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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단편전쟁] 후추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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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42 Mar 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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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Kale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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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고기는 냄새가 너무 나."
 그녀는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말했다. 아마 질겅질겅이라는 수사가 가장 적당할 것이다. 직접 씹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그 고기 한 점을 입에 집어넣고 한참 동안 씹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랬다. 운동량이 많은 부위가 질기던가? 거기다 냄새까지 심하다는걸 보면 아무래도 부위를 잘못 고른 것이리라. 아니면 굽는게 아니라 삶는다거나, 그랬어야 했을 수도 있다.
 고기에 적당한 요리법 같은건 사실 평소의 나와는 별 인연이 없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번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고기가 너무 많이 생겨버려서, 그녀와 나는 그 고기를 해치울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후추를 좀 더 칠까."
 그녀는 씹던 고기를 뱉어내고는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도 고기 절반에 후추 절반인 상태다. 거기다 후추를 더 뿌리면 그건 고기가 아니라 후추를 먹는 것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을 터다.
 "맵지 않아?"
 내가 말했다.
 "후추는 좋아하니까."
 그녀는 젓가락으로 고깃조각 하나를 집어들고, 그 위에 후추를 뿌리면서 말했다.
 "예를 들어서, 크림 수프 같은건 수프가 아니라 후추를 먹기 위해 만드는거라고 생각해."
 그런가? 그 이야기는 생각보다 설득력 있었다.
 "그런데 이건 후추 가지고는 냄새를 못 잡겠어."
 그녀는 새로 후추를 뿌린 고깃조각을 다시 입에 넣고 몇 번 씹었다가, 그대로 다시 뱉어냈다.
 "삶는게 낫지 않을까. 월계수잎도 좀 넣고."
 내가 말했다. 굳이 월계수잎 뿐만 아니라, 쓸만한 향신료 같은걸 다 쓸어넣으면 아마 먹을만한 정도까지는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럴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그냥 버려야겠다."
 아마 그러는게 낫겠지. 나도 요즘은 식욕이 없어서 그걸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거진 일주일 동안 끙끙댄 덕분에 남은 고기는 상당히 줄어든 상태다. 기름이 너무 많은 부위나, 그다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부위 같은건 믹서로 잘 갈아서 하수도로 흘려보냈다. 뼈가 생각보다 많기는 했지만, 며칠동안 끓인 다음에 빻아서 마찬가지로 하수구에 집어넣어서 그럭저럭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고나니 남은건 허벅지 같은 곳에 붙은 살점 정도였다. 쓸데없이 마른 녀석이라 의외로 전체적인 양에 비해서 먹을만한 부위는 얼마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잠깐 생각을 하는듯 하더니, 질렸는지 벽에 가져다놓은 쿠션에 몸을 길게 기댔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한 축에 속했다. 다른 녀석들에게는 소심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런 처지까지 떨어진건 아마 그런 이유였겠지.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다. 소심하다는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는 치들이 학교엔 너무 많았다.
 아마 다른 학교라는 핑계로 실질적으로 그녀를 돕지 못했던 것이,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 가장 큰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친구였다느니 하는 허울 좋은 이야기보다 차라리 그런 것이 더 절실하지 않은가? 굳이 그럴듯한 이야기로 둘러대며 변명할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변명하지 않는다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K를 죽인 방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딱히 그녀가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어서였다기보다는, 아무래도 남겨져서 좋을 것 없는 증거가 죽이는 과정 동안 생기지는 않았을까 하는 내 염려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특별히 동요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마 소심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속으로만 웃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비가 오는 날을 택해, K가 하교하는 산길에서 그 녀석을 덮쳤다고 들었다. 피가 흐르면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 무기는 무거운 망치를 썼다고 했다. 그걸로 머리를 한 대 후려치니 시시할정도로 간단하게, 즉사해버린 모양이었다.
 그러고나서 시체를 처리하는게 문제였다. 땅을 파자니, 아무래도 여자의 몸으로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구덩이를 판다는게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래서 나를 불렀다. 물론 전화 따위는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이서 감당하기에는 조금 버거운 양이기는 했다. 팔다리 같은 부분을 뜯어내서 부피는 어느정도 줄일 수 있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 무게가 어디로 사라지는건 아니니까. 그래도 대충 절반 정도씩 나눠 쇼핑백에 집어넣으니 어찌저찌 들고 이동할 수는 있었다.
 차라도 있으면 좋았을텐데.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손으로 그걸 들고, CCTV들을 피해 내가 살고 있는 집에까지 그걸 끌고 들어왔다. 주의한다고 주의했지만 아마 이 과정에서 무슨 실수가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아마 잘 됐으면, 그날따라 쇼핑을 많이 한 한 명 정도로 보일 수도 있을 터다. 그렇지만 혹시나 싶어서 그녀와 내가 시체를 나르는 사이에 간격을 두기도 하고,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적당히 모양을 맞춰 시체를 자르기도 했으니까, 설령 누군가의 눈에 띄었었다고 해도 특별한 인상은 주지 않았을 것이다.
 K의 휴대전화로 추적하는걸 따돌리기 위해 우리는 그 전화를 들고 산길을 조금 걷다가 배터리를 빼어 산 속 어딘가로 던져버렸다. 아마 잘하면, 설령 수사가 시작된다고 해도 어느정도 혼선을 주는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것이다.

 사실, 그녀가 K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그다지 신기하지도 않았다.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허무한 이야기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안다. 단지 그 이후에 처벌을 받는다거나 하는 일이 싫어서 죽이지 않는 것 뿐.
 그녀가 이전에도, 그 치들을 죽이고 싶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그 말 속에 어느정도 진심이 들어있다는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일이 터지기를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K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지만, 선생에게도 그건 그다지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라고,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문제아에다, 무슨 일이 있는지 전화라도 해보고 싶어도, 그 전화할 가정이라는게 없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K와 어울리던 치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약간은 화제가 됐던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치들이 어울리는 방식이란 본디 얄팍하기 그지 없는 것이어서, 전화를 몇 번 해보고 받지 않자 어디 잠수라도 탔나, 라는 식으로 넘기고는 다른 즐거운 화제로 넘어갔다고 했다.
 "그런 녀석이 죽는다고 슬퍼할 녀석이 있을 리가 없지. 죽었는지 어떤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그녀가 말했다.
 "아, 드디어 죽었어? 라고 박수칠 사람이야 있겠지."
 내가 답했다.
 "너는 어느 쪽?"
 벽에 기대고 있었던 그녀는, 몸을 일으켜 누워있는 내 위로 올라왔다.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내 뺨에 닿았다. 타인의 살갗의 촉감이 어떤 것인지 하는건, 생각해보면 의외로 낯선 것이었다. 그 낯설음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아슬아슬하게 내 얼굴 위에 놓여 있다.
 "글쎄."
 내가 말했다.
 "그 녀석이 죽었다는건 그냥 그래."
 그녀 또한 내가 그 녀석 참 잘 죽었지, 하는 식으로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것 따위는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가느다랗게 숨을 내쉬면서 내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런 녀석이 이제 없다는건 반갑지만."
 그녀는 내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고는 가만히 포갰다. 기름 냄새와 고기 냄새, 후추 냄새가 진하게 났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나는 내 위에 올라앉은 그녀의 등과 머리 뒤에 손을 대고 가만히 끌어안았다.
 기분은 사실 모호했다. 어쩌면 내가 그녀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감정이라는 것들이 대체로 그런 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함.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일이 이렇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건 우스운 이야기였다. 물론 시체 하나를 처리한다는게 피곤한 일이기는 했고, 이래저래 들킬 염려 때문에 신경이 민감해지는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건 내 처지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하는 식으로 쓸데없는 소리를 할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들었고, 가쁜 숨을 몇 번 내쉬었다.
 "어때, K가 없으니까 학교는 좀 괜찮아?"
 물론 그녀와 나는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쪽이 의심을 피하기에도 좋고, 그녀도, 나도, K를 죽인게 학교에 나가서는 안 될만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도 그랬다.
 "걔가 주축이었으니까. 앞장서던 녀석이 없어지니까 날 괴롭힐 생각도 별로 안 드는 모양이야."
 그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것 뿐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을는지도 모른다. 나도, 가끔씩 그녀의 눈빛이나 시선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걸 느낄 때가 있으니까.
 "뭐, 또 그러는 녀석이 있으면 죽이면 되니까. 해보니까 생각보단 어렵지 않던데."
 그녀가 비시시 웃으며 말했다.
 "난 사양이야. 시체 처리하는게 귀찮으니까."
 "에이, 너 없이는 못 해."
 그녀는 다시 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물론 나도 기꺼이 거기 응했다. 굳이 그녀에게서 떨어지고픈 생각은 없었고, 그녀도 그건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나, 너랑 결혼할까?"
 뺨 옆에서, 그녀가 그렇게 속살거렸다.
 "결혼?"
 "너 아닌 다른 사람하고 산다는게 상상이 안 되서."
 "결혼은 무리야."
 내가 말했다. 그녀는 짐짓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동거 정도나 가능하지 않을까?"

 "나, 사탕 하나 사 주라."
 "그거, 사달라고 해서 사준 것도 의미가 있는건가?"
 "동거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 됐지 뭐."
 나는 그녀와 맞닿은 채로 몸을 일으켰다. 내가 물었다.
 "무슨 사탕이 좋은데?"
 "일단 입가심을 좀 하고 싶은데."
 고기 냄새 때문에 그러는걸까?
 "후추맛 사탕으로 할게.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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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 매니아로서의 취향을 조금 (많이) 가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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