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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블랙 드래곤 맞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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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9:00 Nov 06, 2012
  • 4824 views
  • LETTERS

  • By 위래
협업 참여 동의
  "왜 나를 구해야하냐고? 후후. 용골산맥의 주인이자 종말의 전조, 해를 삼키는 자, 타천의 마룡, 카르-카루사가 바로 나님이시다. 나를 여기서 꺼내주면…" 하고 검은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말했다.
  무시하고 지나쳐갔으므로 뒤에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뒤늦게 알아챈 검은머리가 철창 밖으로 손을 허우적거리며 외쳤다.
  "이봐! 잠깐! 거기 서라고! 제발! 물어봤으면 이야긴 다 들어야할 거 아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나는 되돌아갔다.
  검은머리가 목을 가다듬곤 말했다.
  "으흠. 인간이 진위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고. 그러니 가당찮은 이성으로 내 말을 판별하려는 것도 이해해. 하지만 내 말은 진짜야. 지금은 저주를 받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 진짜 모습은 만물의 지배자이자 위대한 권속인 드래곤이라고."
  검은 머리는 진지해보였다. 옥 생활을 꽤 오래한건지 긴 생머리는 떡지고 몸 여기저기 검댕이가 묻어 지저분했지만, 눈동자가 총명하고 자세도 곧았다. 정신이 나간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거란걸 알고 있다면 아무런 근거도 없는 거짓말은 안 할텐데. 아무튼, 이야기 끝났어?"
  "…아니. 잠깐. 내가 드래곤이라면 내 레어의 보고를 열어 니가 들고 갈 수 있는 만큼의 보물을 주겠어."
  "그러니까 증거를 내놓으라고."
  검은머리는 잠깐 생각하는 것 같았다.
  "증거는 없지만."
  "나 갈게. 안녕."
  "으악! 구해줘! 구해주세요!"
  나는 되돌아갔다. 이 꼬맹이는 내가 놀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럼 농담은 여기서 끝내고. 너 정말 누구야? 어디서 왔어?"
  "말했지 않나. 드래곤이라고."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건가?"
  검은머리는 한숨을 폭 쉬었다.
  "그래. 그렇게 해두지. 나는 사실 인간인데, 드래곤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 구해줄 마음은 있나?"
  "생각중인데. 허풍을 떠는 걸로 봐서는 가진게 '몸뚱이' 말고는 전혀 없다는 말 같고. 혹하나 붙이고 여기서 탈출한다는 리스크를 보상받고 싶은데. 어떻게해야할까?"
  "일단 탈출한다면 보고를 열어준다고 했지만, 내가 드래곤이란 말은 거짓말이니까, 다른 방법으로 보상해야겠군. 원하는 게 있는 거 같은데."
  이제야 말이 통하네.
  나는 배낭을 들춰 종이와 깃펜을 꺼내 검은머리에게 건냈다. 종이에는 이미 글이 쓰여져 있었다.
  "거기 서명해."
  "캭! 노예문서잖나!"
  "우리나라에선 합법인데."
  "그 말이 아니잖나!"
  "싫음 말고."
  내가 손을 뻗자 검은머리가 휙 종이를 뺐다.
  "잠깐, 생각 좀 해보고."
  "그래. 그치만 여기서 언제 미식가 선생의 식탁에 오를지 걱정하는 인생 보다는 더 나은 삶들이 남아 있지 않겠어?"
  "좋아. 일단 급한 불 부터 꺼야하니까."
  검은머리는 서명했다. 그냥 충동적인 거 같은데.
  나는 문서를 잘 접어 가방에 고이 모셔두곤, 쓰러져 있는 간수의 허리춤에서 열쇠뭉치를 뜯었다. 다섯 번째 시도에서 문이 열렸다.
  검은머리는 목과 양 손목에 수갑을 차고 있었다. 열쇠구멍을 찾는데 이상하게도 열쇠구멍이 없었다.
  "뭐지? 어떻게 씌운거야?"
  "열쇠 구멍을 매운거다."
  "니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검은머리는 "드" 하고 말했다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좋을대로 생각해."
  "그럴 생각이긴한데. 이래서야 수갑을 못벗기잖아."
  "그럴 필요 없어. 내가 본신으로만 돌아가면 이깟 수갑따위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래.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수갑이 채워져 있으면 아무데도 못팔아먹으니까."
  잠깐 검은머리가 나를 노려봤다. 나는 무시했다. 나와 검은머리는 지하감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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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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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블레츨리역 지붕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환상을 읽고 자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관사 노릇을 더 잘할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

- J.R.R Tolkien, <On Fairy Stories>

comment (1)

엔마
엔마 12.11.06. 20:36
위래님 오랜만에 뵙네요.
이번 소설도 잘 읽겠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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