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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라노베 리뷰하는 라노베 -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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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43 Aug 0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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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칸나기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그 아이와 나의 만남은 운명이었다고 생각해."
내가 입에 담는 그것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며 줄곧 기다려왔던 운명적인 만남을 가져다준 기적.
"나, 3년 전에 크게 다친 적이 있었거든."
덕분에 중요한 대회를 놓치고 그에 따라 울면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정말 모든 것을 멀리한 채로 한없이 어두워져서 끝까지 추락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방황하던 때가 있었다고, 나는 회상했다.
그래서
"절뚝거리는 다리로 그냥 망연히 길을 걸었어. 내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사고만 아니었으면, 아니었다면 하고 끊임없이 생각했어."
그렇게 생각은 어둡게 어둡게 이어져서 끝나지 않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나를 매몰시켰다. 깎고 마모시키고 부서트렸다.
그러던 도중에 나는 만났다. 바로 그때에. '그 아이'를.
그래. 굳이 입 아프게 떠들 필요는 없겠지.
'그 아이'와 내가 만난 곳은 동네 근처에 있는 한적한 동네서점의 한 구석.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라이트노벨,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처음으로 본 것은 바로 그곳이었어."
그것이 나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나아가 라이트노벨이라는 장르의 첫 만남이었다.


Title 1 :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편.


평소와 같은 장소, 평소와 같은 시간, 평소와 같은 분위기 속에 나와 그녀는 폭하니 이곳에 잠겨있다.
밖에서는 봄기운이 감돌고 있는 산들바람이 불고 있고, 저 멀리 학교 운동장 안에서는 어떻게든 신입생을 자기 동아리로 끌어들이려는 각종 동아리 부원들의 목소리로 활기차다.
봄, 완연한 봄, 새학기가 시작된 만큼 푸릇하고 파릇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계절이 이곳에도 찾아온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나는 싱긋 웃으며 내 앞에 있는 소녀를 향해 나의 애틋하고 아련한 과거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줄곧 가슴에 품어왔던 추억을 입밖으로 꺼냈다.
그 아이와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바로 그 운명적인 순간에 대해서…….
이런 내 말에 그녀는
"지랄하고 있네."
일축했다.
"어째서?!"
"실수. 너무 궁상떨고 있길래. 나도 모르게 과격한 말을 내뱉어버렸군."
그녀, 그러니까 '소설(所說)'이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어깨를 살짝 덮는 윤기나는 흑색의 머리카락, 거기에 차가운 느낌이 드는 백옥 같은 피부 위로 떠올라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보는 이를 주눅들게 만들 정도로 차가운 무표정. 마치 그 인형같은 외모 위로 떠올라있는, 약간의 경멸한다는 듯한 시선은 자연스레 이쪽에게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듯한 이미지까지 준다.
말하자면 여왕, 사실 나도 가끔 졸다가 그녀가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깨며 "네?! 여왕님!" 하고 외칠 때가 있다는 건 나만의 사소한 비밀이다.
그런 소녀.
그련 소녀가 있는 이곳.
그러니까 여기 '용화고등학교 도서감상부'에서 나와 소설이는 평소처럼 부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인가."
설이는 괜스레 손에 들고 있던 책(까놓고 말해 라이트노벨, 최근 신작. 인기많은 여동생과 수난당하는 나 1권)을 탁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덮은 다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경(暖輕), 나는 너의 첫경험따위는 묻지 않았는데."
알고 싶지도 않고. 기분 나쁠 뿐이다. 하면서 마구마구 언어라는 이름의 칼날로 이쪽을 찌르는 소설 양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어차피 부활동 할거면 각자 가장 인상깊게 읽은 라이트노벨부터 시작하는게 좋잖아? 애당초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는 최강이라니까!"
라이트노벨 리뷰를 할거면 당연히 첫번째 코너는 스즈미야 하루히라고 남몰래 생각해뒀을 정도라고!
"하루히가 우수한 작품이라는 건 인정하지."
설이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야."
언제나처럼, 평소처럼, 매번 그래왔던 것처럼, 소설, 그 자신만의 전용대사를  입에 담았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야.

매번 비판적인 견지에서의 관점을 피력하는 설이의 저 대사는.
말하자면 지금부터 "네 놈이 떠드는 라이트노벨을 마구 물어뜯어주겠다!" 라고 선언하는, 뭐, 그런 말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늘 이래왔다. 어떤 작품이라고해도 설이는 저런 식으로 그 작품의 단점을 찾아내 논리적으로 작품에 대해 깎아내리고는 했다.
물론 그것도 어떤 면에서는 타당한 의견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가 대화를 나눌 작품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내게 삶의 희망을 줬던 작품. 무작정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단점이 없는 게 아니라니, 이번엔 또 어떤 말을 하려고 그러시나?"
자연스레 내 말투가 퉁명스러워진다. 평소에도 설이가 작품의 단점을 입에 담기를 즐겨한다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그 대상이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라이트노벨이 되어서는, 역시 나도 어쩔 수 없이 데면데면하게 굴 수 밖에 없다.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내 반응에 설이는 우습지도 않다는 듯이 피식 하고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하자면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라는 작품은 '작가의 기만' 덩어리라고 할 수 있지."
"작가의 기만?"
설이는 그런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가느다랗고 흰 손가락으로 척하니 나를 가리켰다.
"그래. 작가의 기만. 하루히 시리즈는 2003년에 발매되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작품으로, 하루히즘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물건너는 물론 국내에서도 많은 판매량을 올린 작품이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명대사라고 한다면 단연코 이 대사를 꼽을 수 있다.

평범한 인간에게는 관심 없습니다. 이중에 우주인, 미래인, 이세계인, 초능력자가 있다면 저에게로 오십시오. 이상.

그 대사를 필두로 해서 시작되는 대패닉. 작중 쿈이라고 불리는 '평범함의 대명사'인 일반 고등학생이 제멋대로인 민폐형 히로인 하루히와 엮이며 겪는 각종 모험과 시련의 이야기.
우주인을 통한 배틀과 미래인을 통한 시간여행과 초능력자를 통한 이능력 배틀을 오고가는 가슴 뜨거운 청춘들의 이야기.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란 그런 물건이다.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각종 비일상을 한데 모아놓은, 말하자면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야기.
작품의 인기는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물건너에서는 에반게리온 이후 최대의 사회현상이라고 말할 정도라고 한다.
다만 그게 문제였다.
"하루히 시리즈는 발매되는 물건들은 갈수록 그 질적저하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심해. 나아가서는 5권 이후의 작품에서는 작품 주제를 관통하는 일관성도 보이지를 않고, 억지로 SOS단의 대립되는 존재를 암시, 복선, 실제 등장 시키는 것으로 긴장감 고조를 유도했지만. 결과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분열 이후 4년이라는 공백이었다."
그것은 어찌보면 정상을 오른 이의 당연한 몰락이라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분열 이후의 공백만 없었다면 말이지."
분열 이후 SOS단이 나가토의 집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한지 4년, 그 4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지나서야 하루히는 경악이라는 물건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독자를 향한 작가의 기만이자 우롱이야. 성공했기에 오만해진다는 클리셰는 솔직히 지겹지만 말이지."
어쩌면 그것은 인기를 끌어버린 것 자체가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본래는 라이트노벨 포맷답게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단 1권으로 끝났어야할 작품이 계속 늘어나버린 것이니까.
그래도 소실까지는 괜찮았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은 나가토라는 캐릭터를 재정립하며, 쿈이라는 캐릭터가 일상과 비일상 중 어느쪽을 택해야 하는지를 판가름한.
작중 흐름으로써도 실로 중요한 분기였으니까. 그래서 혹자는 말한다. 하루히의 가장 큰 실책은 스즈미야 하루히의 폭주(시리즈 5권)을 쓴 것이라고.
"솔직히 가장 최근에 나온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악을 읽은 내 감상은 간단해. 조잡하고 짜증나."
제목을 분열로 잡고, 경악으로 마무리하는 이번 하루히 2회 연작에서는 플롯이 두 개로 나뉘어, 사건이 해결된다는 이중나선 구조를 취하고 있다.
설이는 이 점이 독자에게 실로 불친절하고, 4년이라는 공백마저 더해지니 솔직히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로 전락해버렸다고 단평했다.
"그래서 전체적인 평가는 이러하지. 하루히는 분명 한 번 정상에 올라섰던 물건일지 몰라도. 이제는 그저 몰락해버린 영광의 잔해일 뿐이다."
부자가 망해도 삼 대는 간다고 했던가. 하루히는 딱 그꼴이다. 경악 이후로 후속작도 벌써 1년 넘게 나오지 않고 있고 말이지. 하고 설이는 그 특유의 독설을 마무리 지었다. 언어라는 무기를 이용한 무자비한 폭설과 폭행. 솔직히 여기까지 깎아내리면서도 그 폭언에 말 한마디 반격하지 못했다는 나 자신에게 혐오감마저 느껴진다.
하루히는 내게 희망을 주었다.
과거 실로 절망에 빠져, 앞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내게 날아온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내게 있어 라이트노벨이라는 새로운 세계와 통하는 문을 열어준 기념비적인 작품.
나는 아직도 그 대사를 잊을 수 없다.
벌써 8년은 더된 이야기인데도 내 뇌리에는 감명 깊게 남아있는 대사가 있다.
설이가 말했던 '평범한 인간에게는 관심없습니다.' 같은 흔해빠진 이야기가 아니다. 작중 맨 처음, 작중 화자로 등장하는 쿈이 가장 먼저 입에 담았던 그 말.

산타클로스를 언제까지 믿었는가 하는 이야기는 실없는 잡담거리도 안 될 정도로 시시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내가 언제까지 산타와 같은 상상 속의 빨간 옷 할아버지를 믿었는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처음부터 하나도 안 믿었다.

그래. 처음부터 하나도 믿지 않았다. 단 몇 줄 안되는 그 대사만으로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라는 작품은, 절망 속에 침잠해있던 내게 일상 따윈 던져버리라고 말해주었다. 저 대사를 필두로 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모험과 시련의 나날.
일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비일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는 건, 중학생의 남자아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생각해봤을 소망일 것이다.
그것이 크리티컬 히트였다. 그것이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그것으로 나는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세계에. 라이트노벨이라는 세계에.
그래서다.
그런 추억이 있기에, 마구 얻어맞고 KO 직전까지 가버린 나라고 해도, 간신히 입을 열 수 있었다.
간신히 반론할 수 있었다.
그래도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에도, 분명 장점은 있어."
장점이 없는 게 아니다.
"……."
한쪽 눈을 치켜뜨며, 그 무표정한 얼굴에 살짝 불쾌감이 감도는 얼굴로 설이가 나를 쳐다본다.
그 단호한 표정에 지금이라도 당장 꺾일 것 같지만, 그래도 쓰러지지 않는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으니까.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장점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기승전결은 물론, 1권에 한해서 가장 깔끔하고 완벽한 캐릭터상을 제시하는 작품이야."
실제로 내가 라이트노벨 공모전 최종심사에 들어갔다가 탈락했을 때.
출판사 담당 편집자로부터 라이트노벨의 가장 기본적인 작품으로써 참고하기 위해 추천받았던 작품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다.
우울은 굉장하다.
그리고 그것은 소실까지 이어진다.
나가토, 쿈, 하루히라는 세 명의 캐릭터가 엮여서 이루어지는 하모니.
사람이라면, 응당 하루히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가 공감할 이야기다.
소실에서 쿈과 하루히가 처음으로 마주쳤을 때. 알아보지 못하는 하루히를 향해 쿈이 던졌던 그 한 마디를.

존 스미스.

그것이 가져다주는 쾌감이. 그것이 가져다주는 소름이, 그것이 가져다주는 감동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실제로 읽어보지 않은 녀석은 모른다.
"과장되었긴 해도, 그건 인정해. 하지만 내가 단점으로 지적한 건 그 이후의 전개와 작가의 태도인데?"
이제와서 무슨 헛소리냐고 타박을 놓듯 말하는 설이에게 나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니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게 아니야.
내 말은 바로 그거라고. 소설. 너도 알잖아. 너도 하루히 시리즈를 읽어서 알고 있잖아. 이러니 저러니해도. 너는
"경악 이후로 또 1년 이상이나 후속작 소식이 없다고 불평한 건 너 자신이잖아."
그러니까. 결국 너 또한.
이러니 저러니해도 욕하면서 하루히의 후속작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
"……."
설이가 살짝 숨을 들이킨다. 놀란 걸까, 눈동자가 살짝. 정말 살짝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만 커진게 보였다.
"하루히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그거라고 생각해. 강요하는게 아니야. 떨어져나가는 독자도 많을 거고, 포기하는 독자도 많겠지. 뭐, 이런게 다 있냐면서 욕하는 사람도 많을 거야."
그래도 그런 모두를 포함해서, 하루히를 읽은 독자들은 전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 후속작을 기다리고야 마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던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라는 가장 위대한 작품이 가진.
가장 큰 장점.

그것은 어쩌면 흡입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몰입이라는 단어로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류의 느낌일 것이다.

"자연스레 모든 독자들에게 결말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장점이야."
나는 거기까지 입을 열고, 목이 타올라 숨을 가다듬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부 전했다.
이제 여기서 답하는 건 어디까지나 설이의 몫이다. 여전히 무슨 헛소리냐고 타박을 놓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작품이, 그저 단점 덩어리라는 설이의 말을 잠자코 들을 수 없었던 거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를 사랑하고 있는 거다.
밖에는 여전히 창틀을 타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가득하고, 저 멀리에서는 신입부원을 필요로하는 동아리 부원들의 목소리가 드높이 울려퍼지고 있다.
봄.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그 새파랗고 활기차며 어떤 꿈으로도 가득한 봄 속에서
"그런가." 하고 소녀는, 설이는
"그렇군."
담백하게 답하고는 들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하.
하핫.
나는 가볍게 기지개를 펴고 설이를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설이 또한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를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 새삼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쯤에서 적절한 타이밍이다.
마침 하루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전부터 어깨를 살짝 덮는 예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설이에게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말이 있다.
"저기 설아."
"……?"
무뚝뚝한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나는 거기에 대고 굳은 결의를 가지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포니테일 모에야."


다음날.
평소와 같은 장소, 평소와 같은 시간, 평소와 같은 분위기 속에 나와 그녀는 폭하니 이곳에 잠겨있다.
밖에서는 봄기운이 감돌고 있는 산들바람이 불고 있고, 저 멀리 학교 운동장 안에서는 어떻게든 신입생을 자기 동아리로 끌어들이려는 각종 동아리 부원들의 목소리로 활기차다.
봄, 완연한 봄, 새학기가 시작된 만큼 푸릇하고 파릇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계절이 이곳에도 찾아온 것이다.
그래 봄. 봄. 봄이긴 한데…….
"저기, 설아?"
나는 점점 댕겨오기 시작하는 뒷머리를 부여잡고 설이를 불렀다.
눈앞에는 미소녀가 한 명. 어깨를 살짝 덮는 윤기나는 흑색의 머리카락, 거기에 차가운 느낌이 드는 백옥 같은 피부 위로 떠올라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보는 이를 주눅들게 만들 정도로 차가운 무표정. 마치 그 인형같은 외모 위로 떠올라있는, 약간의 경멸한다는 듯한 시선은 자연스레 이쪽에게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듯한 이미지까지 준다.
말하자면 여왕, 사실 나도 가끔 졸다가 그녀가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깨며 "네?! 여왕님!" 하고 외칠 때가 있다는 건 나만의 사소한 비밀이다.
그런 소녀.
그런 소녀가 내 부름을 듣자 무표정한 얼굴에 살짝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대답해주었다.
"왜?"
"저기, 어째서 내가 이런 꼴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여전히 고무줄로 억지로 묶은 탓에 쭉쭉 당겨오고 있어 아픈 뒷머리를 매만졌다.
다른게 아니라, 지금 내 헤어스타일은 흔히 말하는 말총머리, 그러니까 포니테일이라는 스타일을 고수하고 계시는 중이다. 발단은 어제 내가 입에 담았던 그 쓸데없는 이야기.
그 말을 들은 설이는 기도 안찬다는 듯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주머니에서 고무줄을 꺼내들고는(어째서 주머니에 그런게 있었을까?) 억지로 내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납자답게 짤막한 내 머리카락을
억지로.
"포니테일 모에라며? '내 여동생은 한자를 읽을 수 있다'의 등장인물인 '오오다이라 가이'는 말하지. 진정한 모에는 스스로 체현하는 것으로 발견할 수 있다."
아니, 그런 알 수 없는 캐릭터가 입에 담는 알 수 없는 말을 들려줘도 곤란한데 말이죠!
"포니테일 모에는 적당히 포니테일이나 하고 앉아있어."
하고 쌀쌀 맞게 말한 설이는 다시금 들고 있던 책(하트커넥트 가짜 랜덤)으로 시선을 떨어트리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여전히 뒷통수는 고통으로 당겨오고 있지만, 저렇게 딱 말을 끝맺어버리면 나도 할 말이 없다. 우우. 하는 수 없이 나는 시선을 내리깔고는 주섬주섬 책을 꺼내들었다. 책이라고 해도 라이트노벨(로그 호라이즌 3권)이지만.
여전히 평화로운 분위기의 부실.
그 속에서 천천히 활자를 더듬어가는 내 귓가로
"포니테일이라……."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응? 설아.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여전히 쌀쌀 맞은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착각인가? 하고 중얼거리며 시로에의 모험담에 귀를 기울였다.
그 뒤로 쭉 하루동안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어야 했다는 건 여담.

이게 바로 우리 용화 고등학교 도서감상부의 일상이다.



이곳은 용화고교 도서감상부.
평소에 [독서 감상]이라고 쓰고 [실은 까놓고 말해 라이트노벨 감상 및 비평, 그러니까 툭 까놓고 리뷰하기]라는 부활동을 하고 있는
매우 바람직한 학교 동아리이다.
언제나 비판적인 시점으로 라이트노벨을 깎아내리는 비판의 여왕 소설(所說)과
라이트노벨이라면 껌뻑 죽으면서 라이트노벨 다이스키! 라고 외치는 라이트노벨 바보 난경(暖輕)의
본격 라이트노벨 리뷰하는 라이트노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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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칸나기

칸나기

네. 나기 여신님 귀엽죠. 저도 좋아해요.

comment (3)

엔마
엔마 12.08.04. 14:49
와- 와- 와-
나기 아가씨는 빨리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칸나기
칸나기 작성자 엔마 12.08.05. 02:31
다음 타이틀은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언제 쓸지는 기약 없습니다!
메리사 12.08.05. 09:37
정말 즐겁게 읽었습니다. 어찌 보면 정상에 오른 자의 몰락은 당연하지만 슬퍼지더군요.
그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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