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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27 Jun 0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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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readme


성적으로만 보면 바닥으로 떨어져 있지만 이래 봬도 나는 성실한 남자 고교생이다. 선생님 눈에 날 만한 행동은 한번도 한적 없으며, 자랑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이후로 여자 손을 잡아본 건 여동생뿐이다. 그렇다. 나는 여자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남자였다. 그러므로, 눈을 떴을 때 여자가 옆에 자고 있는 상황은 성립할 수 없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두통이 심한 것을 보아 꿈은 아닌 듯 하다. 그녀는 좁은 내침대의 누워있다. 입김이 닿을 정도로 바로 옆에서 자고 있다. 어째서인지 목이 늘어난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내 흐리멍덩한 뇌에서 간신히 내린 결론은 믿기 힘들지만 꿈이나 환상이 아니다. 현실이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흐음…….”

그녀가 잠결에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 또래에 키는 작은 편이지만 누워있어서 정확한 키는 알 수 없었다. 얼굴은 솔직하게 말해 약간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계속해서 몸을 뒤척이더니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의 입술이 나에게 다가온다. 심 박수가 상승한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녀를 침대 밖으로 있는 힘 것 밀쳤다. 왠지 여자애처럼 비명도 지른 것 같다.

“핫? 윽…!”

그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떨어졌다. 잠시 후 침대에 손을 짚고 흡사 좀비처럼 몸을 일으킨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얼굴에 세미 롱의 머리가 마구 흐트러져있다.

“아프잖아요.”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머리 속이 새하얘졌다.

“어? 그. 그게… 미안-“

두통이 더 심해진다.

“-가 아니라 너, 너너넌넌 누구냐?!”

지극히 간단하고 그 순간 절실한 질문, 그녀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혹시 외계인이 아닐까? 그래, 분명 외계인일 것이다. 그때, 현관에서 무거운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나 왔어.”

방문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중성적이면서 나른한 목소리, 중학생 주제에 친구들과 2박3일을 하고 온 여동생이 돌아온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 온몸에서 비상신호를 보낸다.

“흥, 어차피 또 밤새서 게임 한다고 늦잠 잤겠지.“

점점 발소리가 가까워 진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문고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튀어나가 문을 틀어막으며 작게 소리쳤다.

“거기 너, 일단 숨어 들키면 죽은 목숨이야. 아니, 무기가 될만한 것부터 숨겨!”

최진혁 17살 청춘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다.

“예? 하지만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나는 그녀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농담이 아니야. 저 녀석은 살아있는 인간병기다. 아마 나 같은 건 한 순간이겠지…….”

“거기 다 들리거든,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 이 문 열어.”

동생이 문에 힘을 주며 명령조로 말했다.

“너 같으면 열겠냐?!”

“당연하잖아, 오빠 같은 건 저항해 봤자 헛수고니까.”

엄청난 자신감이시군, 하지만 완력만큼은 나도 지지 않는다.

낡은 방문이 비명을 지르듯이 삐걱거리다가 잠시 후 조용해진다. 포기한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함과 거의 동시에 문이 폭발 하는듯한 힘에 의해 열렸다. 그리고 나는 문과 함께 날아가고 있었다. 침대 모서리에 뒤통수를 박으며 떨어졌다. 문을 통째로 부숴버린 것이다.

“감히 이 여동생님의 험담을 남에게 줄줄이 늘어 놓다니 간이 부었는걸, 각오는 됐겠지 오빠?”

동생이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며 말했다.

최미란, 짧은 숏컷 머리에 무뚝뚝하고 겉보기에 는 평범한 여중생처럼 보이겠지만, 각종 무술을 마스터한 무림의 고수다. 요즘은 인도의 고대무술을 배우고 있는 듯 하다. 미란이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불합리한 요구와 폭력을 휘둘렀고 평범한 어린아이였던 나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로 아직까지 악몽을 꿀 정도다.

“쳇, 괴물 같은 놈, 문은 어쩔 거냐?”

나는 반 토막이 난 방문을 가리켰다.

“그거야 당연히 오빠 책임이잖아? 그것 보다 거기 나와 볼래?”

정체불명의 소녀가 급한 대로 침대 뒤에 숨었지만 엉덩이만 쑥 내밀고 있다. 겁을 먹었는지 와들와들 떨고 있다. 그야 당연하겠지…….

“헤헤헤.”

소녀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얼굴을 침대 위로 내밀었다. 그리고 미란이는

“!!!”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었지만 이때까지 당해온 나이기에, 나만이 비로소 알 수 있다. 녀석은 거의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왠지 아까 부딪치면 뇌진탕이 일어난 것 같다. 천국에 있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린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 간다.




나는 지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미란이는 책상에 앉아서 그런 나를 잘못을 저지를 개라도 되는 것 마냥 내려다 보고 있다. 그리고 소녀도 나와 같이 무릎을 꿇은 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평소에 적당히 말려 주던 아빠는 출장 중으로 1주일간 돌아오지 않는다.

“집에 이성의 여자를 데려오고 잠까지 자다니 아빠가 없는 지금 집안의 가장인 내가 처벌을 해야겠지?”

“자, 잠깐 이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손만 잡고 잤다고 그리고 너도 아빠가 없는 동안 친구들이랑 놀러 간 주제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수련을 위해 서바이벌을 다녀온 것뿐이야. 거기서 곰도 만났지.”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친구가 없지,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곰은… 잡은 거냐?”

설마 아무리 인간이 아니라지만……

“도구를 쓰긴 했지만.”

만족스러운 듯 어깨를 들썩인다.

“아니 아니, 그것 보다 내가 오빠거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그렇지만, 오빠는 나보다 약하잖아?”

“집안의 지위를 힘의 강함으로 정하려고 하다니 어떻게 된 사고방식이냐?”

“그 입 다물라.”

“쳇, 절벽 주제에!”

왠지 반발심이 생겨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흣… 오빠는 지금 보이지 않는 국경선을 넘은 거야. 알겠어? 슬픈걸 오빠를 이렇게 잃게 되다니.”

그 순간 나는 엄청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거, 거짓말이지?”

이건 나의 희망사항.

“음, 반 정도는?”

미란이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후, 그건 분명 슬프다는 쪽이 거짓이고 나를 쳐 죽이겠다는 게 진실이겠지.”

이것이 현실

“틀렸어.”

“어?”

”반 정도 죽일까 생각 중이야.”

“하, 하지만 말이지, 아까 기절하면서 진짜로 죽을 뻔 했다고?”

사실이다. 잠깐이지만 흔히 말하는 주마등도 본 기분이다. 나중에 병원에 가봐야지.

“뭐, 하긴 그렇네, 그리고 오빠도 이제 그럴 나이고, 사실 오빠가 게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거든.”

미란이가 비웃음을 담아서 말한다.

“아픈 곳을 찌르다니 분명 나는 동정이고, 옆에 있는 이 여자가 누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나를 동정이라고 놀리는 건 용서 할 수 없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결국 나는 미란이에게 굴복해버린 것이다. 이런 내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그것 보다. 일단 말이나 들어볼까?”

미란이가 소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까부터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저기?”

그녀에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한 박자 뒤 정신을 차린 듯.

“예?! 아, 그러니까… 목숨만은 살려주세욧!”

쿵-! 하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소녀가 석고대죄를 한 것이다. 아마 내가 죽은 목숨이니 인간병기니 한 것 때문에 겁을 먹은 것 같다, 사실이긴 하지만 진짜로 믿다니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아니 상대가 저 녀석이니 무리도 아닌가.

“큭, 좋아 그럼 순순히 네 년이 뭐 하는 년인지 말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지.”

미란이가 나를 한 차래 노려보고 재미있는 게 떠올랐는지 입 고리를 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앱, 사실은 저, 외계인입니닷!”

소녀가 이마를 바닥에 박은 체로 말했다. 그쪽이 복선이냐…….

“……. 라는데?”

“나한테 묻지마.”

두통이 다시 심해졌다. 역시 병원에 가야겠어.


Writer

readme

readme

둥실둥실

comment (1)

수려한꽃
수려한꽃 12.06.04. 03:58
프롤로그인가요... 뒷 이야기도 언젠가는 쓰실거죠? 잘 읽었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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