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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말엮기] 괴도는 초콜릿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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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56 Feb 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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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마리
 사장은 세 개의 조각 초콜릿과 한 장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초콜릿은 각각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의 포장지로 싸여있었고, 편지에는 날려 쓴 글씨로 오늘 자정 전까지 초콜릿을 훔쳐가겠다는 메모가 적혀있었다.
  “또 그 사람이에요? 요즘 세상에 범행 예고라니 정말 성실하기 짝이 없는 도둑이네요.“
  “우리로서는 다행이지. 알고도 털린 적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말일세.”
  기분 좋게 껄껄거린 사장은 초콜릿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괴도가 노리는 초콜릿은 빨간색 초콜릿. 그 초콜릿을 나눠 먹은 이성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도시의 유력자가 주문 제작한 상품이라고 한다.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 도둑을 맞으면 납품 일자를 맞출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노랑, 파랑은 자네를 위해 만들어진 특제품이야. 먹으면 괴도를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걸세. 노랑은 먹은 사람을 총탄에 맞지 않게 해주는 효과, 파랑은 상대를 정확히 맞출 수 있도록 해주는 효과가 있지. 효과는 길어야 5분 정도라는군.”
  “임상시험은 했나요?”
  “지금 자네가 하는 게 임상시험 아닌가.”
  “……네.”
  몇 번이고 개발팀의 시제품을 사용하다 곤란한 상황을 겪은 일이 있었기에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초콜릿들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는 빨강 초콜릿은 왼쪽 주머니에 나머지 초콜릿은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사장은 회사 안에 있지 말고 물품을 들고 몰래 빠져나가라고 지시했다. 이미 상대에게 회사 내부에 있던 중요한 마법 식품들을 종종 도둑맞은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었다. 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군말 없이 조퇴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장실에 도청기라도 설치되어 있었던 것일까. 나는 퇴근길에 괴도와 마주치고 말았다. 정확히는 꺾이는 골목길에 숨어있던 괴도가 확 튀어나와서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상대가 괴도임을 알아차리자마자 양손을 주머니에 넣어 초콜릿의 안전을 확인했다. 왼쪽의 초콜릿은 그대로 있었지만,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파랑, 노랑 초콜릿이 사라져 있었다. 괴도는 순식간에 포장을 뜯고 두 개의 초콜릿을 가면 사이로 털어 넣었다. 내가 권총을 꺼낸 것도 같은 순간이었다. 다리를 노리고 한 발. 불발. 어깨를 노리고 다시 한 발.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다시 다리를 조준하고 사격. 그러나 총알은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허공에 멈춰버렸다. 곧바로 괴도가 늘 가지고 다니던 마취 총을 꺼내는 것을 보고 전봇대 뒤로 숨었지만, 탄환은 기묘한 각도로 날아와 내 목덜미에 박혀버렸다, 약효가 퍼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괴도는 조금씩 다가와 내 주머니에서 마지막 초콜릿을 꺼내 들었다. 반드시 지켜야 할 빨간 초콜릿. 임무에 실패했구나 하고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나도 괴도의 떠나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뜨자 괴도는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가면을 벗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입술, 발갛게 달아오른 볼,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아름다운 눈동자. 까만 속눈썹, 괴도는 여자였다.
  머리칼이 어깨까지 오는데다 선이 가늘어서 의심을 한 적은 있지만, 정작 여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니 어쩐지 당황하게 되었다. 내 생각이 계속 이어지기도 전에 그녀는 방금 훔쳐낸 초콜릿의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절반을 입에 문 채 내게 안기며 입을 맞췄다.
 그녀가 이로 잘라낸 절반의 초콜릿이 입속에 떨어진다. 초콜릿은 달콤하게 녹아든다. 5초…… 10초…… 15초……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초콜릿이 전부 녹을 때까지 그녀는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랑해.”
  입술을 떼고 주춤주춤 물러난 괴도가 고백했다.
  “이제 당신도 날 좋아하겠지?”
  그렇다. 그녀가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할 리가 없지. 한두 번 맞아본 마취총이 아니다. 조금씩 마취가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몸을 굴려 아까 떨어트린 권총을 낚아챘다. 그녀의 관자놀이를 겨누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장난스레 울먹였다.
  “연인한테 총을 겨누다니 너무해.”
  “시, 시끄러워! 먹어버린 초콜릿 내놔! 내 첫 키스 돌려줘!”
  그제야 그녀도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효과가 없어? 가짜? 실패작? 아냐, 파랑과 노랑은 확실했어. 하지만 어째서? 왜? 저기, 내가 사랑스럽지 않아?”
  “뭐, 뭐, 뭐하자는 거야. 내가 사랑에 빠지길 바란 것처럼 말하지 마! 약효를 제대로 듣지 못했어? 이건 이성의 마음을 빼앗는 초콜릿이라고 같은 여자한테 효과가 있을 리 없잖아!”
  “어째서…….”
  “묻고 싶은 건 나야, 이걸 나하고 나눠 먹어서 뭐 어쩌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순간 그녀를 감싸고 있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어째서 여자면 안 되는 거야? 사랑의 초콜릿까지 썼는데! 너도… 너도 여자끼리 사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나는 널 처음 봤을 때부터! 한눈에 반해서! 널 만나기 위해 예고장을 보내고! 밤새 너만 생각하고! 그 회사에서 이상한 물건들을 훔쳐내고! 이번이 마지막 범행이라고 믿었는데! 네가 고백을 받아주면 언제라도 괴도 짓을 그만둘 수 있는데!”
  빠르게 쏟아진 괴도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이런 장난감을 이용하지 않고 네 마음을 훔치겠어! 오늘은 키스로 만족할 테니까! 라고 외치고 달아나버렸다.
  결국 빨간 초콜릿은 차마 먹어버렸단 말은 하지 못하고 도둑맞아버렸다고만 보고했다. 사장님은 입은 손해를 계산하며 방방 뛰면서도 자네가 실패할 정도라면 어쩔 수 없지 라고 넘어가 주셨다.
  그리고 며칠 후 2월 14일 ‘이건 훔친 거 아니니까! 만든 거고! 사랑의 묘약 같은 것도 아니니까! 꼭 받아줘!’ 라고 외치고 초콜릿을 던진 뒤 사라진 괴도양을 떠올리며 나는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물었다.

comment (1)

창공의마스터
창공의마스터 12.02.15. 13:51
으와... 동성간의 짝사랑 이야기라니 이런 대담한! 퇴폐적인! 사이키델릭한!
...같은 건 없네요. 이야기는 달달하지만 반전은 쵸큼 밋밋했어요. 히히. 작중 등장하는 초콜릿은 뭔가 게임 아이템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여캐를 쓰는 남주인공과 그 남주인공을 짝사랑 하는 여주인공의 게임 속 고백담으로 각색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 괴도양은 귀여우니까, 분명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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