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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59 Mar 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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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워너비
협업 참여 동의
"헛소리 말고, 어서 내 팔 잡아. 이 미친여자야!"


초대면인 여자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사실이니 괜찮다. 괜찮을거다.

그래, 35층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는 걸 내 눈에 띄여서, 지금 내 팔에 매달려있는 여자라면 그래도 싸다. 미친여자를 내려다보면서 다시 한번 쏴준다. "팔 잡으라고!" 팔이 찢어질 것 같다. 여자의 손을 움켜쥔 손에 감각같은건 진작에 없어졌다. 어떻게 움켜쥐고 있는걸까?

티비에 곧잘 나오는 '위기의 순간에 발휘되는 잠재된 괴력'같은 거 일리가 없다. 팔이 찢어질 것 같고, 손에 감각도 없지만 나는 전혀 위기감 같은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까. 짜증이라면 몰라도. 내 팔에 매달린 여자가 하는 쉰소리를 욕을 해줄수도 있을 정도다. "뭐, 그냥 죽게해달라고? 이 미친여자야!"

이 상태로 계속 미친여자의 미친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손을 놔버릴 것 같다. 끌어올리자. 감각이 없는 손아귀에 어떻게든 힘을 준다. 힘을 준 덕에 팔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더 리얼해졌지만 못견딜 수준은 아니다. 좋아, 간다. 조바심내지 않고 천천히 뒷걸음질 친다. 한 발 딛고, 확인하듯이 두어번 발바닥을 문지르고 반대발을 뒤로 한걸음. 

끄으으응. 역시 무겁다. 죽기전에 다이어트 좀 하지! 천천히 그렇지만 멈추지 않고 끌어올린다. 여자의 상반신까지 끌어올리자 자연스럽게 가속도가 붙는다. 그런데 언제까지 끌어올려야 되는거야? 미친주제에 키도 더럽게 크네!



"으아앗"


여자의 다리가 옥상 난간위로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제 힘을 못이겨 뒤로 구르듯이 넘어졌다. 젠장, 뒤통수 안깨졌나 몰라.

뒤통수를 매만질 새도 없이 여자를 눈으로 쫒았다. 다시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답이 없다. 솔직히 내가 밀어주고 싶은 기분이지만.

다행히도 여자는 얼이 빠진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내가 짓고 싶은 표정인데.



"왜?"


"뭐가."



"왜 붙잡은거야? 당신도 죽을 뻔했어."


"그래, 더럽게 무겁더라. 진짜로 같이 딸려나갈 뻔했어."


얼씨구, 죽겠다고 그 난리를 쳐놓곤 여자라고 째려보긴. 팔이 본격적으로 욱씬거린다. 염병할, 몇 군대 끊어진거 같은데. 턱도, 무릎도 아프다. 안아픈곳이 없다. 젠장, 만신창이로군.



"내가 죽겠다고 하는데 왜 방해하는거야. 상관없잖아."


"내가 살리겠다는데 왜 시비야. 상관없잖아."


"상관있어. 난 더 살기 싫으니까."

"나도 상관있어. 그 꼴을 보면 내일 내장탕을 못먹을테니까."



사실은 원래 내장탕 같은거 못먹지만. 35층에서 추락한 시체를 봤다간, 내장탕이 아니라 푸아그라를 가져다줘도 못먹을 거다. 내 악몽의 리얼리티가 더 해지는 건 덤일테고.


"째려봐서 뭘 어쩔건데? 너말곤 전부 나한테 감사할 껄. 보험아줌마, 시체치울 공직자, 부검담당자, 지나가던 임산부, 이 건물주인. 와, 이렇게 많네."

"......"


입을 앙다문채 째려보는 모양새가 제법 귀엽게 봐줄만 하다. 아무리 그래도 미친여자는 사양이다. 아니, 사람구하는데 변명거리도 준비해야돼? 너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러이러하게 멋진 삶을 계속 살아야한다. 같은거? 미안하지만 그런건 내가 더 듣고 싶은데.


"세상이 어떻게 멋지느니 아직 살만하다느니 같은 말 같은걸 기대했겠지. 미안하지만 이건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야. 그리고 그런 얘길 듣고 싶은건 오히려 내 쪽이야."


나름대로 폼날 줄 알았는데 아니로군. 으악 내 손발! 그냥 말하지말고 멋지게 뒤돌아서 퇴장할 걸, 다시 뛰어 내릴것 같지도 않은데.


"...말투."


"?"


"너 몇 살인데 반말부터 찍찍해대는거야. 난 스물두살인데. 넌 민증 나오기나 했니?"


"스...스무살인데."


어? 이거 어째......


"스무살? 보기엔 그냥 고딩같은데, 민증 줘봐."



면사무소에서 발급받고 나서 써본적이 없는 민증을 꺼내서 건내준다. 잉크가 손에 묻지 않을까. 이래도 되는건가? 볼것도 없는 민증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내게 내민다. 저 표정은 또 뭐야? 당신 방금전에 자살시도 하던 사람이라고, 나는 그걸 뜯어말리던 사람이고. 제발 그건 잊지말아줬으면 좋겠다. 입술에 손을 모으고 중얼거리는 행동같은 건 하지말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헷갈리려고 하니까.


"...다행이다. 별로 나이차이는 안나네."

"뭐?"

뭔가 이상한 소릴 들은거 같은데.


"아무것도 아냐. 그리고 너 말투 안고칠거야? 한 살도 아니고 두 살 차인데."


맙소사, 믿지는 않지만 하느님. 어찌 제게 이런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믿지도 않고 욕도 많이하긴 했지만, 당신 신자들 많이 구했으니까 그걸로 퉁칠수 있잖아요. 제가 입이 좀 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죠.


"네네, 알겠습니다. 그럼 열심히 여생을 사세요. 어려운 사람한테 봉사를 하든, 어려운 사람 동냥그릇을 걷어차든 마음대로 하면서 열심히 사시..."

"죽으려던 사람 멋대로 살려놓고 어딜가."


그럼 '우후후 준 모델급 스물두살 여대생 겟! 하나님 캄쏴합니다!'하고 집으로 데려가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하는 걸까. 싫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다. 그냥 집으로 가서 욕조에 푹 잠긴다음에 늘어지게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니까 집으로 귀환하려는 생명의 은인 단벌옷 잡고 당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늘어난다고.


"놔, 이거 단벌옷이야. 싸구려라서 늘어나면 줄어들지도 않는다고."


"앉아. 최소한 책임지려는 태도 정도는 보이라고, 덕분에 뛰어내릴 마음도 없어졌으니까."

"뭘 책임지라는건데. 내가 무슨 그 쪽이랑 하룻밤을 보내길 했어, 아니면 고이 간직해온 첫키스를 뺏기를 했어? 이거 완전히 물에서 건져놨더니 봇짐 내놓으라는 거로구만."





노려보는 눈매가 장난이 아니다. 보나마나 자기 성깔에 못이겨서 죽겠다고 한거구만. 진짜 재수옴 붙었네. 오냐, 소원대로 해주마. 얼마나 쓰레기 같은 놈한테 구해졌는지 똑똑히 알려주겠어. 맞은편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앉은키도 나랑 비슷하네. 젠장.


"그래, 말해봐. 그 잘난 책임이라는거 들어보기나 하자. 소방관들은 사람구할때마다 살떨려서 어떻게 구한데."

"일단, 부축해줘."


"뭐?"

"부축말이야. 부축. 발목도 좀 나간거 같고, 다리도 말을 안들어. 기는 것도 제대로 못하겠어. 뛰어내려서 죽는게 아니라 옥상위에서 객사할 판이야."


그래, 벽면에 좀 세게 부딪히긴 했지. 진짜로 재수 옴 붙었구만. 휴대폰을 들고나와서 망정이지.


"휴대폰 없어? 119 불러줄테니까. 아저씨들 올때까지 얌전히 있어."



119나 112 그것도 아니면 배달음식 부를때나 쓰는 휴대폰을 어색하게 조작한다. 119가 단축키 1번이고 112가 2번이라니 내 신세야. 익숙한 수신음이 울린다. 그리고 끊겼다. 뺏겼다 내 휴대폰.


"안 불러도 돼. 아니, 부르지마. 부르면 굴러서라도 뛰어내릴거야."

"뭐?"


이 여자가 부딪힐때 머리도 부딪혔나? 왜 119를 부르지 말라는건데? 꼼짝도 못하겠다면서 더럽게 재빠르네. 혹시 원래 직업이 소매치기였나? 돌려달라는 의미로 손을 내밀자 뒤로 물러난다. 나랑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부축해달라고 했잖아. 왜 119를 부르는건데."


그리곤 나와 3년 넘게 동거동락해온 휴대전화를 휴지통에 휴지 던져넣듯이 휙하고 집어던져 버렸다. 이 미친여자가? 자기가 못뛰어내렸다고 남의 휴대전화를 집어던지냐!


"이 미친여자야! 남의 걸 집어던지는건데!"


"묻지도 않고 집어던진건 미안해. 그런데 저거 제대로 작동하긴 하는거야? 대체 몇년식이야."


그래, 내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있고 있었군. 이 여잔 미쳤어.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폰은 내가 저거보다 몇배로 괜찮은 걸로 사줄테니까. 일단은 부축 좀 해줘."

"그래, 그건 제쳐놓고, 왜 119는 안되는건데? 병원에 가야 할것 아냐. 왜 옥상에서 실려가면 대답할 거리가 궁할것 같아서 그래? 그래 그런거라면 병원까지는 데려다 주지."


"아니, 119도, 병원도 안가."


"뭐?"


"안갈거라고. 병원. 갈 필요도 없고, 갈 생각도 없어."


이건 대체 무슨 유형의 미친소리지? 프로이트 선생, 이게 대체 무슨 미친소리란 말이요.


"그래, 그럼 어디가려고? 집?"


"집같은 거 없어. 어제 팔아버렸거든. 돈도 전부 기증해버렸고. 고아라서 친척같은 것도 없어. 사망보험금이 나올 예정이긴 했지만, 이젠 그것도 없네."


"준비성하나는 철저하구만. 그래서, 갈곳도 돈도 없는 우리 자살지원자께선 어디로 가길 원하시는지요?"


"뻔하잖아.네 집."


"뭐?"


뭐? 잠깐만, 어떻게 하면 그딴 결론이 나오는건데! 돈도 없고, 의지할 친척도 없으니 네가 책임져야겠다. 뭐 그런거냐!


"구해도 이런걸 구하냐..."

다시 보니 처량하기 그지 없는 구색이다. 입고 있던 옷은 먼지투성이인건 말할 것도 없고, 와이셔츠는 단추가 다 터져서 꼴이 말이 아니다. 스타킹도 올이 군대군대 나가있고, 퉁퉁 부은 발은 맨발이다. 진짜로 누가보면 폭행당한 여자랑 폭행남으로 알겠군.

잘 생각해보니 저 여자입장에서는 별 수 없는건가. 그래, 갈곳도 없고, 돈도 없으니까....가 아니지. 정신차려 이자식아! 까딱 잘못하면 너 이 나이에 부양가족이 생길 판이라고!


"요컨데 돈이랑 지낼 곳이 필요하다 이거지? 그거라면 해결해 줄 수 있어. 돈도 당분간 지낼만큼 정도는..."


"필요없어."


뭐? 내가 잘못들은건가? 아직 말하진 않았지만, 나 적금통장하나 깰 생각이었는데? 한 일년쯤 먹고 살수 있다고? 여자애가 한달에 쓰는 돈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행동거지를 보니까 이번이 처음같지는 않은데 사람 구할때마다 이런식으로 적선하고 다닌거야? 너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부잣집 도련님?"


아니, 구명해줬더니 책임지라고 이렇게 열렬하게 달려드는 건 댁이 처음인데. 119부르지 말라고 한것도, 내 폰을 번지점프 시킨것도. 그리고 다짜고짜 '네 집으로 데려가줘'라고 하는 사람이 그런 말하기 안부끄러운가?


"부잣집 도련님은 아니지만, 당장 굶어죽을 판인 사람 도와줄 정도는 있어."


"필요없어."


"그럼 대체 왜 내 집에 가겠다는건데?"

"갈곳이 없으니까."


미치겠구만! 3차원에 대해서 2차원인에게 설명해주는 기분이 이런걸까. 아니, 2차원과 3차원의 싸움인건가? 어쨌든 이 여자를 때리고 싶다는건 잘 알겠어!


"요구사항이 뭔지 잘모르겠으니까. 다시 한번 말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름다우신 누님."


"어째 놀리는거 같네. 요구사항은 하나야. 네 집까지 날 부축해서 데리고 가줘."

"욕 좀 했다고, 너무 하잖아. 이 속좁은 놈 같으니!"


하늘에 대고 부르짖는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미친여자는 무시한다. 진짜로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저런식으로 대놓고 직구를 던질 줄이야.


"왜 그렇게 하고 싶으신지 물어봐도 될까요. 지적인 누님."


"이제 대놓고 놀리네. 말했잖아. 책임이라고."


헌법소원이라도 해볼까. 자살지원자의 자살할 권리와 구원자의 책임소재. 와,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되게 거창해보이네.


"그 책임이 뭔지는 몰라도 그거면 되는겁니까? 그, 내 집으로 누님을 데리고 가면된다 이겁니까?"

"응."

"왜 그렇게 하고 싶은건지 물어도 될까요. 상식인 누님."

"날 살린 책임이야. 병원이나 시설에 가기 싫거든. 이제 나이가 차서 받아줄 곳도 없겠지만."

"왜 가기 싫은건지 물어도 될까요."

"거기 가기 싫어서 뛰어내린거니까."

"왜 거기가 싫으신건지 물어도 될까요."

"......"





"누님?"

"...거긴 추워. 외로워. 사람들이 얼음으로 만들어진 것 같아."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은 아주 못난놈이지만 독한 놈은 못되는 모양이에요. 제대로 된 말은 몇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벌써 덜덜 떨고 있는 미친여자가 불쌍해지려고 해요. 그리고 좀 웃긴 말이지만 이 미친여자가 저랑 동류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자때문에 신세 망치는 남자역할이 제게도 주워지긴 하는군요.

점퍼를 벗어서 대충 둘러주고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여자에게 등을 내민다.


"업혀요."

"이건 왜?"

"그럼 다 큰 여자가 반쯤 벗은걸 구경합니까. 사실 그거 버리려고 한거니까 대충 두르고 업혀요."

"너도 그 때 탕하고 부딪혔잖아. 팔도 그렇고..."


"아, 거되게 따지시네. 소원대로 병원도 안가고, 내 집으로 갈테니까. 얼른 업히기나해요. 얼른가서 찜질해야 할거 아닙니까."



그래, 이건 다 저 발목탓이야. 전체면적이 두 배는 뻥튀기 된거 같은 저 발때문에 업는거라구....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들은 머저리에요.



"그치만 너도..."

"아 얼른!"


뒤에서 살짝 끌어당긴다 싶더니 사람같지 않은 무게감이 등에 얹혔다. 뭐야, 뭐 이렇게 가벼워? 별 무리없이 벌떡 일어선다. 좀 놀랐는지 목에 감은 두 팔이 힘이 가해진다. 그러고보니 팔은 괜찮으려나?


"일단 병원에 갑시다."

"뭐? 너 말이 다르잖아!"

"던져놓고 도망안갈테니까, 걱정마세요. 나도 팔 깁스정도는 해야할 것 같고."


앓는 시늉을 해보이자 군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효과 괜찮네. 충격에 주의해가면서 천천히 걷는다. 기운차게 소리를 꽥꽥 질러대고 있지만 발만봐도 거의 죽을 맛일거다. 의사선생한테 대체 어떻게 다쳤다고 해야하지.


"연이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이름인가?

"예?"

"내 이름. 하 연. 하연이야."


어울리는 예쁜 이름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여본다. 미친것만 빼면 정말로 잘 어울리는 이름같다. 그건 그렇고 엘레베이터 더럽게 느리네.



"봤겠지만 전 연후에요. 이연후."


엉망진창으로 시작한 관계지만 계속 그럴수도 없으니, 별로 좋아하진 않는 이름을 소리내어 말한다. 이연후. 진짜 별로다.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다. 올라타는 중간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은것 같다.

"고마워, 연후야."




"별 말씀을."




제목을 못정해서 그냥 마음대로 써갈긴 제목입니다.

뭔가 말하려는게 있었던 것 같은데 흔한 주인공 플래그가 되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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