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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노래 #1화. 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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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6:24 Feb 0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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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라크마

[프롤로그 링크]

http://lightnovel.kr/index.php?mid=freewrite&search_keyword=%EC%82%AC%EC%9E%90%EC%9D%98&search_target=title&document_srl=373033

 

 

 

 

 

 #출소#

 

꿈을 꾸었다.

 

질리지도 않는지 내 뇌는 몇 백번의 꿈을 날마다 반복하여 보여주면서 이것이 나의 죄라는 것을 나에게 낱낱이 고해주며 나를 죄라는 이름의 나락속으로 빠져들었고 나는 그때마다 내가 가진 인성의 한계와 싸워야만하는 나날을 보냈다. 차갑디 차가운 이 독방에 혼자있다는 사실보다 앞으로 몇 십년을 더 이 죄를 두눈으로 즉시하며 죽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 더욱 나를 옥죄어 왔다. 자살이라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만들어두지 않았었다. 그것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고로 멍청한 짓이라는 것을 나와 동문들은 위대하신 스승으로부터 배워왔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죽지 못해 살며 남은 삶을 차가운 이 공간에 갇혀 살았다. 언젠가 세월이 내 인생을 끝내주길 기다리며―.

 

 

“9762, 나와라.”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새벽녘, 나는 이시간에 울릴거라 생각지 못했던 목소리가 철문을 열며 부르는 소리에 깊은 잠에서 내 의식을 끌어올리며 목소리의 발원지로 상체를 일으킨체 시선을 돌렸다.

 

“못 들었나, 어서 나와!”

 

저 남자는 이 수용소의 간수중 한명이었다. 이름이 아마 브룩클린…이라고 하는 것을 들은 것 같다. 기억에 의하면 저 남자는 수도에서 지방의 이 수용소로 좌천되어 온 것으로 그 탓에 다른 간수들과 사이도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이 저 사내에 대한 나의 기억이었다. 여하튼 난 저 남자의 지금 저 행동에 의문을 표할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꺼운 강철 수갑이 채워져있음에도 능숙하게 이불을 정리한체로 문밖을 나섰고 아직 취침시간이 멀은 탓인지 복도에는 옅은 수면용 조명만이 있을 뿐이었기에 나는 그제서야 다시한번 의문을 표하며 날 불러낸 간수에게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님을 난 깨달았다.

 

“호오… 이 자가 바로?”

 

그중, 외알안경을 낀 금발의 중년 사내가 입을 열며 나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나 역시 그 시선이 달갑지는 않았기에 정면으로 그 푸른 빛의 시선을 바라보며 응대하자 그는 재미있다는 듯 돌아서며 양옆에 서있던 간수가 아닌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들에게 지시했다.

 

“끌고오세요, 이번엔 가능성이 보이는군요.”

 

그 말에 정장입은 사내들이 내 양팔을 속박한체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고 간수는 문을 잠근체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리며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뭘 할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간수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위치에서의 명령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기에 나는 별다른 반항없이 그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걸었다.

 

“누우시지요.”

 

얼마나 걸었을까, 평소에 응급실로나 쓰이던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엔 평소엔 볼 수 없었던 첨단장비들이 가득차 있었고 그곳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백색의 환자용 침대 주변에 모인체 나를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누우라는 말에 이번에도 별다른 반항없이 침대에 누을 수 밖에 없었다.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속박을 푼다 싶더니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날 겨누었기 때문도 있지만 설령 저들의 명령을 거역한다 한들 장비도 없는 내가 저들을 제압할 가능성을 희박했기 때문이었다.

 

철컥

 

“…?!”

 

내가 누움과 동시에 흰가운을 걸친 사람들은 곧바로 침대의 머리맡에 위치해 있던 작은 레버를 당겼고 그러자 침대 시트를 뚫고 차가운 금속이 수갑이 채워진 내 양팔을 머리위로 끌어당겨 고정시켰고 양발과 목을 감싼체 날 침대에 고정 시켰다. 삼류호러영화에나 나올법한 장비를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컬쳐쇼크이긴 했지만 그것보다 방금전 예의 금발 사내가 주사기를 든체 다가오는 것에 시선을 돌렸다.

 

“호오… 생각보다 얌전히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대게는 비명이라도 지르는데 말이지요.”

 

비명을 질러보았자 달라질 것은 없다는 걸 알기에 한 행동이지만 그는 그것이 재미있는지 이내 주사의 침을 왼쪽손목에 깊게 박아넣었다. 그러고서 주사내의 액체를 천천히 내몸에 주입하기 시작하였는데 별다른 이상이 일어나지 않은체 주사를 뽑은 그는 주변에 서있던 하얀 가운의 사내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각자의 장비를 맡은체 그것들이 기록하는 파라미터를 주의깊게 관찰하였다. 이쯤이면 이들이 뭔가 실험을 한다는 것정도는 알수있었지만 도대체 어째서 수용소내에서 이런 행위가 벌어지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었지만 이내 그 의문을 풀 것도 없이 ‘이변‘은 일어났다.

 

두근

 

“―――――!!!”

 

첫 번째 격통의 시작지는 미간이었다. 심장박동소리가 귓가를 때릴 정도로 크게 한번 울리더니 그 뒤 이어진 미간의 격통은 마치 뇌수를 송곳으로 후벼파는 듯 끔찍한 고통을 나에게 주었고 의식을 끊어놓을 듯한 그 격통은 이내 양쪽눈으로 옮겨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의 격통을 안겨주었다. 총을 맞는것보다도 더한 쇼크 상태가 지속되었고 그 와중에 나는 몇 번이나 끊어지려는 의식을 간신히 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감옥속에서 세월이 나를 죽여주길 바라던 나라도 삶에 대한 무의식적인 집착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니. 지금 이건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고 있는 자들에 대한 육체의 순수한 분노라고 표현하는게 맞을지도 모를 터다.

 

“―――크헉!!!”

 

잇몸이 터져나갈 듯 어금니를 깨물며 버티던 내 육체가 처음으로 비명을 지른 것은 격통이 심장쪽으로 퍼져버렸을 때였다. 마치 심장을 산채로 뜯어내는 듯한 충격이 내몸을 뒤덮었고 곧이어 이어진 것은 내장을 통째로 뒤흔드는 듯한 격통.

 

“흥미롭습니다, 당신의 육체는 저희가 보고받은것보다 훨씬 튼튼하다는 점에서… 경이롭군요.”

 

그 와중에 날 내려다보며 금빛의 눈으로 하는 말에 나는 이를 악문체 눈빛으로 욕설을 내질렀지만 이젠 내몸 전체를 뒤흔드는 격통에 시야마저 섬광이 터지듯 새하얘졌고 나는 드디어 인내의 끝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그러자 격통은 절정에 달해 날 찢어발길 듯 찾아왔고 그 격통속에서 의식의 끈을 놓았을 때.

 

『…너, 이정도였냐?』

 

내 뇌속을 울리는 환청임이 분명할 그 음성에 난 이를 악물며 눈을 부릅떴고 그러자 또다시 크나큰 격통이 내 몸을 덮쳤지만, 그 목소리를 향한 격노는 이미 그따위 격통따위 무시할 수 있었다.

 

“…휴―고오오오오오――――――!!!!!!!!!!!!!!”

 

응급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괴성이 터져나왔고 그 괴성과 동시에 온몸의 격통이 마치 연기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온몸에 감각이 없었고 나는 시야에 동공이 확장된체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금발의 사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럴수가…성공이라니…?”

 

성공, 그는 성공이라고 말했다. 이내 희열에 찬 목소리로 뭐라 외치는 그와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그들의 언어를 미처 이해하기도 전에 난 이내 의식의 끈을 놓았다.…그리고 또다시 몇 번째인지 모를 꿈을 꾸었다.

 

***

 

꿈에서 깨었을 때, 나를 반기던 것은 평소의 기상후에 보던 차가운 독방 천장이 아닌 예의 밝은 조명이 위태롭게 눈앞에서 흔들리는 응급실 침대였고 그 응급실을 채우고 있던 것은 수많은 하얀가운을 입은 사람들과 정장을 입은 사내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며 비틀린 웃음을 내짓고 있는 금발의 사내였음을 본 나는 두 개의 꿈중 하나는 꿈이 아니었음을 알고서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무엇이 웃긴가, 플루토군?”

 

그의 질문에 나는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지만 여전히 내몸에 채워진 금속들 때문에 한 대 후려치지는 못한채 얌전히 그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 역시 이 남자의 흥미를 돋구었던 모양인지 그는 낮은 톤의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끌끌끌, 생각을 읽기 쉬워서 좋구먼. 축하하네 플루토군. …아, 여기서는 9762로 불리던가?”

 

“…”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그는 외알 안경 너머의 눈썹을 들어올리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더니이내 옆에 서있던 정장입은 사내에게 눈짓하였고 그 사내는 들고있던 서류가방을 열어 그 안의 서류를 금발의 사내에게로 건넸고 그는 나에게 그 서류의 내용이 잘 보이도록 눈앞에서 흔들어대었다.

 

“자네의 석방 절차 서류일세.”

 

“…?!”

 

석방이라는 비현실적인 말에 나는 놀란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예상했던 반응이었다는 듯 피식, 웃으며 이번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내에게 눈짓하자 놀랍게도 날 구속하고 있던 금속들이 해제되었기에 난 손목과 팔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상체를 일으킨체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이대로 여기있는 자들을 모두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랬다가 탈옥범이라도 되는날엔 오래사는건 끝이었기에 나는 일단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현명하구먼. 자네가 어쩔 때 우리에게 적의를 보였다면 그 침대의 전압을 조금 올렸을 걸세. 인도 코끼리를 통째로 구워버릴 정도로 ‘조금’ 말일세.”

 

그의 말에 나는 구속을 풀어진 하얀 가운의 남자로 시선을 돌렸고 거짓이 아닌 듯 그는 회전식 레버에 손을 가져다 댄체 금발 사내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조건은?”

 

어찌하든 내가 불리한 상황이었기에 나는 그들이 석방에 대한 조건을 제시할 거란 생각에 그렇게 물었고 그는 오른손의 엄지, 검지, 중지를 내밀며 말했다.

 

“첫째, 되도록 많은 ‘전투’를 행할 것.

 

 둘째, 그 전투 직후 기관측에 데이터를 줄 것.

 

 셋째, 기관의 24시간 감시를 받을 것.”

 

“…”

 

그의 말에 나는 미간을 좁히며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고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선택지가 있지는 않아보이네만, 사형수인 자네에게 석방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네.”

 

그 조건 속에서 나는 이들이 나에게 전투에 필요한 무언가의 실험을 행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실험체가 아주 귀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난 이들의 실험방식 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절한다.”

 

“―뭐라?”

 

처음으로 금발의 사내는 동요한 기색을 보였고 나는 그 사내를 똑바로 즉시한체 살의를 담은 목소리로 이를 갈며 말했다.

 

“내가 죽인이들에게 사죄를 하기 위해 누명까지 뒤집어쓰며 들어온 죽음의 감옥이다. 그런데 너희들 멋대로 실험을 당하고 이번엔 나가서 싸움질을 해서 그것에 대한 자료를 달라고? …건방떨지마라, 너희가 육체를 석방시킨다 한들 내 죄인의 영혼은 여기서 나갈 수 없다.”

 

…이 말 뒤에 난 죽음을 각오했다. 불리한 상황, 어느것 하나 이로울 것이 없는 상황에서 내린 최악의 결정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얌전히 죽어줄 생각은 없었기에 적어도 이런 실험이 재발 되지는 않도록 최대한 의 피해는 입히고 죽어줄 생각이었다. 내 죽음의 방식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미쳐갈 즈음 금발의 사내는 입을 열었다.

 

“…흣.”

 

“음?”

 

“크흣…크흐흐흣…크하하하하하핫―!!”

 

“…미친건가?”

 

생각만하려했던 것을 입으로 내뱉었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응급실이 떠나가라 광소를 질렀고 그것에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닌지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과 정장을 입은 사내들 역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웃음은 갑작스레 끊겼다.

 

“용기있구먼, 그만한 각오는 한 대답이겠지?”

 

“물론.”

 

“…좋네.”

 

그는 손에 들고있던 서류를 들고서 반으로 찢어버리더니 금빛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돌아섰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네만, 적어도 자네에 대한 감시는 계속 된다는 것을 알아두게.”

 

“…”

 

이미 이곳으로 날 팔아넘긴게 간수라는 점에서 이 수용소 내에 내 편은 없다는 것쯤은 알아챌 수 있었다. 거기다가 아까전 ‘기관’이라 말한 것으로 보아 저들은 아마도 소수단위가 아닌 대규모의 연구기관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저들이 내게 실험한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혹여나.”

 

문을 열고서 나가려던 그는 문득 생각난 듯 뒤돌아서더니 비릿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생각이 바뀌거든 언제든지 말해주게나. 우린 항상 플루토군을 보고 듣고 있을 테니.”

 

“…”

 

말을 마친 그는 사내들의 경호를 받으며 나갔고 그가 나가자 하얀 가운을 입은 사내가 회전식 레버를 돌리는 것이 시야에 들었다.

 

“너, 무슨―”

 

무언가를 묻기도 전에, 나는 내 몸을 타고 흐르는 전류에 의해 깨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또 한번 같은 꿈을 꾸는 기염을 토했다.

 

 

 

*                *               *

 

 

 

그 뒤, 꿈에서 깨어난 나는 이번엔 익숙한 차가운 수용소의 콘크리트 천장을 보았고 그 뒤는 익숙한 시끄러운 기상소리와 여느때와 다름 없는 수용소의 일과였다. 달라진 것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하루하루를 또 한번 죽기위해 살아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시비가 붙었다. 사형수를 수감해놓는 곳인만큼 분쟁역시 많은 곳이니 이것 역시 일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내 상대가 어찌된일인지 바깥에서도 꽤나 이름 날리던 흉악범이었고 이 녀석은 어찌된것인지 제대로 된 나이프를 나에게 휘둘렀다. 이곳은 식당인데다가 녀석은 내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다가 나에게 달려온 것. 물론 이런 기본도 안갖추어진 녀석에게 맞아줄 생각은 없었기에 난 몸이 기억하는 대로 나이프의 옆면을 후려친 뒤에 균형이 무너진 놈의 몸을 요리할 생각이었지만 난 넋이 나간체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괴물인가?”

 

이곳에 내려앉았던 침묵이 구경꾼준 하나의 말 한마디에 깨졌고 난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며 정신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았다. 사태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이 난 녀석의 오른손에 들린 나이프를 왼쪽주먹으로 안에서부터 후려쳤고 나이프는 내가 의도한대로 녀석의 자세를 부수는 것이 아닌 내손이 닿은 부분이 부러져날아가 벽에 박혔고 그것을 들고 있던 녀석은 경악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 움직임, 보통때와는 달리 녀석의 움직임이 너무도 느리게 보인것에 반해 내 움직임은 무슨 마법에 걸린건지 소름끼치도록 빨랐다. 침묵이 깨진 것이 신호였는지 녀석은 반도 남지 않은 나이프를 찔러들어왔다.

 

“밖에서 몇이나 그 칼로 보내버렸는지 모르지만.”

 

당황한 것도 잠시, 녀석의 칼에 놀라며 맞아줄 쇼맨쉽은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찔러들어오는 녀석의 나이프 밑 무릎을 오른발로 걷어찬 나는 녀석의 무릎이 펴지며 뒤로 무게중심이 무너지자 그대로 녀석의 오른쪽으로 이동해 녀석의 뒤통수에 오른손을 펼쳐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한 굉음과 함께 녀석은 콘크리트 바닥에 금이 갈정도의 큰충격으로 바닥에 꽂혔고 생각보다 힘이 너무들어갔다는 생각에 녀석을 바라보다가 방금전 걷어찬 녀석의 무릎에 시선이 갔다. …반대편으로 뒤틀려 꺾여있었다. 저정도면 바닥에 매다꽂히기 전에 쇼크로 이미 정신을 잃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게 대체 뭐야?”

 

그 소동은 뒤이어 달려온 간수들에 의해 정리되었고 나는 흉기를 쓴 상대에 대한 정당방위라는 이름아래 별다른 조치는 받지 않은체 여느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제길.”

 

멀쩡하던 감시망루가 무너지며 나를 포함한 작업중인 사형수 몇이 그 잔해에 깔린것인데 나머진 그나마 나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복부를 두꺼운 철근이 꿰뚫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의한 쇼크상태인지 고통이 지속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계속 되는 출혈에 이대로 놔두다간 과다출혈로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은 칠흑같은 어둠인걸로 보아 아무래도 무너지던 망루가 주변에 있던 막사건물과 부딫혀 연쇄적인 사고로 인해 우리가 있는 밀폐공간이 생겨난 모양인데 여차하다간 이곳에서 몇일을 갇혀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철근을 잡았고, 이를 악물며 철근을 뽑아내기 시작하였다. 물론, 가만히 놔두는것보다 뽑아낼 시의 출혈이 더 심하다는 위험부담은 있었지만 이대로 있는다 한들 과다 출혈로 죽을 가능성은 있었기에 그럴 바엔 뽑아낸뒤에 생각해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에서였기 때문이다.

 

“크윽…!”

 

그제서야 느껴지는 고통속에서도 나는 철근을 뽑아내는 것에 성공했고 이어질 출혈에 대비하여 난 정신을 집중한체 복부의 관통상을 막기 위해 상의를 찢었지만…

 

“…꿈이냐, 이건?”

 

피가 나지 않고 있었다.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통증이 이것이 꿈이 아님을 알려주었고 내 신체조직이 출혈을 막은것도 모자라 내장을 재생시키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내눈으로 목격한 나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피로속에서 눈을 감았고 눈을 뜨자 날 반긴 것은 또 다시 차가운 콘크리트 천장이었다.

 

“…정리를 해보자.”

 

이변이 일어난건 그 빌어먹을 실험이라는 것을 당한 직후다. 그 실험이 나에게 무슨 변이를 준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뒤 나는 일상생활에서 왠만하면 피로를 느끼게 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본디 쌓아두었던 기초체력탓이라고 생각했지만 기초체력을 생각하더라도 평소보다 이상하게 많아진 잔업량에도 내 몸을 어떠한 피로도 느끼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완력, 괴력怪力이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을 힘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무거운 철근을 배에서 그렇게 간단히 뽑아낸것도 그렇고 예의 식당 소동에서도 나이프를 부러뜨린것도 모자라 녀석의 무릎을 박살내고 콘크리트 바닥이 부숴질 정도의 충격을 줬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불가능하다. 거기다가 그 당시 느껴지던 비정상적인 동체시력.

 

“괴력, 말도 안되는 재생력, 동물같은 동체시력.”

 

내입으로 내뱉고도 황당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것들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들이 보는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초인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니, 여기서는 주인공이 사형수라는 점이 다를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에 나는 웃음을 흘렸다.

 

“…초인이라…”

 

초인이라는 단어와 함께 내 머릿속을 한 사내가 스치고 지나갔다. 굳건한 등뒤로 수많은 이들의 뜻을 거느린체 유토피아라는 시대를 만들어낸 ‘빅대디’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거대한 사내.

 

“…꿈의 연장인가, 웃기는군.”

 

몇백번이 넘는 꿈속에서 보아온 그였지만 이렇게 현실에서까지 떠오르자 자조적인 웃음만 나올뿐이었다. 그 모든 찬란했던 꿈들이 지금은 마치 거짓말처럼 부숴져 오직 그 꿈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그저 꿈으로만 존재하겠다는 듯이 증오스럽게도 그곳에만 있었다. 그리고 내 일상은 계속되었다.

 

 

 

 *              *                        *

 

 

 

“9762, 편지다.”

 

“…뭐?”

 

이 수용소에 수감된지 어느새 10년째. 이 지긋지긋한 생활도 어느덧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을 무렵 10년동안 단 한통도 오지 않았던 편지가 왔다는 말에 나는 휴일을 이용해 할 것도 없었기에 하던 운동을 중단하고서 철문에 나있는 배입구로 들어온 봉투를 받아들고서 잠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피를란이라는 이름의 간수 역시 피식 웃으며 철문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하핫! 봉투가 예쁜걸 보아하니 여자같은데, 내 간수 인생에 자네에게 온 편지를 건네줄 날이 올줄은 몰랐구먼. 숨겨둔 애인이라도 되는건가?”

 

“…그딴거, 없다.”

 

차가운 음색에 놀랐는지 그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이내 손을 흔들며 복도를 걸어 떠나갔고 나는 창밖의 햇살에 의지해 침대에 걸터앉아 봉투를 살펴보았다. 피를란의 말대로 봉투는 분홍빛 체크무늬인 것으로 보아 여성향인 것이 맞는 듯 하였는데 발신인 주소를 보니 발신인이 적혀있지 않았다. 그래서 의문을 표하며 봉투의 접안 부분을 바라보니 붉은 촛농을 떨어뜨려 그 위에 도장을 찍은 인장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본 나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라이오스…?!”

 

10년만에 보는 무너졌을 조직의 인장이다. 그것도 내손으로 끊어낸 과거의 연聯을 내눈앞에서 보는 것은 마치 유령을 마주하는 것과도 같았기에 나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조심스레 뜯어보았다. 그안에서 나오는 것은 베이지색의 곱게 접힌 종이였고 나는 천천히 그것을 펴보았다.

 

 

To. 플루토

 

반갑습니다, 라이오스의 투견이라 불리던 분을

 

서면으로나마 이렇게 만나는 것은 영광입니다.

 

먼저 10년만의 편지에 이런 내용을 담아내는 것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 일이 당신과 위대하신 빅대디께서 바라

 

셨던 ‘유토피아’의 부활을 위한 것임을 밀리 알리

 

드리는 바이며 지금부터 하는 설명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음을 저의 이름과 위대하신 빅대디의

 

광휘에 맹세하는 바입니다.

 

 

그 뒤 이어진 말들은 충격적이었다.라이오스 괴멸 이후, 호시 탐탐 기회만을 노리던 타 조직들은 라이오스가 유토피아를 실현했던 도시 ‘세비언’을 차지 위한 분쟁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세비언의 질서와 법은 붕괴되어 이미 유토피아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본디의 혼돈으로 돌아와버렸다는 것. …빅대디의 의지가 사라져버린 것이나 다름 없다는 말에 나는 허망함을 느끼면서도 이 편지의 발신인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이 존재는 어째서 내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것일까? 그것도 괴멸한 조직의 이름을 써가면서 까지 말이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이곳엔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꺼리는 동료들이 많습니다만

 

저와 몇몇 이들은 당신의 전설을 직접 본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설득하는 것에 성공

 

하였습니다. (…중략)

 

플루토, 라이오스의 투견이시여.

 

빅대디의 유언장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유언장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빅대디의 죽음은 ‘사고’로 알려져있다. 예정된 죽음이 아니었던 만큼 그가 유언장을 준비했을 리는 만무한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다. 그랬기에 피의 숙청으로 녀석이 뒤이어 보스가 된 것이 아니던가?!

 

 

혼란스러울 줄은 압니다, 하지만 저희는 돌아가신

 

빅대디의 유언장에 따라 라이오스의 기반을 구축

 

하는것에 온힘을 쏟았고 지금 라이오스는 출항을

 

기다리는 거선이 되어 선장과 유능한 선원만을

 

맞이할 준비를 끝내놓았습니다.

 

빅대디의 유언장에 쓰여있는 내용은 세가지.

 

유토피아의 재건과 플루토씨의 합류.

 

마지막으로 빅대디의 친따님께서 신성 라이오스

 

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무슨 소릴…”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유언장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인데 거기다가 친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빅대디에게 친딸이 있다?

 

 

믿지 못하실 줄은 압니다.

 

하지만 믿지 못할 시간이 없습니다, 플루토씨.

 

 

손이 떨려왔다. 지금, 내안의 무언가가 변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빅대디의 친따님이자 라이오스의 새로운 보스,

 

앨리스 크로웰께서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그것으로 편지는 끝이었다. 장난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장난이라 하기엔 너무도 구체적이고 거기다가 밑쪽에 그려진 것은 상세한 라이오스 본사의 주소다. 그 주소를 뚫어져라 노려보던 나는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으로 벽을 때렸고 놀랍게도 벽에 주먹이 박혀버리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어이.”

 

아무도 없는 독방에서, 난 불렀다.

 

“왜 그러나. 플루토군?”

 

아무도 없을 독방 철문 밖에서, 누군가 답했다.

 

“…저번의 조건, 뭐였지?”

 

이때, 난 지옥으로 발을 들여놓을 결심을 굳혔다.

 

 

 

 

 

 *              *             *

 

 

 

 

 

거대한 굉음과 함께 열리는 문을 그는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난공불락의 수용소라 불리는 이곳의 수감자들이 그토록 통과하고 싶어하는 문을 자신은 이리도 쉽게 열고서 나가고 있는 것이 첫 번째 이유요 아직 스스로 죄를 다 갚지 못했음에도 나간다는 것이 그가 침묵하고 있는 두 번째 이유일 것이다. 이내 그의 발이 수용소의 바깥 대지에 발을 내딪었고 그러자 마치 공기의 무게가 달라진 듯 수용소 정문에 위치한 상록수 길을 통과한 나무들의 녹내음이 그의 후각을 자극시켰고 10년만의 바깥공기를 그는 잠시 모든걸 잊고 음미하다가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이 바뀌었군.”

 

들어올 때 주변의 풍경에 그리 시선을 주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사형수 수용소의 주변임에도 오가는 차들이 꽤나 많았으며 행인들 또한 많은 것이 어느정도 경제적 발달은 되어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 그는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 그곳에 그려진 주소를 확인해 보았다. 아무래도 옆도시로 가야될 것 같으니 교통을 이용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되먹은 시스템이지?”

 

전신주도 아닌 것이 여러 가지 자료를 출력하며 인도한복판에 꽂혀있고 그것들에 사람들이 줄을 서다가 버스로 추정되는 거대차량이 오면 각자 손바닥안에 들어오는 카드를 준비하고서 탑승하는 것이 아무래도 저 카드라는 것이 없으면 이 시대에서는 버스를 이용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고작 10년인데 구문명인이 되버린건가.”

 

버스를 타는 것을 포기한 그는 택시라도 타볼까 하는 마음에 오는 택시에게로 손을 흔들려다 이내 택시가 멈추기 위해 속도를 줄임과 동시에 한가지 사실을 깨닫고서 손짓하여 택시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돈이 없군.”

 

돈이 없었다. 수용소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죽을날만 기다리던 사형수에게 돈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은행을 찾아가볼까도 했지만 온갖 누명을 뒤집어쓰고서 희대의 살인마로 메스컴까지 탔던 그였기에 10년이 지났다 한들 은행의 계좌가 살아났을 거란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았다.

 

“…어쩐다.”

 

하지만 이내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무작정 옆마을을 향해 걸을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걷는 와중에 최대한 교통시스템이나 사회의 변화들을 눈여겨 보았다. 그 와중에 차량용 이정표는 10년전이랑 출력방식의 차이일뿐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차량용 이정표를 따라 옆도시로 가기로 결정하고서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과격한 엔진소리를 내는 붉은 스포츠 차량이 달려왔고 인도 보호대에 부딪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주행해오던 그 차량은 점차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그 앞에서 멈추었다. 코팅이 강하게 되어 안을 바라볼 수 없는 스포츠카의 유리창을 차갑게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문이 열리자 미간을 좁힐 수 밖에 없었다.

 

“여어― 당신이 그 ‘투견’인가?”

 

양쪽 귀에 피어싱을 하고 머리는 염색으로 만들어낸건지 백발에 가까운 금발인데다가 그 금발은 뭘 바른건지 칼날같이 날카롭게 여기저기로 뻗어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입고 있는 옷은 죄다 보라색 가죽소재인 것이 정상적인 행색과는 거리가 먼 것이 분명했지만 자신을 ‘투견’이라 부르는 그를 내려다보던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이내 구경꾼들이 꽤나 모여 자신과 이 피어싱 사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수용소 안에서 금발 사내가 건네준 권총을 꺼내던 손을 멈추고서 가라앉은 음색으로 그에게 물었다.

 

“정체가 뭐냐.”

 

“일단 타는게 좋지 않아? 보는 눈도 많은데.”

 

그는 조수석을 탕탕 치며 말했고 잠시 그를 내려다보던 플루토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다가 점점 몰려드는 사람들을 확인하고서 주저없이 조수석에 앉았다. 차량안에는 깔끔함이라고는 찾아볼수 없이 지저분하게 메달려있는 각종 악세사리들이 메달려있었고 다른것에 시선을 돌리기도 전에 사내는 엑셀을 밟았다.

 

“어이, 천천히…”

 

“꼰대같이 왜 그러는거야―?”

 

장난스럽게 대꾸한 사내는 속도를 더욱 높였고 이내 주변 풍경은 고사하고 쫓아오던 경찰마저 따돌린 경이로운 속도의 스포츠카는 이내 고속도로를 지나 옆 도시로 향했고 그 도시의 도로이정표에는 ‘세비언’이라는 낡은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 * *

 

 

 

한때는 범죄도시라고 불렸고, 한때는 유토피아라고 불렸던 도시 세비언은 높은 장벽이 육각형의 형태로 도시 내부를 감싸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 도시인데 전쟁당시 요새로 사용된 것을 그대로 도시화한 것의 유지인 것이다. 그 육각형의 안에는 각각 6개의 지구가 있으며 그 중앙에는 이미 그 힘을 잃어버린 거대한 시청이 들어서있었다. 장벽에서부터 도시의 건물에 사용된 외관에까지 대부분이 회색으로 도배되어 있어 ‘잿빛 도시’라고까지 불리는 도시다.

 

“이쯤이면 얘기해줄때도 되지 않았나?”

 

6지구의 문으로 들어서자 속도를 감속했다는 것을 안 플루토는 피어싱 사내에게 물었고 사내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 뒤 거칠게 불을 붙이며 답했다.

 

“뭐 대충 예상은 했을 거잖아? 당신이 예상한 그대로 당신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의 조직원 정도.”

 

과연, 이라며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한 플루토는 10년만에 돌아온 세비언의 풍경으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번화했지만 질서는 없다. 큰도로변은 마치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었지만 거리를 메우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고 건물을 한칸만 넘어 골목으로 시선을 옮기면 그곳에서 벌어지는 것은 온갖 범죄들의 온상이다. 이미 썩어내린 도시, 그것이 지금의 세비언이었다.

 

“새삼 놀랄 것도 없잖아? 옛날과 똑같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그렇겠지.”

 

확실히, 먼 옛날 빅대디 군림 전의 세비언으로 돌아온 것 뿐이지만 가슴속에서 느껴찌는 공허함은 주체할 수 없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그 공허함을 함께 나눌 그 당시의 동료들이 이미 자신의 손에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무거운 죄가 되어 그를 짓눌러왔다.

 

“너, 이름은?”

 

플루토는 바깥의 풍경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체 물었고 피어싱 사내는 다 타버린 담배를 도로에 던지며 답한다.

 

“샤를, 정보팀 캡틴.”

 

“정보팀 캡틴이라고?”

 

정보팀이라는 것에도 놀랐지만 이런 사내가 그 팀을 담당하는 캡틴이라는 말에 플루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직간의 세력구도에서도 중요시되는 것이 서로간에 얼마만큼의 정보를 가졌는가에 좌우 될만큼 정보력은 조직의 중요한 전력중 하나다. 그렇기에 조직의 정보팀은 항상 적대 세력의 표적이 되는데 그 탓에 정보팀은 은밀하게 바깥세상에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이 사내는 그런 통상적인 정보팀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범생이들같은 녀석들만 정보팀에 있어야된다는 구적 발상을 내뱉을 거라면 하지 않는게 좋아.”

 

 생각을 읽힌 플루토가 옅은 웃음을 흘리고서 이내 대화는 단절되었고 곧이어 차량은 한 고층 건물 앞에 정지하였다. 특별히 화려함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30층 높이 정도의 건물이었는데 1층 로비로 들어가는 문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조금 높다는 것을 제외하면 여느 기업들의 회사 건물이나 다를바 없어 보였다.

 

“하하, 실망이라는 표정 짓지 말아주겠어? 현재의‘서브 보스‘ 께서는 꽤나 깐깐하셔서 쓸데없는 재산 낭비는 줄이겠다는 취지로 지으신 건물이니까.”

 

“서브 보스라.”

 

항상 생명의 위협을 받는 보스의 곁을 지키는 보스의 대행 역할인 서브 보스는 언제든지 보스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그 공백으로 인한 타격이 조직에 가해지지 않도록 새로운 보스의 후보이자 현 조직 체제의 실질적인 운영책임자 라고 볼 수 있었다. 특히나 현재 보스가 없는 라이오스 로 보았을 때 성명만 서브 보스일 뿐 그가 실질적인 조직의 주인이리라.

 

“기다리겠군, 늦장을 피웠다고 혼날지도 몰라.”

 

장난스럽게 말하며 먼저 계단을 오르는 샤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플루토는 계단을 오르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고 그때 시야를 가득 메우는 풍경에 잠시 할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군.”

 

감정없는 목각인형같던 표정에 살짝의 미소가 드리웠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빗소리처럼 그것은 옅지만 주변을 밝게 변화시키기에 충분하였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 건물의 전방에는 세비언의 항구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하루의 반을 지배하고서 수평선 아래에 주홍빛으로 잠들어가는 석양이 타오르고 있었음이다.

 

 

 

***

 

 

 

건물의 내부는 바깥에서 보던바와 같이 단조롭기 그지없었지만 그 내부의 단순한 구조는 곧이어 단단한 조직원들의 수비진형을 만들어놓을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였고 그것을 증명하듯 로비 엘리베이터를 타러가는 길과 30층에 도착하여 라스트 프론트에 도착한 그들을 반기는 것은 강철같은 존재감을 지닌 수십명의 조직원들 이었다.

 

“10년사이에 잘 키웠군.”

 

플루토는 그런 그들을 보며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고 앞서 겄던 샤를은 어깨를 으쓱이곤 답했다.

 

“대외적인 활동만 안하다 뿐이지 이미 이 라이오스의 정예 구성인원들은 이 세비언에서 유명인사들이니까 말이야. 출발도 안한 라이오스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 이곳의 주인은 이 도시에서 굉장한 유명인이거든.”

 

“…유명인?”

 

유명인이라는 말에 플루토가 의문을 표하자 샤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30층 복도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황금빛 문앞에 도착하였고 금으로 만들었다면 사치스러울법도 한데 문에 새겨진 패도적인 동양 문화권의 세공기술과 그 문 주변을 가득 메우는 붉은 카펫과 커튼, 장식들은 이미 그 용체에서부터 패기를 내뿜고 있었음이다.

 

"전투능력으로만 친다면 현 세비언에서 단연 1위를 다투는 최고의 지휘관."

 

"…?"

 

마치 영웅을 칭송하는 어린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말 과도 같은 그의 말에 플루토는 의문을 표했고 그는 또 한번 장난기 어린 음색으로 말했다.

 

"블러디 퀸. 그게 바로 우리의 서브 보스지."

 

말을 마치며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은은한 장미향이었고 그 뒤에 느껴지는 것은 방안의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위압적인 분위기였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위압감의 극의를 보여주듯 그녀는 일체의 불필요한 장식은 존재하지 않는 집무실 안 책상에서 집무를 보던 자세 그대로 시선을 방문자들에게로 향해왔다.

 

"데려왔어, 여왕폐하."

 

"그 호칭으로 부르지 말라고 말한 것은 이번이 397번째다 샤를."

 

"하핫, 깐깐하기는. 여하튼 둘이서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라고 난 이만 물러가보지."

 

그렇게 말하며 플루토의 어깨를 툭툭 치던 샤를은 말한것과 같이 방문을 닫고 나갔고 처음 조우한 두명이 남은 방안은 잠시동안 적만만이 흐를 뿐이었다.

 

"일단 인사를 드려야 겠군요, 라이오스의 투견. …아니, 지금으로써는 ‘플루토‘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실례가 아니겠습니다."

 

마치 왕실 집권 국가의 귀족이라는 존재들이 보이는 기품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그녀는 별명과도 같이 여왕과 같은 잔잔하면서도 위압적인 음색으로말했고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그가 아니었음에 그는 집무용 책상앞에 위치한 접대용 쇼파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그런 그의 행동에 그녀는 그제서야 아직까지 자신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쌓여있는 서류들을 처리하고 있었음을 깨닫고서 펜을 놓은체 일어나 그의 맞은편 쇼파에 앉았다.

 

"현재 비서가 휴가중이라 차를 내오고 싶은 마음에도 그럴 수 없음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전 그런것에 소질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진심을 담고 있었기도 하거니와 그 역시 차를 내준다 한들 쉽사리 마실 남자도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런 그의 묵묵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잠시 안면을 가리려 내려온 윤기 흐르는 붉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말을 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셨나 모르겠습니다. 글재주가 없기 때문에 문장이나 단어의 선택을 조심하긴 했습니다만…"

 

"아니, 문제는 없었습니다."

 

일단 조직의 서브 보스였기에 플루토는 존칭을 사용하였고 그것에 그녀는 놀란 듯이 손사레를 치며 높은 톤의 음색으로 말했다.

 

"말씀은 편히 하셔도 됩니다, 플루토씨께서는 제가 어릴적부터 존경하던 인물입니다. 거기다가 나이차이도 저보다 7살이나 많으시구요."

 

그녀의 말에 그는 의문을 표했다. 어릴적부터 존경하던 인물이라니? 그렇다면 그녀는 자신이 수감 되기 이전부터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이야기를 하자면 길어집니다만 전 위대하신 빅대디, 그의 첫 번째 양자이신 ‘더글라스‘의 장녀입니다."

 

"…!"

 

10년만에 들어보는 낯익은 이름에 플루토는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멕베드가 처음으로 자신의 자식이라 외친 사내, 더글라스. 그는 빅대디가 조직을 일으키기 전부터 그가가 양자로 정한 사내로써 그 품성과 천재적인 경영력과 지휘관으로써의 자질 덕에 한때는 가장 유력한 빅대디의 후계자 였지만 불치병에 걸려 시골의 조용한 마을로 가족들과 함께 가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지금 들을 줄이야.

 

"그리고 방금 보셨던 샤를은 저의 하나뿐인 남동생이지요. 조금… 충격적인 얘기입니까?"

 

행여나 그에게 실례가 된 것은 아닌지 눈치를 살피며 물어오는 그녀로 인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플루토는 한숨을 쉬었다. 슬픔보다는 안도감 만이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빅대디의 뒤를 잇는 암흑의 후계자 ‘휴고‘의 정책으로 인해 모든 양자들과 그 일족들이 살해될 때 이 더글라스의 일족들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휴고로에게 이미 그들은 양자로써의 역할따위 박탈당했다고 생각한 것이 틀림 없었다.

 

"…다행이군."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보다…"

 

물어오는 그녀를 그는 말끝을 흐리며 바라보았다. 붉은 벨벳 소재의 정장과 밑에는 치마가 아닌 같은 붉은 색 벨벳소재의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몸매에 볼륨감이 살아있었으며 곱슬기가 있는 붉은 머리칼과 붉은 눈동자, 그리고 나머지 이목구비역시 날카롭지만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조직의 서브 보스가 이런 아름다움을 가진다는 것이 새삼 믿기지가 않는 그였다.

 

"당신이 정말로 현 라이오스의 서브 보스인가?"

 

순수한 호기심을 그대로 꾸밈없이 내뱉은 질문. 그 질문에 그녀는 잠시 침묵을 머금었고 이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하였다.

 

 "네, 제 성별과 외모 때문에 아직 믿기 힘드신 것 같지만 이래뵈도 여러번 전투에서 승리한 전적이 있습니다. …이런 얘기는 아마 샤를이 먼저 이야기를 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듣기야 했지만 아마 내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쉽게 믿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자신에게 호의를 보내는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실례를 넘어선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는 그지만 이미 그런 예의는 이런 차가운 도시의 조직생활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였기에 이런 의심을 당연한 것이었다.

 

"네, 저 역시 급하게 이해하시기는 어려우시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백색 면장갑을 낀 오른 손을 내밀었고 당당한 미소와 함께 무거운 음색을 내뱉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플루토. 제 이름은 실비아. 현 라이오스의 보스 대리를 맡고 있는 서브 보스이며 저는 가지고 있는 인사권을 발동해 당신에게 라이오스로의 영입을 신청하는 바입니다."

 

마치 공간을 장악하는 듯한 그녀의 음색에 플루토는 잠시 내밀어진 그녀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아주 오래전, 모든 것을 잃고 라이오스로 들어왔던 그때 모든 이들이 그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낼 때 오직 한남자만이 건네었던 손길이 떠올랐다. 남들보다 조금 큰 키에 안경너머의 붉은 눈동자가 인자하기 그지없었던 사내, 더글라스.

 

"…보류하지."

 

"네?"

 

그의 말에 그녀는 놀라 되물었고 그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위에서 눌러 내리며 말하였다.

 

"…빅대디의 친 딸. 직접 확인하고서 방금 그 제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겠다. 물론 이것 역시 실례라는 것을 나 역시 잘알지만 죄인의 생활도 모두 내팽게친체 나온 나다. …그 정도는 이해해주길 바라는 바다."

 

"…"

 

잠시,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자신의 손을 내리 누른 그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손등을 뒤덮고 있는 것은 크고 작은 흉터였고 그것들은 이미 익숙한 듯 옅은 황색빛을 띄는 그의 피부에 깊게 내리앉아 있었다. 현대 의학이라면 흔적도 없이 지울 수 있을 흉터를 그는 조직 생활동안 한번도 지운적이 없었다. 자신이 지은 죄를 잊지 않으려는 듯, 그는 그것들을 자신의 몸에 새긴체 지우지 않고 있었다. 그말을 자신의 친부로부터 처음 들었을 때 자신은 얼마나 감명을 받았던가.

 

"좋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동의를 하고서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손을 여전히 잡고있는 그를 바라보았고 그제서야 그 역시 놀라며 손을 떼었다. 손을 거두며 헛기침을 하던 그녀는 이내 품속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녀의 정보입니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는 당신께서 조직원이 되시길 받아들이셨을 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런가."

 

메모지를 받아든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녀 역시 일어나자 그는 메모지를 코트 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혹시 평범한 자동차를 빌릴 수 있겠는가?"

 

"아, 차라면 샤를에게 운전을…"

 

"…아니, 가능하면 ‘평범한 차‘에 ‘평범한 운전‘을 부탁 하고 싶군. 평범한 자동차만 준비했으면 한다."

 

"…네, 그러면 1층 프론트에 연락해놓겠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그는 곧바로 뒤돌아서 방을 나섰고, 자신을 주시하는 수많은 날카로운 시선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마자 그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메모지를 꺼냈고 메모지에 적혀있는 내용을 확인하던 그의 동공이 점차 확장 되었다.

 

"…17세? …학생이라고?"

 

 

 

***

 

 

 

가을임에도 아직 그 힘을 다하려는 듯 태양은 정오라는 시간대에 걸맞게 하늘 중앙에 군림한체 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 아래의 푸른 천공과 새하얀 구름은 마치 한폭의 그림같이 그 아래의 풍경을 주시하며 미소짓고 있었다.

 

"뭐어―? 내일이 생일이라고?!"

 

그 따스한 햇살아래, 한 여학생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채 말했고 그 놀라움의 대상이 된 금발의 여학생은 어색한 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아…응, 일단 그런데?"

 

"왜 그걸 이제야 말하는거야, 앨리스?!"

 

"응? 미리 말해야 되는거였어 네리스?"

 

"당연하지, 어이구…!"

 

그녀의 둔함에 화가나는 듯 갈색머리의 친우, 네리스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책상에 엎드렸고 그것이 더 의문인 듯 금발의 소녀 앨리스는 푸른 눈망울을 깜빡거리다가 네리스의 옆에서 팔짱을 낀체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던 동양계의 보이시한 매력을 지닌 소녀에게 물었다.

 

"으음… 메이, 나 잘못한걸까?"

 

그녀의 질문에 메이라 불린 소녀는 턱을 쓰다듬으며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네리스를 힐끗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아아, 잘못이지. 적어도 매년마다 생일 파티 준비는 일주일전에 해야되니 그전에 말해달라는 이 바보에게 있어서는 말이야."

 

"바보라니, 메이 너어…!"

 

바보라는 말에 정신을 차린 네리스는 메이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반박했고 그녀의 입술을 검지손가락으로 막는것만으로 그녀의 무기를 원천 봉쇄한 메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앨리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섭섭한걸, 앨리스. 미리 말해줬더라면 선물 같은 것 정도는 준비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야. 생각해둔건 여러 가지 있지만…"

 

그녀의 말에 앨리스는 놀라 손사래 치며 말했다.

 

"서, 선물이라니?! 괜찮아 메이, 난 그런거 바라지도 않는 다구? 그리고 네리스도 작년같은 그런 성대한 파티 난 한번이면 족하니까 참아줘!"

 

"…하긴, 하루만에 준비한게 그정도면 대단하지."

 

앨리스의 말에 마찬가지로 작년 그녀의 생일 파티를 회상한 메이는 웃음을 흘리며 동의했다. 새삼 지금 자신에게 입을 봉쇄당해 얼굴을 붉히고 있는 그녀의 기획력과 재력에 놀랐던 것이다.

 

"시…끄러워! 넌 항상 그렇게 조용하게 네 자신의 일을 참고 지나려 하는게 문제라고 내가 몇 번째 말하는건지 알기나 하니?"

 

메이의 손가락을 치우며 하는 네리스의 말에 앨리스는 베시시한 웃음을 내지었고 그 웃음에 화를 내던 그녀는 무너져 업드릴 수 밖에 없었다.

 

"아이고…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야."

 

"내버려둬, 네리스. 앨리스도 내일이면 17살이라고. 네 과잉보호도 문제야."

 

"네리스까지 그러기야?"

 

"사실을 말한 것 뿐이야."

 

둘의 감정이 점점 격해지려고 하자 앨리스는 이내 손사래를 치며 둘을 말렸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둘다 그만해. 그럼 조촐한 생일 파티정도는 괜찮아 네리스. 단 사람은 많지 않았으면 좋겠어…"

 

본디 소란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그녀의 심성을 모를리 없는 네리스였지만 이내 순식간에 머릿속에 계획하였던 것 중 태반이 그 한마디에 사라진 사실에 그녀는 힘없이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그런 그녀에게 앨리스는 미안한 눈빛을 보냈고 주말이라 그런지 일찍 하교한 학생들 턱에 비어버린 교실안에서 잠깐 동안 적막이 흘렀다.

 

“―자, 그럼.”

 

적막을 깬 것은 메이였다. 그녀는 활동성을 중요시한 원숄더 백을 어깨에 매더니 말을 이었다.

 

“난 오늘은 부활동도 없으니 슬슬 해산했으면 하는데, 너희 생각은 어때.”

 

“호오, 웬일이야 메이?”

 

부활동 외의 시간에는 그녀들과 어울려주던 그녀였기에 의외로 빠른 퇴장에 네리스가 의아해하며 물었고 메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뭐, 집안 사정 때문에. 오늘은 둘이서 오붓하게 지내길 바래. 네리스는 그 장대한 생일 계획좀 메시지로 보내주고 말이야.”

 

“Ok, 하지만 미안한걸. 나도 아르바이트.”

 

휴대폰을 꺼내 일정을 확인하던 네리스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고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메이 이번주 주말은 쉰다고 하지 않았어?”

 

“아아, 사촌언니의 아르바이트 인데 그 언니가 몸이 안좋아서 내가 대신 가주기로 했어. 고수익이긴 하지만 내일이 네 생일인줄알았으면 거절했을 거라구, 이 맹꽁아.”

 

그 사실이 분한지 네리스는 앨리스의 양볼을 손으로 잡고 늘렸고 앨리스는 뭐라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한체 한참을 유린당하다가 메이의 빠른 퇴장에 이은 네리스의 퇴장으로 결국 교실 안에는 앨리스 그녀만이 혼자남아 멍하니 빈 운동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점심이나 사먹으러 갈까 하는 생각에 그녀는 자리를 일어서다가 문득 정문 앞에 주차된 평범한 승용차에 시선이 꽂혔다. 아니, 정확히는 승용차에 기대선체 그녀쪽을 정확히 바라보는 한 남자였다. 키는 보통보다 훨씬 커서 190cm는 되어보이는 장신이였고 거기다가 두꺼운 베이지색 코트를 걸쳐서 인지 덩치는 훨씬더 커보이는 사내였다. 그것도 모자라 콧등을 뒤덮어 이목구비를 가리는 갈색머리와 입주변의 정리되지 않은 수염은 어떻게 보아도 수상하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인상이었다. 저 멀리 메이와 네리스 역시 그 사내가 수상했는지 그를 경계하며 정문을 빠져나갔으나 그 사내는 그 녀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체 오직 그녀쪽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창문 너머의 그녀가 보이는 듯이 말이다.

 

“…뭘까, 저사람.”

 

그리고 곧이어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정문앞 수상한 사람 발견, 조심해!

 

-네리스

 

…수상한 사람. 하지만 과연 정말로 수상한 사람이 경비원도 있는 학교의 정문에 서있을까?

 

“일단 그렇다고 여기 계속 있을 순 없으니까.”

 

그녀치고는 대단한 결단을 내리고서 가방을 챙긴체 운동장으로 나온 그녀는 정오라 그런지 아직 밝은 햇살을 손을 들어 가리며 저 멀리 운동장 너머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정문 앞에 주차된 차량이다보니 정문의 경비실에 앉아있던 경비원은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혹여나 저 사람이 변태라면 경비원이 잡아줄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서 그녀는 약간은 어색해진 발걸음으로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아.”

 

그리고 기윽고 정문에 도착한 그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내를 지나 사내의 반대편 길로 걸어갔고 꽤나 멀어지고 나서야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 사내의 모습이 없음을 안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가 눈앞에 당도한 사내의 가슴팍이 그녀의 시선을 메웠다.

 

“…으엣?!”

 

뭔가 자신에게 용건이 있는 것일까 하는 마음에 힘겹게 시선을 올리자 머리카락속에 가려져있던 사내의 두 눈이 드러났다. 마치 성의없는 그림을 그려놓은 듯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 갈색빛 시선은 그녀를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것은 마치 그녀의 시선을 뭉개는 듯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본디 겁이 많은 그녀에게 그것은 심한 프레셔로 다가왔고 그녀가 떨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사내는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압박감이 걷히자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그녀는 이내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된다는 생각에 걸음을 빨리하여 그를 지나쳤고 그는 그녀를 뒤에서 부르려던 손짓 그대로 멈추었다. 그를 지나친 그녀가 어느새 있는 힘껏 뛰어 저 멀리로 사라져버린 뒤였기 때문이었다.

 

“…음.”

 

무안해진 손을 내려다보던 그는 손바닥과 그녀가 사라진곳을 번갈아보며 중얼거렸다.

 

“…전화번호라도 물어봤어야 되는 거였나.”

 

***

 

“하아, 하아.”

 

본래 운동신경은 전혀 없는 그녀였기에 갑작스러운 전력질주는 짧았지만 그녀의 폐부를 고통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람이 많은 거리에 도착해서야 그녀는 안심하고서 숨을 골랐고 뒤를 돌아보자 그가 따라오는 기색은 없었다. 혹시나 싶어 앞을 돌아볼때도 조심스레 보았지만 다행히 아까처럼 유령같이 앞에 나타나지는 않았다. 방금 전 갑작스레 앞에서 나타날때엔 정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던 그녀였기에 놀란가슴을 진정 시켰다.

 

“도대체 뭐였을까, 그 사람.”

 

네리스나 메이에게 메시지로 물어볼까도 했지만 네리스는 아르바이트에 메이는 집안 사정이라고 하니 저녁에나 말해보아야 될 듯 하였다. 새삼 그 자리에서 네리스의 내일 생일 계획에까지 생각을 뻗어나가던 그녀는 이내 생각을 털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생각없이 뛰어온줄만 알았더니 본래 점심을 먹으러 오려던 거리였기에 일단 그녀는 간단히 식사를 때울겸 패스트 푸드점으로 들어갔다. 토요일 정오라 그런지 패스트 푸드점은 의외로 붐볐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기다리는 고객 역시 꽤 있었다. 갑작스레 운동을 해서인지 식욕은 떨어졌지만 어릴 적부터 식사는 거르지 않는 것이 몸에 베여서일까, 햄버거를 시킨 그녀는 창가의 테이블에 가져가 앉은체 바깥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딱히, 오늘 일정이 비어버린 그녀는 식사후에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이내 방금전 보았던 사내를 떠올리고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도대체 그 사내는 누구였을까, 단순한 변태라고 하기엔 심히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던 그녀는 마음을 진정시킬겸 가방에서 책을 꺼내 식사와 함께 읽으며 두런두런 시간을 보내다가 2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자리를 정리하고서 밖으로 나왔다.원채 책을 좋아하는 그녀였기에 서점에라도 들려서 새로나온 신간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에서였는데, 밖으로 나오자 도로변의 검은 고양이가 눈에 띄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냐옹?”

 

입으로 고양이 소리를 내며 고양이에게 손짓하자 그 고양이는 금빛의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하다가 이내 그녀의 가녀린 손에 얼굴을 부비며 애교를 떨었고 그것이 귀여웠는지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문득, 고양이가 시선을 갑작스레 돌렸고 그녀 역시 시선을 돌렸다.

 

“…아.”

 

그곳에는 아까전 보았던 키가 큰 사내가 벽에 기댄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눈이 마주친것에 놀랐는지 서둘러서 골목안으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그러다가 고개를 내밀어 힐끔 그녀를 다시 바라보는 사내다.

 

“설마, 스토커…?”

 

예쁜사람이나 연예인에게 과도한 집착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스스로가 그 기준에 들어가진 않을거라 확신한 그녀는 이내 고양이에게서 손을 떼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망치려는 의도에서였지만 돌아선 순간 그녀는 또다른 키큰 사내에게 부딪혀 균형을 잃었다. 하지만 부딫힌 사내는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 사내는 그대로 그녀의 양손을 붙잡았다.

 

“…에엣?”

 

갑작스레 양손을 포박당한 그녀는 손목에 느껴지는 강한 악력에 신음을 흘렸고 부딪힌 인상이 험한 사내는 그대로 그녀의 손을 이끌어 어느새 옆에 달려온 승합차에 그녀를 던졌다. 그러자 승합차 안에 대기중이던 남자들이 그녀를 받았고 그녀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약물을 적신 헝겊이 그녀의 호흡기를 막자 그것의 향이 그녀의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간단하군, 철수한다.”

 

소녀를 던진 사내는 자신 역시 승합차에 타기 위해 걸음을 돌렸지만―

 

꽈앙

 

사내는 의식이 날아갈 정도의 충격을 관자놀이에 받으며 3M정도를 부유했다가 떨어지며 나뒹굴었다. 흔들리는 시야속에서 보이는 것은 자신이 서있던 곳에 차가운 갈색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다. 그리고 곧이어 승합차가 급하게 출발했고 승합차에 힐끔, 시선을 던지던 그는 지나가던 행인들이 모여드는 것을 확인하고서 아직 의식이 흔들리고 있는 사내의 멱살을 잡고서 건물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가 그를 바닥에 내던졌다.

 

“크윽, 넌 뭐하는 놈이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서 일어선 사내는 골목 입구의 빛을 등진 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자에게 물었고 갈색빛 시선의 남자는 답했다.

 

“…어디로 갔나.”

 

“뭐?”

 

콰득―, 하는 뼈가 부숴지는 어색한 소리와 함께 사내는 자신의 오른쪽 무릎을 내려다 보았다. 그곳에는 본래의 각도를 크게 벗어난체 뒤틀려 바닥에 고꾸라지는 자신의 무릎이 있었고 어느새 자신의 앞에 당도한 갈색머리의 남자는 그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의 짧은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

 

―떨었다. 지금껏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해 오면서 전투에서 한번도 등이 돌린 적 없었을 이 호기롭던 사내는 관자놀이에 아직도 남아 의식을 흔드는 첫 번째 일격과 자신의 오른쪽 무릎을 부숴버린 두 번째 일격에 이내 이빨을 부딫히며 떨고 있었다.…아니, 어쩌면 그 두 번의 충격보다도 지금 자신의 생명 자체가 가지는 존엄성을 깎아내리는 듯한 저 끔찍이도 차가운 갈색 시선이 그를 지금 떨게 만드는 지도 몰랐다. 적어도 그 시선은 지금껏 그가 마주한 어떤 공포보다도 그를 떨게 만들었다.

 

“…다시 묻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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