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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使役)! 악마 소녀! - 1,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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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45 Sep 0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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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칸나기
협업 참여 동의


1. 시험지 답안을 배껴오라고 시킨다.

학교 시험당일
현재 시각은 9시 18분. 국어시험시간.
사각사각 교실 내에 울려퍼지는 것은 조용히 시험지에 펜을 굴리는 소리들뿐.
좋아. 나에게 주목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다.
나는 조심스레 심호흡을 하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내 앞에 있는 것은 한 명의 검은 소녀.
검은색. 검은색. 온통 검은색 일색. 머리칼에서부터 입고 있는 옷까지 온통 검은색 투성이의 소녀가 있다.
흑단처럼 고운 검은 머리칼, 그에 대비되듯 새하얀 피부, 붉은 눈동자가 물끄러미 내쪽을 바라보고 있다.
묵묵히 무표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아이. 키는 약 130cm 정도.
어딜봐도 초등학교 저학년 꼬맹이로밖에 안보이는 여자애가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모여 시험보는 교실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그것도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알고는 있지만 역시 신기하다. 그 누구도 이 소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녀는 내가 사역하고 있는 사역 악마. 저 지옥의 무저갱에서 올라온 나만의 노예. 내가 데리고 내가 가꾸고 내가 키우고 있는 악마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이지만, 역시 신기한 건 신기한 법이다.
뭐, 잡담은 이정도로만 해두고. 나는 곁눈질을 하며 소녀, 아니 내 사역 악마에게 소리 없이 지시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악마를 소환한 이유는 하나 밖에 없다. 나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나의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나는 악마를 키워온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사명을 다하라. 나의 노예.
'우리 반 1등의 시험지 답안을, 배껴와라.'
속으로 가볍게 명령을 내린다.
전달된 것일까. 내 마음의 명령에 무표정한 소녀는 조용히 1cm 정도 고개를 까닥해보이고는 몸을 돌린다.
사라락 드레스 자락과 함께 머리카락이 나풀거린다. 마침 코 끝을 스치는 향기는…… 세탁비누의 케케묵은 내음.
… 이 녀석, 그렇게나 가르쳐줬건만 오늘도 세면비누가 아닌 세탁비누로 머리를 감은 모양이다. 집에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알려줘야겠군. 하는 사소한 생각을 하는 사이. 내 사역 악마는 자신의 소임을 마치고선 곧바로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좋아. 으흐흐. 잘 풀리고 있다.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좋아. 좋다고.
자 한번 내게 말해봐라! 그 1등의 답이라는 것을!
바로 이 순간, 나는 우리반 1등과 동등한 성적을 손에 거머쥔다....!
그리고
"엉?"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버렸다.
내 앞에서 여전히 방금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소녀.
아니, 다른 점이 있긴 했다. 방금과 달리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내게 무언가를 토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엉?"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소리를 낸다.  그러자 앞에서 시험 감독을 하던 선생님이 헛기침을 하며 "거기 조용히 해!"라고 소리친다.
예예.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하며 나는 생각했다.
뭐지, 뭐가 문제지? 대체 무엇이 문제길래...!
거기까지 생각하고 깨달았다.
여전히 내 앞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바디랭귀지를 시전하고 있는 사역 악마 소녀.
……1등의 시험 답안을 배껴오라는 것까지는 좋았다. 다만 이 작전에는 큰 맹점이 있었으니.
그렇다. 내 사역 악마는 말을 하지 못한다. 거기에 글도 쓸줄 모른다. 할줄 아는 거라고는 오로지 손짓과 발짓을 통한 의사소통뿐.
그래서야 답안을 배낀들 내게 전달해줄 방법도 없다.
……내 사리사욕은 채워지지 않았다.


2.편의점 삼각김밥 절도

좋아. 현재 시각은 점심시간. 오전 시험이 끝나고 오후에는 물리 시험 하나만을 남겨둔 상태.
나는 점심시간이 되자 간단하게 밖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교문을 나섰다. 이번 중간고사 기간에 급식실은 운영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대부분 시험 일정이 오전중으로 끝나게 되어있고, 오후 시험이 있는 건 딱 오늘 하루뿐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아이들은 색다른 점심에 삼삼오오 모여서 도시락을 까먹거나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한 모양이지만……
나는 내 앞에서 무표정한 표정으로 서 있는 흑색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키는 130cm 남짓.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일색인…… 아니, 앞에서 설명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하여간. 자랑스럽게도 이 학교에서 내가 알고 있는 지인이라고는
눈 앞에서 곁을 배회하는 배추흰나비에 시선을 빼앗겨 멍하니 서 있는 이 사역 악마 소녀가 전부다.
그렇다. 나는 친구가 없다. 나는 친구가 적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 덕분에 점심도 언제나 홀로. 하지만 상관 없다.
나에겐 사역 악마가 있으니까. 이번이야말로 기필코 나는 이 사역 악마를 통해 내 사리사욕을 채우리라.
"좋아. 어이 사역마. 이번에야말로 네가 할 수 있는 간단한 명령을 내려주지."
내 말에 나비의 뒷꽁무니를 쫓던 사역 악마 소녀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전 시험에 있었던 뼈아픈 실책을 만회할 기회다.
이번에 내가 내릴 명령은 실로 간단하다. 사역 악마 소녀가 말을 할 수 있든 없든, 글을 쓸 수 있든 없든, 전혀 관계 없는 명령이다.
명령의 내용은 간단하며 심플.
나는 심호흡을 하며, 그 가공할 내용을 품고 있는 사상 최악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실로 악마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인륜지대사를 무시하는 엄청난 내용을 입에 담고야 말았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훔쳐와라."
말했다. 말해버렸다. 인륜을 져버렸다. 인간으로써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질러버렸다.
허나 어쩔 수 없다. 내가 사역 악마를 키우는 이유. 그건 단 하나. 나의 사리사욕을 키우기 위해. 그렇다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얼마든지 되풀이 할 수 있다.
마침 오늘 급식실이 운영 안한다는 걸 깜빡하고 도시락도 안싸왔다. 그렇다고 친근하게 다가가 도시락을 얻어먹을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더더군다나 밖에 나가서 뭔가를 사먹을 돈도 마침 깜빡하고 안가져온 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선택지는 두개 밖에 없다. 점심시간 내내 배를 쫄쫄 굶거나.
사역 악마에게 내 점심을 마련해오라고 명령하거나.
그리고 당연히 나는 나만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악마에게 명령한 것이다. 편의점의 삼각김밥을 훔쳐와라.
이번에야말로 내가 키우는 악마는. 이 무표정한 사역 악마 소녀는 훌륭하게 사명을 완수해보이겠지.
무표정한 사역 악마 소녀는 내 명령을 듣더니 곧이어 가볍게 10mm 정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장한 걸음걸이로 근처 편의점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후후후. 드디어인가. 드디어 나의 사리사욕이 처음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인가!
나는 그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기 위해 천천히 악마 소녀의 뒤를 따라 편의점으로 다가갔다.
 딸랑. 종소리가 울리고 악마 소녀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선다. 편의점 알바생이 마침 "어서 오세……? 응? 방금 누가 들어오지 않았던가?"하는 참으로 한심한 해프닝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차피 신경쓸게 못된다.
일반인 눈에 사역 악마는 보이지 않으니까. 자. 그러니 지금이 기회다. 빨리 나의 점심을 마련해와라!
비정한 지옥 무저갱의 악마여………!
그리고.
"………."
사역 악마 소녀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사역 악마 소녀는 까치발까지 들었지만, 그래도 부들부들 떨었다.
"……………………."
그래도 기특하게, 사역 악마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들부들 떨었다.
……사역 악마 소녀는 오로지 내 명령을 행하기 위해, 손이 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 높은 선반에 놓여있는 삼각김밥을 손에 넣기 위해.
애처롭게 까치발을 들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삼각김밥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그러한, 그러한.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 그런 슬픈 광경이었다.
사역 악마 소녀의 무표정한 얼굴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땀으로 젖어들어가고 있다. 분명. 저 까치발을 든다는 행위는, 손을 한계 끝까지 뻗는다는 행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이 닿지 않는다는 상황은.
사역 악마에게, 너무나도
너무나도.
힘겨운 상황이겠지.
"………젠장."
어쩔 수 없잖냐. 이런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역 악마 주인이 있겠냐고.
제길제길제길!!
'돌아와."
나는 그렇게 명령했다.
사 역 악마가 무표정한,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그 얼굴은 마치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바로 갖다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바보 같은 자식. 키도 닿지 않는 주제에. 겨우 130cm 정도 밖에 안되는 주제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됐어. 그만하고 돌아와.'
할 수 없다.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이런 내 명령에 사역 악마 소녀는 멀뚱히 나를 바라보다가, 결국엔
끄덕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딸랑. 편의점 종소리가 울린다.
"어서 오세…? 어? 왜 들어오는 손님도 없는데 종소리가 울리고 지랄이야?"
팔에 소름이라도 돋은 모양인지 양팔을 주무르는 편의점 알바생을 뒤로하며 무표정한 흑색의 사역 악마 소녀는 내게로 다가왔다.
물끄러미 내 얼굴을 올려다보는 사역 악마 소녀. 그 무표정한 얼굴이 어째 '조금만 더 있으면 성공할 수 있었는데….'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나는 쓴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나는 흑색 소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 점심은 같이 수돗물로 때우자"
사역 악마의 손을 잡고 느긋하게 학교 교문을 향해 걷는다.
이번에도 내 사리사욕은 채우지 못했지만.
……뭐, 아무렴 어때.

--


사역! 악마 소녀!


Writer

칸나기

칸나기

네. 나기 여신님 귀엽죠. 저도 좋아해요.

comment (3)

까아빈 12.09.09. 03:19
중간에 악마 소녀의 키의 단위가 cm에서 mc로 변했어요;; 악마 소녀는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는 거 같아요ㅎ
칸나기
칸나기 작성자 까아빈 12.09.09. 04:01
앗. mc라니. 음탕하군요. 수정했습니다.
엔마
엔마 12.09.09. 15:20
사역! 로리콘! 변절자!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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