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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ol[어느 광대 이야기] 프롤로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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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07 Mar 2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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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주댕
협업 참여 동의
그는 웃고 있었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여길 정도로. 
자기 외엔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만이 이 공간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는 주저앉았다. 웃음 뒤에 느껴지는 정적이 그렇게도 싫었나 보다. 차가운 바닥, 시계소리, 휑한 벽들만이 자신을 반겨주는 지금이 싫은가보다.
 
 
"젠장!"
나는 내 앞에 있던 펜과 종이를 방바닥으로 던져버렸다. 방금까지 고민하고 고민해가면서 적어가던 글도 함께 내동댕이쳤다. 좋게 말해야 '엔티크하다'고 할 수 있는 내 목재 책상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시계바늘 소리만이 내가 파괴한 장소의 여백을 메꿀 뿐이었다.
 
"왜! 안써지는 거야! 왜!"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마구 휘저었다. 최악의 컨디션인 것 같다.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일어나 등 뒤에 있던 거울을 바라보았다.
 
꼴보기 싫다.
 
내 모습은 누가봐도 시골 어귀에 한명 있을까 말까한 반 미친 할아버지였다. 드문드문 탈모가 진행되는 백발머리에 얼굴엔 예전에 없던 사마귀까지 생겼다. 피부도 보면 누가 30대라고 여길 정도로 팍 삭아있었다. 젊게 잡아도 50대 중반급인 얼굴인 셈이다. 젠장할, 내가 봐도 얼굴이 거지같은데 다른 사람 눈엔 오죽할까? 오늘따라 방구석에 박혀 생각의 바다로 들어가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평소에 밖을 자주 나돌아다니는 외향적인 인간은 아니다. 그저 평소보다 집에 더욱 있고 싶고 몸도 예전같이 않아 지팡이에 어느정도 의존해야 하는 게 싫을 뿐이다. 오늘은 집에 쟁겨놓은 스파라티로 끼니를 때워야겠다. 적당히 물에 끓여 채에 거르고 양념만 조금 얹으면 훌륭한 끼니인 스파라티는 집에 자주 박혀있는 내가 자주 먹는 음식이다.
 
"젠장..."
 
하지만 며칠 전 비가 와서 장터가 열리지 않아 여분의 스파라티를 구매하지 않은 걸 까먹고 있었다. 거의 삼시 세끼를 스파라티로 때우는 나에겐 스파라티 여분이 집에 없다는 건 장을 보러 가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오늘 기분 진짜 아닌데, 한두끼 정돈 굶을까?............그냥 장보러 가야겠다. 나가기 싫다고해서 식사로 때울만한게 없는 가운데 굶을 순 없기 때문이다. 
 
어쩔수가 없지. 나는 밖을 나서기 전 예전처럼 이것저것 챙기지 않고 필요한 것(내 애마인 지팡이와 로브, 보자기)만 챙겼다.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이 쑤시는데 무거운 짐들을 어떻게 들고 가겠는가. 텅텅 빈 보자기를 주머니에 넣고 나는 지팡이에 의존해 걸어갔다.
 
 
 
[탁,탁,탁,탁,탁]
 
지팡이 소리가 경쾌하다. 아니, 경쾌하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하는게 지금 울적한 가운데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리라. 영 좋지 않은 느낌도 이렇게 조금씩 좋다고 우기면 실제로 나아지는게 있다. 방금까지만 해도 하늘에 남아있던 잔 구름이 사라졌다. 하늘이 유난히 파란 기운으로 넘실거렸다. '그 날' 이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맑은 하늘이었다.
 
내 옆에 넘실거리는 밀밭 속 풍요의 증표들도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보기 힘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날'을 잊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도 잊혀지겠지. 아니, 잊혀질 껀덕지도 없으려나. 시원시원한 느낌이 일품이었던 밀밭을 지나자 소나무가 울창한 침엽수림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나무들이 방금까지 상쾌한 느낌을 주던 하늘을 덮어버렸다. 쾌적한 느낌이 싹 가셔버렸다. 숲 특유의 싸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이런 느낌이 들때면 나는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끼곤 한다. 살면서 이런 느낌이 드는 곳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낮에도 어두침침하고 수풀이 우거진 장소에는 꼭....
 
"살고 싶으면 통행료를 내놓으시지, 할아범!"
"간만에 장사판 벌이는데 첫 손님이 노친네? 오늘 운수 된통이구만!"
"돈 없고 힘없어 보이는데 그냥 보내지? 액땜했다고 치고...첫장사에 이런 손님 맞으면 운이 않좋다구!"
 
도적단같은 게 튀어나오지, 젠장. 어디보자.
복장,무기,규모....모든 면에서 오합지졸이다. 눈을 뜨고 보지 못할 수준. 나는 쯧쯧하고 혀를 찰뻔하다가 눈치껏 그만두었다. 그리고 두목으로 보이는 인물(그래봐야 옷 조금 더 걸친 정도.)이 도적들 뒤에서 나타났다.
 
"그런게 어디있어! 짜샤! 보이는 대로 뺏어야지! 우리도 간만에 출동 좀 했는데 밥값은 얻어 가야 할거 아니냐? 새끼들이 빠져가지고...할아범! 통행료로 팬티랑 속옷 빼고 다 내놓으면 지나가게 해주지! 켈켈켈"
 
두목의 말에 도적 한 녀석이 말을 덧붙인다.
 
"할아범! 그 집고 있는 지팡이 의외로 비싼거 아니야? 큭큭!"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직감인지 운으로 때려 맞췄는지 몰라도 도적단의 예측은 정확했다. 나는 나도 모르고 집고 있던 지팡이를 때 몸으로 끌어안았다.
 
"할아범, 진짜 귀한 지팡이인가봐? 우리가 한번 찍었다고 그렇게 몸에 푹 품고 있는거 보면?"
"그...그런가? 그럼 지금 뭐해! 당장 저 지팡이를 빼앗지 않고!"
똘똘한 부하의 한마디를 듣고 도적단 두목은 잽싸게 명령을 내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도둑들은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뀐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내 지팡이를 빼앗길 생각이 없다. 나는 양손으로 지팡이 양끝을 잡고 비틀어 그 속의 내용물을 꺼냈다.
 
"Leonis Dentes(사자의 이빨)."
 
나는 지팡이 속 런들 대거를 꺼내 빠른 속도로 도적 두목의 손가락을 향해 날렸다. 거대한 송곳이나 마찬가지인 런들 대거는 순식간에 도적 두목의 손모가지를 뜯어내 날려버렸다. 몸이 둔한건지 느낌이 미처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건지 몰라도 두목은 손이 날라간 뒤 몇초가 지나서야 자신의 손이 날아가 등 뒤 10m 쯤에 있는 나무에 박혔다는 걸 깨달았다.
 
"으아아아아! 내 손! 내 소온!!"
 
두목의 손이 날라간 걸 확인한 다른 도적원들은 얼어붙었다.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히이이익! 두목의 손이, 손이 날라갔어! 이..이게 무슨.."
"모...모르겠어! 저 노인이 한 거 같긴 한데, 언제 어떻게 한거지?!"
"젠장, 오늘 일진이 안좋더니만!! 그냥 보내자고 했잖아!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동요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두목의 손모가지같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오합지졸인 좀도둑놈들에게 기대했던 반응이었다. 이런 반응이 안오면 내가 다 쪽팔리고 쓸데없이 피를 더 봐야했기에 나는 지금 상황이 매우 반갑다.
 
"허허...손이 미끄러졌나?"
 
나는 일부러 내가 대거를 던졌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로 저들은 더이상 나에게 금품갈취를 시도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도주하겠지.
 
"젠장맞을...악마다! 악마!"
"두목! 괜찮으십니까?"
"괜찮을리가 있냐! 철수다! 철수! 제엔장!!"
"개XX....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그 후 침엽수림을 지나면서 나는 아까와 같은 상황을 만나지 않았다. 아마도 이 숲에는 저 도적단들만 활동하는 것 같다. 뭐, 덕분에 살생을 줄여서 정말 다행인 것 같다. 하지만 숲을 들어가지 전처럼 유쾌한 느낌은 더이상 들지 않았다. 손에 피를 묻히는 건 역시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숲을 지나 다시 따스러운 햇볕이 보이고 나는 흥겨운 리듬으로 지팡이를 짚으며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라고 내 마음 속에 끝없이 새긴다. 가파른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에 드러서자, 방금까지 힘들었던게 싹 사라지는 것 같다.
목적지인 라스티스 성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라스티스는 라카르 북부 지역의 중심지로 국경지대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상권이 집결된 지역이다. 내가 비록 타 지방에 비해 발전 속도가 더딘 북부 지역에 살고 있지만 라스티스 인접지역에 살고 있는 덕분에 수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선 지금 나처럼 선택의 여지가 많은 생활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내륙지방에선 볼 수도 없는 바다생물을 시장에서 본다거나, 다른 깡촌에선 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 돌아가는 소식들을 담은 신문을 본다거나..... 무엇보다 큰 호사는 촌동네에선 쉽게 못구하는 스파라티를 대량으로 사재기가 가능하다는거다. 물론 내가 미친 듯이 많이 먹는 것에 비해 실제 인기는 없어서 경제적이진 않다만, 나만 만족하면 다행이니 문제는 없다. 또한 비싸게 덤터기 쓸 필요도 없다. 무슨 촌구석에서 달마다 열리는 시장바닥처럼 독점적 시장구도가 열릴 수가 없다. 나이스! 시장경제!
 
성문까지 2Km정도 남았을까, 집을 나서기 전 예상과 달리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젠장맞을 도적무리랑 한바탕 놀지 않았더라면 이러지는 않았으리라. 솔직히 그정도 시정잡배같은 도적들이면 손가락만 놀렸어도 도망쳤을텐데 너무 오버한 거 같다. 젠장할,젠장할,젠장할! 그나마 피를 덜보고 지나간 것에 만족해야겠다. 몸이 늙어버리니 예전만큼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허기진 배를 붙잡고 조금 더 가자 성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자 위로 다리를 대고 있는 정문 위에 경비병 둘이 농을 나누다 나를 보고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야! 윌! 외부인 출입이다. 확인해라."
"스미스 시니어 가드님, 저 오늘 첫 근무이지 말입니다. 좀 도와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어디서 대들어? 칵~! 넌 나 없을 땐 외부인 출입 확인도 못하는 빙딱이냐?! 후딱 다녀와!"
"예,예."

윌이라는 이름을 가진 경비병이 나에게 천천히 걸어온다. 표정을 보아하니 저 땅딸막한 상관을 속으로 씹고 있는게 분명하다. 저 X같은 기분은 나도 느껴봐서 알지만 토가 나올 정도일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런 갈굼을 받을 일도 없으니 별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저기 할아버지? 여기에 들어오시려면 신분증이 필요합니다아~"
윌은 귀찮다는 듯이 털래털래 왼손을 쭉 뻗으며 이야기했다. 귀찮은게 티가 너무나서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이럴때면 정말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어진다. 나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신분을 증명할만한 걸 찾았다.

[황실극인 증명증 
 할리 델란트
             제국 황제(인)]
이건 너무 눈에 띄는 신분증이다. 봉인.

[신X카드
 SMAXT 카드
  xxxx-xxxx-xxxx-xxxx
  사용기한 xx/xx                   ]

이건....이것도 봉인. 이세계의 것은 무조건 봉인이다.

[라스티스 주민증
 할리 델란트
                 라스티스 성주(인)]
내가 찾던 신분증이다. 살포시 윌의 왼손 위에 올려놓았다.

"아 성외거주민이시군요. 가셔도 됩니다~"
윌은 검지로 시야를 가리던 투구를 슬쩍 올려 신분증을 확인하곤 내 옆으로 빠져 길을 비켜주었다. 나는 공손히 목례를 하곤 성으로 들어갔다. 내가 성문을 들어가기 전 근위병 둘은 다시 농을 나누기 시작했다.

"야, 윌...너 방금 통과한 할아범이 누군지 모르지?"
"방금..말입니까?"
"넌 저 할아범이 얼마나 대단한 양반인지 모를거다..저 할아범이 말이지..아.."
나는 저 근위병이 할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나에 대한 진실과 허풍이 섞인 이야기겠지? 저 이야기만 몇번째일까? 뭐 이런 일은 이젠 일상이니 별로 신경써봤자 나에게 득되는 건 없다. 그래서 나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성문을 들어서자 바로 라스티스 상설 시장이 눈앞에 보인다. 상설시장이라고 하지만 거의 주단위로 열리는 시장이다. 그래도 방금 설명한 만큼 대단한 상권을 자랑하는 성인 만큼 온갖 물건이 총집결하는 시장이다. 사람도 물론 많다. 물건을 파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그리고 시장의 왁자지껄함을 즐기려고 온 여행객들로 성안은 활기가 넘쳐흐른다.

"제국 최신 트렌드가 다 여기 있습니다! 신사, 숙녀분들 여기와서 구경 한번 해보십쇼! 후회없는 가격으로 모십니다!"
"아저씨. 이 레이스 얼마에요?"
"흠..그 옷이라면 꽤 비쌀텐데...내 생각엔 너가 이 옷값을 지불할 만큼 경제력 있어보이진 않아보이는데? 여기 가격표를 봐봐라."
"으으음.....75엘러나 해요? 저기 아저씨, 제가 여자친구 300일 겸 생일 기념으로 선물하려고 하는데 좀 깎아주시면 안되나요? 10엘러라도!"
"흥! 그정도나 나한테서 깎으려고? 어림도 없지!"
옷 가격으로 불이 붙은 소년과 장사꾼의 기 싸움을 뒤로 하고 나는 호국경가 방향으로 향했다. 
시장을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중앙가를 따라 걷다가 분수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나오는 호국경가는 이름이 풍기는 느낌과 달리 선술집과 음식점 위주의 먹자거리이다. 이 거리명의 기원이진 호국경이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언짢은 표정으로 쯧쯧거릴 정도로 이 거리는 환락으로 넘실거리는 곳이다. 혹시 역사와는 달리 호국경은 굉장히 호색한에 술꾼이라서 이 거리가 이렇게 된 걸까? 관련 야사도 책을 읽다보면 많으니까 가능성이 충분이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호국경가를 걷다가 목적지 앞에 도착했다.

[빌리의 잡화점: 들어오는 건 자유지만, 돈 없으면, 알죠?]
라스티스 시장에서 내 단골가게, 간판에 대놓고 돈 내놓으라는 협박성 문구와 맞으면 뼈도 못추릴 듯한 주먹그림이 인상적으로 그려져있다. 가게 간판만큼 이 가게는 정상이 아니다. 가게 주인부터가 아주....
 
"들어왔으면 물건을 사야할 거 아니요? 돌아버리겠네, 완전! 야이 똥깡아지들아! 어서 돈을 내놓으라고!"
"아니, 여기 가게 왜 이래요? 물건 구경하고 그냥 맘에 드는게 없어서 나가는 것 뿐인데?"
"뭣이? 내 가게 물건이 맘에 안들어?!! 이런 시베리아 대륙같은이라고! 다른 가게에선 손님이 왕이어도 여기선 내가 왕이야! 닥치고 내 말을 들어! 이 가게에서 썩! 나,가!"
"거, 더러워서 나간다! 퉤퉤!"
성격이 망나니이다.
"거기, 돌아이! 나 왔으니까 물건 좀 내놔봐라!"
나는 그런 망나니 주인한테 고함을 지르곤 지팡이로 가게 곳곳을 툭툭 쳤다. 당장 물건을 내놓지 못할까? 빌리 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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