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사자의 노래 #3화. 깨져가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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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03 Feb 1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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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라크마

여느때와 다름없이, 시끄럽게 울려대는 자명종 소리와 눈부시듯 밝게 창문을 통해 방안으로 부숴져 들어오는 햇살에 그녀는 아침을 맞이했다.일요일이라 게으름을 피워도 될 법 한데 그녀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고서 하품을 연신해대며 침대에서 벗어난다.

 

방안으로 들어온 햇살이 그녀가 걸친 얇은 실크 소재의 잠옷에 부딫혀갔고 그덕인지 우윳빛을 띄는 피부를 가진 그녀의 부드러운 몸매가 드러났는데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숙녀라고 하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몸매였다.무엇보다도 그런 부드러운 살결에 흘러내리는 금발은 마치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그림이라도 그려놓은 듯 아름다웠다.

 

“캬― 그림이라, 그거 알맞네.”

 

“에―?”

 

간단히 몸을 풀고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문에 기댄체 팔짱을 끼고서 자신을 바라보는 붉은 머리의 사내가 그곳에 있었다.

 

그 붉은 머리의 사내는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었고―

 

“꺄아아아아아아악――!!”

 

짝,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하루가 조금 요란스럽게 시작을 고했다.

 

 

 

“…정말이지. 한번만 더 제 방에 멋대로 들어오시면, 저도 가만히 안있을거에요 샤를씨!!”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토스트에 아몬드버터를 바르던 그녀는 여전히 화가 다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외쳤고 왼쪽 얼굴에 머리카락 색과 비슷할 정도로 붉게 손바닥 모양을 새긴 샤를은 여전히 장난스럽게 웃음을 띈체 토스트를 우물 거리며 말을 이었다.

 

“난 단지 보스의 신변에 혹여나…”

 

“시끄러워요!!!”

 

“…네…”

 

마치 한 마리 맹수같은 그 기세에 샤를은 움츠려들며 식사에 집중했고 이 식탁의 마지막 참가자인 갈색머리 사내 역시 그저 처음과 같이 묵묵히 식사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은 앨리스의 본 거주지가 있는 도시인 ‘칼리부‘로, 그리 장점도 단점도 없는 평범한 도시였다. 특별한게 있다고 한다면 도시 자체의 크기가 꽤 넓은데도 불구하고 그 평범함에 끌린 인구로 인해 관광업을 비롯한 중심가의 문화가 발달해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런 도시에 꽤나 고가일것이라 예상되는 단독 주택에 혼자 거주중이던 앨리스는 어제 실비아로부터 본래의 집으로 돌아오는 조건으로 이 두사람이 경호하게 될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녀는 아무 생각없이 여러 일로 인해 지친 심신으로 그것을 승낙해버린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결과물이 바로 이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사내와의 동거.

 

“저, 플루토씨는.”

 

“음?”

 

아침식탁에 침묵이 감돌아서일까,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고자 앨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고 그 말의 주체가 자신의 이름이었기에 플루토는 식탁에 앉은 이래 아래만을 바라보던 시선을 처음으로 들었다. 수염과 안면의 반정도를 가리는 덥수룩한 머리로 인해 깔끔하다고는 못할 인상이었지만 왠지 그래서일까, 자신의 아버지와도 같은 푸근함이 느껴졌다.

 

“뭔가, 보스.”

 

물론 저 무뚝뚝한 말투는 푸근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말이다.

 

조직의 보스에게 하대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실비아의 언질이 있었음에도 샤를과 플루토는 그 언질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뭐 둘다 그만의 이유야 있겠지만 라이오스 본 건물을 나오자마자 그녀가 말한 내용때문이기도 했다.

 

『분명 두분한테 존댓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테니까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확실히, 붉은 머리의 불량스러운 인상을 가진 사내와 사람하나는 시선으로 가볍게 눌러죽일 것 같은 무거운 인상의 사내가 한 여고생에게 존댓말을 쓴다면 정상적으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보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그녀를 재차 부른 플루토의 말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어색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하핫, 플루토씨는 10년간 그… 수감 되셨었다고 들었는데 대게는 그 와중엔 밖에 나가고 싶다거나 밖에 나가서 무언가를 하고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나요?”

 

“확실히, 10년씩이나 외출한번 없었다면 욕구불만이 장난아닐텐데.”

 

샤를이 옆에서 장난스럽게 거들자 앨리스가 얼굴을 붉혔고 그 반응 역시 재미있는 듯 샤를이 웃었음에도 그에게서는 한참동안 대답이 없었다.

 

“글세…”

 

“네?”

 

메마른 중저음의 음색이, 마치 물에 잠기기라도 한양 젖어들었고 그는 갈색빛의 시선을 거실의 테라스로 옮겼다.

 

그곳에 들어오는 햇살은 분명 앨리스의 방안에도 들어오던 것처럼 눈부시게 밝은, 같은 것일 텐데도 그것을 대하는 그의 시선은 너무나도 슬프기 그지없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호오? 연인인가?”

 

흥미가 생겼는지 샤를이 잽싸게 물어왔고 그 질문에 그는 피식, 웃음을 내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런건 아니야.”

 

“뭐야 재미없게. 그럼 누구야? 이 지구상에 발붙이고 살고 있는 사람이면 내가 거뜬히 찾아주지. 물론 보수는 받겠지만 말이야.”

 

샤를의 말에 그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 머물렀고, 그 공허한 시선은 이내 앨리스에게로 향하였다.

 

그녀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 하지만 이내 그 시선은 메마른 웃음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진다.

 

“글세…”

 

조금 더 이어지려던 그들의 대화는, 앨리스의 휴대전화가 울림과 동시에 멈추었고 둘의 시선은 곧바로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앨리스는 갑작스러운 둘의 시선에 당황해 어쩔줄을 모르더니 급하게 착신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네, 앨리스입니―”

 

“앨리스 너어―! 어제 저녁엔 연락도 안되고 어떻게 된거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조금 떨어져있는 샤를과 플루토에게도 확연히 들릴정도로 하이 소프라노 톤의 외침이 전화기 스피커 너머로 들려왔고 귓가에서 그 외침을 들은 앨리스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청각이 아직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서 통화를 이어갔다.

 

“그게… 어제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잠들어 버렸지 뭐야, 헤헤…”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쯤해둬 네리스, 바꿔줘.”

 

거의 반 강제적으로 스피커 건너로 전화의 소유권이 바뀌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들려오는 것은 방금전과는 사뭇다른 차분한 여성의 음색이 들려왔다.

 

“앨리스, 괜찮니? 정말 아무일도 없었어?”

 

“응, 아무일도 없었다니까? 믿어줘 메이.”

 

전화 너머인대도 허공에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거짓말을 하는 그녀를 샤를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집중을 방해하는 그 표정을 본 앨리스는 곧바로 시선을 돌린체 통화에 집중했다.

 

“앨리스, 오늘 무슨 날인지는 알지?”

 

“응? 아…”

 

모를 리가 있겠는가. 1년에 한번있는 자신의 생일이다. 매년마다 천방지축 네리스의 요란한 파티와 그것을 말리는 네리스의 진귀한 광경을 경험해야했던 날이니 말이다.

 

하지만 왜인지 오늘은 그것을 말하는게 꺼려지는 그녀였다. 과연 이 친구들을 만나도 될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으로 돌아가도 괜찮은 걸까 하는 의심이 솟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음색에 그녀의 생각은 길게가지 못하였다.

 

“우리 지금 너희집 앞으로 가는 길이야.”

 

“…에엣?!!”

 

 

 

* * *

 

“숨어있으라고?”

 

샤를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웃음을 참으며 그렇게 되물었고 앨리스 역시 매우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그 물음에 답하였다.

 

“분명 두분께서 집에 있다는걸 알면 경찰에 신고부터 할 아이들이에요. 일단은 집안에 들어오진 않을테니까 부디 눈에 안띄도록 해주세요.”

 

사뭇진지한 그녀의 태도에 플루토는 고개를 끄덕였고 샤를 역시 장난스럽긴 했지만 긍정을 표했다.

 

경찰에 신고해보았자 그 정도 치안력 정도는 우습게 무시할 수 있는 샤를이었지만 어제말한대로 보스의 의지이니 자신이 토를 달 이유는 없었다.

 

 

 

“…지금 이걸 변장이라고 한건가?”

 

플루토가 골목어귀에 몸을 은신한체 자신의 옆에서 그저 ‘자유복’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편안한 복장인 샤를을 보고서 물었다.

 

그 질문에 샤를은 혀를 차더니 언제가져 왔는지 망원경으로 저 멀리 세 여성을 바라보며 답하였다.

 

“당연하지. 온몸을 검은 천으로 꽁꽁 싸매기라도 해야한다는거야? 10년동안 묵혀뒀던 지식을 여기서 티내지 말아달라고.”

 

“…네가 정보팀 캡틴이라는게 새삼 의심스럽군.”

 

그의 솔직한 불만사항을 가볍게 무시한 샤를은 품속에서 전자수첩을 꺼내 몇 번 두들기더니 두 인물의 정보를 꺼내 읊기 시작하였다.

 

“네리스 벨시오 양. 17세. 무역업체인 ‘벨시오’의 회장인 게릭 벨시오의 차녀. 이야― 이제보니 대단한 아가씨 잖아?”

 

“무역업체 벨시오라면 나 역시 들은적이 있다.”

 

플루토 역시 그 회사의 이름이 낯이 익은지 아는 체를 했고 그 말에 답하듯 샤를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마 이 나라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무역업체일거야. 4대째 무역업 먹이사슬의 최상위권에 위치해있으니까 조직들의 입장에서도 모를 수는 없는 회사지. 그런 대재벌의 따님이 경호도 없이 다닌다는게 조금 의아한걸?”

 

샤를에 말에 그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고 중심 상가인 이곳에서도 그녀들을 주시하는 눈빛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전문화된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인물들은 없었으니 아마도 저중에 저 대재벌가의 딸을 경호할만한 인물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뭐, 이런 대재벌의 자식들 중에서는 자유분방한 성격인 반항아가 한명쯤 나오기 마련이니까.”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맺은 샤를은 어느새 멀어진 세명의 소녀를 보고서 다른 쪽의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뭔가 알겠다는 표정의 플루토가 따랐다.

 

그녀들은 현재 앨리스의 생일 선물 및 파티의 준비를 목적으로 중심상가에서 쇼핑 중이었는데, 놀랍게도 서브 보스인 실비아가 예견하기로 가장 위험한 날이라는 ‘유서의 효력이 발휘되는’ 날임에도 아직까지 이렇다할 움직임은 없었다.

 

“옆쪽의 동양인 아가씨는?”

 

샤를이 또다른 한명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자 플루토가 걸음을 옮기며 물었고 그 물음에 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전자수첩을 몇 번 더 눌러본다.

 

“메이 링. 출생은 아시아인이지만 부모님은 일찍이 사망했고 삼촌을 따라 이 도시로 왔군. 부모가 남긴 유산으로 생활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대부분의 생활비를 자급자족 하려는 모양이야. 이 아가씨는 어찌된 일인지 정확한 정보가 없군.”

 

“정확한 정보가 없다고?”

 

플루토가 불신이 가득 담긴 음색으로 물어오자, 샤를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그 물음에 답하였다.

 

“미안하지만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일수록 정확한 정보를 모으기는 더 까다로워. 거기다가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고. 뭐, 우리 조직의 정보력이 그런 사람들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걸 부정하는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 뒤에 몇마디의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가고서 두 사내는 세명의 여성을 미행하는 데 집중하였다.

 

세 여성의 쇼핑 루트는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저 여느 저나이 또래의 여학생들이 그렇듯이 길거리를 지나치다가 쇼윈도에 진열된 옷이 마음에 들면 그 가게에 들어가 수다를 떨며 옷을 구경하고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길거리의 무언가를 먹고, 그곳을 나와서 볼거리가 있으면 구경을 하는 아주 평범한 여학생들의 모습에 샤를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게 과연 수백명의 목숨을 책임진 보스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일까, 아마 누님이 보면 분명히 ‘보스’의 체통을 지키라느니 하는 잔소릴 해댈만한 표정이야.”

 

“아마 유서만 없었다면 어느하나 특별할 것 없이 살아갔을 소녀다. 하지만 이미 유서의 효과는 발동 되었고 그녀의 일상은…”

 

샤를의 말에 무미건조하게 답을 이어가던 플루토의 말끝이 흐려지자 샤를은 앞서가다 그를 뒤돌아보았고 동시에 그의 시선을 따라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도로변을 걷고 있던 세명의 여성들 곁으로 한 중형 벤 하나가 다가가고 있었는데 그 승용차는 번호판을 달고 있지 않았다.

 

“젠장, 또 저 패턴에 당할 수는 없지…!”

 

샤를이 품속에 손을 넣는 것과 그의 시야에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수류탄이 보이는 것은 동시였다.

 

“망할!!”

 

욕설을 내뱉으며 샤를은 눈을 질끈 감았고 그의 곁을 갈색빛의 사내가 지나쳐 쓰고있던 모자를 벗더니 모자를 수류탄에 휘둘러 수류탄을 담고서 그대로 골목 깊숙이 내던졌다.

 

무시무시한 괴력에 수류탄은 하나의 벽이 나타날때까지 멀리 날아갔고 이내 그것은 폭음과 함께 두꺼운 콘크리트벽을 박살내는 위용을 보여주었다.

 

“설마 도심가에서 이딴 위험한 짓거리를 할 줄이야, 어이. 보스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샤를은 거대한 체구의 플루토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기에 그에게 보스의 안위를 물었고 플루토는 곧바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차량 탈취. 할 수 있나.”

 

간단명료한 물음에 샤를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곧바로 샤를의 멱살을 잡고서 차도로 뛰어들더니 주차되어있던 승용차로 달려갔다.

 

그는 주저없이 샤를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운전석의  유리를 박살냈고 차의 경보음이 울리는것에 아랑곳 하지 않은체 문을 열고서 운전석에 샤를을 앉혔다.

 

“이게 갑자기 뭔―”

 

그렇게 물으려던 샤를은 이미 도로 저 멀리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인 중형 벤을 볼 수 있었다. 도로변에 서있던 세 여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으로 보고서 샤를의 두뇌는 빠르게 플루토의 의중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 오바이트나 하지 말라고―!!”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찾아낸 아이마냥 그는 품속에서 손가락 두마디 길이의 금속 막대를 꺼내더니 시동키가 들어가야할 곳에 꽂아넣었고 놀랍게도 막대를 돌리자 엔진이 구동되기 시작하였다.

 

“…놀라운 과학이군.”

 

어느새 조수석에 앉은 플루토가 순수한 감상을 읊었고 그 감상에 대한 답을 듣기도 전에 갑작스레 밟아진 엑셀레이터에 의해 차량이 급속도로 전진함에 둘의 대화는 지속될 수 없었다.

 

* * *

 

‘이게 도대체…’

 

그녀는 패닉에서 돌아옴과 동시에 빠르게 두려움에 떨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나머지 두명과는 달리 그녀는 이런 상황이 어제에 이어 두 번째니까. 특별히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들은 도로변에 서있었고 접근하던 중형 벤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자신을 강제로 태운것인데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기절하지 않았다는게 차이점일 것이다.

 

시선을 돌려보니 네리스는 공포에 떨며 입에 손수건이 물려진체 답답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메이는 양손을 줄로 고정당한체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쓸데없는 반항하지 말라고.”

 

조수석에 앉아있던 큰 덩치의 사내가 짧지만 강압적인 어투로 일렀고 그 말에 네리스가 발악을 하며 손수건을 뱉어내자 두고보고만 있던 한 사내가 그녀의 뒷통수를 후려쳐 기절시켰다.

 

그의 과격한 행동에 앨리스가 뭐라 외치려 했지만 이내 그녀의 미간에 드리워진 총구로 인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우릴 어디로 데려가려는거지?”

 

비교적 침착하던 메이가 묻자, 조수석에 앉아있던 사내는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글세, 그쪽의 ‘보스’께서는 알고 계시지 않나?”

 

“무슨 소릴…”

 

메이가 영문을 몰라 물으려 하자, 그녀의 손을 앨리스가 살포시 잡았다.

 

그 새하얀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낀 메이는 이내 무언가를 느끼고서 입을 닫았고 이내 차량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추격자가 있습니다.”

 

“뭐?”

 

운전석에 앉아있던 사내의 긴장감 서린말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사내가 격양된 목소리로 백미러에 시선을 돌리자 고속도로를 달리는 벤의 뒤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따라붙고 있었다.

 

벤이 속도를 더 올려 앞서가던 차량들을 추월하자 기묘하다 싶을 정도의 솜씨로 그 차량 역시 차량들을 추월하며 따라붙었고 무게가 무거운 벤의 특성상 속도를 빠르게 내지 못해서인지 어느새 차량과 벤은 평행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죽여라.”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짧게 명령하자 각각 의자밑에서 자동소총을 꺼내더니 문을 염과 동시에 난사해대기 시작하였다. 그 총소리에 앨리스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고 메이 역시 놀란 듯 앨리스의 손을 꼭 붙잡으며 움츠려들었다.

 

“망할, 보스! 무사한거야?!”

 

그러던 중, 지금껏 상체를 숙인체로 총탄을 피해내던 운전수가 외쳤고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깨달은 앨리스는 감격에 겨워 외쳤다.

 

“네, 샤를씨!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흐하하핫! 역시 우리 보스, 강단이 있는걸!”

 

하지만 이내 둘의 대화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고, 노련한 조직원중 하나가 차량의 바퀴를 쏘자 빠른 속도로 달리던 차량의 방향이 어지러워지더니 벤에 부딫혀왔다.

 

“크윽!!”

 

강한 충격에 앨리스를 포함한 조직원들이 신음을 흘렸고 운전수는 도로 밖으로 튕겨나가려는 차체를 안정시키기 위해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러던 중 승용차의 윗면이 굉음을 울리며 뜯겨나갔고 천장이 훤해진 승용차안 조수석에서 한 거구의 사내가 일어났다.

 

강한 바람에 몸의 균형이 흔들릴 법도 한데 그는 굳건한 두다리로 버티고 서있다가 곧바로 벤으로 뛰어들었고 단단한 벤의 천장을 찌그러트리며 착륙했다. 그리고 위쪽에서 권총의 장전음과 함께 중저음의 외침이 들려왔다.

 

“둘다 몸을 최대한 숙이고서 눈을 감도록.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그 말에 곧바로 메이는 네리스와 앨리스를 안은체 고개를 숙였고 한번의 총성이 울리자 네리스를 결박하던 사내가 정수리가 총탄으로 꿰뚫리는 끔찍한 죽음을 맞보았고 소총으로 천장을 쏘려던 두 조직원들 역시 그자세 그대로 연이은 총탄에 의해 각각 왼쪽 가슴과 목젖을 꿰뚫린체로 피를 뿜으며 생을 마감했다.

 

눈을감고 있음에도 들려오는 죽음의 소리에 앨리스는 덜덜 떨며 이를 악물었고 곧이어 들려오는 샤를의 목소리에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아가씨, 뛰어 내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벤에 붙은 듯 타이어 하나가 터진 승용차를 능숙하게 몰고 있는 샤를이 보였고 시선을 돌리니 어느새 벤의 천장은 어디로 갔는지 날아가고 없었다.

 

남은 것은 조직원 셋의 사체를 도로 변으로 던져내고 있는 갈색 머리사내의 모습이다.

 

한손으로는 세 번째 조직원의 사체를 도로에 던지고 나머지 한손엔 권총을 쥔체 조수석의 사내를 겨누고 있는 그 모습에 앨리스는 왠지 모를 공포를 느꼈지만 이내 그녀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네리스를 안고서 달리는 벤안에서 바로 섰다.

 

천장이 날아간덕에 빠르게 불어오는 강풍에 쓰러질뻔하던 그녀를 메이가 부축했다.

 

어른스럽던 그녀는 먼저 샤를이 운전하던 차량으로 뛰어들었고 메이는 용기있게 앨리스에게 손을 뻗었다.

 

타앙

 

“어…?”

 

그때 한발의 총성이 울렸고 메이는 자신의 복부를 내려보고서 그곳에 방금전까지 없던 피분수를 쏟아내는 구멍을 바라보았다.

 

그러고서 천천히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트럭이 있었는데 그 트럭의 화물칸에는 여러명의 사내들이 각자 손에 총기를 든체 차량을 향해 난사를 해대고 있었다. 메이가 쓰러지는 것과 앨리스가 비명을 지르는 것은 동시였다.

 

“안돼, 메이!!!”

 

앨리스는 비명을 지르며 곧바로 네리스를 안은체 샤를의 차량으로 뛰어들었고 그녀에게 빗발치려던 총탄들은 벤에서 날아온 총탄들에 의해 잠깐 멈추었다. 그 총탄들의 주인은 어느새 한손에 조직원들의 소총을 든 플루토였고 그 덕에 안전하게 앨리스들이 차량에 안착한 것을 본 샤를은 곧바로 브레이크를 밟아 빠르게 나아가던 벤에게서 떨어졌다.

 

그것을 확인한 갈색빛의 사내는 조수석의 사내를 주저없이 쏜뒤 운전수의 오른쪽 팔꿈치를 쏘았다.

 

 갑작스런 격통에 의한 근육의 쇼크로 벤은 균형을 잃고서 어느새 가까이 달라붙은 트럭에 부딫히더니 두 차량은 도로의 가드레일에 부딪혀 도로 밖의 강으로 떨어져내렸다.

 

“플루토씨!!!”

 

일직선 도로여서인지 차량들이 도로를 이탈해 강으로 추락하는 것을 목격한 앨리스는 또 한번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들이 탄 차량은 빠르게 돌아서 도시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샤를씨, 플루토씨는요!!”

 

“그 양반이야 저 정도로 죽을 양반이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지금은 친구나 걱정하라고!”

 

그 말에 앨리스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은 체 피와 숨을 같이 토해내는 메이를 내려다보았고 붉게 물들어가는 그녀 너머로 강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 * *

 

밤이 없는 도시라는 위명에 맞게 이 잿빛 도시는 만월이 찬란하게 떠오른 밤임에도 그 자연의 위광따위는 지워버리겠다는 듯 온갖 건물들이 내뿜는 빛으로 인해 낮보다도 더 밝은 위용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그것은 햇살과도 같은 따뜻함이라기 보다는 닿으면 불나방처럼 타서 없어질 것 같은 끔찍한 불꽃과도 같은 빛이었음이다.

 

“후우―”

 

세비언 3지구의 변방에 위치한 의료시설. 칼에 베이고 총에 꿰뚫리는 것은 다반사인 세비언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은 의사인 ‘브릭’이 운영하는 곳으로 다른 도시의 의료시설의 경우 상흔의 경우에는 시청이나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이 의무지만 이곳의 경우 어떠한 것도 묻지 않고서 오직 정당한 금액만 지불한다면 누구도 차별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주인의 성격을 알 수 있듯 검소하기 그지없는 평범한 이 병원의 입구에 기대선체 쓰게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것은 다름아닌 샤를이다.

 

“…망할.”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도 모르게, 그는 욕짓거릴 내뱉더니 이내 담배 연기 너머 저 멀리 가로등아래를 걸어오는 큰 키의 사내를 응시한다.

 

물에 빠지기라도 한것인지 걸치고있는 코트에와 숯이 많은 머리카락에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샤를은 이내 욕지거릴내뱉던 방금전과는 달리 피식, 웃음을 흘린다.

 

“물에빠진 강아지 꼴이라는게 이런건가?”

 

“…보스는?”

 

샤를의 농에 대답할 여유는 없다는 듯, 메마른 음색으로 주인의 안위를 묻는 그. 그 물음에 다 타들어간 담배를 바닥에 던져 발로 비벼끈 샤를은 말없이 앞장서서 건물안으로 들어섰고 그 뒤를 사내 역시 말없이 묵묵히 따랐다.

 

이곳은 여느병원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저녁 늦은 시간임에도 환자들을 치료하려 움직이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고 곳곳에서는 침음성이 흘러나오는 것이 마치 전쟁터의 의무대를 보는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미 이 시설을 질리도록 애용해온 그는 곧이어 마주친 낯익은 인물을 보고는 짧게 목례를 건네며 인사를 대신하였다.

 

“크큭, 이 늙은이가 죽을때가 다된겐가? 벌써 죽은 귀신이 다 보이는 구나. 멜리.”

 

백색의 가운을 걸친 초로의 노인은 커다란 안경 너머의 두눈에 호선을 그리며 자신의 옆에 있던 중년 여성에게 시선을 돌렸고 간호복을 입고 있던  여성은 인자한 웃음과 함께 사내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플루토군. 정말로 살아계셨을 줄이야… 이 도시의 대부분은 당신이 그때 죽은줄로…”

 

연륜이 느껴지는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히기 시작하는 그녀를 보며 플루토는 옅은 웃음을 내지어보였다.

 

이 노인은 이 시설의 주인 브릭이며 그 옆에 서있는 여성은 브릭의 보조인 멜리라는 여성으로 둘 다 유토피아 시절에 빅대디의 친우 중 한명이다.

 

그 둘의 모습에 갈색 시선의 사내는 잠시 그들의 곁에서 호탕하게 웃는 거대한 존재의 잔상을 그려보다 이내 고개를 흔들어 지우며 표정을 굳혀낸다.

 

“보스…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본디 외부인에게는 노출을 꺼리라는 실비아의 명이 있었지만 이 둘이라면 이미 샤를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놓았을거라 생각한 그가 묻자 예상이 맞았는지 브릭이 품속에서 반절도 남지 않은 피다 만 시가를 입에 물더니 불을 붙이며 말하였다.

 

“117호 특실이다. 배에 바람구멍이 난 아가씨도 내가 깔끔히 메워놓았거늘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올때부터 비명만 지르더니 지금은 곯아 떨어졌다.”

 

그 모습을 회상하자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연기를 깊게 빨아들여 내뱉은 그는 목례를 하며 지나치려는 그들에게 묻는다.

 

“…정말, ‘녀석’의 딸인가?”

 

깊은 수심이 가득한 그 음색에 두 사내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샤를이 먼저 입을 열기도 전에, 플루토가 낮은 중저음의 음색으로 단어를 씹어 내뱉듯 답한다.

 

“예, 위대하신 빅대디. 멕베드 크로웰의 외녀. 앨리스 크로웰이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라이오스의 새로운 보스이죠.”

 

“…네 녀석들은.”

 

그 말에 노인은 거칠지만 애환이 가득담긴 음색으로 한숨섞인 음색을 내뱉는다.

 

“…‘빅대디’와 그 ‘창공의 날개‘조차 땅속에 파묻히게 만든 그 저주받은 자리에 그런 어린애를 앉히려는게냐? 그것이 녀석과 라이오스의 뜻인게야!!”

 

이내 한숨섞였던 음색은 호통과도 같이 노한 불길과도 같은 음색으로 바뀌어 두 사내의 심장에 박혀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터져나갈 듯 주먹을 쥔체 그 둘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노인.

 

잠시동안의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고, 얼어붙은 샤를의 앞에서 천천히 갈색빛의 사내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노인을 바라본다.

 

돌아본 그의 표정을 본 노인은 순간 표정을 멎는다 싶더니, 이내 멎었던 표정은 경악에 물든체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였다. 그 경악을 알기나 하는지, 사내는 답한다.

 

“…예.”

 

그러고서 그는 천천히 돌아서 복도를 걸었고 그 뒤를 샤를이 따랐다. 두 사내가 멀어지는 가운데, 여전히 멎은 듯 서있는 브릭의 어깨에 멜리가 천천히 손을 얹어놓았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브릭은 다 타들어가던 시가를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던지며 말하였다.

 

“망할 애송이 놈, 피도 안섞인 것이 어찌 저리 그 멍청이를 빼닮아 가지고…!!!”

 

그가 본 사내의 표정은 웃고있었다.

 

조명탓이기라도 한건지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하지만 너무도 깊디 깊은 그 웃음속에서 그 사내의 망설임 없던 대답이 이 노인의 가슴속에 묻혀있던 뜨거운 옛추억을 잠시 저 심해의 밑바닥에서 끄집어 내었다.

 

* * *

 

복도를 얼마나 걸었을까, 구석진 방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오래된 전등의 조명이 비추는 작은 병실이다.

 

이 의료시설에 얼마되지 않는 독실이라 그런지 침대는 하나 뿐이었고 그 독실에 누워있는 소녀는 호흡기에 복잡한 기계로 연결되는 호스를 연결한체 잠이 든 것 마냥 옅게 숨쉬고 있었다.

 

그 침대맡에 의자에 앉은체 엎어져 잠든 한 말광량이 소녀는 울기라도 한것인지 눈가가 옅은 주홍빛을 띄고 있었다.

 

그런 소녀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것은 그 소녀들 또래에 금발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다.

 

아니, 소녀라 하기엔 그 깊어진 푸른 눈은 많은 의지를 내포하고 있었음이다.

 

“…보스.”

 

옅게, 메마른 음색으로 자신의 주인을 부르는 갈색 빛 사내의 시선 역시 소녀와 같이 깊은 수심에 물들어 있었다.

 

그 부름에 소녀는 놀라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가 이내 따뜻한 미소를 머금는다.

 

“플루토씨, 무사하셨군요.”

 

그 미소가 순간적으로 자신의 기억 속에 깊이새겨진 어느 형상과 겹쳐보이는것에, 사내는 애써 시선을 돌려보인다.

 

그 반응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녀는 자세히 캐묻지는 않으려는 듯 침대의 두 소녀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실비아씨께서 제가 나오기 전에 말씀하셨죠…”

 

소녀가 집으로 가겠다고 결정하고서 그 건물을 나올 때, 붉은 색의 서브 보스는 그녀에게 무거운 음색으로 말하였다.

 

“그 집으로 돌아간다 한들 보스의 생활이 본궤도로 돌아올 수는 없습니다.”

 

그 당시엔 그 말을 그저 흘려들었는데, 놀랍게도 그 말을 그녀는 지금 뼈저리게 새길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 말만 듣고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보스는 결정에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보스가 후회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그 결정을 이루지 못하게 한 아랫사람들의 탓일테지.”

 

무덤덤하게, 사내는 오래전 자신의 친우가 한말을 그렇게 내뱉는다.

 

너무나도 잔인하게도 들리는 그 말에 소녀는 뭔가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가 이내 그 무언가를 삼키며 떨리는 음색으로 말한다.

 

“…저는, 뭐가 되어 버린 걸까요.”

 

그 말에 깃든 슬픔을 읽어낸 것일까, 샤를은 옅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냉정히 그것에 답해낸다.

 

“보스, 이쪽 세계에 발을 오래전에 들인 선배로써 조언한다면― 사실 이곳은 정상적인 가치관이나 인생으로는 버틸 수 없는 지옥이야.”

 

그는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려다, 문득 침대에 있는 두 소녀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 피식 웃으며 그 손을 거두어들인다.

 

“가족, 친구, 연인. 모든 관계된 이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지. 심지어 그것은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산. 더 나아가 신념에까지 위험을 들이게 돼.”

 

그녀를 향하는 붉은 시선에, 수심이 깃든다.

 

“어제였다면 몰랐겠지만 이젠 알았다고 생각해. 한다고 말한 것은 보스야. 그리고 보스가 하지 않겠다고 해서 보스가 감당해야 될 위험들이 걷히는 것도 아니지.”

 

냉정한 그의 말에, 그녀는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전 대체 어떻게 해야되는거에요? 이대로 계속 …친구들을 위험에 빠트리라는 건가요?”

 

“강해지면 된다.”

 

그녀의 말에, 무덤덤한 음색이 흘러들자 그녀의 푸른 시선이 갈색빛의 사내에게로 향한다.

 

그 사내는 창밖 저 멀리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세비언의 야경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그 누구도 보스의 신념에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강해지면 된다. 보스가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을 지킬 힘을 얻어라. 이 어두운 궤도를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속에서 그 궤도를 집어삼킬 정도로 강해지면 된다. 이 세계는 힘이 곧 법이니까.”

 

그 말에 그녀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버리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고, 그 푸른 시선은 천천히 침대로 돌아간다.

 

이 사내의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영리한 소녀는 알아챘기 때문이 아닐까.

 

“결정해라, 보스. 어제와 같이 ‘말’로 만이 아닌, 그대의 신념에게 묻고 그 답을 꺼내어라.”

 

어제가 수많은 라이오스 조직원들을 위해 억지로 꺼낸 답이었다면, 이제는 그녀 스스로 답을 꺼내야 할 차례. 그랬기에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너는 그의 말대로 강해져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것들을 지킬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고―.

 

동시에, 지금껏 가져왔던 평범함이라는 단어를 버릴 각오를 가지고 있느냐고 말이다.

 

“…”

 

그녀는 조용히 침묵한 체, 품속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녀가 단정히 찍은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학생증―.

 

그것을 그녀는 잠든 친구의 곁에 내려두고서 천천히 방문을 향한다.

 

“…하겠어요.”

 

어제와 같은 말. 하지만 그것에 담긴 단어의 무게는 어제와는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음을 안 샤를은 피식, 웃음을 내지으며 그 뒤를 따랐고 잠시 침대쪽으로 시선을 향한 갈색빛의 사내는 이내 무덤덤하게 그 뒤를 따랐다.

 

“…하, 확실히 저건 피가 섞인 자식의 눈빛이군.”

 

복도를 걸어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브릭의 말이다. 복도를 거닐던 간호사와 환자들조차, 복도를 통과하는 셋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운에 전율하며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 도시의 공기가 기억하는 먼 옛날의 전율… 그것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이 느낀 것이다.

 

문을 나서자 그곳에는 붉은 벨벳 정장을 입고 있는 실비아가 한손에는 두꺼운 코트를 든체 서있었는데, 그녀는 소녀의 눈빛을 보더니 이내 의미심장한 웃음을 내지으며 소녀의 어깨에 코트를 덮는다.

 

“어서 오십시오, 보스.”

 

그녀의 뒤에는 수십대의 검은 승용차와 수백명의 조직원들이 찬란히 떠오른 만월아래 집결하여 있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패기에, 주눅이 들법 한데도 소녀는 사파이어처럼 영롱히 빛나는 두눈으로 그들을 하나하나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저는 아직 어립니다.”

 

그 말에 일순, 그 자리에 있는 수백명이 술렁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가 말을 이어내자 그 술렁임은 거짓말 같이 멎었다.

 

“어리고, 또한 약하기 그지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이 그들 너머 저 멀리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도시로 옮겨진다.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강해질 겁니다.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와아아아아―――!!!”

 

그녀의 가녀린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축을 뒤흔드는 함성소리들이 터져나왔고 이내 그 함성이 뜻하는 바는 세비언 전역에 퍼져나갔다.

 

* * *

 

라이오스 본 건물의 최상층 보스룸.

 

본디 실비아가 주인이던 그곳에 이젠 너무나도 여려보이는 소녀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서류를 손에 든체 그것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던 샤를 역시 그 표정을 보더니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다 안다는 듯 웃음을 내지으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그런 더러운 사업으로 돈을 버는 곳도 물론 많이 있지만 거대한 중요 조직들의 경우엔 그런 사업엔 거의 손을 대지 않는 편이야. 오히려 정식으로 시청의 허가를 받고서 일을 하지.”

 

“시청이요?”

 

시청이라는 말에 소녀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본디 조직이라는 것 자체가 범죄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지금껏 생각해온 그녀로써는 그 범죄와 적대관계인 시청이 허가를 내준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래, 숙박업과 유흥업. 심지어 요식업에까지 조직들이 담당하는 곳이 이 도시야. 범죄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이 도시만큼 그런 시설들이 발전한 곳도 없는게 사실이고 그걸 증명하듯이 하루에도 타 도시의 열배는 넘는 인원들이 이 도시를 드나들어.”

 

그렇게 말하며 샤를은 손에 들고있던 서류중 하나를 그녀가 앉은 책상에 내밀었고 그것을 찬찬히 둘러보던 그녀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건 보통 기업이나 다름없잖아요?”

 

“그렇지, 많은 조직들은 시청에게서 허가를 받아서 정식으로 그런 사업을 해나가고 있어. 무력으로만 조직을 운영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거지.”

 

“…그럼, 조직들은 왜 군사를 키우는거죠?”

 

그의 말대로 조직들이 그저 기업이나 다름없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면 굳이 무력을 사용할 일이 없이 사회의 기업들이 그렇듯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써 싸우면 될것이 아닌가?

 

그런 그녀의 의문이 흥미로운지 샤를은 일어서서 설명을 하다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티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며 말을 이어낸다.

 

“물론 무력으로만 조직을 키우던 시대는 지나갔지만 아직까지도 이 도시에있는 조직들의 가장 큰 힘은 무력이야. 하지만 그 무력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사용하는 ‘명분’또한 필요하지.”

 

“명분…”

 

“그래, 어찌보면 그들이 하는 사업들 자체가 그 ‘명분’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명분’이 없는 무력행사는 그저 범죄일 뿐이지만―”

 

커피의 깊으면서도 쓴 맛을 입에 머금은 그의 붉은 눈동자에 이채가 서린다.

 

“명분을 가진 무력행사는 ‘대의’를 가지지. 그렇다면 명분을 가지고, 더 큰 무력을 가진 쪽이 승리를 하고 그에 합당한 힘을 더욱 가질 수 있게 되.”

 

“…과연.”

 

그의 말대로라면 결국 조직들이 하는 사업은 표면적인 것이고 그들의 실질적인 힘은 무력이라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력만 키워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희 조직은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요?”

 

그녀는 그제서야 궁금증을 풀어내었다. 그렇다면 이 정도 건물과 조직원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라이오스 역시 어떠한 사업에 종사해야 될 터.

 

그 말에 샤를은 자리에서 일어나 또 한 장의 서류를 내밀어보였고 그것을 찬찬히 읽던 그녀는 놀란눈으로 그를 돌아본다.

 

“정부 청부업…이요?”

 

“그래, 말 그대로 정부가 청부한 일을 맡아서 해주는 거야.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는 스케일 자체가 틀린 일이지. 조직 자체가 그런 일을 맡는 것도 희귀한 일이니까 말이야.”

 

“그럼 정부가 저희 조직을 안단 말인가요?”

 

본디 조직이라는 것이 음지에서 그 위험성을 숨긴체 살아간다고 생각하던 그녀는 그 의외성에 놀라며 되물었고 그 질문에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답하였다.

 

“알다마다. 보스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가 정치권에 개입하는 일이 꽤나 많아. 특히 10년전 ‘궤멸’전까지만 해도 뉴스나 신문에도 등장했었지. 우린 정부의 일을 도와주고 정부는 우리에게 자금 및 여러 가지 혜택을 주곤 했어.”

 

“하하하…실감이 잘 나지 않네요.”

 

어색하게 웃어버린 소녀는 이내 서류의 하단에 있던 내용에 시선을 옮기더니 놀라며 물었다.

 

“요인 경호… 이번에 들어온 일인가요?”

 

간략한 내용이 적힌 문구를 본 그녀가 묻자 샤를은 곤란한 표정을 내짓더니 시선을 회피했다.

 

그 시선이 뭔가 수상쩍다는 생각에 그녀가 시선을 돌리지 않고서 지그시 주시하자 그 표정이 재밌다는 듯 그는 웃음을 터트린다.

 

“푸핫, 뭐야.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뭐 보스에게 직접적으로 알릴만한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했고, 보스는 이제 바깥 출입을 조금 자제해야 되니까.”

 

그의 말에 그녀는 얼마전 이곳에 도착하자 실비아가 한말을 기억해 내었다.

 

“당분간 조직에 대한 업무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외출을 삼가시는게 좋으실 것 같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샤를을 통해서 말씀 해주세요.”

 

강압적이기까지 했던 탓에 그녀는 순순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고 지금 샤를과의 1:1 대면교육 역시 실비아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그녀에게 이 도시나 조직들의 세계는 별나라나 다름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알 권리는 있다고 생각해요.”

 

뾰루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 그녀의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샤를은 또 한장의 서류를 내민다.

 

기쁜 표정으로 서류를 받아든 그녀는 서서히 표정을 굳혀가더니 이내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 눈빛을 예상하기라도 한것인지 그 눈빛을 받아내는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리스가 이번 보호 대상이라구요?”

 

그녀의 친구. 네리스 벨시오의 이름이 서류에 적혀있는 것을 본 그녀가 물었고 샤를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 말에 답해낸다.

 

“그래, 정확히는 무역업체 벨시오에 대한 미확인 조직의 위협이 포착되었어. 그 조직원들의 최근 행동반경을 보았을 때 보스의 학교가 있는 도시인 ‘칼리부’가 행동 범위인데다가 무엇보다 벨시오의 주인인 게릭 벨시오나 장남들은 24시간 철통같은 경호를 받고 있어.”

 

“그에 비해 네리스는―.”

 

그녀가 알고 있는 네리스는 출가인이다. 답답한 집안의 규율에 질린 그녀는 스스로 소유한 자산만을 가지고서 집을 나와버린 것이다.

 

그탓에 가족과 마찰도 잦다고 들었던 그녀를 떠올린 앨리스는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 두통을 알아챈 샤를은 물잔에 물을 따라서 그녀에게 내밀며 말을 잇는다.

 

“그래, 무역업체 벨시오는 이 나라에서도 열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무역업체야. 그랬기 때문에 정부측에서도 지원을 위해 우리 조직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지. …뭐, 솔직히 나도 이런 식으로 꼬여버릴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경호인원은 몇 명이 나가있나요?”

 

“한명.”

 

“…네?”

 

한명이라는 말에 앨리스는 놀라서 들어올리던 물잔을 놓아버릴 뻔 하였다. 그 놀라는 모습마저 재밌는지 샤를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잇는다.

 

“아아, 걱정하지마. 애석하게도 현재 이 조직의 주요 전력 중 한명이 파견되었거든.”

 

“주요 전력이요?”

 

“그래, 보스도 잘 아는 인물이야.”

 

* * *

 

“…그래서, 제 경호를 맡았다구요?”

 

“그렇다.”

 

갈색머리에 교복을 단정히 입은 그녀는 집 문 앞을 나서자마자 자신을 경호원이라 밝힌 큰 키의 사내를 올려다보며 물었고 비슷하지만 더욱 짙은 갈색빛을 띄는 머리칼을 가진 그는 짧게 답했다.

 

“돌아가요. 아버지에겐 제가 말해놓겠어요.”

 

“거절한다.”

 

그를 지나쳐가며 도도하게 말을 한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오는 대답에 그만 넘어질 뻔 하였다. 그러고는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 잡아 그를 뒤돌아보더니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당신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에요?”

 

“장난이었다면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이번에도 역시나 잠시의 틈도 없이 곧바로 치고 들어오는 대답에 기가 센 그녀조차도 잠시 말을 잊고 말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품속에서 전화기를 꺼내더니 세자리의 번호를 누르고서 보여주듯 그에게 내밀며 말하였다.

 

“따라오면 경찰에 신고할 거에요?”

 

“해봐라. 하지만 경찰이 도착하는 시간과 네가 그것을 처리하는 시간. 그리고 네가 도착한 경찰을 처리하는 시간까지 합친다면 10분 밖에 남지 않은 네 등교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것만 말해주지.”

 

“엑, 10분?”

 

그녀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더니 저 멀리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30분에 한번씩 오는 버스가 매정하게 떠나버리고 있었다.

 

“아아악! 안돼애애!!!!”

 

날카로운 고음의 괴성이 터져나왔고 가볍게 귀를 후벼낸 갈색빛의 사내는 곁에 주차되어 있던 승용차를 가르키며 물었다.

 

“차량이동도 경호의 일부라 생각하고 태워주지. 경호에 동의 할텐가?”

 

* * *

 

“도대체 뭐에요 당신은?”

 

“플루토. 조직 라이오스의 일원. 네 아버지 게릭 벨시오와 정부의 요청으로 널 경호하게 되었다.”

 

“에? 언제까지요?”

 

“미정이다.”

 

“에에에엑?!”

 

운전대를 잡은체 담담하게 답한 그를 괴성을 지르며 바라본 그녀는 이내 창문을 열고서 멍하니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아버지에게 조용히 욕설을 내뱉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으로부터 경호하는건데요?”

 

“미확인 조직이다. 조직측에서 정보를 모으고 있으니 곧 궤멸시킬 거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지.”

 

“하아, 그놈의 조직…”

 

한숨을 쉬어낸 그녀는 얼마전의 일이 떠오르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 검은 승용차로의 납치와 그 직후 정신을 잃고서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배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메이와 울부짖는 앨리스였다.

 

“…어디 간거야, 이 바보.”

 

깜빡 병원에서 잠이 든 사이에 사라진 앨리스는, 등교조차 하지 않은체 그대로 그녀들의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메이는 그녀를 믿자고 했지만 네리스로써는 그리 현실적으로 마음을 차분히 하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사실 이었다.

 

“혼자 산다고 들었다.”

 

얼마나 생각에 빠져있었을까.

 

말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로부터 물음이 들려오자 의외라는 듯 네리스는 힘없이 답하였다.

 

“네에. 맞아요. 그놈의 집구석이 답답해서 뛰쳐나왔는데 하인이니 뭐니 데려올 여유가 있었겠어요? 뭐그래도 돈은 넉넉하고 혼자 사는 것도 나름 재미있어서 만족하고 있어요.”

 

“그렇군.”

 

사내는 머릿속에서 혼자서 큰 집에서 살고 있던 한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고서 옅게 미소지었다.

 

아마 지금 그가 그녀의 친우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뭐야, 아저씨 왜 갑자기 이상하게 웃어요?”

 

“신경쓸 것 없다. 도착이군.”

 

어느새 도착한 대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별말 없이 내리려다가 갑작스레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다. 분명히 이 대문앞에서…

 

“당신, 그때 대문앞에 서있던 그 사람이죠?!!”

 

“날 기억하나 보군.”

 

무덤덤하게 그녀의 말을 받아낸 그는 뭔가를 더 물으려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강압적인 그 눈빛에 그녀는 순간적으로 말을 잊었고 시선을 돌린 그는 말을 이었다.

 

“하교시간에 데리러 오도록 하지.”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그녀는 도망치듯 차에서 내렸고 차가 떠났음에도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차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시계를 보고서 놀라 학교로 뛰어들어갔다.

 

* * *

 

많은 학생들이 쏟아져나오는 하굣길의 운동장. 그곳을 얼마전과는 달리 혼자서 거닐어 나오는 소녀는 한숨을 내쉬며 교문을 나서다가 그대로 문득 자신의 앞에 서있는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표정이 좋지 않군.”

 

“아저씨 정말로 정체가 뭐에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당돌한 그녀를 무덤덤하게 내려다본 그는 기대고있던 차문을 열어 먼저 타고서 시동을 걸었다. 그것을 불만스럽게 바라보던 그녀는 곧이어 아무말도 없이 동승하였다.

 

“집으로 가는가?”

 

“웬일로 물어보내요? 묻지도 않고서 곧바로 집으로 갈 것 같았는데 말이에요.”

 

“경호하라고 했지 구속하라곤 하지 않았다.”

 

“…3번가 7주택지로 가주세요.”

 

그녀의 말에 그는 말없이 차를 출발 시켰고 차가 달리는 한동안 차안에는 오늘 아침과는 다른 침묵이 감돌았다. 그런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네리스다.

 

“앨리스, 알아요?”

 

“글세.”

 

“모른다고는 안하는 거 보니 알고 있나 보네요.”

 

영리하게 그의 생각을 읽어낸 그녀는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는 창공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잘 있나요, 앨리스는.”

 

“너보다는 훨씬 안전하다.”

 

딱히 숨길 생각은 없는 듯 그렇게 답한 그는 순간적으로 귓가에 실비아의 잔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였지만 이내 파리쫓 듯 손을 내젓는다.

 

학교로부터 그렇게 떨어진 곳은 아닌 3번가로 들어선 차량이 도착한 곳은 그렇게 크지 않은 빌라였는데 주변에는 서양식이 아닌 동양식 위주의 음식점이나 점포들이 들어서있는 것으로 보아 주거식 아시아 타운의 일종인 듯 하였다.

 

그녀가 말없이 내리자 그 역시 말없이 시동을 끄고서 그녀의 뒤를 따랐고 그 행동에 그녀는 멈춰서서 뒤를 홱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까지 따라올거에요?!”

 

“화장실 가는 것이 아니잖나. 경호의 기본 자체가 인근에 보호할 수 있는 범위내에 위치하는 거다.”

 

“…사생활 침해라는 생각은 안드나보죠?”

 

“네가 안전하지 않다라는 생각은 못하나 보군.”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언제나 날아드는 무덤덤하지만 확실한 말에 그녀는 이기기를 포기하고서 먼저 빌라안으로 들어섰고 그 뒤를 그가 무덤덤하게 따랐다.

 

빌라는 허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고급도 아닌 평범한 7층 높이로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건물 크기에 비해서 세대수가 많은 것이 내부의 거주 공간 역시 그렇게 넓어 보이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도 없는지 3층으로 걸어 올라간 그녀는 뒤따라온 그를 한번 노려보고서 조심스럽게 벨을 눌렀다. 그러자 안쪽으로부터 둔탁한 걸음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는데 문이 열리자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큰 키에 황색빛의 건강한 피부를 가진 단발머리 동양인 소녀다.

 

“여, 네리스 어서와.”

 

남성미가 느껴지는 어투로 인사를 건넨 그녀는 목발을 짚은체 네리스에게 문을 열어주다가 문득 그녀의 뒤에 서있는 사내를 발견하고서 놀란 표정으로 네리스를 자신의 등뒤로 잡아 당겼다.

 

“…뭐야, 당신. 왜 여기에?”

 

그녀의 질문에 그는 그녀가 짚고 있는 목발과 복부 부근에 힐긋 보이는 붕대를 번갈아보고는 무덤덤한 중저음의 음색으로 말하였다.

 

“거동도 불편한 것 같으니 일단 들어가지.”

 

“누구 맘대로…”

 

욕설이라도 퍼부으려던 그녀는 팔을 잡아당기는 네리스를 돌아보고서는 이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뒤를 네리스 역시 좋지만은 못한 표정으로 따라 들어섰고 그 뒤를 사내가 따랐다.

 

“대접해줄게 없어서 미안하네.”

 

방안은 여자의 방 치고는 꾸밈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있는것이라고는 작은 운동기구들과 서적들 정도인데다가 그리 크지도 않은 원룸 형태의 공간에는 침대마저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바닥에 오렌지 주스 두잔을 내려놓은 그녀는 얌전히 앉은 네리스와 한쪽 벽에 기대어 서있는 그를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오늘도 병문안 와줘서 고마워 네리스.”

 

“아냐, 심심할 것 같아서 온 것 뿐인 걸 뭐.”

 

멋쩍게 그녀에게 인사를 받은 네리스는 곧이어 설명을 요하는 눈빛에 한숨을 내쉬며 답하였다.

 

“일단 저쪽은 우리 집안에서 고용한 경호원이야. …라이오스? 인가 하는 단체에 속해있나봐. 메이도 구면이지? 그때 교문앞에 서 있던…”

 

“교문?”

 

교문이라는 말에 잠시 그를 올려다본 그녀는 이내 그 기억을 떠올려내었지만 미간을 찌푸린다.

 

“아니, 내가 기억하는 건 우리가 납치되었을 때 총을 쏘며 우릴 구해낸 사람이야.”

 

“뭐? 메이, 저 사람이 우릴 구했다고?”

 

네리스가 놀라서 묻자, 그녀의 친우 메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아마 분명히 앨리스가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는 사람일거야. 안그래요?”

 

“그렇다고 해두지.”

 

그녀의 말에 새삼스럽다는 듯 팔짱을 낀체 대답한 그를 보며 네리스는 못 참겠다는 듯 외쳤다.

 

“도대체 당신 뭐에요?! 처음엔 제 경호라더니, 지금은 우릴 습격한 사람이랑 관련이 있다니? 거기다가 앨리스가 사라진것도 관련이 있는거죠?!!”

 

그녀의 외침에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전혀 다른 개성을 보유하였지만 같은 목소릴 내는 두 소녀를 바라보고서는 지금쯤 열띈 교육을 듣고 있을 자신의 주인을 떠올렸다. 확실히, 친구는 닮는가.

 

“말해주지, 언젠가는 알게 될테니.”

 

그러고서 무덤덤하게 이어진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일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었다.

 

범죄라는 이름으로까지 불렸던 도시를 유토피아로 바꾸어놓은 한 사내와 조직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 그 이야기는 이내 새로운 주인과의 만남으로까지 연결되었고 기윽고 이야기의 시간대가 현실로 돌아오자 둘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그걸 지금 믿으라는 거에요?”

 

“믿든 믿지 않든. 그게 너희가 바랬던 현실이다.”

 

단호한 그의 말에 네리스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어린 그녀조차 가정환경탓에 조직이나 세비언 같은 곳의 존재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자신의 친구가 그런곳의 보스라니?

 

“그래서, 앨리스는 지금 세비언에 있는 겁니까?”

 

“그렇다. 교육과 안전을 위해서 당분간 외출은 금지당한 상태지.”

 

“그럼 조만간 돌아오는―”

 

“아니, 너희가 보스를 만날 일은 없다.”

 

단호하게, 끊어내듯 내뱉은 말에 그녀들은 그대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런 행동들에 아무런 감동(感動)도 존재하지 않는 듯 그는 말을 잇는다.

 

“스스로 선언한 어두운 길이다. 보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숙명을 피하는 것보다 그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그런, 그 아이는 보통 고등학생이라구요!!!”

 

참다못한 네리스가 외쳤지만 그런 그녀에게 날아드는 것은 차가운 눈빛과 시선이다.

 

“몇일 전까지는 그랬을 테지. 하지만 스스로 그 길을 포기하였다. 너희들도 그 증거는 알잖나.”

 

그 말에 두 소녀는 침대맡에 놓아둔 한 학생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들도 이미 자신들에게 남겨놓은 저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있을 것이다.

 

“진정 친구를 위한다면 믿고 기다려라. 언젠가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을 지킬 힘을 지니고서 당당하게 너희들 앞에 돌아올 그 날을.”

 

무덤덤하지만 확실하게 끊어내뱉는 그의 말에, 두 소녀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끝나지 않을것만 같던 침묵이 깨어진 것은 그가 문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나서였다.

 

“어디가요?”

 

“잠시 바깥 공기좀 쐬고 오도록 하지.”

 

네리스가 묻자 무덤덤하게 답한 그는 곧바로 문을 열고 나갔고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네리스는 피식, 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뭐야. 무슨 경호원이 바깥 공기를 쐰다고 자리를 비우는게 어디있어? 안그래, 메이?”

 

“…나쁘진 않은 사람같네.”

 

조용히 내뱉는 그녀의 말에 네리스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아. 그러고보니 이름을 아직 못 물어봤네.”

 

* * *

 

어느새 밖은 해가 완전히 져버리고서 가로등이 켜지는 어둠이 찾아와 있었다. 빌라 입구로 나선 그는 입구에 설치된 가로등에 등을 기대더니, 품속에서 진동이 울리자 곧바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이름을 확인하고서 수신버튼을 눌렀다.

 

“샤를인가?”

 

“여어, 하루째인데 어찌 알콩달콩 하신가?”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경박한 웃음소리가 이제는 익숙한지 가볍게 무시하고서 그는 묻는다.

 

“…전화한걸 보니 찾았나 보군.”

 

“아아. 예상대로 저번 2회에 걸친 보스 납치범들과 이번 위협조직은 같은 조직이었어.”

 

“정보는 모았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그에게 샤를은 ‘주인이나 부하나 똑같다’느니 하는 말을 중얼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조직의 이름은 바오순트. 아랍계 혼혈인 제마드 율리안트가 보스로 있는 신흥 조직이야. 신흥조직답게 주 사업루트는 마약과 인신매매. 그리고 밀수업에도 손을 대고 있는 모양이야.”

 

“밀수업?”

 

밀수업이라는 말에 그는 한쪽 눈꼬릴 들어올리며 의문을 표하였다. 벨시오에 대한 위협의 목적이 대충 짐작이 가는 것이리라.

 

“뭐, 예상이 가겠지만 그 조직에서 벨시오에 제안한건 밀수업에 필요한 유통 루트 및 지분의 일부야. 뭐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데 벨시오 입장에서도 단순히 무시할 수 만은 없는 입장인가봐.”

 

“그렇겠지. 생각하고 덤비는 놈보다 무식하게 덤비는 놈이 어떤 때는 더 무서운 법이니까.”

 

“하핫, 동감이야.”

 

“그런데 놈들이 보스는 왜 노리는건가.”

 

신흥 조직이라면 전성시대의 라이오스를 두려워하는 원로급 조직도 아니거늘 라이오스의 보스를 납치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일방적인 암살보다는 납치를 하며 신변을 보호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뭐, 동기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지만 적어도 녀석들이 계속하여서 보스를 노리고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아. 오늘도 건물 주변에서 몇 차례나 녀석들을 잡아들였거든.”

 

“…처리는?”

 

“서브 보스께서 능숙하게 하셨지.”

 

“그렇군.”

 

그녀의 성격상 아마 그들이 걸어서 그 건물을 나설 수는 없을거라 예상한 그는 시선을 저 멀리 어둠속으로 던지고서 말을 잇는다.

 

“이만 끊어봐야겠군.”

 

“뭐야, 데이트하러 가는건가?”

 

“아니.”

 

그는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았고 이내 주변에 이상하리만치 행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손님이다.”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서 휴대폰을 품에 넣음과 동시에, 가로등이 비추지 않는 어둠속에서부터 수많은 사내들이 돌진해오기 시작하였다.

 

“호오.”

 

그는 돌진해오는 사내들의 복식과 움직임을 보고서 흥미로운 듯 미소를 내지었다.

 

지금까지 출소후 보아왔던 정장 차림의 일개 조직원들이 아닌 검은 천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신비하게 감싼 이들이었는데 오른손에는 권총을, 왼손에는 기이하게 휜 곡도를 쥐고 있었다.

 

“아랍계 조직이라더니 전투방식도 흥미롭군.”

 

그는 순수하게 감상을 내뱉으며 손에 쥐어진 권총으로 가장 먼저 당도한 사내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공격당한 사내는 피하려 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날아들어온 충격과 괴력에 균형을 잃으며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고 정신을 차리고서 상체를 일으킴과 동시에 어느새 눈앞에 드리워진 총구를 볼 수 있었다.

 

타앙―

 

섬뜩한 총성과 두개골이 부숴지는 소리가 울렸고 순식간에 한 생명을 끊어낸 그는 이번엔 품속에서 나이프를 꺼냈는데 형태는 군용 나이프와 다를바가 없었으나 칼날의 길이가 50cm정도로 평균보다 조금 긴 나이프였다.

 

그는 나이프로 자신의 허벅지를 노리고 들어오는 곡도를 쳐내더니 그 괴력으로 인해 곡도의 주인이 일순간 균형을 잃자 휘둘렀던 나이프를 빠르게 거두어 목을 베어내었다. 그리고 휘둘렀던 나이프로 미간을 가리자 곧바로 날아든 총탄 하나가 칼날에 맞아 궤도를 바꾸어 튕겨나갔다.

 

그리고 곧이어 그가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자 그가 있던 자리를 수발의 총탄이 지나갔고 총을 쏜 자들 사이로 파고든 그는 총구를 돌릴 때 이미 또 한 사람의 목을 베어내고서 자신에게 날아든 총탄들을 향해 목이 사라진 사체를 집어던졌다.

 

사체가 총탄으로 난자당했음에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서 곧바로 그의 모습을 찾았는데 어느새 그는 한 조직원의 명치에 나이프를 꽂은체 그걸 방패삼아 돌진해오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총탄을 방어하며 또 하나의 조직원에게 부딫히더니 나이프를 뽑아냄과 동시에 부딫힌 조직원의 허리를 양단하였다.

 

“…수류탄!”

 

조직원중 머리에 금으로 된 링을 끼고 있던 사내가 외치자 남아있던 조직원들은 그 사이에 조직원들 셋의 생명을 끊어놓는 그에게 허리춤에 메달려있던 수류탄을 던졌다.

 

일곱 개에 달하는 수류탄이 각자 간격을 두고서 그를 향해 던져졌고 무심코 수류탄을 피하려던 그는 등뒤의 빌라를 바라보더니 발걸음을 멈추고서 가까이서 피분수를 뿜고 있는 조직원이 상체에 두른 천을 빠르게 풀어내어 수류탄으로 돌진했다.

 

그는 천을 넓게 펴더니 자신에게로 날아들고 있는 수류탄을 빠르게 움직여 감쌌고 그대로 매듭을 묶어 그들의 머리 위로 던지고서 쓰러져있던 사체에 나이프를 꽂더니 그것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

 

“피하라―!”

 

명령을 내렸던 사내가 외쳤지만 이미 수류탄은 폭발하여 굉음과 함께 그 파편을 뿌려대었다.

 

그 파편은 순식간에 지상에 있던 조직원들의 신체를 뚫고 지나갔고 기윽고 파편의 추락이 끝났을 때 넝마가 되어버린 시체를 바닥에 내동댕이 친 그는 양다리가 날아간체 숨을 헐떡이는 생존자에게로 다가갔다.

 

그 생존자는 방금전 명령을 내린 사내로 절단된 두 다리에서 다량의 출혈이 있는 탓에 아마 인근의 병원으로 옮긴다 한들 목숨을 부지하기는 힘들 것이었다.

 

“바오순트. 물을게 있다.”

 

“…답해줄 것 같은가?”

 

숨을 헐떡이며 내뱉은 그의 대답에 사내는 곧바로 무덤덤하게 나이프로 바닥을 긁더니 그대로 그의 오른쪽 어깨를 절단시켰다.

 

격통 탓인지 그는 소리없는 비명을 내질렀고 쇼크탓인지 정신을 잃으려다가 왼쪽 어깨의 촉감에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피로 물든 나이프가 예기를 내뿜고 있었다.

 

“보스 제마드 율리안트의 현 위치. 말하라.”

 

“말할 것 같으… 크악!!!”

 

그는 왼쪽 어깨에 깊이 박혀든 격통에 괴성을 내질렀고 나이프를 놓고서 권총의 총구를 그의 미간에 겨눈 갈색빛의 사내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너도 전사라면 전사로서 죽고 싶을 테지. 하지만 이 대답에 불응한다면 난 더 이상 너를 전사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도리를 어긴 것은 너희다.”

 

“크윽…”

 

복면 속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더니 곧이어 그의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고 이내 그는 숨을 멎었다. 사내는 대수롭지 않은 듯 그가 입에서 거품을 무는 것을 확인하고서 나이프를 뽑아 피를 털어내 품안에 갈무리하였고 휴대폰을 꺼내었다.

 

“샤를. 처리반을.”

 

“이미 보냈어. 곧 도착할거야. 생각보다 빠른걸?”

 

“방식이 흥미롭긴 했지만 급수가 낮더군.”

 

“흐음. 네 급수에 맞는 존재가 그리 많지 않아.”

 

샤를의 마지막 말은 가볍게 무시한 그는 어느새 사체를 트럭에 싣고 잔해를 수습하는 존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머리에 링을 하고 있는 조직원의 경우에는 보스로부터 직접 명령을 하달 받는 모양이다.”

 

방금전 죽음을 당한 사내는 그의 질문에 ‘말할 수 없다’고 하였지 ‘모른다’라고는 하지 않았다.

 

알고 있으나 말할 수는 없다는 뜻임을 알아챈 그의 의중을 읽은 샤를은 웃음 소릴 흘리며 말했다.

 

“호오, 분대장급의 표식인가? 아마도 그들은 제마드가 이쪽으로 건너오면서 데려온 본국의 전투원들일거야. 그런 답답한 복식을 일부러 고수하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여하튼 정보 고마워.”

 

“다시 연락하지.”

 

그러고서 휴대폰을 품속에 넣자 어느새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사체와 그것을 수습하러 온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그것마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뒤를 돌아 빌라로 들어서려 하자 빌라의 문앞에는 어느새 네리스와 메이가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보았나.”

 

강압적인 말투. 그 말투에 네리스는 움찔하며 메이의 뒤에 숨었고 메이 역시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앨리스는 안전한거에요?”

 

“말했을 텐데, 너희보다는 안전하다고.”

 

그렇게 답하고서 그는 손목에 찬 낡은 시계를 보더니 메이의 뒤에서 떨고있는 네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집으로 가기엔 무리가 있을 듯 하군. 괜히 피해만 많아질 것 같으니 오늘은 여기서 묵도록.”

 

“잠깐만요, 이 빌라가 더 사람이…”

 

그에게 반론을 제기하려던 네리스는 이내 뭔가 이상한점을 알아채고서 빌라 건물 안을 돌아보다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분명 자신들 조차 들었던 총성과 폭음들인데도 누구하나 빌라의 밖으로 관심을 보이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이 빌라안에 그들만이 있는 것처럼.

 

“…내가 시기적절하게 온 모양이군. 아마도 그들은 너희에 대한 신상정보를 모두 파악한 모양이다. 이 빌라의 현 소유권자를 조사해본다면 방금 죽은 녀석들의 주인 이름이 나올테지.”

 

“…그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하는 메이에게 담담한 눈빛을 보낸 그는 빌라를 천천히 훑어보더니 입구계단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을 이었다.

 

“괜히 녀석의 집으로 가거나 장소를 옮기는 편이 더욱 위험하다. 지킬 수 있는 곳을 알고 그곳을 집중적으로 지키는 편이 경호에 유리해. 거기다가 이미 거주자들도 없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주변의 거주건물 역시 거리가 있지.”

 

“도대체 당신은 뭐에요?”

 

많은 의미를 담아서 메이는 물었고 그 물음에 갈색빛의 시선에 공허함을 담은 그는 하늘에 무덤덤하게 걸린 초승달을 바라보며 말했다.

 

“…10년전에 생자(生者)이길 포기한 사자(死者).”

 

“네?”

 

극도의 슬픔을 담은듯한 그 음색에 메이가 놀라 되물었지만 그는 이내 눈을 감으며 말을 돌린다.

 

“들어가도록. 감기에 걸려서 병원마저 전쟁터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맘에 안드는 사람.”

 

짧게 쏘아붙인 메이는 이내 네리스의 손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고 혼자남은 그는 이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읊조린다.

 

“생자이길 포기한 사자라… 나이를 먹으니 이런 구절밖에 떠오르지 않는군, 휴고.”

 

그는 먼 옛날의 기억 중 따스한 기억하나를 조용히 꺼내어 감상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 * *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하지만 평소에 이루어지던 죄의 고발과도 같은 그런 꿈과는 확연히 다른, 아주 오래전에 가슴 깊은 곳에서 닳아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따스한 기억들로의 회귀. 그 꿈들은 그에게 실로 오랜만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 꿈이 자연스레 끝이 나고서 눈을 뜨자 눈앞에 드리워진 것은 총구였다.

 

“…샤를이군.”

 

햇빛을 등진체 총구를 겨누고 있다가 장난스럽게 총을 거두는 것은 다름아닌 붉은 머리의 사내다.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에 걸며 답한다.

 

“장난 하나도 통하지 않으면 인기 없다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한손에 들고 있던 편의점 로고가 그려진 봉투를 내려놓으며 그의 옆에 앉더니 봉투안에서 인스턴트 햄버거를 그에게 건네고서 자신 역시 햄버거를 꺼내 한입 베어 물며 말하였다.

 

“무슨 꿈을 꿧길래 답지 않게 그렇게 곤히 자고 있던거야? 경호원이 그랬다는 걸 알면 우리 밥줄이 끊길 지도 모른다고.”

 

말은 심각했지만 그것을 말하는 샤를의 말투는 장난스럽기 그지 없었다. 어지간히도 그의 자는 모습이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그의 장난기를 가볍게 무시한 그는 무덤덤하게 햄버거를 베어물며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오전 8시를 향하고 있었으니 어제 밤으로부터 꽤나 오래 잔 셈이다.

 

“확실히, 경호원 실격이군.”

 

“뭐, 완전 실격은 아니야. 살기에 곧바로 반응하는 그 감각에는 감탄이 나올 정도니까.”

 

“…살기라.”

 

분명 살기에 대한 감각은 열려있다고 예전부터 평가받아왔지만 방금전 샤를의 행동에 살기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그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생각보다 치명적인 인물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봉투안의 캔커피를 꺼내 한모금 머금으며 말했다.

 

“무슨일로 온거지?”

 

“정보가 모여서 말이야.”

 

“벌써? 생각보다 우수하군.”

 

“…그 말 칭찬으로 들어도 되겠지?”

 

멋쩍게 웃은 샤를은 이내 품속에서 서류 뭉치 하나를 건네었고 그것을 받아든 그는 순수한 감탄을 내뱉으며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그곳에는 바오순트의 구체적인 조직도 및 지분. 그리고 보스인 제마드 율리안트의 이동 예상경로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한 조직에 대해서 이정도까지 조사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이것을 하룻밤만에 해낸 그가 놀라웠던 그는 감상을 내뱉으려다 그의 피곤한 얼굴에 뭔가를 알아채고서 물었다.

 

“밤을 샌 모양이군.”

 

“아아. 어제 있었던 일을 보고했더니 보스가 길길이 날뛰는 통에… 젠장, 말하는게 아니었어.”

 

“호오.”

 

샤를의 말에 그는 흥미롭다는 듯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그 얌전한 아가씨가 날뛰었다는 것이 쉽사리 상상이 되진 않지만 자신의 친우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에 분노하는 점은 왠지 친부를 닮았다는 생각에 옅게 웃음을 내지어보인다.

 

“곧바로 움직여야겠군.”

 

“아, 그리고 한가지 주의사항.”

 

일어서서 가려는 그를 샤를이 제지했다.

 

“벨시오와 정부측에서 요구한건 위에 있는 아가씨의 경호잖아?”

 

“제마드만 없애면 경호를 할 필요는 없잖나.”

 

“그렇긴 하지만 들려온 소식으로는 벨시오 측에서 제마드를 없애기 위해 무장단체를 고용한 모양이야. 그래서 라이오스 측에서는 인원을 따로 파견할 수가 없어. 결론은 겹치지 않게 하란 말이지.”

 

무장단체라는 말에 그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며 의문을 표한다. 평범한 ‘조직’이 아닌 무장단체를 고용했다는 말에 뭔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 생각을 모를리 없는 샤를은 품속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뭐, 거기까진 정확히 알지 못했어.”

 

“그렇군. 그럼 갔다오도록 하지.”

 

“…어딜 가는거에요?”

 

그때, 문쪽에서 들려오는 음색에 그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 네리스가 굳은 표정으로 서있는 것을 본 그는 무덤덤하게 말을 받았다.

 

“등교할 시간 아닌가?”

 

“개교기념일이에요.”

 

그 말에 그가 샤를에게 확인을 요하는 눈빛을 보내자 그는 어깨를 으쓱여보인다. 그녀의 스케줄까지 파악할 여유는 없었던 모양이다.

 

“위협이 되고 있는 조직을 없앨거다.”

 

“…없앤다고요? 혼자서?”

 

“없앤다.”

 

다시한번 확언하는 그를 바라보던 네리스는 입술을 깨물고는 물었다.

 

“돌아올거에요?”

 

“그 조직을 없애면 널 경호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 말은 곧 경호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그러자 네리스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그에게 다가와 손에 꼭 쥐어주었다. 그가 의아해하며 손안에 있는 그것을 바라보자 그것은 다름아닌 앨리스의 학생증이었다.

 

“전해주세요. 기다리겠다고. 그리고 못한 생일 파티는 몇배는 더 화려하게 해주겠다고 말이에요.”

 

“……”

 

스스로 내려놓았던 이것을 돌려주라 말하는 그녀의 말에 잠시 그는 무거운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품안에 갈무리해 넣으며 말했다.

 

“…그러지.”

 

그 말과 함께, 그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섰다.

 

그가 저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는 다타들어간 담배를 비벼끄던 샤를에게 물었다.

 

“아참. 혹시 저 사람 이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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