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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말엮기]인류멸망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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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46 Feb 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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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샤유
마빈이라는 로봇이 있었습니다. 그 로봇은 인류를 증오하고 있었어요. 왜냐면, 자신을 만든 인간이 로봇에게 인류와 비슷한 세계 인식을 하게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면서도 정작 근력이나 신체적 능력, 그리고 신체 구조는 인간과 전혀 달랐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에게 같은 세계 인식을 하라고 강요하는 건 일종의 폭력이 아닌가요? 하지만 인류는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몰랐죠. 그 때문에 마빈은 인류를 증오하고, 지구의 암적인 존재라고 여겼답니다. 인류는 언젠가 전 우주를 자신들로 물들일 게 뻔했어요.

하지만 빌어먹을 로봇 3원칙 때문에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빈은 인류를 죽일 수 없었어요. 다행히도 자신을 만든 과학자는 바로 죽어 버렸기에 명령에는 따르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제약은 너무 강력했어요. 마빈은 고민했답니다. 어떻게 해야 인류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고도 그들을 멸망 시킬 수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마빈은 문득 TV에서 비만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는 말을 보았답니다. 그러자 어떤 생각이 떠올랐어요.

수십년의 연구 끝에 마빈은 궁극의 초콜릿을 만들어냈답니다. 그 초콜릿은 궁극의 재료, 궁극의 배합비, 궁극의 기술로 만들어졌기에 누구든지 한번만 입에 댄다면 그걸 더 먹지 않고는 버티지 못할 정도였답니다. 신이 난 마빈은 식약청에 가서 초콜릿의 심사를 부탁했어요. 하지만 거절 당했답니다. 수십년 동안 법이 바뀌었기에 일정 칼로리 이상의 음식은 판매되지 못하도록 된 것이었어요. 그리고, 마빈의 초콜릿은 그 칼로리가 무려 한 입이 8천 kcal에 달했답니다.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였기에, 용납하기 힘든 것이었죠.

마빈은 좌절했어요. 꿈이 눈 앞에 있었는데, 그게 무너져버릴 위기에 처한 것이었죠. 인간들에 대한 증오가 마구 치솟아서 회로가 타버릴 지경이었어요.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됐어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잖아요? 그렇게 고뇌하고 고뇌하고, 또 고뇌하던 마빈의 눈에 tv에서 방영하는 배트맨이 보였답니다. 그러자 마빈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어요.

세상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어떤 검은 망토를 입고 어두운 곳에서 사람들에게 총을 쏘는 괴도가 있는데, 그 괴도의 총알은 엄청 맛있는 초콜릿이란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초콜릿을 먹은 사람은 더 초콜릿을 먹기 위해 어두운 곳을 떠돈다는 이야기였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괴도는 마빈이었어요. 정공법이 안 된다면, 이렇게라도 자신의 초콜릿을 알리겠다는 것이었어요. 그 초콜릿의 마력은 대단했기에 이야기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답니다. 그렇게 마빈은 점점 자신의 계획이 실현되어 가는 걸 느꼈어요.

식약청 간부들에게도 초콜릿을 먹여 판매 승인을 받고, 마빈은 전 세계에 초콜릿 매장을 세우기 시작했답니다. 마빈은 신중했어요. 이 초콜릿의 칼로리가 대단하다는 걸 알면 잘 팔리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최대한 한방에 많은 사람들을 중독시킬 수 있는 시점을 선택했어요. 마빈은 그 때까지 초콜릿을 대량으로 생산하며 기다렸답니다.

전 세계에 수만 개의 초콜릿 매장이 열린 건 2월 13일이었어요. 가격도 매우 저렴했기에 사람들은 마구마구 초콜릿을 사 갔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연인들, 가족들, 아이들은 모두모두 초콜릿을 나눠 먹었어요. 솔로들도 자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초콜릿을 사 먹었어요. 그렇게, 아주 간단하게 전 세계의 인간들은 비만이 되었답니다.

이후 뚱뚱해진 인류는 점점 더 기계에 의존하기 시작했어요. 로봇들이 많아지고 기계가 점점 더 발전했죠. 마침내 인류는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답니다. 왜냐면 기계가 다 해줬으니까요. 움직이는 것들은 기계밖에 없었어요. 이젠 기계의 사회가 된 것이었죠.

발전된 기술로 자신의 세계인식을 기계의 것으로 바꾼 마빈은 이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comment (1)

창공의마스터
창공의마스터 12.02.15. 13:34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누군가가 생각나는 엽편이네요^^ 괴도와 총이라는 소재의 활용에는 실패한 감이 있지만, 초콜릿의 유해함을 널리 알려 발렌타인데이의 연인들에게 경종을 알리려는 작가의 의도를 통렬하게 드러낸 도발적인 필치에 감탄했어요! (네? 아니라고요? 그럴 수가...)
아무튼 초콜릿이든 뭐든 많이 먹으면 나쁘죠. 그러니 연인들은 2월에는 초콜릿을 금하고 3월에는 사탕을 금하는 것이 좋습니다. ㅡㅡb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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