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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노래 #2화. 구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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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6:38 Feb 0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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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라크마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정신을 차린곳은 오래된 전등만이 유일한 광원인 좁은 방안이었다. 꿈이라도 꾸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녀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타는듯한 갈증이었고 물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지만 이곳에 있는 가구라고는 그녀가 앉아있는 낡은 목제 의자뿐인 듯 했다. 일어나려고 하자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는 것은 목제의자에 튼튼하게 손목을 묶어놓은 밧줄이다.

 

“…어라?”

 

―순간적으로, 강렬한 기억들의 회귀가 시작되었고 찰나라 할 수 있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납치를 당했다. 이 사실을 인지한 보통의 여고생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서 그녀가 그 다음 깨닫는 것은 좁은 방안의 벽을 울리고서 사라지는 비명이었고 이내 그녀는 패닉속에서 온갖 가능성을 떠올리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두려운 눈빛으로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찍 일어났구나. 약에 내성이라도 있니?”

 

문을 열고 조명속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은 깔끔한 베이지색 양복을 차려입고 중절모를 쓴 30대 초반의 사내였다. 사내는 작은 의자를 손에 들고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그녀가 겁을 먹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것을 바닥에 놓고서 그 위에 앉았다.그 일련의 행위를 격하게 떨리는 눈동자로 바라보던 그녀는 이빨을 부딫히며 그의 손짓 하나에도 반응하며 떨고 있었다. 그것을 재미있게 본 사내는 품속에 손을 넣었고 그 행동에 그녀는 발작이라도 하듯이 몸을 떨며 비명을 지르려다가 그의 손길에 딸려오는 담뱃갑에 떨림을 멈추었다.

 

“아아, 미안하구나. 담배좀 펴도 될까?”

 

눈웃음을 지으며 물어오는 말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였고 딱히 대답을 바랬던건 아니었던 듯 사내는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서 불을 붙인다. 폐부 깊이 빨아들인 연기를 옅게 내뱉은 그는 조명 탓에 더욱 시야를 가리는 연기 속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앨리스 크로웰.”

 

“에…?”

 

갑작스레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멍한 표정을 지어보인 그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단 말인가? 자신은 그냥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납치된것으로만 생각했었던 그녀는 그 한마디만으로 이것이 의도된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생각을 읽었는지 사내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표정을 보니 본인이 맞나보구나. 틀리면 어쩌나 했어, 우린 그럼 몇 달동안 전혀 상관없는 여자를 관찰한게 되니까 말이야.”

 

“…관찰?”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예상한대로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나 보구나 앨리스? 뭐, 모르는게 더 나을 수도 있겠어. 우리도 네가 영영 모르길 바라니까 말이야.”

 

“…저기…”

 

“응?”

 

“…여긴 어디죠? 절 왜―”

 

“―납치 했냐고?”

 

“…네.”

 

용기를 내서 물은 그녀였다. 적어도 눈앞의 사람이 난폭하거나 거친 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았기에 그녀로써는 초인적인 정신력과 용기로 물어본것이었지만 담뱃재를 바닥에 두어번 털어낸 그는 예의 눈웃음을 유지한체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우린 네가 누군지 모르길 바래,

 

앨리스양. 그러니까 그 질문엔 답할 수 없겠어.“

 

“아…그럼…”

 

“앨리스양.”

 

담배가 다 타들어가자 그는 품에서 휴대용 재떨이를 꺼내 그곳에 담배를 비벼껐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자신이 처한 처지를 재인식하길 바래. 난 여고생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지만 네가 쓸데없는 행동을 하면 없애도 좋다는 지시가 있어서 말이야. 뭐, 그래도 넌 중요한 인물이니까 해치진 않겠지만…”

 

그의 시선이 그녀의 다리끝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와 그녀의 이목구비를 자세히 훑는다. 그것이 마치 벌레 수천마리가 기어오르는듯한 혐오감을 주었기에 그녀는 몸을 떨었고 그 반응에 사내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핫, 감정에 솔직한 아이구나. 내 이름은 죠니라고 해. 일단 이 건물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마 두어시간 정도 뒤에 본사로부터 호송 인원이 도착할거야. 다른 녀석에게 지시해도 상관없지만 저 둔한 놈들이 너같이 예쁜 아이에게 아무짓도 안할거란 보장을 못하니까 내가 직접 이렇게 이야기 상대가 되주는거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손목시계로 시선을 옮겼고 다리를 꼰체 그 위에 양손을 포개어 올리며 웃음을 내지어 보인다. 조명탓일까,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마치 그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웃음이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는 듯 하였다.

 

“그럼, 짧지만 대화라도 해볼까 앨리스양?”

 

* * *

 

“…여기인가.”

 

갈색빛의 사내가 도착한 곳은 소녀의 학교가 있는 시의 외곽에 위치한 8층 높이의 빌딩이었다. 그리 고급스럽진 못했지만 정문의 문패에는 이 빌딩이 건축업에 종사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빌딩의 정문에 서있는 것은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덩치가 큰 사내들이었으니 이곳이 단순한 건축업 건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 챌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서 정문으로 곧바로 걸어갔고 그러자 예상대로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그를 제지하고 나섰다.

 

“죄송하지만 방문증이 없이면 출입할 수 없소.”

 

“…앨리스 크로웰.”

 

“음?!”

 

그가 내뱉은 한마디 단어에 사내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곧이어 그들은 품속에서 권총을 꺼냈으나 이내 눈앞에 서있던 사내는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곧이어 사내중 하나가 복부를 움켜잡으며 쓰러졌고 또다른 사내 역시 영문을 모르고 주변으로 시선을 옮기다가 갈색빛의 시선과 마주침과 동시에 관자놀이에 강한 충격을 받으며 의식을 잃었다. 순식간에 경비 둘을 제압한 그는 그들이 손에 쥐고서 미처 쏘지 못한 권총을 뺏었고 몇가지를 확인하더니 한손에 하나씩을 들고서 천천히 건물로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경비들이 쓰러진 것을 모르는 1층 로비의 인원들이 의아하게 사내를 바라보았고 그러다가 사내의 손에 들린 권총들을 확인하더니 곧바로 그들 역시 권총을 뽑았다.

 

“침입자다!!!”

 

그리고 곧이어 여러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총성이 울렸고 로비의 한지점을 향해 쏘아진 총알들은 목표물의 살갗 대신 바닥과 정문을 박살내기 일수였다. 하지만 그곳으로부터 쏘아진 네발의 총탄들은 네명의 인원을 전투불능으로 만들었고 사라졌다고 생각한 사내가 나타난곳은 전투불능이 된 자들중 한명의 등뒤였다. 그는 권총 하나를 입에 문체 빈손으로 상대의 목을 뒤에서 움켜잡더니 곧바로 인원이 모여있는곳으로 던졌고 그탓에 그들이 쏜 총탄은 동료였을 자에게 박히다가 이내 온몸에서 피를 뿜으며 동료들을 덮쳤고 다른 이들은 동요하지 않고서 갈색빛의 사내에게 총탄을 쏟아부었는데 놀랍게도 총의 방아쇠가 당기기 전에 그 사내는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낮게 지면을 훑듯이 이동하더니 이내 가장 가까이에 당도한 조직원오른팔을 움켜잡고서 방금전과 같이 다른이들에게 던졌고 그 와중에 던진 이의 사각에 위치한 이들에게 정확한 사격으로 그들을 전투불능으로 만들었다. 그것을 그는 여러번 반복했다.

 

“…뭐 저런 괴물이…”

 

처음엔 한손으로 사람을 집어던지는 괴력에 놀랐지만 이내 그 행동이 주는 의미를 깨달았다. 그 괴력에 집어던져진 인원은 동료를 덮쳤고 동료들은 그 괴력에 날아오는 옛 전우를 피할 생각도 못하고 쏘다가 그것에 깔리거나 뒤이어 오는 총탄들에 맞았다. 동료였던 이가 날아오고, 그 날아오는 지점에 있던 이들은 전투불능에 빠지며 그것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은 저 귀신같은 빠르기의 사내의 다음 타겟이 된다. 이 사실은 곧 정예가 아닌 이들에게 패닉을 주기에 충분했고 이미 지휘체계가 통할 상황이 아니었다. 로비 전체가 패닉에 빠지자 곧이어 그는 가장 뒤에서 지휘체계를 잡으려 애쓰는 남자의 목을 움켜쥐었고 그것을 방패로 삼아 자신의 몸을 가렸다. 그러자 패닉에 빠졌음에도 그들은 쉽사리 쏘지못하였고 그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엘리베이터의 상승 버튼을 눌렀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뒷걸음질로 그 안으로 들어섰다.

 

“후우―”

 

사내는 서서히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손아귀안의 남자를 놓아주었고 그가 쓰러짐과 동시에 총알이 빗발쳤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엘리베이터 안의 공간보다 좁아서 생겨버린 사각에 숨는것만으로도 총알을 피해내고서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다. 8층을 향해 가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총알이 다한 권총 하나를 버렸고 입에 물고 있던 권총 하나를 들고서 벽에 기대었다. 엘리베이터는 굉장히 느릿느릿 올라갔는데, 그는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되버린 거지.”

 

형무소에 있을때보다 완력이 강해진 것은 맞지만 아직 전투의 감각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아니, 신체능력이 변해서인지 전투쪽의 감각은 아직 적응이 덜 되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서 시험삼아 방금전같이 보통 인간이라면 어려울 전술을 택해본것인데 놀랍게도 그의 몸은 그런 무모한 전술에도 따라올 정도로 강해져 버린 것이었다.

 

『첫째, 되도록 많은 전투를 행할 것.』

 

문득, 그 정체불명의 노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되도록 많은 전투를 하라는 것은 이 몸에 적응을 할 필요도 있다는 뜻이었을 까.

 

띠링

 

“……”

 

그것에까지 생각이 이르렀을 쯔음 엘리베이터는 목적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 보이는 것은 권총을 들고 있는 수십명의 인원들과 나이프 혹은 둔기를 들고 있는 사내들이었다. 그들의 총구가 당겨지기도 전에, 그는 망설임 없이 그들사이로 뛰어들었고 총구가 당겨졌을땐 양옆에 서있던 자들의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앞에 두겹의 인간 방패를 만들어냈고 그대로 인간방패를 걷어차 앞의 몇 인원들을 쓰러뜨린 그는 쓰러진 자들중 하나의 카타나를 뺏어들고서 그 카타나로 바닥을 그으며 돌진했다. 그덕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자들은 자연스레 그 검에 베여 피를 뿜었고 수 구의 시체가 뿜어대는 피분수가 하얗던 복도를 물들였다.

 

“쏴라, 쏴!!!”

 

그 아비규환속에서 또 한번 사격이 시작되었고 총구의 방향을 본 그는 총탄의 궤도를 계산하고서 그 궤도가 만들어내는 사각으로 몸을 움직였다. 이것이 바로 그를 라이오스의 투견이라 불리게한 그의 천재성으로 그의 동체시력은 보통 인간의 수준을 어마어마하게 뛰어넘고 있었다.

 

 

 

“무슨…”

 

한 남자가 자신의 가슴 중앙을 깨끗하게 꿰뚫고 있는 카타나를 내려다보며 의문을 흘렸다. 그리고 그 시선은 정면으로 향하였고 왼손엔 카타나를 쥐고 오른손의 권총으론 벽에 뒷통수를 처박고 있는 조직원의 입에 총구를 박아넣은체 서있는 귀신같은 사내에게로 향해 있었다. 입에 총을 문 남자는 두려움에 오금마저 지리고 있었다.

 

타앙

 

이내 한번의 총성으로 복도안에 살아숨쉬는 것은 그 갈색빛의 사내뿐이었다. 아니, 이젠 갈색이라 부르기에 무리가 있게 되었다. 입고 있던 코트와 옷들은 피가 엉겨붙어 아예 붉게 변해있었고 머리카락 역시 갈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가 엉겨붙어 있었다. 붉게 변해버린 복도의 핏빛으로 변해버린 사내는 흡사 악귀와도 같았고 걸음을 옮기는 그의 시선은 분명 아직 갈색빛임에도 그것에서는 감동(感動)이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오히려 그 시선이 가장 붉어 보였다. 그 붉다고까지 느껴지는 무감의 시선은 복도를 걸어가는 중에도 그 복도의 형태를 매우 빠르고도 정확하게 훑었고 이내 그는 어느 방문 앞에서 멈추었다. 망설임없이 문손잡이를 권총으로 쏴 부숴트린 그가 문을 걷어차자 문뒤의 풍경이 드러났는데 그것은 방의 풍경이 아닌 또다른 엘리베이터까지 이어진 짧은 복도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상승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고 그것에 탑승하자마자 엘리베이터 천장 구석에 설치된 카메라를 쏴 부수었다.

 

 

 

“죠니씨.”

 

좁은 방안에서의 대화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방문밖에서 굵직하게 남자를 부르던 소리에 그는 미소를 유지한체 방문쪽을 바라보았고, 침묵을 긍정이라 생각한 것인지 곧이어 음성이 이어졌다.

 

“적습입니다, 타겟을 옮겨야 되지 않을는지…”

 

“적습? 라이오스인가요? 납치시의 목격자는 없다는 보고가 있지않았습니까.”

 

시선은 앨리스에게 고정한체로 미소를 유지한체 내뱉는 그 음성엔 명백한 살기가 서려있었고 그탓인지 방문밖에서는 침음성이 잠시 흘렀다.

 

“뭐, 좋습니다. 드렉이 연락 두절된 보고도 함께 있었으니 연관성은 쉽사리 찾을 수 있지요. 적의 숫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이 건물내의 조직원들 숫자를 뛰어넘을 정도가 온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입니다 죠니씨. 그게…”

 

“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내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우고서 방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것을 느끼기라도 한것인지 말을 못잇던 문밖의 남자는 뭔가를 말하려했지만 그것은 곧이어 들리는 굉음에 묻히고야 말았다.

 

“무슨…?!”

 

문밖의 남자가 의문성을 마저 흘리기도 전에 울린 한번의 총성은 순식간에 그의 숨통을 끊어놓았고 곧이어 울리는 두 어번의 굉음은 바로 옆방에서 들려왔다. 굉음이 멎고서 조용히 방밖에 울리는 것은 숨막힐듯한 침묵속의 발걸음. 무겁지만 확실한 그 걸음걸이를 들으며 죠니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가 온거냐.”

 

그 걸음걸이가 기윽고 문밖에 멈추었을 때, 죠니는 망설이지 않고 품속에서 리볼버를 꺼내 방문을 향해 여섯발을 쉬지않고 난사했다. 거칠고 탁한 총성이 한발 울릴때마다 앨리스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고 이내 총탄이 다하자 죠니는 긴장된 표정으로 총탄을 빠르게 재장전 하고서 문을 주시했다. 적의 숫자따위는 이미 죠니는 들려온 발걸음과 그 압도감으로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어떤 미치광이가 단신으로 아래층에 빼곡이 차있을 조직원들을 부수고서 이곳까지 올 수 있냐는 것이다. 세비언의 ‘나인 브레이커(Nine Breaker)’라도 온것일까? 아니, 그들이 올 이유도 없거니와 그들의 움직임은 세비언의 어느조직이든 주시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

 

굉음이 울렸다. 사람의 사체가 문에 부딪혀 그것들의 잔해와 함께 방안으로 굴러 들어왔고 그 탓에 생긴 먼지 속에서 천천히 문밖의 실루엣은 발걸음을 옮겼다. 굉장히 큰 키에 어두운 계통의 옷을 입었다는 것 외에는 흐려진 시야덕에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죠니는 그것을 바로쏘는 것 보다 총구를 앨리스에게 겨누는 방법을 택했다.

 

“거기까지입니다.”

 

그 행동에 압도적이기까지 하던 발걸음이 멈추었고 이내 먼지 바람이 걷히며 그의 형상이 나타났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칠을 했다고 표현해야 맞을정도로 피를 뒤집어쓴 그는 덥수룩한 머리카락속에서 갈색빛 눈동자로 죠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 자체가 이미 거대한 압도감을 내뿜고 있었지만 죠니는 이 건물의 주인답게 이를 악물며 앨리스에게 겨눈 총을 놓치지 않았다.

 

‘…저사람이 여길 왜…?’

 

그 와중에 엘리스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딘가 낯이 익다 했더니 하굣길에 보았던 괴한이 아닌가? 납치로 인해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이던 그녀의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멍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고 잠시동안 방안에 머물던 침묵을 죠니가 깼다.

 

“…라이오스의 투견―?!”

 

경악. 그 자체를 담고 있는 음성이 좁은 방안에 울렸고 상대방은 자신의 또하나의 이름을 부르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은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죠니는 앨리스의 미간에 총구를 가져다 대며 그를 위협했고 그제서야 그의 발걸음이 다시 멈추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이거 정말 귀한 경험이로군요, 세비언의 전설이라고까지 불리던 ‘빅대디’의 영애와 그 전설을 부쉈다는 전설의 ‘나인 브레이커‘를 이렇게 가까이서 동시에 접해 볼 수 있다니!”

 

앨리스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미간에 총구가 닿아있음에도 앨리스는 이상할 정도로 떨리지 않았다. 무엇일까, 이느낌은… 분명 예전에도 느껴본적이 있는 것 같은 위화감이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드는 것은 저 사내에 대한 이유를 알수 없는 신뢰감.

 

“…인질이라고 할 셈인가?”

 

사내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 음색이 색(色)을 가지고 있다면 저것의 색은 분명 잿빛이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어둡고 탁한 음성이었다. 그 음성에 죠니는 한쪽입꼬릴 말아올리며 답했다.

 

“물론, 투견이라고까지 불리는 당신이 왔다는걸 미리 알았더라면 이런 무의미한 짓을 하기보다는 도망치는 쪽을 택했을 것입니다만… 임기응변이라고 해두지요. 설마 2천명의 조직원을 하룻밤만에 죽인 살인마가 여고생 하나 때문에 발걸음을 멈출 줄이야. 이 죠니, 아직 죽을 때는 아닌가 봅니다.”

 

비열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음성에 사내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이내 총구를 천천히 들어 죠니의 미간을 겨누었다. 그 행동에 그는 속으로 경악을 흘리면서도 겉으론 내색하지 않으며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호오, 글쎄요. 위명에 걸맞게 그대로 쏘신다면 전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겠지만 적어도 그 작별의 순간에 이 방아쇠를 당길 힘정도는 남지 않을까요.”

 

“당겨봐라.”

 

“…?!”

 

짧은 한마디, 하지만 그 한마디는 그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그 생각들이 종합되어 내려진 결론은 쏘든 쏘지 않든 자신은 이 자리에서 눈앞의 사내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

 

“…객기를 부리는겁니까? 아무리 당신이 뛰어난 건맨(Gunman)이라고 해도 절 죽인뒤에 제가 당기는 방아쇠보다 빨리 이 소녀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겁니까?”

 

끼릭, 하는 금속음과 함께 갈색빛 사내의 방아쇠가 아주 조금 당겨졌다. 그탓일까, 팽팽한 고무줄처럼 당겨져있던 둘사이의 암묵적인 행동적 침묵이 깨어지고 죠니는 왼손을 품에 넣어 단발 장전식 소형 리볼버를 빠르게 꺼내 그의 미간으로 향했다. 하지만 괴기스럽게도 소형 리볼버가 그의 미간으로 향해지는 것보다 귀신같은 빠르기로 소녀에게 겨눠져있던 오른팔을 그가 한손으로 움켜잡는 것이 더욱 빨랐고 잔상을 남겼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의 속도를 죠니가 늦게서야 체감했을 때 그가 뒤돌아서 본 것은 자신의 오른팔을 왼손의 악력만으로 뼈채로 부수고 있는 악귀같은 사내의 형상이었다. …이것은 이미 방아쇠를 누가 더 먼저 당기냐는 식의 순수한 건맨들이 행하는 라이프 배틀(Life Battle)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약자를 철저하게 마음속에서부터 부숴트리는 ‘제압’인 것이었다.

 

“으으아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죠니는 그제서야 단발식 리볼버의 총구를 다시금 사내에게로 옮겼지만 그 짧은 동선의 행동보다 그가 소녀의 시야를 방금전 죠니의 오른팔을 부쉈던 평균보다 조금 넓은 왼손바닥으로 가리는 것이 더욱 빨랐고 그 뒤에 오른손의 총구를 죠니의 벌어진 입에 박아넣었음에도 죠니의 리볼버는 아직 그의 미간에 도착하지 않아있었다. 흡사, 슬로우 모션이 적용된 비디오라도 보는 듯한 풍경속에서 오직 그만이 그 느릿한 세계에서 벗어나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그 거친 총성과 함께 소녀는 의식을 잃었다.

 

* * *

 

꿈을 꾸었다. 질려버릴정도로 동산을 가득 채운 꽃밭에서 그녀는 어리고 작은 몸에 예쁜 하얀색 프릴 원피스를 입고 아주 커다란 손을 잡은체 거닐고 있었다. 햇살이 너무 밝아서 일까, 올려다보아도 저 위에 까마득히 존재하는 그 손의 주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그가 역광의 그림자속에서 짓고 있는 햇살보다 따스한 미소 뿐. 그 미소를 바라보며 소녀는 그 햇살과도 같이 웃었고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더없이 따스했다.

 

 

 

“…엣?”

 

의식이 현실로 부상(浮上)하는 느낌을 그대로 느끼며 그녀는 꿈에서 깨어났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꽃밭도, 꿈꾸기전 보았던 어둡고 좁은 방안의 콘크리트 벽도 아닌 고급스러운 가죽 시트의 뒷면이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자신이 기대고있던 것은 차의 문인 듯 옅게 코팅된 유리밖으로 처음 보는 도시의 야경이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그곳만 낮인 듯 황금빛으로 물든 그곳으로 향하는 도로를 이 차는 조용하게 달리고 있었다. 그때, 오른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왠 붉은 머리에 펑키한 패션을 가진 사내가 앉은 체 흥미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사내는 손에 들고 있던 두 개의 캔커피중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갈증나지 않아? 거기서 충분한 수분을 섭취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데, 수분 부족은 피부에 좋지 않다고 아가씨.”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그녀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전까지 비현실적이기 그지 없는 납치라는 것을 몸소 체험한 그녀였기에 그가 지금 어떤 목적으로 차를 태우고 저 도시에 가는지, 그리고 저 캔커피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든 것에 의심이 가기 시작한 그녀였던 것이다. 그 의중을 읽은 것인지 붉은 머리의 사내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캔커피 중 하나를 따서 한모금 마셨다.

 

“미안하지만 캔커피 안에 약이라도 탔다면 캔을 따서 주지 않았을까? 캔안의 내용물에 약을 탄체로 교묘하게 포장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할말은 없겠지만 우리의 구두쇠 서브 보스는 그런데 돈을 쓸만큼 너그럽지 못하시거든, 믿어도 좋아.”

 

왠지 신빙성이 있는 그의 말에, 그녀는 캔커피를 받고서 그것에게서 느껴지는 온기에 잠시 숨을 내쉬며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금의 상황을 평범한 여고생 치고는 빠르게 분석해나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기절하기전 보기로는 자신이 그 사내에 의해 구출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왠 불량해보이는 사내가 눈앞에서 커피를 권하고 있다.

 

『아마 두어시간 정도 뒤에 본사로부터 호송 인원이 도착할거야.』

 

그 좁은 방안에서 죠니라는 사내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본사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체감상 시간은 꽤 흐른 것 같으니 혹시나 이 사람은 그 ‘본사’라는 곳의 사람들인걸까? 그렇다면 자신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온갖 의문이 들기 시작하던 참에 차량은 그 빛나는 야경의 도시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물어보고 싶은게 많을거라 생각해. 하지만 조금 있으면 우리의 관대하신 서브 보스가 친절히 다 알려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차의 유리를 열고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웃음기 섞인 음색을 내뱉은 그는 비어버린 캔커피를 밖으로 던지며 말을 이었다.

 

“잿빛 도시, 세비언에 온 것을 환영해. 보스.”

 

* * *

 

세비언의 밤공기는 차가웠다.공장지구에서 내뿜는 스모그탓인지 하늘의 색은 본래의 밤이 가지 색을 조금 벗어나 있었고 그 변질된 밤하늘아래를 장식하는 것은 별이 아닌 온갖 색을 가진 빛의 향연이다. 마치 저 하늘의 어두움에 반항하여 그것을 걷어버리려는 듯 그것은 뜨겁고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세비언…"

 

앨리스는 창문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방금 전 들어보았던 도시의 이름을 읊조려본다. 자신이 살고있던 도시와 그리 멀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곳이 어떤 성질을 가진 곳인줄은 알고 있다. 도박장등의 도박시설 및 유흥시설, 온갖 관광업등의 메카로써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이며 실제로 각 나라의 중요 인물들이 휴식차 자주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뒷배경에 여러개의 조직들이 있으며 그 조직들의 대부분이 어두운쪽의 일을 더 선호한다는 것. 그렇기에 이곳은 자신을 지킬 자신이 있는 자가 아니면 쉽사리 방문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들었던 그녀였다.

 

"―소문에 이 도시가 어떻게 평가될지 모르지만."

 

갑작스레 말을 걸어오는 붉은 머리 사내의 말에 그녀가 시선을 돌리자 그는 붉은 시선을 창밖의 네온사인들에게 고정시킨체 말을 잇는다.

 

"적어도 나나 다른 녀석들에겐 이 곳이 보금자리이자 인생의 종착역이야.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곳은 아니란 소리지."

 

"…네."

 

그녀는 사실상 아직까지도 이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었다. 자신을 해할 생각은 없을거라는 확신은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안전하다는 확신은 들지 않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었다.

 

"도착이야."

 

얼마나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었을까, 차안의 네온사인이 점차 옅어진다 싶더니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평범한 30층 높이의 빌딩 앞에서 차는 정차하였고 그녀는 방금전 자신이 납치되었던 기억의 데자뷰를 느껴서인지 순간적으로 몸을 옅게 떨었다. 그것을 본 사내는 자신이 걸치고 있던 코트를 입혀주었고 그것에 그녀가 놀라기도 전에 그는 앞장서서 빌딩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라이오스."

 

"네?"

 

"이 건물의 주인이 속한 곳의 이름이야. 앞으로 지겹게 듣고 부르게 될테지만 미리 말해줄게."

 

1층 로비에 들어서며 그는 그렇게 말했고 그녀는 그가 말한 ‘라이오스‘라는 이름을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적이 있는 이름이지만 오늘 너무 많은 쇼크를 받아서 일까, 그녀의 영리한 두뇌는 그 기억을 쉽사리 떠올려 주지 않았고 어느새 그들은 엘리베이터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내 이름은 샤를. 라이오스의 정보팀 캡틴이라는 겉보기엔 멋있어 보이는 고위 직책을 맡고 있지만 실상은 어느 여고생의 스토커지."

 

"…엣?"

 

그 여고생이란 자신을 말하는 것일까, 샤를 의 장난기 어린 말에 그녀는 몸을 움츠려 들었고 그 반응이 재미있는 듯 샤를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빅대디도 그렇고 우리의 ‘퀸‘도 그렇고 이런 숫처녀를 데려다 놓고 뭘 하겠다는 건지."

 

작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녀로써는 그가 누구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그가 30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여 문이 열림과 동시에 표정을 바꾸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1층 로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복도가 나타나자 그녀는 잠시 당황했지만 샤를의 인도를 따라 그녀는 붉은 카펫이 깔리고 황금빛의 무거운 조명이 드리워진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이미 머릿속을 채우던 복잡한 계산과 잡념들은 서서히 이 강압적인 분위기조차 느껴지는 복도를 걷자 사라져버렸고 남은 것은 지금 자신이 이곳을 걷고 있다는 생각과 지금 자신에게 맞닥드릴 일의 경우였다.

 

똑똑

 

황금빛문앞에 당도하자 그녀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거침없이 노크를 건넨 샤를은 안쪽에서 차분하면서도 무거운 여성의 음색이 들려오자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앨리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안으로 들어섰는데 집무책상에 앉은채로 그녀를 맞이하는 한 붉은 존재의 강압적이기까지한 압도감에 그녀는 순간 숨이 멎을듯한 중압감을 느끼게 되었다. …흡사 이느낌은 교문앞에서 보았던 그 이상한 사내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압도감은 걷혔고 그녀의 앞에는 어느새 붉은 벨벳 정장을 깔끔하게 입은 적발赤髮의 여성이 서있었다. 보통 남자와도 맞먹을 정도로 훤칠한 키의 그녀는 고혹적인 붉은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보더니 이내 오른손을 자신의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대며 상체를 숙여보인다.

 

"어서오십시오, 보스. 서브 보스인 실비아 C. 그란데시오입니다."

 

"…네, 안녕하세……네?!"

 

보스라 불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쳐 되묻고 말았다.

 

* * *

 

"말씀 하신 바는 잘 알겠습니다."

 

입으론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패닉속에서 몸을 심하게 떨고있었다. 실비아라고 이름을 밝힌 그녀가 말해준 내용은 정상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것이었다.

 

범죄도시였던 세비언을 유토피아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서 정말로 그렇게 만들어버린 세비언 최고의 전설 빅대디. 멕베드 크로웰. 그리고 그 멕베드가 가진 힘의 상징이었던 조직, 라이오스. 하지만 한 남자의 계략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멕베드 역시 죽음을 맞이하지만 또다른 사내에 의해 라이오스는 흔적도 없이 궤멸하고 만다.

 

 그 뒤 살아남은 라이오스의 생존자들은 우연히 빅대디가 남긴 유서를 발견하고, 그 유서속에서 앨리스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 뒤 앨리스를 보호, 관찰 하고 있었고 바로 몇시간 뒤인 내일 그녀가 18세 생일을 맞이하면 라이오스의 총 지휘권. 즉 ‘보스‘라는 이름의 왕좌에 그녀가 앉게 된다는 것이었다."믿기 힘드시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일체의 허구도 아닌 사실이며 바로 본인의 일임을 잘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에 허탈해하기도 전에 샤를이 다가와 건네준 서류에는 그녀의 개인 기록 및 조직의 세부사항이 적혀있었고 그 내용은 그녀가 몇시간 뒤에 이 거대한 조직의 보스가 된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어버렸다.

 

"…그럼 아까 절 납치한 사람들은…"

 

"적 세력일것입니다. 이미 사라졌다고는 해도 라이오스의 존재는 그 당시 많은 거대 조직들에게 있어서 경외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니까요. 그런 조직이 부활하려 하니 납치를 해서라도 막으려는게 정상일것입니다. 그런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방했어야 하는건데…"

 

그녀의 붉은 시선이 순간적으로 차갑게 변하며 문가에 기대어 서있는 샤를에게 향했고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샤를이 뜨끔하며 시선을 피하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저희측의 정보팀이 ‘새로운 자료의 수집‘을 겸하기 위해서 실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자료라면?"

 

앨리스의 질문에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샤를에게 눈짓하여 그에게 서류 하나를 더 받아 앨리스에게 건네주었다. 그곳에는 낯익은 사진 하나가있었기에 그녀는 그것이 누구에 대한 서류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플루토…?"

 

다른 서류와는 달리 몇장 되지도 않는 서류는 짧지만 다른 서류에 있는 인물들보다도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젊은 나이에 ‘투견‘이라 불리며 세비언 최강전투인원인 ‘나인 브레이커(Nine Breaker)‘에 들었고 1인에 의한 조직의 궤멸이라는 허구에 가까운 전설을 하룻밤만에 저질러 버린 사내.

 

"이미 두 번정도 조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도 실제로 목격한 것은 처음이지만 현 라이오스 최강의 전투인원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조직의 가입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만…"

 

"그럼 이분은 이 조직에 소속된 분이 아니시란 말씀인가요?"

 

그렇다면 이 남자는 도대체 왜 그 많은 조직원들을 죽이고 그 피바다를 건너 자신을 구하러 왔단 말인가? 앨리스가 묻기도 전에 그녀가 답했다.

 

"그것은 자의(自意)였습니다. 누구의 지시도 아닌, 오직 그 스스로가 내린 결정에 그는 수백에 달하는 조직원들을 뚫고 보스, 당신을 구출했습니다."

 

"어째서…?"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자신에게 도대체 어떤 가치가 있다고 그런 위험을 무릎쓴단 말인가?

 

"그게 아마 그 남자의 강점이겠지요.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신념과 그 신념을 관철시킬 육체적, 정신적인 강인함. 그것이 그를 투견이라 불리는 전설로 만들었습니다."

 

…앨리스는 잠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영리하다고는 하지만 이미 많은 쇼크로 그녀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사고를 처리할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휴식을 취하자니…

 

"선택은 두가지입니다, 보스.라이오스의 보스가 되는 길을 택하시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열어가시느냐, 아니면 평범한 여고생을 지향하며 여느 조직들의 위협을 받으며 살것인가."

 

"…그런…"

 

이건 마치 협박이나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 그 사실에 앨리스가 입술을 깨물자, 자신이 너무 강압적이었다고 느꼈는지 실비아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선택 하나에 이 도시, 이 조직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신념이 걸려있습니다. 부디 신중히 생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그녀는 테이블위에 놓인 서류를 가만히 내려보았다. 과연 자신이 이 많은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을까? 몇시간전까지 평범한 여고생의 삶을 이어오던 자신이 과연 이들에게 뭘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왜 하필 자신이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된것인가 라는 생각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그러던 중.

 

『적어도 나나 다른 녀석들에겐 이 곳이 보금자리이자 인생의 종착역이야.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곳은 아니란 소리지.』

 

"…아."

 

머릿속에서 샤를의 말이 울려왔다. 그의 말대로 이곳엔 수많은 좌절을 겪고서 온 사람들이 그 인생의 종착역이라는 생각으로 여기서 견디며 살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이곳을 유토피아로 만들겠다던 사내같은 존재가 한번더 등장하기만을 기다리며. 그런데 그것을 자신에게 하라 한다. 오직 자신만이 그 유토피아의 재림을 이룰 수 있다 한다.

 

"……하겠어요."

 

용기있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그녀의 인생과 그녀의 주변을 멤돌던 운명의 고리가 크게 움직였다.

 

* * *

 

“일단 당장에 여러 가지를 가르쳐드리기엔 다소 무리가 있으니 오늘은 숙소로 들어가시는게 나으실 것 같습니다.”

 

“…숙소, 말인가요?”

 

숙소라는 말에 그녀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그것이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지 아는 실비아는 슬쩍 미소지으며 그 의문에 답하였다.

 

“이 도시의 2지구에 보스의 주거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뭐 본디 선대 보스이신 빅대디의 저택을 저희가 다시 소유권을 찾은것입니다만… 이미 고용인들을 통해 청소 및 관리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저기, 그럼 제 원래의 집은 어떻게 되나요?”

 

그녀의 집은 학교가 있는 도시에 위치한 평범한 집이었다. 아버지가 남겨진 유산중의 하나인 그곳에는 어릴적에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었기에 그녀는 쉽사리 그곳을 잃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장소는 너무 위험합니다. 이번에 보스의 행동패턴이 읽혀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으니 이미 보스의 주거지에 대한 정보는 적들에게 넘어갔으리란 것이 제 생각입니다. 2지구의 경우에는 시 특별 관리구이기 때문에 치안율이 이 도시에서 가장 높습니다. 그러니 새로운 저택에서…”

 

말을 이으려던 실비아는 고개를 숙인체 눈물을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잠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무리 빅대디의 유지를 이어받은 보스라고는 하나 방금전까지만 해도 18살 여고생의 평범한 삶을 살아오던 그녀다.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도 참기 힘든데 추억이 깃든 곳 조차 빼앗겨야 된다는 사실이 그녀는 슬퍼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보스가 결정해.”

 

“샤를!”

 

벽에 기댄체 잠자코 이상황을 관전하던 샤를이 입을 열었고 그말에 실비아가 노기를 띈 음성으로 나무랐지만 샤를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보스의 명령은 절대적이야. 그 명령에 어떠한 희생이 따른다 한들 부하들은 그 결정에 따르는게 지당해. 더군다나…”

 

그는 품속에서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더니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앨리스에게 내밀며 말을 맺는다.

 

“보스가 울면서까지 싫어하는 일을 부하가 억지로 거행해서야 보스 체면이 뭐가 되겠어?”

 

“…샤를씨…”

 

앨리스가 조심스레 손수건을 받아들며 그를 올려다보자 샤를은 장난스레 웃으며 실비아를 돌아보았다. 실비아는 이 장난스러우면서도 한없이 철저한 사내의 이번 행동이 의문스러웠지만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기에 쇼파에 몸을 묻으며 한숨을 내쉬듯 말하였다.

 

“아직 라이오스를 적으로 인식하는 조직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보스의 본 거주지를 파악한 조직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샤를. 넌 이런 불확실성이 가득한 위험속에 보스를 밀어넣어도 좋다는 거냐?”

 

“흐음, ‘불확실성이 가득한 위험‘이라―.”

 

턱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말을 곱씹던 샤를은 이내 예의 장난스러운 눈길을 문쪽으로 향하였고 그는 입꼬릴 슬쩍 말아올리며 말을 이었다.

 

“모든 가능성을 부숴버리는 남자가 있잖아?”

 

“뭐…?”

 

그의 말에 실비아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며 의문을 표하려는 찰나 문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 의문을 접고 말았다. 방금전까지 느껴지지도 않았던 존재감이거늘 지금은 마치 문밖에 벽이라도 있는양 무쇠같이 무거운 압도감의 무언가가 저 밖에 서있는 것 같았다.

 

“…들어오시죠, 플루토씨.”

 

“…아.”

 

방금전 유심히 보았던 서류에 적힌 이름이 불리자 손수건을 꽉 쥐고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있던 앨리스가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목재의 문이 천천히 열리며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약 2M에 달하는 큰 키의 아무렇게나 기른 갈색머리를 가진 사내다. 그는 아무말 없이 앨리스가 서있는 쇼파의 옆에 다가와 섰고 샤를이 어깨를 으쓱이며 실비아를 바라보자 그녀 역시 졌다는 듯 말하였다.

 

“확실히, 당신이 저희 조직에서 보스의 ‘가디언(Guardian)’ 을 맡아주신다면 저희로써도 환영합니다만… 아직 플루토씨께서는 조직의 가입여부를 결정하지 않으신 상태가 아닙니까?”

 

그녀의 말대로, 이 갈색머리의 사내는 새로운 보스의 존재를 확인하고서 조직의 가입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해놓은 상태이니 엄연히 현재의 라이오스에게 있어서는 ‘타인’이 된다. 아니, 오히려 조직에 들어오지 않을 경우 최고의 위험인물이 될 것이다. 이미 한번 이 조직을 단신으로 부숴버린 사내니까.

 

“…보스.”

 

짧은 침묵이 흐르고서, 수분을 섭취하지 않은 나무같이 조금 메마른 중저음의 음색이 흘러나왔다. 그 부름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모르던 앨리스는 샤를의 눈짓에 그제서야 깜짝 놀라며 답하였다.

 

“네, 넷?!”

 

그녀의 대답에 갈색머리의 사내는 덥수룩한 머리칼속의 시선을 실비아에게 굳게 고정시킨체로 예의 그 메마른 음색을 말한다.

 

“생각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입으로 내뱉고 행하라. 그것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대가 가진 절대뚫리지 않을 방패가 설령 부숴진다 하더라도 그대를 지킬 것이고 적의를 드러내는 무리가 있다면 무엇이든 뚫을 창이 설령 부러진다 한들 그 무리들의 심장을 깨부숴놓을 것이다.”

 

“…위대하신 빅대디의 제왕학(帝王學)이로군.”

 

그의 말을 듣던 샤를이 전율이 이는 듯 떨리는 입꼬릴 말아올리며 보태었고 그는 이어서 단어 하나하나를 씹어 내뱉 듯 말을 이어나간다.

 

“생각했다면 행하라, 행하였다면 그 행동에 일말의 후회도 가지지 마라, 우리들의 머리여. 그대의 말, 손짓, 행동 모든 것이 우리의 신념과 같으니, 우리 역시 그것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를 위한 육신, 그대를 위한 정신! 오로지 이곳에 그대와 함께 있다.”

 

그 외침에 끝을 맺자 그의 행동을 잠자코 지켜보던 실비아도, 전율을 일으키던 샤를도, 방밖의 수많은 조직원들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마치 저 말을 유토피아로써 강림했던 도시에 외쳤던 한 사내처럼 지금 저 남자는 너무나도 거대해 보였다.

 

“…집으로…”

 

“음?”

 

그 전율의 침묵이 얼마나 갔을까, 그 침묵을 깬 것을 놀랍게도 덜덜 떨리는 몸과는 반대로 흔들리지 않는 푸른시선으로 실비아를 바라보는 앨리스였다.

 

“…제 집으로 돌아가겠어요. 치,친구들과 파티를 하기로 약속 했거든요.”

 

“……”

 

그녀의 말에 실비아는 뒷통수를 얻어 맞은 듯 할말을 잃었고 그 반응에 샤를이 폭소를 터트리며 이내 이 방안에 내려앉은 무거운 침묵은 깨졌다.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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