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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47 Aug 1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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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kimsai42
(출입문, 출입문이 닫힙니다. 한걸음 물러서 주십시오)

승강장을 떠나가는 지하철을 시선으로 쫓다가, 옆자리에 앉은 그 아이의 옆모습에 닿았다. 아이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눈을 내리깔아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지하철이 두 번 지나갈 동안 변함없는 아이의 모습에,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다 정리했어?”

“아, 앗 네, 네!”

골똘히 생각해 빠져있었던 것일까. 아이는 느닷없이 들려온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모양새였다. 안절부절못하며 시선을 이곳저곳에 돌리던 아이는 이내 고개를 올려 시선을 맞추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주실 거예요?”

“뭐라고? 잘 안 들렸어.”

그러면서 아이 쪽으로 살짝 몸을 내밀자, 아이는 잠시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저랑 사, 사귀…!”

아이는 거기까지 말하고 오른쪽을 눈을 떠 내 표정을 살폈다. 그리곤 왼눈을 마저 뜨며 기어가는 목소리를 말을 맺었다.

“…어 주세, 아니, 주실래요?”

말을 마친 아이의 목덜미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귓불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아이는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입술만 쳐다보고 있었다. 입술이 벌어질까, 아니면 동글게 말릴까, 이왕이면 둥글게 말리면 좋겠다, 아이의 생각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설핏 웃음이 나왔다. 나는 아이에게 대답을 해주는 대신, 아이의 목덜미를 덮은 긴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안에 감겨오는 아이의 목덜미를 살짝 끌어당기며, 나 또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단내 나는 숨결이 내 얼굴에 닿는 것이 가장 먼저 느껴졌고, 그 다음엔 아이의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과 맞닿는 것이 느껴졌다. 마주보인 아이의 눈동자가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어갔다. 나는 몸을 비틀며 벗어나려는 아이를, 어깨까지 깊게 끌어안았다. 꼼짝달싹 못하게 끌어안긴 아이가 고개를 강하게 뒤로 빼며 뭐라 항의하려는 듯이 입술을 열자, 나 또한 고개를 모로 틀며 입술을 벌려, 아이의 입술과 겹쳤다. 내가 벌어진 아이의 잇새로 혀를 집어넣자, 아이의 눈동자의 당혹스러움이 더욱 짙어졌다. 제자리를 뺏겨 몸 둘 바를 모르는 아이의 말캉한 혀를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아이의 몸이 바르르 떨려왔다. 내 혀끝으로 아이의 혀를 농락하고, 치아를 훑었다. 나를 밀치려고 했었는지 가슴팍까지 올라온 아이의 양손은 어느새 내 옷을 꽉 쥐고 있었다.

“하아.”

숨을 고르기 위해 살짝 입을 떼자 짧게 헐떡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못들은 척, 나는 고개를 반대로 틀어 다시 아이의 입술 사이로 파고들었다. 고른 치아, 말캉한 혀, 단내 나는 숨결, 흐려졌지만 끝까지 감지 않고 내 눈을 응시하는 눈동자. 그 하나하나에 사랑스러움을 느끼며 나는 더욱 농밀하게 키스를 했다.

(지금 xx, xx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오자, 아이의 몸이 흠칫 굳었다. 나는 슬며시 몸을 뒤로 빼고 아이에게 물었다.

“역시 사람들이 보면 부끄럽겠지?”

“당연한 얘기를, 아니 그전에……!”

(문이 열립니다)

나는 다시 아이와 입술을 포갰다. 나의 혀로 난폭하게 아이의 입속을 헤집었다. 아이는 몸을 비틀고, 내 옷을 쥐고 있던 양손으로 내 가슴팍을 두드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좌우로 틀며, 혀로 혀를 엉클었다. 이와 이가 부딪혔고, 채 삼키지 못한 타액이 은사를 늘어뜨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닿는 것이 느껴졌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는지, 팔과 맞닿은 어깨와 목덜미가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서 더 달아오르면 터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아이는 저항을 체념했는지 늘어진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열차가 떠나가고 사람들이 대합실로 올라간 뒤에야, 아이를 풀어줬다. 아이는 살짝 부푼 채 벌어진 입술 사이로 달뜬 숨을 내쉬고 있었고,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었다. 원망 반, 부끄러움 반 담긴 아이의 시선을 마주보며, 나는 손가락으로 아이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한 번 더 할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가 아이를 향해 몸을 내밀자, 아이는 ‘히익!’ 거리며 몸을 뒤로 뺐다. 난 개의치 않고 양팔을 벌려 아이를 끌어안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볼을 비볐다.

“우리 사귈까? 아니, 사귀어 주실래요?”

“……”

끌어안은 팔로 아이의 등을 쓸어내렸다.

“오히려 내 쪽에서 묻고 싶었어. 사귀어 주세요. 사귀어도 될까요. 좋아해도 될까요.”

“당연히…안 될 리가 없잖아요…”

아이가 나지막이 웅얼거린 그 말에, 나는 아이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아이 또한 머뭇거리며 자신의 팔로 나를 마주 끌어안았다. 등을 통해 전해지는 아이의 온기는, 무척 따뜻했다.

“넌 내게 너무 과분한 것 같아서, 나 따위가 너와 인연을 맺어도 될까 걱정스러워서, 내 사랑이, 마음이 오히려 너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너무너무 걱정돼서.”

내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하지만 몸이 떨리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아이는 나를 감싸 안은 팔을 풀고, 감정을 헤아릴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죄책감 갖지 말아요. 잘못한 거 없으니까. 전부 그 사람이 자초한 거니까, 그 사람도 이렇게 죄책감에 시달려 하는 거, 원치 않을 거예요.”

“…그럴까?”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가 양 검지와 엄지로 내 입꼬리와 눈꼬리를 잡더니, 입꼬리는 당겨 올리고, 눈꼬리는 당겨 내렸다.

“아, 으어?!”

“쫌! 웃어요. 제발. 항상 입만 웃지 말고, 메마른 웃음소리만 내지 말고, 진심으로, 활기차게. 그렇게 웃는 게 훨씬 보기 좋아요. 웃는 것조차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안쓰럽게 웃지 말고. …웃긴 얼굴이다.”

아이는 그대로 자신의 입술을 내 입술 위에 살며시 포갰다가 떼었다.

“그리고 가끔은 찐한 애정 공세 대신, 이런 가벼운 입맞춤 하나가 마음을 전하는데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요.”

아이는 그 말과 함께 내 얼굴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 손을 내게 내밀었다.

“이제 집에 갈까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comment (1)

엔마
엔마 12.08.16. 15:56
과연...강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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