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시지프 의뢰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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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인이고, 민족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는 나뿐이다. 민족은 모든 명령에 아무런 불평없이 복종하고, 눈을 꼭감고 임무를 수행하라!! 루네인이여! 일어나라! 대 루네연방국이여 만세!

 

[2년전, 군사 쿠테타로 권력을 장악한 아레만 중장의 연설]

 

 

이 땅에서 지리아인 학살이 일어나고 10여년이 지났을 때, 사람들은 아직 진상을 알리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나는 침묵했다.

 

20여년이 경과했을 때도 똑같은 대답이 반복되었다. 그 주장이 너무나 확고해서, 마치 정말로 그럴만한 충분한 절대적인 이유가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침묵했다. 30, 40년이 지났다. 그때도 나는 침묵했다.

 

그런데 50여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이미 다 지난 일을, 좋지도 않은 일을 무엇때문에 다시 드러내냐고 불평한다. 나에게 나서지 말고 침묵하라고 말한다.

개-새끼들.

빌어먹을..루네인 개-새끼들.

 

[대륙전쟁 때 대규모 지리아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노인의 말.]

 

()루네 연방 공화국.

 

거인족을 토벌한 텍크 1세의 철권통치를 피해 서쪽으로 이주한 루네 인들이 처음으로 그 땅에 발을 디딘 이후, 그 뒤로 수많은 혈전이 일어났고, 나라들이 세워졌다 망하기를 반복했다.

 

천년간을 거신황국의 속국으로 살았고, 독립한 후에 간신히 왕국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60년전 전 일어난 대륙전쟁에 또다시 휘말렸다. 결국 전쟁이 끝난 황력 1323 11. 제헌국회를 열고 이름뿐인 왕정을 폐지,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한 북 루네 연방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단지 루네인들의 황혼의 시기, 그 전성기를 되찾고 싶은 어거지뿐인 대()루네주의로 인해 짜집기 되었을 뿐인 국가.

 

()루네 연방은 5-6개로 구성된 공화국과, 자치주인 지리아 주()로 이루어져 있지만 굳이 연방구성국 면면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어차피,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루네공화국일 뿐 나머지는 단순한 이 흘러간 역사의 한 귀퉁이에 불과할 뿐이기에.

 

각설하고, 애초부터 무수히 많은 갈등 위에 공산주의로 둘러진 띠와 초대 연방대통령의 거대한 카리스마로 간신히 기틀을 다진 연방이다. 설립부터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났다. 연방내 여러 국가들의 경제적 격차와 경제문제, 전쟁채권배상문제, 그리고 연방자금의 불균등한 배분, 끊임없는 대()루네주의의 대두, 공산주의의 몰락, 거신황국과 자치구인 지라이 주()간의 관계, 인종문제. 비민주적인 투표.

 

지금까지 잘도 버텨왔구나-할 정도로 끝도없을 문제들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왔다. 그렇지만 연방 의회와 사람들, 그리고 독립과 민족, 연방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몇 십년간 연방 내 공화국끼리 다투고 싸우면서도- 이어져왔다.

 

하지만 연방을 유지하려던 노력도- 아레만 중장의 쿠테타 이후에 변해버렸다.

 

3년전 아레만 중장이 쿠테타를 일으키고, 스스로  연방 헌법을 위헌하면서까지 루네공화국 헌법을 바꾼 그 순간부터- 연방은 껍데기만 남아버렸다. 공화국간의 알력 다툼. 그리고 소규모 전투. 연방대통령의 사임, 연방 의회 폐쇄. 그리고 전세계 언론과 외교적 압박, 거신황국과 베르니아국의 개입으로- 결국 루네연방은 '실직적으로' 무너졌다.

 

()루네연방공화국에 남은 것은 고작 2개의 국가. 아직도 무너진 대()루네주의를 외치며 영토확장을 주장하고 있는 루네공화국. 그리고 80%의 지리아인 이 살고있다는 간단한 이유하에 이름붙여진 지리아 주(). 연방은 명맥상 이름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남아있는 것은 스스로 자위하며 끝까지 연방을 외치는 루네인들, 공화국들의 연쇄적인 독립의 영향으로 독립을 주장하는 지리아인들 뿐. 북 루네연방 당시만해도 자치권이 주어졌지만, 연방내 공화국이 점차로 떨어져감에 따라, 루네공화국의 지리아에 대한 간섭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루네공화국에게 지리아 주를 잃는다는 것은, 멸망에 가까워지는 길이였기에.

 

하지만 애초에 거신황국과 마주해 있고, 황국 국경 근처에 사는 지리아인만 해도 100만명이 넘었다. 또한 수백년 전, 왕국 때부터 2등시민대우를 받아왔던 지리아인들에게 연방이라는 명목하의 종속은 견딜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리아 주가 연방에서 빠져나가려는 움직임, 독립의 불길은 무척이나 거세어졌다.

 

거신황국에 자리잡은 [지리아 재민 대표]. 총구성 회원 80만명이 거신황국과 언론을 통해 독립을 주창하고 서명운동을 해왔다. 지리아 독립 포럼이 열렸다. 수많은 시민단체와 민주포럼이 열리길 반복했다.

 

그러나.

 

세계는 무심했다. 지리아주와 루네공화국은 단순한 정치적 접근이 불가능한, 거신황국, 그리고 베르니아국 간의 파워게임이자 정치적 각축장이었다. 더군다나 지리아 주는 어떤 정치적 입지도 가지지 못한 상태.

 

인간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이기적이었다.

 

언론에 뜨는, 지리아 주에서 수백명이 학살당한 사건보다도 의료 뉴스와 연예인 스캔들이 사람들에겐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 것이였다. 특히나 지리아 주()의 지리아 인들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전세계가 관심을 껐다. 보도조차도, 문제의 공론화나 여론조차도 없었다.

 

따라서- 지리아 주에 남은 것들은,

루네공화국, 루네 민병대와 마피아에 의한 마을규모의 학살사건과 납치.

전 세계로 팔려나가는 지리아 여성들. 그리고 루네공화국 정부에 의한 대규모 노무부대(勞務部隊)징집으로 인한 차별과 멸시 뿐이었다. 독립을 외치는 자들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고, 행방불명 되었다.

 

차별과 학살은 심심찮게 일어나고, 굶어죽어가는 지리아인들이 태반이었다. 늘어나는 지리아 주 내의 살인과 강간과 쉼없이 자행되는 학살. 소용없었다. 아무도 그들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어쩌지 못할 정도로 심화되는 반목. 연방은 완전히 무너졌다.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오히려 경제쪽이 더욱 참혹했다.

 

공화국은 모두 독립해서 떨어져 나가고 연방에 남은것은 내전으로 파괴된 공업시설과 땅뙈기뿐. 루네연방은 베르니아 및, 예전 연방에 속했던 공화국에 경제원조를 요청했었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전세계는 북 루네 연방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세계는 루네공화국이 망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중에서도 경제력이 제일 낮고, 농어업에만 의존할 뿐인 공업기반도 없는 루네공화국이 더이상 발디딜 곳은 없다고 예언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를 놀랄만한 성과를 발견해내었다.

 

그것은, 바로 석유였다. 루네공화국 령 던전 지역에 128억톤의 석유가 매장되어있다는 사실을 얼떨결에 알아낸 것이다. 최악의 빈민국인 루네연방공화국이 세계적인 경제전쟁에서, 빈곤에서 살아남을 방도가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석유가 매장되어있는 곳은 던전 깊은 곳이었다.

그것도 최악의 괴물인 [아라도그민(亞犯犬)]이 살고 있는 44층이었던 것이다.

 

결국, 지리아 자치 의회는 지리아의 독립을 선언하고 1392년 의회를 개설, 및 대통령 선거를 거쳐 우벰베 대통령이 초대 지리아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됬다. 이웃국인 거신황국은 지리아 공화국의 성립을 인정했으나- 루네 공화국은 전면전을 실시했다. 결국 벌어진 내전. 내전은 3년가까이 지속되었으나 베르니아국, 거신황국을 필두로 한 국제사회의 중재에 따라 전선은 국경 근처의 소모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국경 근처는 지옥이었다. 지리멸렬한 소모전이 계속되는 나날. 하루가 시작되면 수많은 포탄과 영식[靈式]이 지평선끝까지 불태우고 3000도에 이르는 불길이 사그러들면 하루가 끝나는 목가적이고 반복되는 학살과 반격의 나날.

 

자치주이자 이제는 공화국을 선포한 지리아 공화국 국경 근처 마을 메헴테렌, 본래는 교회 하나없는 목가적인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지옥의 한장면을 연상케 했다. 5시간전 루네 방위군 제3포병여단 용기병대(龍騎兵隊)무리는 반군 거점을 점령한다는 명목하에 메헴테렌에 진격해왔다.

 

초목과 대지는 비명을 지르고, 지옥의 불길과 청명한 하늘, 매캐한 연기와 인간의 더운 피냄새가 뒤범벅되며 바람은 대지끝까지 피냄새를 전달할 것처럼 세차게 불어대었다.

 

마을에 살고있는 남성들은 모두 지리아 해방군의 누명을 씌워 총살당했다. 마을에 남은것은 남편, 아버지를 잃은 여성들 뿐이다. 그 와중에 아직 2차성징도 안한 덜여문 나신의 여자아이도 있었다. 헐떡이는 소리.

 

마을 회관 앞 수십의 여성들은 벽에 손을 집고 엉덩이를 뒤로 내민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범하고 있는 자들과 빨리 재촉하는 기다리는 다른 무리. 학살과 폭력, 강간은 지리아주에서는 일상적인 것이다.

 

-죽이네! 죽여!

 

-빨리빨리 하라고!

 

여성들은 노리개에 불과했다. 강간뒤에 오는 것은 죽음 뿐이다. 퍼지는 것은 무력감과 하루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절망뿐이다. 저항할 수도 없는 여성들은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팔뚝을 있는 힘껏 깨문다.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과 팔뚝에서 흐르는 피. 머리카락은 반동에 흔들린다. 목덜미의 땀에 달라붙는 머리카락들. 수많은 여성들이 범해지는 광경은 관능적이면서도 구역질 날것같은 괴리감이 들었다.

 

-, 지리아인들이 몸에 좋다는 얘기 들었냐? 지리아인 고기 먹어봤어? 공방무사 계급이 올라간다는 얘기가 있던데

 

살과 살이 부딪치는 원시적인 소리. 더워지는 공기. 불쾌한 피냄새. 애액과 정액이 섞이고 여성특유의 썩은 냉증이 아래서부터 코를 찌른다. 여성들의 융기한 가슴은 반동에 의해 앞뒤로 흔들린다. 말한 용기병(龍騎兵)은 무심히 허리를 앞뒤로 흔들며 옆의 동료를 쳐다본다.

위에있는 자들의 폭력. 저항할 수 없는 폭력.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세계.

 

그것이 전쟁이었다.

 

-싯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멍청아. 그러면 지리아인들은 진즉에 다 죽었겠지.

 

동료의 움직임은 끝에 다다랐는지 점점 거칠어진다.

 

-아냐 진짜라고. 걔 있잖아 쥬코프 놈. 저번 지리아 마을 습격전에서 지리아 여성을 먹었더니 영()이 부쩍 뛰어올랐다고 자랑했다니까.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볼까하고.

 

-말도안되는 소리하고 있네.

 

-말도 안되든 되든 난 먹을테니까, 말리지 말라고.

 

여자의 몸에 달라붙어 지껄이는  늘어지는 만담들. 둘은 거의 비슷하게 여성의 허리를 잡고 절정에 이른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 목가적이기까지한 광경을 루덴 하사관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보고있었다. 심지어 하품을 한다. 여자를 품고 싶은 욕구는 동 난지 오래. 오히려 하사관은 방금 전 녀석이 했던 말따마나 지리아 여성의 살결을 '먹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예전, 전쟁 초기 동료가 지리아인들을 '도축'하는 장면을 봤을 때는 구역질났었지만, 이제는 본연의 임무보다 지리아 여성의 고기를 먹는것이 일상이 되었다. 사실, 이런 학살에 자원하듯이 나선것도 그런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따분한, 여지껏 반복되어지는 폭력과 강간의 광경을 응시하던 루덴 하사관은 질린듯 고개를 돌려 평야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무전기를 들어 앞쪽, 교회 첨탑쪽에 위치한 저격수쪽을 부른다.

 

-하암... 1-2지점?

 

반응이 없다. 치직,거리는 잡음 뿐이다. 자고있는건가? 녀석들, 끼워주지 않아서 삐진건가

피식, 웃으면서 다시 불렀다.

 

-....이녀석들 자나? 빠져가지고... 1-2지점?

 

여전히 무응답. 루덴하사관은 살짝 화가 났다.

 

-, 1-2지점! 1-2지점!

 

반응이 없다. 수십, 수백번을 불렀는데도 반응이 없다. 그제서야 루덴 하사관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챈다.

너무 조용했다. 무미건조한 바람밖에 불지 않는다. 마을 회관을 제외하고는 너무 조용했다. 순간, 수십의 전장을 거친 하사관 특유의 감각이 경종을 울린다.

마치, 예전 적의 칼을 맞았을 때- 그때 느꼈던 죽음에 한발 걸친 감각이.

 

슈익. .

 

[살화극(殺花極) 일식(一式)- 민들레꽃]

 

그 순간.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

 

루덴하사관은 멍하니, 자신의 휑한 가슴을 내려다본다.

 

구멍. 심장서부터 배꼽까지 모든 것이 없고 그저휑하니 뚫린 구멍. 이것이 현실인지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으아...으아..

 

푸슈수우우우. 기다렸다는 듯 시뻘건 핏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린다. 무슨 힘이 났는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남자가 있었다. 주먹? 주먹으로 심장에 구멍을, 구멍을 뚫었다는건가?

 

-지옥에나 가라, .

 

루덴하사관은 폭포수같은 핏물을 흘리며 나동그라진다. 그가 마지막에 본 것은, 흉신악살의 표정을 짓고 주먹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남자였다. 시지프는 얼굴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지도 않고 주변을 살핀다.

 

용기병대(龍騎兵隊) 1개 소대가 마을을 급습했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시지프는 무작정 달려왔다. 용서할 수 없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한시라도빨리 지리아 여인들을 구해야 했다. 시지프는 지리아 인들을 학살하는 광경을 수십,수백번이나 보아왔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시지프의 눈에는 핏발이 선다. 뿜어져 나오는 것은 압도적인 살의.

 

동시에 날자루와 손잡이를 결합 1385mm의 거대한 도를 완성시킨다. 인원은 마을 회관의 10명과 드레이크[亞龍]위에 타있는 용기병 5. 일단, 무방비한 마을회관의 10명 먼저 박살낸다.

 

시지프는 결심한 그 즉시 내영계[內靈界]를 발휘, 전력으로 쏘아져 나갔다.

 

슈우욱, 바람을 가르고 한마리 육식짐승처럼 질풍처럼 뛰어나간다. 혼란속의 기습적인 습격은 정확하게 그들의 허점을 친다. 마구간에 있던 녀석들은 얼이 빠져 순간, 눈치채는 것이 늦었다.

 

-적 내습! 급습이다! 빨리, 전투태세를 갖춰!

 

-적은 최고위 공방무사 [지리아의 악마]놈이다! 빨리 피해!

 

먼쪽, 마굿간에서 시지프를 알아차린 용기병들이 재빨리 소총을 꺼내들고 마을 회관쪽 녀석들에게 외친다. 곧바로 쏘아지는 총술[銃術]. 인위적으로 생성된 3000도씨의 네이팜 창이 음속의 속도로 시지프가 달려오는 쪽에 격돌. 터져오르는 녹옥의 불길과 핏물같은 먼지가 피어오른다.

 

그제서야 마을회관 쪽의 용기병들은 정신을 차린다.

 

-,뭐야?!

-,적인가?!

-지리아의 악마다아앗!

 

지리아의 악마라는 소리에 풀죽은 하물을 빼내며 엉거주춤한다. 당황한듯 바짓가랑이를 잡아올리는 ㄷ이들. 아직도 사태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가 대부분이다. 총과 도를 어디에 뒀는지 찾으며 허둥지둥대는 자들. 용기병들은 계속 총술을 쏘아내며 마을회관쪽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하나, 불가능했다. 불길과 검붉은 연기를 뚫고서 시지프는 달려간다.

 

용기병이건, 공방무사건 허점을 노출하고 무기가 없으면 혼란에 빠지는 것은 모두 동일하다. 더군다나 용기병대들은 드레이크를 타지 않는한, 동일 계급의 공방무사보다도 떨어지는 무력.

 

반드시 죽일수있는, 필살(必殺)의 간격. 시지프의 군용도가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범위 내에 들어오는 순간. 바로 그 순간.

 

시지프의 군용도가 소리없이 번쩍였다. 맨앞의 용기병은 머리서부터 가랑이까지 두쪽으로 동강나 나동그라진다. 이제껏 억압자, 지배자의 위치에 있던 용기병들의 위치가 역전- 지리아 여성을 범하고 있던 이들이 군복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도망치려 하고 있다.

 

두번째 녀석은 무예를 배운듯 권식을 휘두르려 하나 번쩍이는 날에 몸과 허리, 하반신- 세동강이 나 흩뿌려진다. 내장조각과 더운 핏물이 와르르, 쏟아진다.

시지프는 망설이지 않는다. 그의 도도 망설이지 않는다. 멈추지 않고 질주한다. 종횡으로 질주하는 날. 용기병(龍騎兵)들은 육편이 되어 땅에 나뒹군다. 피와 똥오줌냄새, 내장조각이 땅에 고깃덩어리처럼 쏟아진다.

 

-으아아아아아아! 오지마!오지마!

 

순식간에 9명의 인간이 고깃덩어리처럼 변했다. 여성들은 몸을 추스리고 도망친다. 마지막 남은 10번째의 용기병은 땅에 주저앉아 주춤주춤뒤로 물러난다. 공포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오줌을 지린다. 어떻게든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보지만, 패닉에 빠져 안전장치를 해제하지도 않은채 방아쇠를 당기고 앉아있다.

 

슈욱! !

 

마구간 쪽에서 쏘아지는 수많은 포탄과 네이팜 창이 마지막 남은 반나체의 남성과 시지프쪽에 쏟아진다.

 

중저음과 광풍이 일차적으로 몰아친다. 그 후 하늘을 뚫을 것처럼 초록 연꽃은 치솟는다. 파편과 철골재가 이리저리 튕겨나가고 터져나간다.

 

-젠장할! 저 괴물은 이딴 걸로는 죽지 않는다! [지리아의 악마]라고! 어쩔 수없어! 전 인원 집결! 무장해라! 종심타격!

 

그들도 이런 걸로는 죽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았다. 상대는 [지리아의 악마]. 도로 전차장갑을 찢어버리고 지금껏 3개중대와 16대의 BMP를 홀로 무찌른 진정한 의미의 악마.

 

엷은 지리아 국경 방어선을 단 혼자서 보완하고 전선을 지키는 악마.

 

드레이크의 안장위에 올라타 랜스를 집어드는 9명의 용기병. 투구의 안면보호대를 내려 얼굴을 가리고 드레이크를 자극한다. 용기병들은 모두 외영계 영식을 쏟아붓는다.

 

[루네 방위군 보급형 창술- 적화(積火)]

 

붉게 달아오르는 3M길이의 랜스 끝. 영소자가 변환, 가속하며 랜스 끝에 모여들며 스며든다. 기분나쁜, 휘파람 비슷한 소음. 입자빔에 가까운 운동에너지와 열에너지가 계속 가속, 영파에 버금가는 위력이 깃든다. 거대한 암석도 꿰뚫고 탄환따위는 쉽게 튕겨낸다. 3m에 이르는, 중전차 마저도 꿰뚫는 창술.

 

랜스 주변의 달궈진 대기. 5명의 용기병들은 드레이크를 몰고 이등변삼각형꼴이 되어 시지프쪽으로 달려나간다.

 

-죽어라아아아! 차지(Charge)!!

 

괴성을 지르고 침을 흘리고, 먼지를 일으키며 드레이크는 내달린다. 시지프와의 거리는 고작 30m. 하지만 시지프는 물러서지 않는다. 오연히 도를 어깨위로 들어올린 채 종심의 맨 앞을 향해 달려간다.

 

마그마처럼 모든것을 꿰뚫을 붉은 랜스과 단순한 도가 맞선다. 시지프의 어깨와 팔뚝 근육이 융기한다. 오로지 적을 베기위해서. 그것뿐이다. 발을 구르고 뛰어오른다.

 

그리고 반바퀴 회전 눈앞의 적을 향해 도를 내려친다. 벼락같이 내려치는 사선. 맨 앞의 용기병은 높은 반응속도로 시지프의 속도에 맞춘다.

 

-죽어라아아!

 

시지프를 향해 찔러가는 랜스. 랜스와 도는 맞부딪쳐 불꽃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나의 점. 힘이 작용하는 하나의 점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시지프의 참격. 일점필살. 도는 랜스를 가르고, 그 뒤에있는 용기사, 드레이크마저 베어버린다!

 

피보라를 일으키며 두동강이 나는 용기병. 관성에 의해 쓸려져간 그대로 두동강난 시체들은 땅을 뒹군다. 시지프는 착지와 동시에 손을 휘두른다- 허공에 던지는 봉수류탄. 이윽고 왼편에 터지는 폭발. 왼편의 드레이크째로 땅을 구른다. 나머지 용기병이 랜스를 찌르려는 순간.

 

그 틈을 비집고 시지프의 날이 폭풍처럼 전장을 지배한다. 참격은 이윽고 두명째를 자르고, 왼발을 축으로 한바퀴 돌아 도를 창처럼 투척시킨다. 도는 포탄처럼 쏟아져 오른편의 드레이크의 대가리에 꽂힌다. 엄청난 반동에 뒤쪽으로 굴러가는 용기병. 드레이크의 목에서는 대하처럼 피가 흐른다. 나머지 두명은 랜스를 든채 앞과 뒤에서 동시에 차징을 하려한다.

 

시지프는 계속 달린다. 말아쥐는 주먹. 쏟아지는 랜스의 일격을 모두 피해, 드레이크 품 안으로 파고든다.

 

[살극화(殺極花) 일식- 민들레꽃]

 

허리에 밀어붙인 왼 주먹이 잔상을 남기며 후폭풍을 일으킨다.

 

()으로 구현된 인간을 초월한, 마치 대전차포같은 일격. 콰앙! 폭음. 거대한 전차도 뚫어버리는 영의 무공. 단순한 주먹질에 용기병의 허리 윗부분이 그대로 사라진다. 주인없는 드레이크는 용기병의 핏물과 내장조각세례를 받으며 제풀에 지쳐 넘어진다. 뒤이어 연이은 랜스차지를 팔꿈치로 비껴쳐낸다!

 

-,! 말도안되에에에!

 

안면 보호대를 올리며 용기병은 경악에 쌓여 소리지른다. 거대한 암석마저도 파괴시키는 랜스차지를 단순히  팔꿈치로 비껴쳐냈다니!

 

시지프는 틈을 주지 않는다. 그자세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턴. 팔 내부에 흐르는 영()을 압축, 또 압축, 한계이상으로 압축시킨 영을 통해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초음속으로 진동시켜 무수히 많은 권영을 그린다- 한번의 공격이자 수많은 포탄이 동시에 용기병에게 꽂힌다!

 

[살극화(殺極花) 일식- 민들레꽃]

 

쿵쿵쿵쿵쿵! 포탄이 착탄하는 것과같은 소음과 함께 드레이크와 용기병의 전신에 뚫리는 수많은 구멍. 그르륵,하는 피끓는 소리와 함께 루네 공화국의 명성을 자랑하는 일개 용기병 소대가 무너졌다.

 

 

잠시후 픽업트럭 2대와 BMP차량이 뿌연 먼지를 내며 마을에 도착했다. 지리아 해방군이 트럭과 BMP차량에서 하차해 마을을 둘러본다. 해방군은 마을 외곽에 내려 천천히 걸었다. 마을 곳곳은 시체로 가득했다.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것은 폭력과 살해의 현장. 마을 중앙으로 오면서 해방군의 입은 저절로 다물어졌다. 끔찍한 광경. 학살의 광경. 똥오줌냄새와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채 죽어버린 수많은 사람들. 속으로 분노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시지프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마을 회관 가운데에서 어디서 구해왔는지 커다란 솥에 전복죽을 만들어서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아 일일이 나눠주고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자아이들과 여성들뿐. 

 

아이들은 하루 이틀 밥을 먹지 못해 배고팠는지 죽이 가득담긴 그릇을 빨리 비우고 한접시라고 더 먹으려고 칭얼댄다. 시지프는 어쩔줄 모르며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다. 해방군들은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 시지프는 여전히 변함없는, 용병과는 어울리지 않는 용병이었다. 아이와 여성들을 위해 전복죽을 만드는 공방무사가 도대체 어디있는가.

 

모두가 지리아에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대부분 공방무사들은 전쟁과 보복이 무서워 지하던전으로 숨어버렸다. 학살이 일어나건, 지리아 여성이 팔려나가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이가 처음으로 나섰다.

 

슬레브로시()에서 국소적인 학살을 주도하던 마피아 집단을 쓸어버렸다. 루네인 민병대를 몰살시키고- 수많은 민족주의자와 근본주의자들과 맞섰다. 그리고 지리아인을 구하려 애썼다. 병원을 차리고 무료 급식소를 차렸다. '일시적이지만' 자신의 돈을 써가면서 까지 지리아인들을 먹이고, 재웠다.

 

수많은 지리아인들에게 돈을 쥐어주고- 국경 밖으로 도망치는 것을 도왔다. 그 돈은 감히 추정할수 없을 정도로 천문학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국경근처에서 용병으로서 싸우고 있었다.

 

어떤이는 미쳤다고 하고, 어떤이는 오지랖 넓은 푼수라고 매도했다. 위선자, 멍청이. 아무도 그를 칭찬하지 않았고 수많은 비난과 매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이 일하고 있었다.

 

아무도 신경쓰지않는, 지리아인들을 신경쓰는 단 한명의 공방무사(工房武士).

조금이라도 현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나서는 단 한명의 공방무사(工房武士).

그리고 이런, 더러운 전쟁에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나서는 인간.

그것이 시지프 에오린테스였다.

 

병사들은 시지프를 돕기위해 총을 어깨에 걸쳐메고는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로..수고하셧어요.

-이제 가서 쉬십시오. 나머진 저희가 알아서 할테니까.

-남은 죽은 먹어도 되죠? 저희도 밥은 먹고 오지 않아서.

 

시지프는 마을회관 맞은편 건물벽에 기대어 주저앉아 있었다.

 

전선을 지키는 용장, 니만 대위는 시지프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고개를 숙이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했다. 용병이고 계급이고를 떠난 순수한 감사의 인사. 여기서 시지프에게 감사하지 않는 인간은 없었다. 적어도 지리하 해방군 출신중에 시지프에게 직,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소수라고 해도 용기병 5마리만 모여도 보병1개대대를 끝장내는것은 금방이었다. 수준급의 총술[銃術]과 경량의 고경도의 갑주는 보병의 무기인 탄환마저도 튕겨낸다. 내전 내내 용기병대는 지리아 해방군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존재였었다. 그런 존재를 홀로, 보검도아닌 군에서 지금된 군용 철도(鐵刀)로서 모두 베고 또 베었다.

 

그렇기에 국경 근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제3포병여단 직할부대인 용기병대(龍騎兵隊)과의 지리멸렬한 싸움도 이제는 거의 끝이였다.

 

용병이였지만, 시지프가 없었다면 지리아인들은 더많이 죽었을 것이다.

시지프의 옷은 자신과 타인의 피로 범벅이였다. () 괴물용 방호코트는 여기저기 베어졌고 옆구리와 복사뼈는 이제 막 치유되어 딱지가 솟아오르고 있엇다. 하지만 시지프에게 자신의 상처따위는 상관없었다. 또 늘 그렇듯 피범벅이 된 얼굴로, 슬픈 표정을 짓는다.

 

시지프의 시선 끝에는 죽은 시체를 붙들고 오열하는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구하지 못한 사람들. 니만 대위는 입술을 깨물었다. 해방군 군인들은 여기다가 두면 썩는다고 달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은 죽어버린 아버지나 동생곁에서 떠나지 않으려 발악했다. 결국 아이들을 억지로 떼놓고 시체를 마을 회관 안으로 던져넣는다. 사람들을 묻어줄 시간따위는 없었기에 이럴 수밖에 없었다.

 

-시지프님. 이건 전쟁입니다. 그렇게- 자기자신을 학대하지 않아도 되요. 그렇게 강박증환자처럼 할 일은 없습니다. 이건 전쟁이라구요.

 

-그렇죠, 전쟁이죠.

 

시지프는 섧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일어섰다. 니만대위는 한숨을 쉬었다. 마을회관에 불길이 지펴졌다.

 

시지프는 그저 멍하니 타오르는 마을회관을,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80에 이르는 시체들을 일일이 땅에 묻을 시간따윈 없었다. 해방군들은 이제는 이런 일이 익숙해서 인지 시체를 회관 안쪽에 던져넣는다.

 

나머지 지리아 해방군들은 절망에 울부짖는 여자아이들을 말리려 애를 썼다. 심지어 살아남은 이들 중 일부는 시체가 타오르는 불길속으로 뛰어들려는 사람도 있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터져나오는 절망의 울음은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앙

 

옷이없어 크기가 맞지 않는 루네연방군의 군복을 입은 여자아이들. 이제 갓 13,14살 되었을까. 얼굴에 묻은 검댕과 땟물은 눈물로 번진다. 시지프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고있다. 옷자락을 계속 잡아당기며 아버지를, 동생을 살려내라고 목놓아 울고있었다.

 

해방군은 시지프의 눈치를 보다가 그에게 달라붙은 아이들을 떼어내려 했으나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젓는다.

 

그는 울고 있는 아이를 업었다.

 

항상 이럴때면 시지프는 자괴감과 절망에 차오른다. 강함은 소용없었다. 구해도 소용없다. 여전히 끊임없이 사람들은 죽어갔다. 시지프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는 것은 안다. 그래도 그는 할 수있는 것을 해야한다.

울고있는 아이를 안아올려 머리를 쓰다듬었다.

 

절망해보았자 소용없다. 이것은 전쟁이다. 살아남은 자는, 여전히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은 여기에 온것이니까.

 

여자아이의 허벅지에는 음부에서 흘러내린 핏방울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용기병 새끼들이 여자아이들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성기를 우악스럽게 집어넣었기에 상처는 깊게 벌어져 있었다. 아이의 자궁과 음부는 엉망진창이 되어- 자칫하면 여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을 수조차...

 

얼마나 아플까. 고통으로 소리질러도 괜찮을텐데도 아이는 오로지 죽은 이들을 살려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시지프는 이를 악물었다. 우는 아이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치유식을 생성, 주사한다. 치유식은 순식간에 아이의 전신을 내달려 상처난 자궁과 신체 곳곳의 멍을 치료한다. 그리고 아이 모르게 안정제를 주사한다. 안정제에 의해 점차 울다가 잠이드는 아이.

 

니만 대위는 옆에서 있다가 아이를 받아든다. 시지프의 어깨에는 아이의 눈물과 침으로 범벅되어 젖어있었지만, 시지프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깔끔하고도 효율적인 치유식에 니만 대위는 깜짝 놀랐다. 저런 능력은 보통의 공방무사[工房武士]에게는 불가능한 실력이였다.

 

시지프는 다른 아이들도, 치유식을 주사시켜 재웠다. 해방군 군인들은 씁스레한 표정으로 시지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업고는 운송 차량으로 옮긴다. 움직일수 있는 여성들은 픽업차량으로 올라탄다.

 

-잠시 걸을까요.

 

시지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어오르는 씨뻘건 불길과 불어오는 먼지바람 속에서, 시지프와 니만은 나란히 걸어간다. 할아버지대부터 대대로 지리아 독립운동에 자원했었고, 내전에서도 가장 치열한 국경근처에 배속된 니만대위. 역전의 용장이자, 시대의 용장답게 어느정도 이상(理想)에 취해있는 혁명가이기도 했다. 나라를 바꾸기위해서 총을 들고, 민중을 살리기 위해서 공부했던 순수했던 이.

 

하지만 이 모래먼지가 휘몰아치는 전장의 수년간 계속된 소모전은 그 역전의 용장마저도 아교처럼 끈적끈적한 절망만을 선사했다.

 

베르니아를 등에 업은 루네공화국은 집요했다. 국경선 전체에 산개한 용기병대와 소규모 특수부대는 철저하게 학살을 반복했다. 지리아군의 열악한 전력으로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어째서 그토록 착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들이 능욕당하고 죽어야 하는 겁니까.

 

그녀는 대답없는 물음을 굳이, 던진다.

 

-반대로, 어째서 이 무자비한 세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쓰레기들은 살아가는 겁니까

 

시지프는 답해줄수 없었다. 무자비한 세계. 이 세계에 진리따위는 없다. 그녀는 대답을 못하고 시선을 내리까는 시지프를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섧게 웃었다.

 

-…시지프님이 그런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지프가 마음쓰지 않도록, 일부러 화제를 돌린다.

 

-현재, 지리아는 내부적으로도 엉망진창입니다. 친 거신황국을 위시한 티볼트 상원의원과 서방10국동맹을 등에 업은 페렌 상원의원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요. 그들한테는 제 나라의 독립따위보다 자신의 정치생명이 더 중요한가 봅니다.

 

시지프는 지친 그녀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간신히 무게를 지탱하며 서있는 그녀는 마치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죽음과 마주보며 쌓이고 쌓여온 어쩔 도리가 없는 탁한 피로함과 우울. 그리고 답이 없는 지리아의 정치상황.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정신을 조금씩 갉아들어간다.

 

-지리아 해방군은 도대체 무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리아 노무부대(勞務部隊)가 여전히 버젓이 모습을 드러내는 판에..

 

그녀는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돌담에 주저앉는다. 목소리에서 더 이상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피어오르는 먼지 속. 그녀는 조그맣게 콜록 거린다.

 

-오늘 중으로 또다시 정전협정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지리아 자치의회 측과 루네 공화국 측에서 말입니다. 언제 깨질까요.. 오늘 정전협정을 맺은 것이 내일이 되어 깨지는 이 미친 곳의 상황을 아는 자치의회 놈들은 있을까요.

 

그녀의 눈은 국경반대편 너머 지리아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라의 앞일을 생각하는 혁명가의 올곧은 눈빛따윈 없었다. 그저 지치고 지쳐, 신조차도 구제하지 못할 귀신불 같은 음울한 증오뿐.

 

자신들을 내몬 루네공화국, 그리고 어정쩡한 대처를 하고 있는 지리아 해방군 모두에게. 시지프는 조용히 이야기했다.

 

-…지리아주에 대한 분할 독립안에 관한 비밀 회담이 다음 주중내로 열린다고 합니다.

 

-. 정보채널을 통해 알고있었습니다. 국제조정기구에서 베르니아는 표결반대로 아예 참가하지 않고, 거신황국과 서방10국만 참여한다고. 그리고 루네공화국측이 참여한다고 하더군요.

 

그녀의 손가락은 살을 파고들고 있었다. 아무리 젊은 이들이 목숨을 희생하고 혁명가들이 독립을 외쳐도 결국 지리아의 독립은 강대국에 의해 결정된다는 씁쓸함이 그녀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지리아측이 참여할 의자따윈 없겠죠.

 

시지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회담이다. 루네공화국- 아레만 대통령은 참여할 지언정, 그곳에 지리아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결국 그런것이다.

 

-하아

 

결국 어깨에서 힘을빼고, 피곤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다.

 

-세상은 여기서 이런 학살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지리아인들이 지하에서 착취당하고 아사해가는데도 저 가까이만해도 루네공화국, 그리고 거신황국의 모든 이들은 그저 티비 너머로 우리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보고 있을뿐.

 

그녀의 눈빛속, 음울한 불길은 조금씩 거세어진다.

 

-다른 나라 시민들에게 지리아의 뉴스란, 그저 순간의 촌극, 순간에 사유에 지나지 않아요. 베르니아국은 영향력을 위해서라도 루네공화국을 지지하고 있고, 서방10국과 거신황국은 그저 싸구려 평화협정만을 제안하겠죠. 그리고 서로 지리아의 석유자원과 지하자원을 착취하기위해 난리를 칠테고요.

 

발에 걸리는 돌맹이를 군화로 아무렇게나 차올린다.

 

-국경에서는 계속해서 학살과 보복이 자행되는데, 지리아주 동쪽에는 아직도 루네인들이 입만 살아 지랄 발광을 하고있습니다.

 

시지프는 알고있었다.

 

얼마전, 루네 국민투표에서는 공화국인원의 97%가 지리아 주에 대한 국제 개입을 반대한다는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다.

 

제기랄, 하고 혀를 찬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지, 전 이곳에서 매번 고민 했습니다. 한시도 고민을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동안 쌓여온 검은 분노와 살의가 정제되지 못한채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다. 시지프는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어쩔수없는 표정으로 그저 제대로 들어줄 뿐이다. 시지프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니만대위는 천천히 입을 달짝인다

 

-아무것도요.

 

니만의 목소리는 점점더 잦아들어가며 시선을 지평선 쪽으로 향한다.

 

저 멀리, 지평선 끝에서 군용 지프 차량 한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시지프는 그녀의 옆얼굴에서,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본 것 같기도 했지만- 원래대로 고개돌린 그녀의 얼굴은 역전의 용장의 그것.

 

그녀는 시지프를 부른 본래의 이유를 말한다.

 

-지리아 해방군 수뇌부에서 긴급 호출입니다. 조만간 회담을 막기위해서 테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상황은 거의 확정됬다고 합니다. 슬레브로시().

 

슬레브로시. 지리아주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해있는 지역이자 지하던전 입구가 위치해있는 곳.

그리고 아직도, 수십만의 루네인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

 

시지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에 묻은 피기름을 털어내며 날과 자루를 분리시켜 등에 건다. 니만대위는 미안한 표정이었다. 그가 더 뭐라 말하기도 전에 군용지프 한대가 흙먼지를 피워오르며 멈춰선다.

 

-해방군 측에서는 시지프씨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아니, 이건 거의 강제겠죠. 정치적 줄타기를 하고 자빠져있는 지리아 의원님들 께서도 테러문제는 시급하니까.

 

신랄한 독설이 먼지바람에 묻혀 울려퍼진다.

 

-극단적 분리주의자 중 하나인 [지리아의 유산]이라고 합니다.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해방군 측에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금방 막아야 할터이니.

 

이야기는 이미 끝났는지, 조수석 문을 열고 해방군 병사 하나가 거수경례를 붙인다. 니만대위는 고개를 끄덕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그녀는 학을 뗀듯, 정말로 질린 듯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오늘따라 그 특유의 쳐진 눈꼬리가 더욱 더 우울해보였다.

 

-지리아 해방군 측에서는 골칫덩이인 [지리아의 유산]. 자기네들이 직접 손을 쓸수는 없고, 그렇다고 상황을 좌시할 수도 없어서- 우리 오지랖넓디 넓은 시지프님에게 부탁한 것일 겁니다. 강대국의 유명인사들이 모이는 회담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자포자기한 목소리. 피식, 하고 웃음을 흘린다.

 

-제가 이렇게 말해도, 시지프님은 가시겠지요?

 

-…

 

시지프는 그저 사람좋은 미소만 지어줄 수 밖에 없었다. 이것만이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그 나름대로의 미미한, 위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시지프님은 승낙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시지프는 답하지 않았다. 니만 대위는 떨리는 한팔을 다른팔로 겨우 붙잡고 있었다.

 

-제가 말하지 않아셔도 이미 아시겠지만.. 시지프씨, 당신이 가려는 곳은 복마전입니다. 온갖 귀계와 음모가 이미 덫을 놓고 있을겁니다. 지리아 해방군이... [용병]인 시지프씨마저 쓸 정도라면.

 

니만대위에게는 벌써부터 슬레브로에 펼쳐질 수라도가 언뜻언뜻 보이는 것만같았다. 시지프를 버릴 장기말로 사용하려는 윗선 놈들과 명령에 가까운 부탁을 하는 아라소령, 둘 모두 무책임했다. 그리고 결국 보낼 수밖에 없는 자신도 또한.

 

드러난 것은 암살의 극히 일부분이다. 앞으로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라 소령이 오히려 배후를 칠수도, 테러가 어떤식으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 수많은 가능성을 검토하는데 해방군 정보부는 온 신경을 쏟는다.

 

그렇기에 지리아군은 [용병]인 그를 극비에 끼워넣을 정도로 시간과 인력이 부족했다. 더군다나 지리아 해방군에는 시지프만한 고위 공방무사가 없었다.

 

아라소령과 같은 지리아인 특유의 갈색 머릿결이 휘날린다. 니만대위는 머리칼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낸다.

 

-그래도 가야죠. 아무리 그래도, 테러를 막아야 하니까요.

 

니만 대위는 섪디 섪게 미소지었다.

 

-보내기 싫은데요. 정말로.

 

...거기 가면, 이제는 만나지 못할까봐. 니만대위는 뒷말을 삼킨다. 그럴 수 없었다. 지리아주를 위해서라도 시지프는 가야만했다.

 

-걱정마세요.

 

시지프도 따라서 웃는다.

 

-살아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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