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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전쟁] 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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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53 Sep 2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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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miiin
협업 참여 동의

나는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따라서 응당 하나를 포기하면 다른 무언가를 얻는다는 섭리에 의해, 나는 제법 많은 것을 얻었다. 어머니와 선생님의 걱정, 반 친구들의 관심. 그리고 병아리 하나.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전부 쓸모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야자를 안 해도 된다는 것 하나는 괜찮더라고. 덕분에 네 과외도 이렇게 일찍 시작할 수 있고 말이야.”

그래서, 이 병아리는 뭐죠?” 하고 소년은 병아리가 든 상자를 한번 툭 친 다음 나를 노려보았다. 고약한 수학문제에 직면했을 때처럼, 신경질적으로 긴 머리를 쓸어 넘긴다. 당장이라도 끓어 넘칠 것 같은 표정이라서 나는 슬쩍 거리를 두었다.

일주일만 맡아줘.”

거절한다면?”

소년의 목소리는 심하게 낮아졌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짐작하며, 엉덩이를 방석에서 슬쩍 떼어 무게중심을 뒤로 뺐다. 이를테면 도망칠 준비란 거다.

네 어머니가 대신 맡아주시겠지.”

예상대로 탁자위에 있던 홍차가 잔째로 날아왔다.

 

나는 다음날 무사히 등교할 수 있었던 것은 소년의 형편없는 집중력 덕분이었다. 그것이 내가 아직까지 과외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만약 소년의 다트 판에 붙어있는 내 증명사진이 좀 더 너덜너덜해진다면, 그때 쯤 과외를 계속 할 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소년의 어머니에게 어떻게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점심시간 전을 다 날려버렸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무의미한 시간 낭비였다. 그래도 자취방 정리 순서로 시간을 죽이던 어제보다는 적어도 보람찼다. 내 방을 정리할 날은 절대 오지 않겠지만 소년의 과외를 그만 둘 때는 언젠가 올 테니까.

대학 안 간다며?”

나는 빵을 놓고 멍하게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굵은 테 안경이 잘 어울리는 여학생이다. 그리고 내 급우고, 반장이며 차석이다. 그녀에 대해 설명할게 이것 밖에 없을 정도로 데면데면한 사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의 것도 아닌 장래에 이렇게 신경을 쓰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알바는 아니지만.

가게 일을 도와야 해서.” 하고 말하며 나는 빵 봉지를 뜯었다. 대화를 하면서 뭔가를 먹는 것은 분명 실례되는 행동이지만, 우리는 모두 그런 것을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이다. 뭣보다 점심시간의 반을 공상으로 날려버린 탓에 예의고 뭐고 따질 처지는 아니다.

학교 수석이 대학을 때려치운다는 말에 교감까지 얼굴이 파랗게 질렸던데. 어제 심화반 전부는 아주 똥 씹은 얼굴이었어.”

제발, 나 빵 먹고 있는 거 안보여?”

반장은 내말을 깡그리 무시하고 주변을 한번 눌러본 뒤에, 내 옆자리의 의자를 당겨 앉았다. 나는 반장을 마주보며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자처럼, 무표정하게 빵을 뜯었다. 장담컨대 이게 가젤고기보다 더 맛이 없겠지.

표정이 잔뜩 굳어 있길래, 한번 확인 차 물어 본거야. 혹시 안 좋은 사정이 있나 하고.”

별거 아냐. 그냥 집주인 아주머니께 둘러댈 변명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야.”

집주인? 너 자취해?”

그래, 그리고 졸업하면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내려 갈 거야. 그런데 집주인 아주머니가 날 아주 귀여워해주시거든.”

반장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건 사실이니까.

의외네. 널 귀여워하는 사람이 다 있다니. 집주인에게는 싹싹하게 구나 보지?”

집세를 낮추기 위해서는 뭐든지 해야지. 그 집 아들 과외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의외네. 의외야.”하고 반장은 반복해서 중얼거린 다음, 나를 보고 말했다.

난 네가 뭐랄까, 자존심으로 가득 찬 고독한 인간인줄 알았어.”

마음껏 실망하라고. 물론 아무리 그래도 허벅지 안쪽, 그 이상은 쓰다듬게 해주진 않을테니까 그 점은 안심해도 좋아.”

, 그게 무슨 소리야!” 하고 얼굴이 새빨갛게 된 반장이 일어나서 소리친다. 교실에 몇 안 남아있는 급우들이 의문스럽게 우리 둘을 바라본다. 반장은 잽싸게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그거, 농담이지?”

괜찮아. 아름다우시니까. 나도 그리 손해 보는 건 아냐.”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이쪽을 보고 수군대는 학생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남은 빵조각을 입에 밀어 넣었고, 반장은 이제는 거의 고개를 들어 올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할 말은 그걸로 끝?” 하고 내가 묻자 반장은 이를 악물고 나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 추켜올렸다. 다시 말하지만 내말에 거짓은 없다. 다만 빨리 이 거추장스러운 이야기를 끝내고 싶었을 뿐이다.

아니, 병아리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

이번에는 내가 당황할 차례였다. 굳은 내 표정을 보고, 반장은 씩 웃은 다음 말한다.

너도 받았다던데?”

 

늦으셨네요.” 하고 소년은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문을 닫으며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이십여분 지각이었다.

반 친구랑 이야기가 길어져서.” 하고 대충 얼버무린 뒤에 소년의 맞은편에 앉았다. 웬일로 탁자 위에는 오늘 할 문제집들이 곱게 펼쳐져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소년은 몸을 돌려 침대 위에 있던 이불을 걷었다. 삐약삐약하고 우는 박스가 거기 있었다. 소년은 박스를 들어 문제집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도로 가져가기 전까진 과외를 거부하시겠다?”

죽여도 되요?”

안돼.” 하고 나는 즉시 부정했다. 소년은 섬뜩하게 웃었다.

선생님의 그런 표정을 보는 것은 처음인거 같아요.”

나는 소년을 우습게 봤음을 인정했다. 이런 식으로 약점을 잡고, 수많은 과외선생들을 쥐락펴락해서 물러나게 만들었겠지. 나는 한숨을 눌러 참고 말했다.

그 병아리는 솔직히 말해서, 내 것이 아냐.”

알고 있어요. 선생님 같은 사람이 이런 병아리를 주워 다 키울 리가 없죠. 한 십년쯤 어려지면 몰라.” 하고 소년은 다 아는 척 주절댔지만, 내가 병아리를 키우는 일은 십년은커녕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실은 같은 반 여자애가 부탁했어.” 하고 말한 뒤에 소년의 반응을 살핀다. 소년의 표정은 어제보다 더 사나워져 있었다. 소년은 두 손으로 탕, 탁자를 내려친 다음 내 쪽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떤 여자죠?”

네가 내 아내라도 되냐.” 하고 내가 말하자마자 소년은 탁자 아래로 내 다리를 걷어찼고,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정확히 말해서, 내게 아니라서 곤란하기보다 그 여자애 것이라 더 곤란해.” 하고 말하자, 소년은 당장이라도 내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무척 이쁜가 보군요. 좋아했나요?” 하고 말한 뒤에, 소년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병아리를 보았다. 나는 소년이 당장이라도 병아리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대체 뭐냐고 소리 지르는 소년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나는 말했다.

그래서 더욱 곤란한 거야.”

 

오늘은 늦게 끝났구나.”

낭랑한 목소리였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독서 중인 소년의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야기가 좀 길어져서 그랬어요.” 하고 말하자, 그녀는 한참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소녀 같은 웃음이었다.

그 애가 내일 외출한다고 말하더라.”

무척 기뻐하시는 거 같은데요.”

걱정도 하고 있어. 이년 만이니까.” 하고 말한 뒤에, 그녀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그녀가 의자에 내려놓은 책을 보고나서, 책장을 가득채운 책들을 보았다.

소설가는 다들 책을 많이 읽나 봐요?” 하고 말한 뒤에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내 앞에 서있었다.

고마워.”

그녀는 양지바른 곳에서 피어날 것 같은 미소를 지은 다음, 내게 천천히 양손을 뻗어 날 끌어안았다. 나는 한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그녀의 포옹을 받았다.

병아리 때문이에요.”

.”

그리 먼 곳도 아니고, 해가지기 전에는 돌아올 겁니다. 물론 저도 같이 갈 거구요.”

나는 여자를 만나러 간다는 말은 의도적으로 뺐다. 괜한 걱정을 괜히 사서 끼칠 필요는 없다.

.” 하고 그녀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대답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이제 제 엉덩이를 주무르는 것을 그만둬 주시겠어요?”

그건 싫어.”

정말 대책 없는 모자母子였다.

 

어제의 일로 돌아가자. 느닷없지만 병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별수 없다. 집에 돌아가서 소년을 상대해야 하는 날 불러다 놓고, 반장과 신세한탄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건 정말 어쩔 도리가 없어.” 하고 반장은 말했고, 나는 반장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 그 표정을 짓고 부탁하면 그 누구도 거절하지 못할 걸.”

너무 과장한 거 아냐? 걔는 단지 울상을 지었을 뿐이라고. 네 말만 들으면 무슨 마녀 같은 느낌인데.” 하고 말한 뒤에 반장은 나를 보았다.

전 세계를 향해 방송하는 거지. 울상을 지으면서 병아리 좀 키워달라고. 그러면 아마 한 세대 이후에는 닭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 거야.”

반장은 한참동안 낄낄대며 웃더니 손을 저었다.

너무 사악한 쪽으로 몰아가는 거 아냐? 걔는 자각도 악의도 없는 애라구. 다만 생명을 소중히 할 뿐이야.”

내 입장에서는 난 피해자고 걔는 가해자야.” 하고 나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솔직히 나는 그녀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내가 고약한 수에 당한 것 같은, 비참한 피해의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니. 맙소사.

채식 주의자인가?” 하고 말한 뒤에 나는 자신의 멍청함을 깨달았다. 반장도 그것을 아는지 따로 지적하진 않았다. 다만 빙그레 웃었고, 그건 날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중학교 동창이며, 친한 친구가 덮어쓰고 있는 잘못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설명해주자면.” 하고 거창한 운을 띄운 뒤에 반장은 말했다.

그리 거창한 건 아니고 다만 잘 키워낼 뿐이야.” 하고 말한 뒤에 반장은 내 표정을 살폈다. 이해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날 보고 반장은 한숨을 쉬었다.

걔네 집에는 닭이 세 마리 있고 작은 채소 텃밭에는 각종 신선한 채소가 가득해.” 하고 말한 뒤에 나를 본다.

초등학교 시절에 팔던 병아리 한 마리와 방학숙제용 야채 씨앗이 그렇게 되었다면 이제 좀 이해하겠어?”

머리로만.” 하고 말 한 뒤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째서 그 병아리와 채소가 잘자라는지는 알 것 같네. 죽을까 걱정해 울상지으며 키울테니까. 죽는 게 큰 죄처럼 느껴질걸.”

그건 그럴듯 하네.” 하고 반장은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병아리 어떻게 할 거야? 걔는 내 어린 동생이 있는 걸 아니 부탁했는데, 넌 어떻게 부탁받았어?”

대학 때려친다는 말 담임에게 전하러 갈 때 우연히 만났어. 우리 둘 다 그렇게 말했을 때 담임 얼굴이 아주 볼만했지.” 하고 말한 뒤에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어두운 기색이 없는 그녀의 얼굴.

걔는 아마 농사일을 이어받을 걸. 좀 큰 농사꾼 집안이라.” 하고 반장은 말했다.

그래서, 그 뒤에 나란히 귀가하던 길에 받았다? 청춘이네.”

나는 석양을 등지고 서서, 내게 병아리가 든 박스를 내밀던 그녀의 표정을 떠올렸다. 야자를 안 하지만 충분히 바쁘다, 정 그러면 네가 기르면 되지 않냐, 하는 내 말을 다 지워버린 표정. 그건 심장이 멎을 정도로 아찔했지만, 전혀 로맨틱하지 않았다.

병아리 따위, 판매금지 시켜버려야 한다고.” 하고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나는 반장이 준 그 여자애의 집 약도를 다시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고, 더구나 그녀가 기르고 있는 생명에 대해서는 더더욱더 아니다. 내가 어째서 병아리를 맡게 되었는지 소년에게 이해시켜주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소년이 나를 죽여 버리겠다고 중얼거리며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도, 소년의 모습을 쫓는 사람과 시선은 더 이상 없었다.

시내를 지나갈 때, 소년의 하늘색 원피스와 생머리, 그리고 외모에 속은 많은 사람들이 추파를 던지기 위해 쫓아왔지만, 나는 그들이 말을 건네기 직전 마다 포경은 언제 했었냐느니, 변성기는 언제 오느니, 군대는 언제 갈 생각인지 말을 던져서 그들을 떨쳐 보냈다. 동급생에게 호되게 당해서 학교를 때려 친 아이에게는, 되도록 낯선 사람을 접근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내 깊은 생각을 이 어린 녀석이 알 리가 없지.

나는 녀석이 쓴 양산을 한번 보고, 여섯시가 다되어가지만 여전히 쨍쨍한 하늘을 보았다. 이마의 땀을 한번 닦고, 정류장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녀석은 드디어 내 발뒤축을 걷어찰 수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죽여버릴 거에요.”

언젠가 그전에 관둬줄테니 염려마.” 하고 말한 뒤에 소년이 들고 있는 작은 상자를 보았다. 뚜껑을 열어서 병아리가 무사한지 확인했다. 병아리는, 작은 머리를 부르르 털며 그 좁은 공간을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새 죽이지 않았군.” 하고 나는 빈정댔다.

그 인간을 직접 눈으로 마주 보기 전까진 안 죽여요.” 하고 소년은 살벌하게 웃었고, 나는 녀석의 철없음에 진저리를 치며 돌아섰다. 곧 버스가 올 것이다.

 

버스를 타고 그녀의 집에 갈 때까지는 비교적 평온했다. 할머니를 위해 자리를 비키자, 녀석이 무릎위에 올려둔 병아리 상자를 거기에 내려놓기 전 까지는 말이다. 나는 득이양양하게 나를 보고 웃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안, 나는 네가 그렇게 병아리를 무거워 할 줄 몰랐어. 남자아이니까 좀 더 괜찮겠거니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신경 쓸 게.”

결국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버스를 타는 내내 병아리와 같이 묻어버리고 말겠다고 내 귀에 속삭였다. 아이구야.

 

버스가 도착한 곳은 시내와 같은 도로로 이어져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흙냄새가 가득했다.

굉장한 곳이네요.” 하고 소년은 길가에 피어있는 들꽃을 보고 감탄했다. 아마도 소년은 이런 시골에 와 본적이 없겠지. 나는 발로 흙으로 된 길을 꾹꾹 밟아보았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포근한 감각이었다.

너 그거 뱀 딸기야. 먹으면 죽어.” 하고 말하자, 녀석은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산딸기를 집어던졌다.

진짜에요?”

뻥이야.”

나는 소년에게 걷어차이지 않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그 와중에 길가를 따라 걸으며, 산딸기를 몇 개 따서 손바닥 위에 굴려 이물질을 털어냈다. 그리고 소년에게 주었다. 소년은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다, 나에게 물었다.

진짜 이거 먹어도 되요?”

나는 대답대신 개 중 하나를 집어 먹었다. 시큼함이 입안에 퍼졌다. 아직 그렇게 달진 않았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먹을 만 할 것이다. 소년은 주저하다가 한 개 집어 입안에 넣었다. 소년이 두 개 째 먹는 것을 보고나서 나는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약도를 펴들고 그녀의 집을 찾는다. 다행히도 그리 멀진 않았다. 나는 더 달라고 내 소매를 잡아당기는 소년의 손을 뿌리치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사전에 학교에서 미리 말해뒀기 때문에 그녀는 집 앞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며, 나는 소년을 돌아보았다. 적당적당히 남겨두라고 했던 내 충고를 무시하고 길가에 난 산딸기를 모조리 먹어치운 이 골치 덩어리는, 내 뒤에 바짝 붙어서 서있었다. 나는 양손으로 소년의 어깨를 잡아. 내 앞에 강제로 세웠다. 덕분에 소년은 그녀와 가까이서 마주보게 되었다. 귀여운 소녀네, 하고 그녀는 빙긋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까지 무슨 일이야?”

나는 겁먹은 강아지 꼴 마냥, 움츠러든 소년의 양 어깨를 단단히 잡는다.

이년 전 계집 일로 겁먹을 셈이냐?” 하고 귀에 대고 속삭이자, 소년은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날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 표정을 비웃어준 다음 그녀에게 용건을 정했다.

네가 나한테 맡긴 병아리 때문이야.” 하고 말하자, 그녀의 표정이 다시 시무룩하게 변했다. 나는 솔직히 엄청나게 긴장했다.

맡아 놓고 이런 말하기 미안하지만, 내가 돌보기에는 할 일이 있어서 대신 내가 신세지고 있는 사람에게 맡기려고 하거든.” 하고 말 한 뒤, 나는 소년의 어깨를 슬쩍 밀었다. 이제는 소년의 차례였다. 소년은 심호흡을 몇 번하고 나서, 병아리가 든 상자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 저희 집에서는 병아리를 키우기가 좀 그래서요오.” 하고 두 눈을 꾹 감고 몇 번 더듬거리며 말한 뒤에, 소년은 후련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고 으스대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소년의 어깨를 툭 건드렸고, 잔뜩 겁먹은 소년은 내 턱짓에 따라 다시 그녀를 보았다.

울상을 짓는 그녀가 있었다. 나는 소년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내, 그게 내 숨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주일만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

해는 그녀의 뒤로 떨어졌고, 떨어진 자리에서 노을이 피어올랐다. 그때와 같다. 나는 그 표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때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만 그때와 달리 버틸만한 것은, 내가 그 표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무슨 사정이라도 있어?” 하고 내가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고 묻자, 그녀는 나를 보았다.

동생이 입원해서, 그 간호 때문에 집이 잠시 텅 비거든. 그래서 그동안만이라도 누가 맡아줬으면 해서.” 하고 말한 뒤에 그녀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물론, 동생 입원이 끝나면 내가 도로 맡을 거야. 그러니까 그동안만이라도…….”

나는 마침내 두 손을 들었다. 나는 포기했고, 이제 남은 것은 소년의 결정 뿐이었다. 과연 내가 하지 못한 것을 이 녀석은 해낼 수 있을까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년은 기대를 멋지게 배신해주었다. 

 

소년과 내가 그녀의 집에서 돌아와,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에는 해가 완전히 저문 뒤였다. 나는 시퍼렇게 땅거미가 내려앉은 지평선을 보다가, 병아리가 든 상자를 끌어안고 있는 소년을 보았다. 두 눈이 완전히 퉁퉁 불어있는 모습니다. 나는 웃었고, 소년은 이를 악물었다.

웃지 마요.”

훌륭했어. 거기서 울음을 터뜨릴 줄 상상도 못했다.” 하고 말한 뒤에 나는 내 발목을 노리고 찬 소년의 발길질을 피했다.

그래도, 선생님처럼 대책 없이 덥석 받지는 않았다구요.” 하고 소년은 퉁명스럽게 말한 뒤에 덧붙인다.

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네 의지대로.” 하고 내가 소년의 말을 정정해준다. 그리고 다시 소년이 안고 있는 병아리를 본다. 소년은 당황해하는 그녀를 향해 맡기는 맡겠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으면 그전에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일단 말은 그렇게 했어도, 소년이 자신의 의지대로 자비를 베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곧 죽어도 지기 싫어하는 고집불통의 성격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겠지.

뭔가를 느낀 것은 있었겠지.” 하고 말한 뒤에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아스팔트 조각을 도로 반대편으로 차 보냈다. 소년도 나를 따라했지만, 소년의 것은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섰다.

선생님은 정말로 나쁜 놈이라는 거요?”

그건 과외를 시작하자마자 알아챘어야 하는 거고.” 하고 부정한 뒤에 다시 소년을 본다.

그렇게 자기 멋대로 살아가다간, 결국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올 때 펑펑 울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거 말이야.”

 

그날 밤, 소년과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고 소년의 어머니는 우리를 번갈아 가며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소년이 자신이 병아리를 맡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내게 키스라도 할 기세였기 때문에 나는 재빨리 그 집을 빠져나왔다.

그 뒤로 소년은 과외를 하면서 수시로 병아리가 담긴 상자를 신경 쓰게 되었다. 혹시 정말 병아리가 좋아진 거냐고 빈정대자 탁자 아래에서 걷어차였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소년의 실수로 병아리는 죽어버렸고 소년은 과외시간 내내 내 품에 안겨서 펑펑 울어대었다. 나는 수차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야 했다.

그 다음날, 나는 그녀에게 병아리의 부고를 알렸다. 그녀는 내 생각보다 담담했다.

안됐지만, 별수 없지.” 하고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차분하네.” 약간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내 말에 그녀는 옅은 눈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으니까.” 하고 말한 뒤에 그녀는 덧붙였다,

하지만 그 죽음이 의미 없지는 않을 거야. 분명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가 되었을 거야.”

지나치게 따분한 낙관론이지만, 나는 그 말을 부정할 자신이 없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잃는 것도 있다면 얻는 것도 있기 마련이지.”

그것은 나도, 그녀도, 소년도 그랬다. 다만 그냥 받아들이느냐. 낙관하느냐, 울어버리느냐의 차이 뿐이겠지.

그건 그렇고, 어떻게 됐어? 반장이 고백했다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두 눈을 깜박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잃는 게 있다면야 얻는 것도 있겠지.”

그게 뭐야, 제대로 대답해달라구.” 하고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었고, 나는 대답하지 않고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대답을 해주지 못한 것은 약간 미안했지만, 별수 없었다. 사실, 나는 아직 반장의 고백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집으로, 나는 다시 학교로 향했다. 반장을 만나기 위해.

내 대답 따위, 정해져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comment (2)

창공의 마스터
창공의 마스터 12.09.28. 11:20
설명이 부족해 인물들의 행동원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잘 읽힌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단, 이것이 경소설이냐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글쎄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다음에는 좀 더 장르적인 재미를 추구한 글을 출품해주셨으면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19thJack
19thJack 12.12.25. 11:06
뭔가 조금 난해합니다 글은 뭔가를 담고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 느낌입니다
전달이 좀 안되는 느낌이에요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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