지 않을까. 아 창피를 넘어서 쪽이팔린다. 으아 니! 집에서 에어기타를 치며 락스타로 빙의되어 있을 때 부모님에게 들킨 것보다 세배 네배는 더 부끄럽다. 그러니까, 최악이다.

하하, 뭐 제가 어떻게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까요. 몸도 없고 영력같은 것도 없으니까요. 뭐 그래도 갑자기 이렇게 외간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갑자기 들이닥칠줄은 몰랐지만요.”

... 그러게 미안하네...”

가 아니다. 분명 여기는 우리집이 맞다. 뭐 그인간들이 준 것이니까 위조일 수도 있지만, 여기 등본도 이렇게 다 있다. 이건... 확실히 내집이잖아?

.. 여기 내집인데... 여기 이렇게 등본도 있다고?”

어머, 여기 집주인이 전데요?”

?”

무슨소리를 하는건지 당췌 알 수 없다. 애초에 등본에 집주인은 나고, 뭐 전세긴 하지만 분명 내 명의로 되어있다. 그리고 죽은사람이 집주인이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그쪽과 계약한 집주인이 바로 저라니까요?”

?

쉽게 말하자면 실제로는 죽었지만 법적으로는 살아있다는 뭐 그런거에요. 사망신고를 안한거죠.”

... 대충은 이해된다. 아마 부모는 여러 가지 회사와 건물이 있을테고, 이 유령씨 명의 앞으로 건물 몇 개를 등록해 절세하려는 목적 일테다. 안그래도 지독한 방법을 쓰는구만, 죽은 자식까지 절세목적으로 이용해먹다니.

그러니까 세입자씨. 앞으로는 문단속 잘해주세요! 아까도 틀린 비밀번호를 계속 누르는게 애처로워서 제가 열었으니까요.”

... 아까 문이 열린건 유령씨 덕분이었던 것 같다. 오컬트 어쩌구저쩌구 했지만 결국은 유령의 짓은 맞구나. 뭐 유령이라는 존재가 이런 존재라는 것 자체가 예상밖이기는 하지만.

하하... 고마워. 내일 찾아가도록 할게.”

어딜 말하는거죠?”

아니, 유령씨의 집 말하는건데.”

유령씨는 갸우뚱거리며 터무니 없는, 아니 FF가 발매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 보다 더 말도 안되는 말을 했다.

여기가 제집인데요?”

?”

무슨말이지 이건.

그러니까, 저는 이집에 쭉~ 살았어요.”

아니, 하지만 이렇게 계약도 했고... 이제 내집인... 것 같은데.”

유령씨의 당당한 모습에 잠시 주춤했다.

그럼 같이 살면 되겠네요.”

갑자기 크리티컬. 역시 유령은 임팩트가 다르다. 패왕색 패기다. 흰수염조차 다가갈 수 없는 엄청난 패기를 뿜어내며 유령씨는 말했다. 아니 그 이전에 말도 안되잖아! 유령과 함께 동거라니, 뭐 이제 유령씨가 나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고 해도 같이살자니 이건 말도 안된다고!

아니 그게, 일단 젊은 남녀잖아? 그러니까 같이 사는건 좀...”

보시다시피 저... 유령인데요. 게다가 나이도 한 30살쯤은 됐다구요? 혹시 연상 취향인가요?”

아니 그게 아니고! , 아니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유령이랑 같이 사는 것 자체가 뭐라고 해야할까 상황이 납득이 안되잖아!”

안될거 뭐있나요? 그냥 같이 사는건데요. 딱히 몸도 없으니 당신이 무슨 짓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니 애초에 이 건물에 집이 몇 개인데! 엄청나게 많다고. 다른 집에서 살면 되는거잖아? 나는 이 집에 계약을 했으니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한다고.”

처음부터 전 여기 살았는데요. 정든 고향에서 나가고 싶지 않은건 모두 다 같은거 아니겠어요? 혹시, 제가 불편하세요?”

락커가 빙의된 듯 엄청난 속도로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엄청 불편해! 일단 난 학생이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그런데 여자랑 그것도 유령이랑 함께 산다니, 상황자체가 말도 안되잖아?”

어머, 자위같은거 하시거나 그런거 상관 안하니까 괜찮아요?”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유령씨는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왔다. 유령에게 생기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일테지만 하여간 살아있다는게 느껴지지 않는다. 말그대로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절간이 싫으면 중이 나가는 수 밖에, 여기만큼 전세 싼 곳도 없을꺼라구요?”

그건... 협박... 이지?”

. 이해가 빠르시네요.”

유령씨는 씨익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아... 이 유령씨가 무섭지 않다는건 취소다. 어떤 의미로 유령보다 더 무섭다. 뭐 유령이긴 하지만.

그럼... 일단 뭐 알았어. 어쩔 수 없잖아. 집주인.”

! 잘되었네요.”

그녀는 미소짓고 있었지만, 내 얼굴은 아마 똥 씹은 표정일 것이다. 직접 보진 못하지만.

잘되지 않았다고...”

이렇게,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3.

너무나도 이른아침, 잠을 잔건지 안잔건지 모르겠다. 하긴 그런 일이 있었는데 푹 자면 그게 훨씬 이상한 일일테다. 아무래도 뒤척거리다가 한 한두시간쯤 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더 자자니 이 상황 때문에 더 자지도 못하겠다. 이 상황이라 함 즉슨.

잘 잤어요?”

유령씨가 내옆에 바로 누워있는 것이다.

아니... 뭐 대충 잔 것 같긴 하네. 그런데 왜 이렇게 찰삭 달라붙어 있는거야? 아니 뭐 이불때문이라면 내가 따로 깔아줬을텐데.”

유령에게 이불이 소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괜히 그런걸로 폐를 끼칠 수는 없죠. ... , 우리 아직 통성명을 안했네요. 내 이름은 유진. 전유진이에요. 그쪽 이름은 어떻게되나요?”

... 나는 호... .”

?”

으으응, 아니 홍경이야.”

왠지, 이름을 말할 때 마다 부끄러워진다. 왜이러는건진 잘 모르겠지만.

홍경? , 이쁜 이름이네요. 앞으로 홍경씨라고 불러도 되는거죠?”

유령씨는 그녀 특유의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응 그럼 나는 뭐라고 불러야...”

생각해보니 뭐라고 불러야할지 잘 모르겠다. 처음부터 말을 놓아버렸으니 유진씨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나이는 30쯤 됬을꺼라고 하니 유진아 라고도 못하겠다. 제기랄, 처음에 말을 놓은게 화근이다. 어려보인다고 반말하는게 아니였는데.

흐음... 글쎄요 뭐가 좋을까요. 분명 홍경씨보다 내가 더 나이가 많은게 아무래도 홍경씨한테는 애매할테니...”

우와 정확해.

그럼 유령씨라고 해두죠 뭐.”

그걸로 괜찮은거야?”

, 대접받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존댓말 하라고 헀겠죠.”

... 미안...”

아니 괜찮아요. 딱히 나무라는게 아니고, 아무래도 어제부터 유령씨라고 쭉 부르기도 했고, 역시 이름같은거 불린지 벌써 50년도 넘었으니 오히려 더 이질감느껴져요. 유령씨쪽이 훨씬 더 편해요. 그리고 저보다 늙어보이는 사람한테 존댓말 듣기도 싫구요. 후후.”

장난기가 팍팍 묻어나게 쿡쿡거리는 유령씨. 아무래도 생각보다 훨씬 더 유쾌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럼... 뭐 그렇게 해둘게.”

그나저나, 홍경씨 배고프지 않아요? 나도 오랜만에 뭐좀 먹고싶은데.”

유령씨는 가뜩이나 말라보이는 매를 웅켜쥐며 말했다.

그러게 좀 배고프긴 하네. 어제 이사오기도 했고, 어제 소동 때문에 제대로 식기 준비도 못했으니...”

아니 그 이전에 뭔가 유령씨가 뭔가 이상한 말을 한 것 같은데.

! 아니 그나저나 유령인데 밥 먹을 수 있는거야?”

못먹을거야 없죠. 제사는 괜히 지내는게 아니잖아요? 제사 지내는거, 다 우리 먹으라고 하는거잖아요. 제대로 지방정도만 준비되어 있으면 충분히 먹을 수 있어요.”

... 뭐 그정도야 알고 있었지만 단순한 의식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가능한거였구나...

그러면 뭐 상관은 없는데... 나 지방 쓸 줄 몰라.”

그거야 인터넷 쓰면 되죠. 우리는 21세기에 살고있답니다? 문명의 이기는 확실하게 누려야죠.”

아니 살아있지 않은 사람한테 들어봣자... 뭐 이런건 상관 없나.

응 알았어. 밥 사오면서 피씨방에서 알아올게. 그나저나 뭐 먹고싶은거라도 있는거야?”

흠 글쎄요. 갑자기 뭘 먹게 될 거라고 생각해보진 않았으니까... 흠 고민되네요. 뭘먹을까...”

뭐 오늘하루 먹고 땡이 아니잖아? 앞으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텐데 뭐, 아무거나 말해봐. 사올테니까.”

유령씨는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하고 날 쳐다보더니 이내 웃으면서 내 등을 어께를 툭툭 쳤다.

드디어 홍경씨가 나를 인정했구요. 흐흑, ()는 감격했사옵니다.”

소매를 훔치며 우는... 척이다. 소매 뒤로 쿡쿡거리는 소리가 다 들린다. 점점 유령씨의 성격이 종잡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엄청난 말괄량이에 장난 좋아하는 아가씨 인 것 같다.

처라니... 그게 뭐야. 하여간 같이 살게 되었으니, 그정도야 앞으로 계속 할 수 있잖아? 그래서, 먹고싶은건 뭐야?”

흠 그렇네요. 그럼 피자로 할까요?”

선이 이쁜 검지를 입에 대고 위를 바라보며 생각하더니 갑자기 전혀 예상 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 피자?”

네 피자요. 피자 모르세요?“

아니 모르는건 아닌데...”

갑자기 유령씨가 내 얼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

우왁! 목소리 커

아니 나야 상관은 없는데... 유령이면 그... 빨간 음식이라거나, 고추가 들어있다거나 그런건 못먹는거 아니였어?”

사실은 조금 고민했던 것 이기도 하다. 뭘 먹고싶다고 말해도, 붉은 음식은 안될테니까.

그런거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오히려 짜증난다니까요. 제사 지낼때마다 맨날 싱거운 음식만 올라오고. 요즘 사람들이 생활만 최신식이지 바뀐게 하나도 없어욧!”

씩씩 거리며 말하는 유령씨. 감정 표현이 엄청나게 풍부하네.

!!! 피자를 먹고싶다는거죠.”

응 알았어. 피자 사서 돌아올테니까. 아무래도... 메이커피자는 너무 비싸서 지갑 형편이 안돼. 하하

에이, 그런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저렴한거면 돼요.”

오오 저렇게 착한 여자가 어디있을까. 한잔에 5000원짜리 커피 마시며 징징대는 여자들도 얼마나 많은데. 살아있기만 했으면 노벨 착한여자 상이라도 주고싶다.

물론 맛은 없을테지만.”

아니 번복한다. 착한여자는 아냐.

그렇게 말하지 마. 안그래도 지갑사정이 울고있는 형편인데.”

쿡쿡... 농담이에요. 진짜로 적당한거면 올라잇이에요.”

 

 

@

바람이 차다. 왜이렇게 찰까. 뭐 겨울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초겨울이다. 이렇게 추울만한 계절은 아직 아니다. 꽃샘추위 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그건 신입생이 파릇파릇한 3월달에나 해당되는 것이고... 아직 꽃샘추위라는 녀석이 등판할 이닝이 안됐다. 아직 겨울의 4이닝이라고... 네녀석은 구회말에나 등판해야지.

입김을 하하불고 크게 숨을 내쉬는 담배피기 놀이를 하며 밖으로 나왔다. 담배는 안피지만 왠지 어렸을적 담배에 대한 로망 때문인지 자꾸만 시늉을 하게된다. 그나저나 너무 추운 탓인지 오금이 다 저린다. 길도 꽝꽝 얼어서, 잘못하다간 헛디뎌서 넘어질 것 같다. 겨울마다 넘어져서 죽는 사람이 꼭 나오니까 주머니에 손넣고 다니지 말라는 이쁜이 아나운서가 생각난다. 그래서 준비한 아이템이 바로 이것! 장갑이다. 장갑은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고도 추위라는 녀석의 공격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최고의 방패, 검으로 따지면 집행검 쯤 될테다.

장갑은 인류가 낳은 문명의 극치야.”

모 만화의 패러디를 하며 예의 김밥집으로 향했다. 역시 아무래도 피자만으로 허기를 때우는 것은 좀 그렇지. 사서 공양한다고 해봣자 내가 다 처리해야할 테지만, 피자정도는 냉장고에 넣어두면 일주일은 괜찮을 것이다. 역시 끼니는 빵보다는 밥으로 해결하는게 더 좋다. 그런걸로 배부르게 먹어봣자 제대로 먹은 기분이 들지를 않아.

? 오늘 또오셧네. 그 유령빌라분.”

테클을 걸고 싶지만, 유령빌라보다 더 이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성 싶어 참는다.

, 맛있어서 또 왔어요.”

~! 그거 요 일주일 내 가장 설레이게 하는 말이네요.”

김밥집 아가씨가 쿡쿡거리며 웃는다.

아니 그런걸로 설레여 하지 마세요.”

이래뵈도 식당하는데, 자기가 한 음식이 맛있다고 하는 말이 가장 기분 좋은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거, 요리프로 보면 많이 나오는 대사인 것 같은데.

사설은 여기까지! 주문은 뭘로 하겟드뇨?”

아 포장으로 돈까스 하나 해주세요.”

아니, 잠깐 뭔가 엄청나게 이상했던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알았노라. 그럼 잠시 기다리거라.”

우와, 갑자기 말투가 고풍스러워졌다. 뭐 그건 둘째치고, 일단 물어볼 것이 있었네.

, 이 근처에 피자 팔만한데 없나요?”

피자요? . 티비 광고에 너무 자주 나와서 번호를 기억하는 그 곳으로 전화하면 되지 않겠어요?”

스스로 검열삭제까지 해주다니. 매우 융통성 있는 사람이다.

아뇨, 조금 비싸잖아요. 메이저는.”

... 그럼 기다려봐요. 전단지가 어디 있었는데...”

아가씨가 전단지를 뒤지고 있는 사이, 티비에서는 언제나처럼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뭐 매일 나오는 정치이야기나 뉴스거리가 안되는 뉴스만 잔뜩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버릇처럼 보게된다. 뉴스에 나오는 참한 예비 재벌가 사모님은 아무 감정도 표현하지 않으며 100년만의 폭설이 내린다고 했다. , 요즘 매년 연중행사도 아니고 몇십년, 몇백년만의 뭐시기가 하도 많아서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작년에는 몇십년만에 폭염이라더니, 올해는 백년만의 폭설이냐.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그렇게 느끼진 못하지만, 자꾸 이렇게 몇백년만의 뭐시기가 자꾸 찾아오니 이게 지구온난화의 폐혜인가 싶어서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사실 매일 지구온난화 지구온난화 떠들면서 사실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제대로 된 대책조차 나오지 않고 있으니 이게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여기 한번 전화 해봐요. 전에 몇 번 본 것 같은데 괜찮아 보이더라구요.”

, 고마워요.”

그래요? 고마워 하지 않으면 별로 상관 없었을텐데 고마워 하니까 말해둘게요. 나는 감사의 표시로 현찰만 받으니 팁을 주세요.”

?”

아가씨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뭐 딱 봐도 가난한 학생인 것 같은데 그렇게 잔인한 짓은 안해요.”

매우 텐션이 높으시네요.”

저는 24시간 내내 흥분모드에 있어요. 그래서 인생이 매우매우 즐거우니, 좋잖아요?”

모 정치인의 패러디를 하는구나. 은근히 매니악한 사람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지만.

조금 더 실없는 이야기를 조금 나누곤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니, 향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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