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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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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11 Feb 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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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Kaleana

 가끔 집이 쓸데없이 크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라면 그림자가 드리운 방 같은건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거진 저택 수준의 집이다보니 결국 쓰지 않는 방들은 모두 어둠이 낀 채로 버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나 혼자 머무르고 있는 이 저택을 밝히겠노라고 방 하나하나에 양초를 밝혀놓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사실 이 저택은 일가 내에서도 골칫거리였다. 내게 이 저택을 물려준 조부는 저택을 파는걸 한사코 반대했다. 그렇지만 이정도 크기의 저택을 유지하자면 응당 있어야 할 고용인을 쓸 여력이 있는 이들은 친척 중엔 없다시피 했다. 굳이 마음을 먹자면 조부의 사후에 팔아치워도 되겠지만, 그렇다고 일가의 눈총을 받으면서 그런 일을 해낼 위인 또한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조부의 생전에도 이 저택의 관리 상태는 부실했다. 조부가 여력을 짜내 고용인 두 명 정도를 쓰기는 했지만, 그정도로는 조부가 머무르는 방 정도를 관리하기도 벅찼다. 이미 오랜 세월을 지나왔다는 저택 여기저기에는 덤불이나 때가 쌓이기 마련이었고, 나는 조부가 고생스럽게 그런 것들을 치워내곤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가 고집스럽게 이 저택을 지켜내려고 했었던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연이 없는 이들이라면 단지 노인의 고집이었을 뿐이라고 비웃을는지도 모르나, 글쎄, 나는 조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연민 때문인지 어떻게든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서 그 이유를 긍정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유를 더듬어 찾아보려고 해도, 결국은 세월이 지나면서 저물어가는 과거의 기억을, 그나마 가장 잘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이 이 저택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도로 추정해볼 뿐이다. 결국 모든 일은 한 노인의 치기 정도로 회귀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치기를 오롯이 물려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조부를 비웃었던 것과 꼭 같은 방식으로 나를 비웃고 있을는지도 모르나, 글쎄, 이젠 그런 것도 별 의미가 없는 시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는 이 저택을 물려받고, 조부가 세상을 떠나자 아직 저택에 남아있었던 두 명의 고용인마저 내보내고 홀로 머물고 있었다. 나 혼자서도 이 저택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저택 이곳저곳은 지금도 풍화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어쩌면 조부가 그토록 싫어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시대의 저묾이 어떻게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까지고 이 저택을 지키면서, 저택에 쌓이는 세월이 저택을 바스라뜨리는 것을 기다리며 지켜볼 작정이었다.
 저택이라는 조건 하나를 제외하면, 내 생활은 그리 궁핍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것이라고 하는 편이 좋았다. 교수의 봉급이란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으나, 홀로 이곳 집에 머무르면서 생활하는 정도에는 차고도 넘칠 양이었다. 저택을 물려받고 나서 나는 저택 근처의 대학으로 옮겼고, 별다른 일이 없다면 지금 이 대학에 끝까지 남을 작정이었다.

 물론, 저택이라는 것의 무게엔 혼자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건물 자체의 유지라거나, 하는 것은 이미 거진 포기했기에 의외로 큰 문제는 못 되었다. 다만 이정도 저택이라면 으레 무언가 값비싼 것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 물론 그런 것은 하나도 없지만 - 모이는 도둑이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굳이 경비원을 고용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도 방비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라 번견 둘을 키우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주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향해 쓸데없을 정도로 짖어댄다는 것이 탈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 저택에 찾아올 사람이 없는 이상 그건 별다른 단점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것하고는 상관 없이, 구석구석 곳곳에 어둠이 깔려있는 이 저택 한가운데에 앉아 저녁을 보낸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못 되었다. 저택은 꽤 울창한 숲에 둘러쌓여 있었고, 촛불 몇개로 방을 밝혀도 창문으로부터 그보다 더 짙은 밤의 대기와 나무의 그림자가 밀려오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회빛으로 가득찬 실내에 앉아 바람에 쓸리는 나뭇가지 소리를 듣고있자면,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럴때는 번견의 침묵조차도 오히려 불길한 전조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이 큰 저택을 여관 따위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든 어쨌건 이 공간을 메울 수만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고. 그에 따라오는 번잡한 일도 많을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사람을 불러들인다는 것이 또한 다른 종류의 불안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서 그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따금 이 저택에 한두 사람 정도가 더 머문다면 기분이나마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떨치기 어려웠다.

 주말이었고, 나는 아침의 느즈막한 시간에 집에서 나와 식사를 해결할 것들을 사러 나섰다. 이 저택을 나서려 정문에 닿자면 꽤나 넓은 정원을 지나야했다. 저택의 관리를 거의 포기했다고는 하지만, 정원만큼은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뒤숭숭하게 풀이 자라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 정원도 쓸데없이 넓어서, 이따금 날을 잡고 풀을 벨 때면 만만찮은 일거리가 되곤 했다.
 어쨌건, 나는 최근 정리해 그나마 말끔한 상태인 정원을 지나 정문을 열었다.

 저택은 인가들에서 떨어져 숲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상점들이 있는 거리에 닿자면 상당한 시간을 걸어야 했다. 자고로 저택을 가지고 있을 정도의 인간이라면 마차라거나, 혹은 요즘 한둘씩 보이는 자동차 따위를 쓰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정도의 여유를 내기는 역시 힘들었다. 아니, 설령 여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다지 달라질 것은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건 어쩌면 내 고집이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부가 한사코 이 저택을 붙잡고 싶어했던 것이 일종의 사치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걸 물려받은 나는 그런 사치들을 밀어내고 싶었다. 그저 단지 풍화를 관조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빵과 버터, 그리고 과일 몇개를 사들고 상가까지 왔던 길을 되짚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한 상점에서 초콜릿을 팔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몇 번 먹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그것이 갑자기 눈에 띈 것은 아마 사치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초콜릿이라는 것도 일종의 사치가 될 수 있다면.
 아마 스스로도 의식적으로 사치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자신이 우스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 끝끝내 조부에게서 사치스러움을 찾아내는 것은 내게도 그에게서 물려받은 사치, 어쩌면 허영 같은 것이 잔재처럼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자신을 조롱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아마 먹지도 않을지 모를 초콜릿을 조금 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저택의 정문에 닿은 길 근처에서 나는 한 여자와 만났다.
 사실 사람이 한 명 돌아다니는 것 정도를 그리 신기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 근처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드문 것은 사실이지만, 어쩌다가 지나치던 사람 하나가 문득 눈에 띈 저택을 잠깐 들여다본다거나,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쨌건 그 여자는 저택을 바라본 채로 우두커니 서 있었고, 나는 짐짓 모른 척 문을 열고 정원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 저택의 주인 되시나요?"
 그제서야 내 기척을 느꼈는지, 내쪽으로 돌아선 여자가 그렇게 물어왔다.
 이제 대충 스무살을 갓 넘겼을까. 약간 밝은 갈색 머리를 한, 예쁘장한 인상의 여자였다. 평범한 천 치마를 입고 있었고, 나는 그래서 그가 굳이 내가 주인인지를 묻는 이유가, 혹시 자신을 고용인으로 써달라는 의사는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굳이 어떤 사람이 입는 옷으로 그를 판단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어쨌건 그런 생각이 드는 자체는 어쩔 수 없었다.
 "맞습니다."
 "혼자 사시나요?"
 혹시 이런 저택이나, 그 저택의 주인이라거나 하는 것이 신기하게 보이는 걸까? 여자는 예상에서 조금씩 비껴나가는 질문을 해왔다. 어쩌면 아직 어리기 때문에 떠올릴 수 있는 호기심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습니다."
 "고용인은?"
 "없어요."
 여자는 그래요?, 라고 말하면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리 신기한 반응은 못 되었다. 이런 저택에 정말로 다른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산다는 것은 어쨌건 이상한 일이니까.
 "무섭다거나 그렇진 않으세요?"
 재미있는 여자로군. 나는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
 "글쎄,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도둑 같은건 있을지도 모르는데. 요즘 도둑이 극성이라는 말도 있고…."
 "그건 저도 조금 걱정이 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집 정도는 지킬 개를 키우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몇마디 말을 덧붙였다.
 "거기다 이 저택엔 쓸만한 물건은 없어서요. 굳이 들어와도 헛고생만 할 겁니다."
 "그렇군요."
 그러고나서, 여자는 실례했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문에 맞닿은 길 너머 거리가 있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여전히 행동거지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어쨌건 나는 정원을 지나 그가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 특이한 여자와 마주쳤기 때문일까. 나는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면서 여성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친척들 사이에서는 거의 동떨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 이 저택을 물려받은 것도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 어쨌건 나이가 들다보니 근처에서 결혼을 주선하겠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곤 했다. 물론, 나는 결혼이니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그렇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도 그리 열성은 아니라 늘 큰 화제는 되지 못한 채로 지나가곤 했다.
 결혼을 하고나면, 내 아내와 나의 이 저택에 대한 의견은 아마도 갈릴 테니까. 어쩌면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 저택에 대해서는 거진 포기했노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어쨌건 이 저택은 현실적인 제약이 되고 있었다. 어쩌면 저택이니 하는 부산스러운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쩌면 정확한 이유는 아직 내게 여성이라는 존재가 낯설었고,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도 그리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문 앞에서 마주친 여자와, 여성이라는 대상에 대한 내 관념들을 겹쳐보기 시작했다. 문 앞에서 만난 그 여자는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통해서라도 내 곁에 묶어두고 싶을만큼? 잘 알 수 없었다. 대신 결혼이라는 것 또한 부산스럽고 사치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 잠깐 들었다.
 그러고나서, 나는 어쩐지 그 여자의 모습을 한참 더 그려보았다. 그 여자가 매력적인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역시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었으나, 그 나이의 젊음, 혹은 생기라는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 정도는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봤자 나와 기껏해야 열 살 정도의 차이일텐데. 나는 자조처럼 웃으며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저녁, 나는 내 서재에서 촛불을 둘 켜놓은 채로 강의할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역시 촛불의 빛 만큼이나 창문에서 새어들어오는 회빛 어둠 또한 짙었다. 그래도 어쨌건 글 쓰는 정도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잉크와 펜을 잡고 있자면, 바깥에서 들리는 바람소리에서 주의를 뗄 수 있어 차라리 더 나았다.
 그런데 그 때, 문득 저택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런 곳에서 혼자 살다보니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그리 드문 것도 아니었다. 그건 일종의 편집증적 증상과 비슷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게 아마 신경증 비슷한 것일 것이라는 것을 알아도 역시 신경이 쓰이는건 어쩔 수 없었고, 펜을 잡은 손도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고 꼬이는 것 같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램프를 찾았다.
 사실 그런 꺼림칙한 느낌이 들 때면, 나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램프와 권총을 들고 저택을 한바퀴 휘휘 둘러보고야 진정하곤 했다. 오늘이라고 어쩔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는 램프의 불을 켜고, 책상에 늘 올려놓고 있는 권총에 든 탄약을 확인했다.
 권총 또한, 개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방비 없이 있을 수는 없어 마련한 물건이었다. 때문에 모아뒀던 돈을 조금 쪼개 권총을 사고, 아마 평생동안 쓸 수 있을 정도의 탄약 - 그래봤자 한 상자 정도지만 - 을 마련하고 나서, 드넓은 정원에서 창고에 틀어박혀 있었던 캔버스를 하나 꺼내 사격 연습까지 해보기도 했다. 이것도 부산스럽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권총이 주는 안전에 대한 감각은 생각보다 컸다.
 어쨌건, 나는 램프를 들고 우선 복도를 한 번 거닐어본 다음, 내가 응접실처럼 쓰는 방으로 향했다. 평소에 쓰지 않는 방은 전부 자물쇠를 잠가둔 상태기에 그다지 살펴볼 이유가 없었다.
 실상 응접실이라고는 해도 찾아올 사람 없는 것이 이 저택인지라, 결국은 늘 나 자신을 접대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어쨌건 응접실의 문을 열었고, 일단 정면으로 권총을 겨눈 채 램프를 들이밀어 작은 방 안을 비췄다.
 "누구야?"
 그리 밝지 않은 램프로 그 안을 비춰보다가, 나는 정말로 어떤 사람의 인영과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랬으면서도 고작 한 것이 어처구니 없게도 그렇게 소리부터 지르는 것이었다. 권총까지 챙겨서 앞쪽으로 들이밀고 돌아다녔으면서도, 권총을 쏘아야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오히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당혹스러움은 그 인영도 마찬가지였는지, 그 자신이 돌아오는 길을 찾는 것처럼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도 정신이 조금 들었다.
 "거기 서!"
 그렇지만 여전히 그 인영은 이쪽을 바라보는 채로 뒤로 물러나려 했고,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일부러 그 인영을 피해 권총을 한 발 당겼다. 실내에서, 그리고 이런저런 소리가 모두 가라앉은 밤에 울리는 총성은 생각보다 시끄러웠다.
 어쨌건 그 인영은 더 무언가를 해보려는 생각은 포기한듯 했고, 그래서 나는 램프를 들이밀고 그 인영의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가죽 재질의 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체형은 여자였고, 램프의 빛에 의지해 약간 밝은 갈색 머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침에 만났던, 그 여자였다.
 "당신, 뭐야?"
 뭐냐고 묻는다고 해서 그가 할만한 이야기가 있기는 할까.
 "경찰을 부를건가요?"
 그 여자는 대뜸 그런 이야기부터 꺼냈다. 막상 여자를 붙들어놓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경찰이라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하는 약간 이상한 생각 정도는 들었다.
 "글쎄, 그냥 조용히 넘어가지."
 어차피 훔칠 것도 없었을테니까.
 "그건 그렇고,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거야?"
 값나가는 물건이란 없는 이 저택 안에서도, 응접실은 정말 탁자와 의자 정도를 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무엇에 발이 묶여 결국 나한테 들키기까지 했는지, 아니면 혹시 이 응접실이 침입하기 쉬운 장소인지, 그런 것이 조금 궁금했다.
 그렇지만, 램프를 조금 더 들이밀고 여자의 행색을 들여다보자 그 문제에 대한 약간의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여자는 한 손에 초콜릿을 들고 있었고,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벌써 체온에 반쯤 녹은 것 같이 보였다. 그러고보니 사놓고는 하나 입에 대지도 않고 탁자에 올려뒀었지, 하는 기억이 걸려 떠올랐다.
 "초콜릿?"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그 스스로도 당황했는지 아침이 되기까지 저택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가도 좋다라고, 그렇게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깜박 잊어버린 것처럼 여자를 저택의 로비에 우두커니 세워놓은채로 아침까지 시간을 보내버렸다.
 "계속 있을 거야?"
 그제야 나는 언제까지고 여자를 내버려두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은근슬쩍 그렇게 물어보았다.
 "가라고 할 때 까지요."
 여자는 가만히 그렇게 말했다. 당돌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어쨌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고나서, 그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감이 좋으시네요."
 사실 감이 좋다거나, 그런 문제라기보다는 순전히 번번히 빗나가던 나의 편집증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에 불과했지 않은가. 어쨌건, 그 쓸데없는 편집증보다도 못한 번견 두 마리를 어떻게 해버려야겠다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도둑질하러 들어올거였으면 어제 나를 만났을때는 도둑이 극성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는 왜 한 거지?"
 한가한 짓이기는 하지만 나는 잠깐 말을 돌려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보면 나는 그때도 분명 그에게 별로 훔칠만한 것은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문득 그가 말했던 요즘 극성맞다는 도둑이 그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다지 재미있는 추측은 아니었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렇지만 대답을 듣고나니 그건 역시 추측일 뿐, 그는 그런 극성맞은 도둑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 비슷한 것이 들었다.
 "그래?"
 여자는 별다른 반응은 하지 않았다. 나는 문득 그의 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 가도 좋다고 하지 않으면 영영 거기 서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어쨌건 먼저 가겠다고 나서지는 못하겠지. 그런 식의 소심한 복수도 재미는 있을 것 같았다.
 복수라니, 그건 또 무슨 우스운 놀음인가, 싶기는 했지만,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


몇글자(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지만) 수정.

comment (1)

창공의마스터
창공의마스터 12.02.15. 13:44
Kaleana 님의 글에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성분이 있어요. 초콜릿보다는 초코민트 차에 어울리죠. 이번 이야기에서도 달콤하고 차분한 향이 나지만 아쉽게도 이번 이야기는 그 특유의 향이 서늘한 밤공기 속으로 금방 빨려들어 사라지는 느낌이네요.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이야기를 완성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꽤 기대가 되는데.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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