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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단편전쟁] 코프스 러버스 - 그들은 좀비지만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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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30 Mar 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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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Ponte.
"죽는다면, 너랑 같이 죽고 싶었어."

민트향 키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서류를 보고 소년은 말문을 잃었다. 그리고 그 서류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들은 그들을 향해 쏘아진 자동차 전조등에 눈을 가릴수밖에 없었다.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그 자동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자동차에 달린 메가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순순히 이쪽으로 와라 얘들아. 다치게 하고싶진 않구나."

소녀는 군복 입은 남자를 향해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소년이 소녀의 손을 잡았다. 소년의 손에 까슬한 웨딩장갑의 감촉이 느껴졌다. 소년은 나지막히 말했다.

"뛰자."

그리고 휙, 소녀의 웨딩드레스가 휘날렸다. 그와 동시에 탕! 커다란 공포탄 소리가 그 둘의 귀를 울렸다. 그 소리에 그 둘은 잠시 비틀 했지만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그들의 뒤를 한 무리의 군인들이 쫓았다. 공포탄 소리에 놀란 개들이 짖는 소리만이 그들이 떠난 골목 안을 메웠다.




코프스 러버스 - 그들은 좀비지만 사랑합니다




광견병 바이러스의 유전자에 나병균의 유전자가 합성되어서 생겨난 신종 바이러스. 그의 창궐로 인해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전염 경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체액의 교환. 때문에 그렇게 전염이 잘 되는 병은 아니었지만, 한번 감염되면 상당히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 증상 첫 번째. 신체가 썩어나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작은 가려움증으로 시작되지만 점점 피부가 붉게, 그리고 고동색으로 변하다가, 나중에는 떨어져나간다. 그 다음, 신경계에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시작하면 점점 피부의 감각이 무뎌지고, 나중에는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떠한 통각, 촉각, 온각, 냉각, 압각도 전부 느끼지 못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뇌에 바이러스가 침투하게 되면 자제력을 잃고,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 강해진다. 이 단계까지 오는 데에 10일. 그리고 이만큼 병이 진행되면, 그 사람은 정말 말 그대로.....

좀비가 된다.




"헉, 헉, 헉......."

소년과 소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을 쫓는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소년은 크게 한숨을 쉬며 커다란 다리의 기둥에 기대어 쭈그려 앉았다. 잠시동안 헉헉거리는 소리. 겨우 숨을 가다듬은 소녀는 말했다.

"대체, 왜 도망친거야! 뭘 어쩌려고......"

하지만 소년은 묵묵부답. 소녀의 양볼이 부풀었다.

"우리, 다시 돌아가..."
"데이트하자."

뜬금없이 튀어나온 소년의 그 말에 돌아가...의 '가'를 말하던 소녀의 입은 그모습 그대로 딱 굳어버리고 말았다. 얼굴엔 황당함이 가득. 그러나 소년은 그런 소녀의 반응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가 연인이 된 지 겨우 3일밖에 안 지났잖아.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들의 관계가 끝나버리는건 싫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데이트 하자."
"잠깐, 너 지금 생각이 있는거야? 우리가 걸린 병이 지금 뭔지는 알고서...."
"당연하지."

소년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생각해봐. 좀비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해서 바로 좀비가 되는건 아니잖아. 바이러스가 뇌까지 침투하는데 10일, 우리가 언제 이 병에 걸렸는지는 모르는 거니까 뭐 넉넉잡아도... 아니 넉넉잡아도가 아닌가? 하여튼, 5일 정도는 시간이 있는거야. 그러니까 그 동안, 후회하지 않도록 신나게 데이트하고, 뇌에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전에 자수하는거야."
"..하..하지만, 하지만... 다른사람한테 옮기면?"
"이 병은 그렇게 쉽게 옮는건 아니랬어. 웬만한 접촉으로는 옮지도 않고, 침 같은 체액을 직접 교환해야지만 옮을 수 있대."

그...우리..처럼...말이지... 라고 소년은 덧붙였다. 소녀의 뺨도 덩달아서 붉어졌다.

"그러니, 우리가 조심하면 다른사람에게 옮지 않을거야. 응? 그러니까..."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는 더러워진 웨딩드레스 치맛자락만을 쳐다보며 묵묵부답. 소년은 소녀의 이 반응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네살때부터 함께 지냈던 그들이다. 이는 분명 90%는 넘어왔음을 나타내는 신호. 소년은 마지막 펀치를 날렸다.

"우리가 그대로 이렇게 잡혀가서 영영 다시 보지 못해도 좋아?"




그들이 영동선 기차를 탄 것은 늦은 밤이었다. 자기들 딴에는 CCTV에 걸리지 않겠다고 빙빙 돌아서 ATM을 찾고, 돈을 뽑고, 옷을 버리고(다행히 소녀는 웨딩드레스 안에 옷을 입고 있었다), 또 아까처럼 빙빙 돌아 기차역으로 간 것이다. 다행히 늦은 시간에도 기차는 운행하고 있었고, 좀비 바이러스의 여파 때문인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참고로 그들은 마스크에 모자, 그리고 피부를 다 가리는 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 역시도 요즘 유행하는 옷차림인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좀비 바이러스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 옷차림을 하는 것이었고, 그들은 자신이 좀비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또 자신의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런 옷차림을 한 것이란게 다르긴 했지만.




그리고 몇 시간 뒤, 그들은 바닷가에 서 있었다. 도망지 하면 강원도(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원도 하면 바다 라는 훌륭한 논법을 거친 결과였다. 붉게 물든 하늘, 임박한 일출. 소녀는 자판기에서 뽑아온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일출이네."
"일출이야."

침묵. 소녀는 한번 더 커피를 홀짝였다. 소년은 빨개진 코끝을 한번 더 비볐다. 봄이긴 했지만 새벽엔 꽤 쌀쌀했다. 소녀는 말했다.

"별 감흥 없네."
"그러게."

침묵.

"춥다."

침묵. 침묵. 침묵.... 어느새 해는 다 떠올라 있었다. 소년의 입이 꾸물거렸다. 뭘 말해야 좋지?

"....좀비가 됐는데 햇빛 받아도 별로 지장은 없네."
"....응?"

소년의 말에 소녀는 미간을 콱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게 정색할 것 까지야. 소년은 생각했다.

"아니, 뭐.. 햇빛 받으면 크아아아아악!!!... 하고 뭐 녹아내린다던가.."

소녀는 다시 커피를 홀짝였다.

"그건 뱀파이어지..."
".....아 그런가....."

침묵....이 이어질 뻔 했으나, 소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야, 그 예전에 내가 뭐 본 좀비물중에 그 뭐냐, 그 마..막, 좀비가 햇빛 받으니까 막 크아아악 거리면서 막 이렇게 어? 막 괴로워하는 그런거 있었는데?"

소녀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커피는 다 마신 상태였다.

"으엥? 햇빛 받으면 괴로워하는건 뱀파이어라니까? 좀비는 그 뭐냐, 그.... 뭐 모르겠네."
"아냐, 근데 내가 봤어! 진짜야!"

소녀는 종이컵을 콱 구겼다.

"그럼 확인해보면 되잖아! 뭐 걸래?"




작은 방 안에 이불, 그리고 소년과 소녀, 한 무더기의 DVD가 쌓여있었다. 뭔가 쿰쿰한 냄새. 소년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다고 꼭 이렇게..."
"아냐, 이렇게 해야겠어."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DVD를 플레이어 안에 넣었다. 제목은 '새벽의 저주'. 잠시 제작사의 로고가 흐르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퀴이이이이이이익-!」

화면 안은 시뻘건 피칠갑을 한 좀비들이 가득 메웠고, 방 안은 좀비들의 괴상한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여자애와 단 둘이서 좀비물을 보는 상황이라니. 소년은 쯔읍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옆에 앉은 소녀를 쳐다보았다. 정말로 '몰입' 이라는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표정이었다. 크게 뜬 눈, 그리고 눈동자엔 TV에서 나온 빛만이 어른어른. 웬지 이 표정 귀엽네... 소년은 생각했다. 보고 있는게 좀비물만 아니면 더 좋았을텐데.

"에이, 우린 저러진 않는데."

갑자기 소녀가 말했다. 그러자 소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소년은 괜히 깜짝 놀라서는 허둥지둥 대답했다.

"어? 어? 그...그러게."
"과장이 심해."
".....그러네.."

그리고 다시 소녀는 화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엔딩 스크롤. 소년은 기지개를 펴면서 말했다.

"아 재밌었다, 이제...."

딸깍, 그러나 소녀는 아무말 없이 DVD를 교체할 뿐이었다, 이번 DVD는 '28일 후'.

다시 방 안을 비명소리가 가득 메웠다. 마찬가지로 뻘건 눈의 좀비들이 화면에선 폭사당하고 있었다. 소년은 약간 속이 메슥거리는것을 느끼면서, 옆의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소녀는.....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 너... 울어???"
"...그...그게.. 웬지 좀비가 되어서 좀비한테 감정이입을 하고 있으려니까, 좀비들이 웬지 불쌍해...."

아, 그런 감상법도 있구나.... 소년은 애써 납득해보려 했지만,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계속해서 화면에 나오는 피와 내장과 뼈와....그리고 소녀의 눈물. 소년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그렇게.. 네 번째 DVD를 보고 있었을 때, 문득 소년은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무언가 묵직한 것을 느꼈다. 슬쩍 보니 소녀가 소년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것이 아닌가. 그리고 새근새근 하는 숨소리.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좀비물에 몰두하고, 좀비물에 눈물을 흘리고, 좀비물을 보다가 잠을 자는 여자아이라니. 미묘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소년은 생각했다. 단 둘, 좁은 방, 쿰쿰한 냄새, 이불, 여자아이, 자고 있는 여자아이, 잠을 자고 있는 여자아이, 무방비로 잠을 자고 있는 여자아이, 그리고...그리고........

꿀꺽.

소년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소녀가 잠에 깰까, 천천히 머리를 들어 눕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시끄러!"

소년의 리모콘 작동 한 방에 좀비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있던 TV 화면은 그대로 꺼져버렸다. 두근두근, 소년의 심박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양쪽 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만져볼까? 아냐, 그러다 깨면... 그래도 우린 애인사이인데, 그정도는... 아냐아냐, 애인사이더라도 지킬건 지켜줘야지.... 라고 생각하는 찰나, 어느새 소년의 손가락은 소녀의 말랑한 뺨을 누르고 있었다.

"흐억! 내가 무슨 짓을..?"

뭐 뺨 만진 것으로 얼마나 대단한 일이 생기겠냐만서도. 그러나 소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말로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소년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꿀꺽꿀꺽, 연신 침 삼키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하지만 소녀는 미동도 없었다. 검지만을 뻗은 채 볼을 찌르고 있던 소년의 오른손이,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래로, 아래로.... 그리고 가는 목과 쇄골을 지나, 봉긋한 가슴 위 허공에서 움찔움찔. 만질까? 말까? 만질까? 말까? 살살 만질까? 아님 아예 콱 만질까? 이정도면 안 깰것 같기도 하고... 라고 머릿속은 고민하고 있었지만, 이미 소년의 손은 소녀의 가슴 위에 얹혀져 있었다.

"%$#*@#%*!"

내가 무슨짓을 한거야 라는 죄책감과, 그 죄책감보다 더 큰 짜릿한 성취감이 소년의 온 몸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리고, 소녀는 뒤척임조차 하지 않고 잠을 자고 있었다! 이건... 이건.... 감사합니다! 소년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그때,

「신경계에 바이러스가 침투하게 되면 점점 피부의 감각이 무뎌지고, 나중에는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떠한 통각, 촉각, 온각, 냉각, 압각도 전부 느끼지 못하게 된다」

소년은 차갑게 식었다. 가슴 위에 얹혀져 있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기분 안좋아?"

샌드위치를 앞에 두고서 가만히 있는 소년을 바라보며 소녀는 물었다. 참고로 샌드위치는 일회용 그릇에 담겨 있었는데, 이 역시도 일반적인 그릇과 식기를 통해 병이 옮겨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생겨난 경향이었다. 여튼간에, 소녀의 질문에 소년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그 좀비 영화, 다 봤어? ...누가 이겼어? 난 중간에 잠들어서..."
"...나도 그냥 잤어..."
"...그래..."

소녀는 이미 다 마신 주스컵에 꽂힌 빨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소년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소년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저기, 이거 봐라?"

소년은 눈을 들었다. 그러자 소녀의 손바닥 위에서 손가락 하나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

그리고 소녀는 꾸물거리는 손가락을 들어 원래 있던 자리에 끼웠다. 그러자 그 손가락은 마치 떨어진 적 없는 것처럼 다시 붙어서는, 제대로 움직이는게 아닌가.

"...이젠 정말 인간이 아닌것 같다는 느낌이지? 근데, 재밌지 않아?"
"......"

하지만 소년은 묵묵부답. 소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뭔가 쓸쓸한 표정이 소녀의 얼굴을 가득 메웠다. 잠시 침묵, 그리고 소녀는 입을 열었다.

"....혹시, 혹시 있잖아..."
"우리, 결혼할래?"

급작스러운 소년의 말. 소녀가 하려던 말은 도중에 끊겨버렸다. 소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으응?"




갑작스럽게 웬 결혼.... 웬지 지금 안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소녀의 되물음에 소년이 대답했다. 소년의 의지에 찬 얼굴. 잠시 침묵하던 소녀는 반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침묵한 이유도 울음을 애써 참느라였겠지. 평소엔 강한 척 하다가도 이런 말 한마디에 금새 울먹여버리는 녀석이란걸, 소년은 알고있었다.

아무도 없는 교회 안을 창문 사이로 들어온 빛만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말 어느 드라마 속에 나올법한 모습이네... 라고 중얼거리며 소년은 소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리고 그들은 양 옆으로 죽 늘어선 의자들 사이를 걸어 강단 앞에 섰다. 이 교회의 목사도 좀비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했던가. 하나님의 힘도 좀비 바이러스는 못 구해주는 모양이지, 하며 그들은 낮은 소리로 깔깔댔다.

"안되지, 안돼. 그래도 지금은 예수님 밖에 우리들의 결혼을 축하해 줄 사람이 없는걸."

난 기독교는 아니지만. 하고 소년은 덧붙였다. 하지만 소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쿰쿰, 하고 소년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작은 함을 꺼냈다. 오는 길에 샀던 싸구려 반지였다.

"왼손... 들어줄래?"

소녀의 왼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그리고 그 왼손 약지에 반지가 끼워졌다.

"저, 종운은, 시현을 아내로 맞아,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기쁠때나 슬플때 그리고..... 아플때, 항상 곁에 있어주고 사랑해줄 것을 맹세합니다."

서약이 끝났지만 시현은 아무말 없이 자신의 왼손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종운은 자신의 왼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제, 나한테도 반지, 끼워줘."

그러나 여전히 시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시현의 눈은 종운의 왼손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종운의 왼손 약지는.... 사라져 있었다. 시현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끅...흐...흑...으흐흑......"
"자, 잠깐 잠깐, 울지마봐! 이게..이게 어디갔지..?"

종운은 사라진 약지를 찾아서 주머니를 뒤지고, 바닥을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어느곳에도 그의 왼손 약지는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종운은, 후 하고 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왼손 검지를 뽑았다. 그리고는 약지가 있던 자리에 마치 나사를 끼우듯이 돌려 끼웠다. 그리고 그 손을 시현에게 내밀었다.

"자, 됐지?"
"흐끅, 흐끅.."

시현의 흐느낌은 딸꾹질로 변해있었다. 종운은 축축해진 시현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왜 울어, 굳이 약지가 없어도 다른 손가락들이 있잖아. 이렇게 엄지도 남아있어서 눈물도 닦아줄 수 있고.. 그러니 그만 울고, 반지, 끼워줘."

미소지었다. 종운은 생각했다. 다른 손가락마저 다 떨어진다 하더라도, 난 이 반지를 끼고 있을 것이라고. 썩어 문드러진 피부에, 아니 뼛속에 박아 넣는 일이 있더라도 이 반지를 끼고 있을거라고. 그리고 어떻게든 너의 눈물을 닦아줄거라고.

"흐끅, 흐끅..... 뒤집어....꼈잖아... 흐끅..."

말 그대로였다. 종운의 바꿔낀 검지는 손바닥 부분이 하늘을 향한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킥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종운은 계속해서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이제 약지가 된 검지를 반바퀴 돌려 제 자리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곤 다시 그 손을 시현에게 내밀었다. 시현 역시도 푸후후훕 하고 풍선 바람빠지는듯한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더니, 종운의 약지에 반지를 껴 주었다. 그렇지만 서약은 딸꾹질 소리에 묻혀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 웨딩드레스, 그때 버리지 말 걸."




"놀이공원 가고싶다..."
"놀이공원?"

종운의 물음에 시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운은 잠시 생각하더니 좋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이공원을 가려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했고, 서울로 돌아간다면 분명 잡혀갈 위험이 커질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예감했다.




그들이 놀이공원에 도착한것은 오후 6시나 되어서였다. 주말이었지만 좀비 바이러스의 여파로 놀이공원은 한산했고, 운행하는 놀이기구의 수도 적었다.

"...좀 실망이네."
"...그러게."

그렇게 말하며 시현과 종운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동시에 푸하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니 얼굴, 꼴이.. 크크큭, 말이, 말이 아니야.."
"...그러는, 그러는 너는... 군데 군데.... 크크크크큭..."

마스크 올려서 써.. 라고 소년은 덧붙였다. 물론 자신도 마스크를 코위까지 푹 덮어쓰는걸 잊지 않았다.

"자, 그럼, 스릴머신부터 시작해볼까?"

그들이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바이킹. 국내 최대 규모, 최대 각도라고 광고를 하던 그 바이킹이었다. 그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스릴이 넘친다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바이킹이 내려갈때마다 환호를 하다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데 그만 바이킹 바람에 종운의 어깨가 뒤로 뚝 꺾여버리는게 아닌가. 다행히 사람이 없었던 차에 누군가가 보지는 않은 듯 했지만 그들은 뒤로 꺾인 어깨를 맞추느라 허겁지겁, 그리고 누군가 볼까 허둥지둥. 그렇게 바이킹이 멈추고, 어깨를 어떻게 제자리로 대충 맞춰놓고서야 그들은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위험해."
"...위험해."
"좀비한텐 너무 위험한 놀이기구야."

그들은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이런 몸, 불편한걸... 시현은 투덜댔다. 종운은 그런 시현의 모습을 보며 다시 푸하핫, 하고 웃음. 시현은 또 뭐가 그렇게 재밌냐며 양 뺨을 부풀렸다. 너와 같이 걷는것만으로도 좋으니까. 이 순간이 계속됐으면. 종운은 생각했다.




"...이 아이스크림, 맛없다..."
"그래도 끝까지 다 먹어. 그거, 버리면 심각한 병원체다? 군대가 출동해야돼."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해야겠어? 시현은 투덜대며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었다. 그러나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가에, 코에 덕지덕지 묻혀버리는 것이었다. 종운은 준비한 티슈로 입가와 코를 닦아주었다. 그러던 종운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응?"

이상하게도 시현의 입가를 닦아준 손이 아닌 종운의 다른쪽 손에도 아이스크림이 묻어있는게 아닌가. 끈적한 감촉. 그리고, 시현이 입은 옷의 배 부분이 무엇인가로 흥건했다. 종운은 다급히 말했다.

"저기, 아이스크림 맛없어?"
"응? 응..."
"그럼 줘, 내가 먹을게."
"괜찮겠어? 병이 옮... 아니다. 너도 걸렸지..."

종운은 아이스크림을 씹었다. 아이스크림의 차가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도전한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놀이공원 데이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관람차였다.

"후우, 피곤했다...."
"....그러게...."

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손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온기도, 상대방의 손의 감촉도 느낄 수 없었지만. 대관람차는 천천히 움직였다....

"...미안해..."
"...응?"

종운은 시현을 쳐다보았다. 시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네 병, 분명 내가 옮긴 걸거야... 병 경과도 내가 더 빠르고, 그리고, 그 전에...다른데서 옮은 게 분명해...그런데 나 때문에, 네가..."

울음이 터져나오는 통에 시현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종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흐느낌을 겨우 삼킨 시현은 말을 이었다.

"...그것때문에, 계속 미안했어... 그러면서도...네가...네가 나한테 너무나도 잘해주고 있다는걸 아는데도...차라리, 차라리...나를 버렸으면, 미워했으면 내 맘이 더 편했을텐데...이렇게 계속 널 원망했어... 나 정말 나쁘지, 미안해....미안해..."

그 말을 끝으로 시현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종운은 입술을 깨물었다. 대관람차는 제일 높은 곳에 도달해 있었다.




"...난 오히려 너한테 고마운데."

종운의 말에 시현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만일 네가 나한테 병을 옮기지 않았다면, 그래서 너만 떠나보냈다면, 나는 아마 평생 후회하며 살았을거야. 그런데, 너가 나한테 병을 옮겨줘서..."

고마워. 시현은 울었다. 오열했다.




종운은 잠든 시현을 부축하며 대관람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종운은 그들을 향해 무수히 많이 쏘아진 자동차 전조등에 눈을 가릴수밖에 없었다.

"저기, 시현아, 시현아.."

종운은 자신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시현을 흔들어 깨우려 했지만 시현은 눈을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빛에 익숙해지자, 이번엔 자신들을 향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총구를 볼 수 있었다. 이번엔 공포탄은 아니겠지. 종운은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 때,

시현이 고개를 들었다.

"...으..으어억...."

시현의 목구멍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 종운은 안 좋은 예감을 느꼈다.

"...시현아?? 정신차려, 응?"

종운의 말에 시현은 종운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시현의 동공은 풀려있었다. 죽은 사람의 눈. 종운은 그 눈의 아득함에 순간 아찔해졌다. 그렇게 종운을 잠시 쳐다보던 시현은, 고개를 휙 돌리곤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빛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기 시작했다. 종운은 시현의 손을 잡았다.

"......"

그러나 다음 순간, 종운의 손에는 시현의 팔에서 뜯어진 손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철컥,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종운이 무언가 입을 열려던 순간,

탕!

슬로우모션.

털썩.

종운은 쓰러진 시현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들리는 것은 이명, 끔찍한 이명. 종운의 시야가 빨개졌다.

잠시 자동차 엔진소리만이 공원 안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천천히, 종운은 일어섰다. 그리고, 비틀비틀. 빛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총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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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글 올리기 전에 꼭 읽어주세요!! (3) file 수려한꽃 2012.01.21. 84454
245 마음대로 조회수 이상 증가 문제를 수정하였습니다. 수려한꽃 2012.03.29. 5943  
244 자유 접은 날개를 편 밤에 (1) Shirley 2012.03.25. 30615
243 마음대로 2012 귤여신도 2012.03.23. 4409  
242 단편 온기 하루카나 2012.03.20. 4401  
241 지구의 마지막 날 아침 (1) 고니 2012.03.19. 3420
240 테마 [단편전쟁] 나의 사랑하는 마왕폐하! 깜방무사 2012.03.17. 3938  
239 테마 [화이트데이/단편전쟁] 화이트데이의 백설. (2) 호성軍 2012.03.14. 4957
테마 [화이트데이/단편전쟁] 코프스 러버스 - 그들은 좀비지만 사랑합니다 Ponte. 2012.03.14. 4186  
237 자유 한번올려봅니당.. vampire 2012.03.10. 5576  
236 테마 [화이트데이/단편전쟁] 후추사탕 Kaleana 2012.03.10. 4284  
235 테마 [단편전쟁]그녀의 시간, 그의 기억 투명한빛 2012.03.07. 3823  
234 자유 졸업식 (1) 칸나기 2012.03.06. 4417
233 자유 Idolic / 프롤로그, #1 기만자 2012.03.04. 4233  
232 테마 [단편전쟁] 내일의 교차점 깜방무사 2012.03.02. 4244  
231 연재 사자의 노래 #3화. 깨져가는 일상# 라크마 2012.02.16. 4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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