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중편]사제지간-2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17:23 Apr 13, 2013
  • 3871 views
  • LETTERS

  • By miiin
협업 참여 동의


다음 날, 학원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나는 받을지 말지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학원 입구."

"알아, 그냥 확인해본거야."

나는 정면을 보았고, 그녀는 휴대폰을 받은 채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대체 왜 전화를 한거야?"

"내 전화를 받을지 말지 확인해보고 싶었거든."

"안받았으면 어쩔건데?"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다른 것을 묻기로 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쩔 건데?"

"내 자취방으로 가자."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내 시선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아서, 결국은 내가 부연설명을 해야했다.

"지난 번의 그 말은 농담 아니었어?"

내 말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같이 저녁 먹으러가자는 말에 거부반응을 보였던 사람의 말 같지는 않은데."

"나도 거의 남이나 다름없는 사람을 집에 초대하는 것은 확실히 부담스러워."

"그럼 왜 그렇게 까지 해?"

"왜냐하면 맨정신으로는 설명 못하니까."

내가 그녀의 말의 의미를 판단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그렇다면 더더욱 듣고 싶지 않은데."

"오해하지마. 꼴사나운 추태는 보이지 않을테니까. 나는 취하면 아주 침착해지는 편이야."

"맨정신으로는 하지 못할 말이라는 것은 다르지 않아." 하고 말한 뒤에 나는 여전히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다시 묻자. 왜 그렇게 까지 하지?"

"내 이야기를 듣다보면 알게 될거야."

이야기는 나를 환장하게 만들 정도로 겉돌고 있었다. 그녀의 의도대로, 내가 정말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하고 어른스러운 해결책은 최대한 비관적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내키지 않지만 그렇게 했다.


그녀의 자취방은 낡은 기숙사 같았다. 가로로 길게 이어진, 누렇게 변색된 3층 짜리 건물은 마치 옛날 영화에서나 나올법 했다. 그녀는 내가 딱히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무척 싸서 여기에 입주한 거야."

"그 외에는 장점이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집주인도 엄청 재밌지만 친절한 사람이고, 덕분에 주변 사람들도 독특해서 살만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딱히 더 캐묻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얌전히 그녀의 뒤를 따라 철제 계단을 올랐다. 한 가운데에서 약간 엇나간 지점에서 그녀는 멈춰서서 문을 두드렸다.

"네 집 아냐?"

"맞아." 하고 그녀는 말했고, 그럼 대체 왜 노크를 하냐는 내 질문은 때마침 열리는 문에 의해 묵살당했다. 졸린 눈의, 기운 없는 여성이 문을 열고 나를 보았다. 그녀는 무척이나 키가 컸으며 머리카락도 그 만큼 길었다.

"네가 걔냐?"

그녀의 말에서 짙은 술냄새가 났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언니! 저 왔어요."

가려진 문 너머에서 그녀가 소리질렀다. 그리고 튀어나와서 내 손을 방안으로 잡아 끌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녀의 방에 끌려 들어갔다.

그녀의 방은 그리 넓지도 않았지만, 그리 좁지도 않았다. 책상과 개어진 요. 그리고 옷장과 책장. 부엌은 무척이나 간소했다. 다분히 기능적인 방이었다. 나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좋군. 제법 깨끗하고."

"마음에 들어? 마침 방하나 비는데 너도 들어올래?"

"집주인이세요?"

"맞아. 제법 눈치가 빠르군."

우리 셋은 마치 누군가가 명령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먼저 주인이 말했다.

"너정도라면 충분히 싸게 해줄수 있어."

주인은 그렇게 말한 다음 놀랄 정도로 싼 가격을 말했다. 지금 집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내가 혹할 정도로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나는 주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나는 사람을 골라서 받거든."

"무슨 기준으로?"

"재미있는 녀석 기준으로."

"저는 재미있는 사람은 아닌데요?"

"선생과 너의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었어. 내가 들은 건 극히 일부분이지만."

나는 그녀를 노려보았고,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면서 바닥에 있는 비닐 봉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봉지 안에서는 맥주캔 한 박스와 주전부리들이 나왔다. 나는 체념했고,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언니! 너무 많아요!"

"내가 많이 마시니 괜찮아."

나와 그녀는 동시에 주인을 보았다. 주인은 우리의 시선을 무시한 채, 포장을 뜯어 벌써 부터 캔을 따고 마시기 시작했다. 나와 그녀는 주인이 건넨 캔 하나 씩을 받아 들었다.

"내일 알바는 못가겠군."

"생각보다 저항이 적은데, 술좀 하나?"

주인은 넌시지 나를 떠보았고,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어릴적에 어머니와 많이 마셨어요."

"그 관련 이야기도 좀 듣고 싶군."

"절대 말하지 않을 겁니다."

"집세가 싸다니까."

"안들어 온다구요. 그리고 당신은 대체 왜 여기있는 겁니까?"

"남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니까." 하고 말한 뒤에, 주인은 나를 보고 말했다.

"기억해 두는게 좋을 거야. 이 집주인은 이래뵈도 빨래도 방청소도 요리도 잘하니까."

"안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털어놓기만 하면 찾아가서 빨래와 방청소와 요리도 해주니까."

나는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고,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포기하고 주인에게 물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없더군. 안타깝게도."

거주자들의 대부분이 정상인이라는 사실은 마음에 들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이곳에 살 바에 차라리 어머니가 계신 곳에서 통학을 하는 편이 이로울 것이다. 나는 열심히 꾸역꾸역 맥주를 마시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너는 괜찮아?"

"응? 뭐가?"

"이 사람 앞에서 네 이야기를 해도."

"이미 한번 이야기했어."

나는 기가 막혀서 집주인을 보았다. 그녀는 벌써 캔을 두개째 작살 내놓았다. 내 시선을 느끼고, 주인은 마시던 캔을 내려놓고 말했다.

"까먹었어. 너무 오래전에 들었고, 그동안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나는 마침내 두손들고 말았다. 나는 이 집주인이란 사람을 무시해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빨리 네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는데."

"좀 더 취해야 해." 하고 그녀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소리를 하며 입에 안주거리와 맥주를 털어넣었다. 나는 딱히 더 캐묻지 않고 천천히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그녀가 충분히 취기가 오를 때 까지 기다리는 동안 집주인과 무의미한 흥정을 계속했다. 마침내 주인이 집값을 절반이하로 깎아내렸을 즈음에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 고등학교 때 일이야."

그 목소리는 확실히 평소보다 침착했다.


그녀가 다녔던 학교는 평범한 여고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사립학교는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그 속은 끔찍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건 비단 학생 뿐만이 아니라 선생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하고 말한 뒤에 그녀는 나를 보고 히죽 웃었다. 질문을 바라는 눈치다. 나는 절반쯤 남은 맥주를 마저 마시면서 물었다.

"너?"

"아니, 그 선생님. 선생님과 사랑에 빠져 학교도 때려친 년이 어떻게 정상이겠어."

그 말은 그녀답지 않게 자조적이었기에, 나는 그녀가 취한 상태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었는데?"

그녀는 천장을 보며 다섯번째 캔을 땄다.

"무척 서투른 사람." 하고 대답한 뒤에 그녀는 고개를 내려 나를 본다. 그리고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엄청 불쌍한 사람."


학교에는 한 명씩 마치 기계처럼 느껴지는 선생님이 있다. 학생을 이름대신 번호로 부를 정도로, 정 떨어지고 삭막한 사람. 아이들과 어떤 농담따먹기도 하지 않으며 아무리 성적을 잘받아도 칭찬하지 않는 사람. 그는 그런 부류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학원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자주 가던 패스트푸드점에서 그와 마주쳤다. 학교에서 꽤나 떨어진 곳이라서 전혀 생각치도 않았던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카운터 앞에서 인사를 했고, 주변의 시선 속에서 그는 그녀의 인사를 무시하고 그녀에게 무엇을 주문 할 것인지 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몫까지 계산한 다음, 계산서를 들고 자리에 올라가버렸다. 그녀는 어쩔수 없이 따라 올라가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가 물었다.

"야간자습은?"

"안해요. 저는 그림 쪽으로 빠질 거라서. 담임선생님한테 허락은 받았어요."


나는 그 대목에서 그녀의 방을 둘러보았다. 평범한 자취방이었다. 그 어디에도 그림은 없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재수학원을 다니고 있다.

미술학원이 아니라.

많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딱히 그녀에게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내 속마음을 알아채고, 모든것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웃는 그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술 마시는 속도를 조금 올렸을 뿐이다.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선생님은 그 뒤로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 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나온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창 밖을 보며 묵묵히 햄버거를 씹는 선생님의 앞에서, 그녀는 제대로 음식물을 넘기기 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참다 못해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은 평소 여기서 저녁을 드세요? 다른 선생님과 안드시고요?"

"그런건 좀 거북해서." 하고 말한 뒤 선생님은 천천히 햄버거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손을 닦고 콜라를 빨대를 빼서 컵째로 마신 뒤에 다시 창밖을 잠시 동안 본 다음 그녀를 보고 말했다.

"일주일."

"네?"

"일주일 전 부터 여기서 종종 저녁을 먹었지."

"집에서 안드세요?" 하고 말한 뒤에, 그녀는 자신이 꽤나 무례한 질문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이유는 있겠지만, 그 것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물어보기에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사정인지도 몰랐다. 뭣보다,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관계에서는 더더욱 곤란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자신의 입방정을 후회하고 있을때, 선생님이 말했다.

"요리를 못하니까."

"예?"

"그리고 볼일도 있고."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놔두고 자리에 일어서서 나가버렸다.


그 뒤로 선생님과 그녀는 줄곧 같은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원해서 그렇게 된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다니는 미술학원 근처에서 가장 값싸게 먹을 만한 데라고는 이곳 밖에 없었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매일 이곳으로 와 창밖을 보며 저녁을 먹었을 뿐이다. 모른척 하기도 그래서 그뒤로 몇번 인사도 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했지만, 여고생에게 무뚝뚝한 남자선생과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결단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선생님을 모른 척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 뒷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며 다급히 입에 햄버거를 밀어넣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데서 먹는 것은 너무나 억울했다. 그 억울함을 버티다 못해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평소 그녀와 살갑게 지내던 학원선생에게 털어놓았고, 비품을 정리하고 퇴근하려던 학원선생은 그녀의 말을 듣고나서 말했다.

"굳이 피해다닐 필요 없잖아?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원래 친한 사이도 아닌데다가 게다가 그 선생, 싹싹하지도 않고 완전 무뚝뚝하단 말이에요."

선생은 가방을 챙기던 것을 그만 두고 의자를 당겨 털썩 앉았다. 가방에서 담배 한갑을 꺼낸 다음, 한 개피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탁자 서랍에서 낡은 스케치북을 꺼내 그 위에서 재를 털었다.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 담배도 피세요?"

"끊었었어. 꽤 오랫동안. 여러가지 이유로."

"놀랐어요. 전혀 그러실것 같지 않아서."

선생은 피식 웃었다. 그런 다음 익숙한 동작으로 재를 털었다.

"내 어릴적에는 완전 꼴초에 꼴통이었다고. 알아주는 미친년이었지."

그러니까, 하고 선생은 운을 띄웠다. 그리고 담배로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남자 중에는 그런 꼴통도 있는 법이야."

"어른의 세계인가요?"

그녀가 툴툴거리며 말하자, 선생은 턱을 궤며 웃었다.

"사제관계니까 행여나 오해가 생길까봐 일부러 거리를 두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사람이 서툴거나, 괴짜거나."  

선생은 끝까지 말하고 나서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고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어느 쪽인지 한번 알아보는게 어때?"


그 다음날도 선생님은 언제나 평소처럼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메뉴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다른게 있다면 그녀가 선생님에게 다가가,

"여기 앉아도 될까요?" 하고 잔뜩 긴장하며 말했던 것 뿐. 선생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말했다.

"마음대로."

정나미가 떨어지는 말투였다. 좀더 따듯하게 대해주지 않는 걸까, 하고 앙심을 품으며, 그녀는 쟁반을 내려놓고 입에 햄버거를 밀어넣었다. 그러면서 선생님을 본다. 선생님은 창밖을 보면서 천천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잽싸게 햄버거를 다 먹어치우고, 감자튀김을 쟁반위에 쏟아놓은 다음 숨을 한 번 고르고 물었다.

"뭘 그렇게 보세요?"

그녀는 더이상 주저도 후회도 하지 않았다. 그냥 멋대로 말을 걸고 쓸데없이 참견하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한 수다거리일 뿐이야,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에게 선생님이란 단지 그뿐이다. 선생님은 평소와 달리 한참동안 주저한 뒤에 말했다.

"아내를 보려고."

"선생님 결혼하셨었구나. 젊게 보여서 몰랐어요."

"몇 주 전에 이혼했지만."

그녀는 집어들었던 감자튀김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나는 마시던 맥주를 뿜을 뻔 했다. 사레가 걸려 켁켁 대는 내 등을 두드려주는 주인을 손으로 밀어낸 뒤에, 그녀에게 묻는다.

"그 선생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런 걸 스스럼 없이 말하나 보통?"

그녀는 내말에 아무말 없이 웃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더 캐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사정이 있겠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떠들어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잠시 뒤에 그녀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녀는 다급히 자신의 무례함에 사죄했지만,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더 나빴어."

그녀는 선생님을 보았다. 평소와 같은 무미건조한 표정이 살짝 가라앉아 있다. 슬픈 표정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엿됐네.

그녀는 자신의 입이 방정이라고, 그리고 일을 이렇게 만든 신이 매정하다고 생각했다. 어서 자리를 뜨는게 좋겠다고 판단하고, 그녀는 감자튀김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때 문득, 머리속에 떠오른 한가지 사실에 위화감을 느꼈다.

이혼한 아내와 매일 만난다고?

그녀는 음울한 선생님의 표정을 보았다. 무언인가 이상했다. 아귀가 들어맞지 않고 비틀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재확인 삼아 질문했다.

"여기서 매일 그...... 전 부인 분과 만나시는 거에요?"

그는 고개를 저었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깐 보러 오셨다고......"

"그냥 보러오는 거야. 아내 몰래, 여기서."

그녀는 침묵했고, 선생님은 덧붙였다. 무미건조한 음색으로,

"내가 나빴으니까."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녀는 도저히 선생님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그 뒤로 하루종일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그 선생님의 수업 때 결국 주의를 받고 말았다. 그녀는 몹시 당황해서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선생님은 침착했다. 그녀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화가 나서, 그녀는 친구들과 매점에서 빵을 먹으면서 이혼한 뒤 아내를 몰래 보러오는 남편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뭐야 그게. 찐따 같아."

"스토커 아냐?"

"그럴거면 왜 이혼하지?"

"자기가 잘못한게 있나보지 뭐."

"근데 아내 몰래 보러 오는 건 뭐야? 아직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

"그럼 당당하게 앞에서 말하면 되잖아. 앞에서 무릎꿇고 싹싹 빌라구."

"으, 기분 나빠. 소름끼쳐."

친구들의 말은 다소 심한 편이었지만 대부분 그녀도 공감할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녀도 선생님의 행동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매일 저녁, 맞은편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창문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에서 질문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그분을 좋아하세요?"

맞은 편에서 식욕 없이 햄버거를 먹던 선생님은, 휴지로 입을 한번 닦고 그녀에게 말했다.

"행복하게 사는 걸 보고 안심하고 싶어."

그렇게 말한 뒤 그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그녀는 그것은 대답이 되지 않는 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심정은 조금은 이해할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는 가지 않는다.

이상한 사람.

며칠 뒤,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는 학원선생의 질문에 그녀는 선생님의 이상함에 대해 이야기 했다. 쭉 속에 담아두었던 것이기도 하고 그 또래 여학생의 경솔함이 맞물려, 동물원 안의 사자를 묘사 하듯 하나의 수다거리처럼 가볍게 이야기 해버리고 말았다. 그 자체는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이야기를 들은 학원선생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는 사실이다. 깜짝 놀라 벙쩌 있다가, 그녀는 황급히 뒤를 쫓았다. 그녀가 따라잡았을 즈음에는 이미 식당 안에서, 그 둘은 대치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올려다보는 남자와, 그런 그의 옆에서 씩씩대며 서있는 여자.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전 남편과 전 부인.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녀는 술마시던 것을 멈추고 그들 부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심한 이야기였다.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자와, 너무 착해서 그런 남자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여자. 너무 착한 그녀를 두고 볼수 없었던 다소 난폭하고 불량한 친구.

여자는 사고로 죽었고, 남자는 다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친구는 그 꼴을 참기 힘들어서, 붓 조차 잡지 못하는 그를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 그리고 그를 부둥켜 안고 하루종일 울다가 그와 결혼했다.

"웃기는 이야기지?" 하고 그녀는 내게 동의를 구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전혀 이해할수 없어서 웃을 수도 없었다. 내가 말했다.

"그리고 그 둘은 이혼했다고?"

"응. 선생님 말로는 서로 너무 필사적으로 노력한 탓이래. 그 과정에서 좀... 안 좋은 일이 있었고."

나는 그 일이 무엇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생판 모르는 남이 어떤 러브스토리를 가지고 있던지 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다른데 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사실이랑 너랑 무슨 상관이야?"

"매정한 소리를 하는 구나."

엄청난 속도로 술을 작살내던 주인이 내게 야유를 퍼부었다.

"보면 모르겠어? 여자들은 멀쩡하지만 불쌍한 남자에게 끌리기 마련이라구."

"묻는게 아닙니다. 질책하는 거라구요." 하고 쏘아붙여준다음 고개를 숙인 그녀에게 고쳐 물었다.

"언제부터 그를 좋아했어?"

잠시 뒤, 집주인의 휘파람 소리와 함께 그녀는 말했다.

"그냥 그림 그리는 걸 봤어. 그 여자가 묻혀있는 양지바른 언덕에서, 그가 노을을 보며 그림을 그리는 걸 봤어."

나는 선생님에서 그로 지칭이 바뀐 것도, 어째서 그 무덤에 네가 따라갔는지도 추궁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했다.

"그의 그림에 반했어?"

그녀는 다 마신 캔을 옆에 조심스럽게 쌓아두었다. 그녀의 옆에 탑처럼 쌓여있는 캔은 가지런했지만 위태로워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근처 헛간에 쌓여있는 그의 그림들을 봤어."

모두 똑같은 한사람을 그린 그림, 이라고 그녀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게 자신의 속죄라는 거야. 그림 말고는 사회생활조차 똑바로 해낼수 없는, 자신의 뒷바라지만 하다가 그녀가 죽었다면서, 그는 매달 그려왔던 거야. 그리고 매일 그녀의 친구를 지켜보고, 자신이 나쁘다고 계속 말하면서."

그녀의 말은 반쯤 잦아들었다. 나는 그녀가 왜 취한 상태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지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그녀는 제대로 말조차 할수 없었겠지.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그 여자의 무덤 앞에서 말하는 데 그걸 보고 내가 선생님을 싫어할수 있겠어?"


주인은 술에 곯아 떨어진 그녀에게, 방구석에 개어놓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과, 거의 바닥난 술을 보더니 내게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멍청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술 말이야. 더 필요해?"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주인이 대부분을 마신 것을 고려해도 제법 많이 마신 편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더 갈증이 났다. 아마 그녀의 이야기 탓이다. 그녀가 그토록 내게 밝히고 싶었던 그녀의 사정은 그만큼 나를 열받게 했다. 주인이 술을 가지러 방을 나가고, 철컹하는 금속음이 내 귀를 때렸다. 나는 적막 속에서 곤히 잠든 그녀를 보았다. 평온했다. 그리고 절반 쯤 남은 캔을 마저 마시며 생각한다.

왜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을까. 이렇게 될 줄 뻔히 알면서. 잠시 뒤에 주인이 돌아와서 대답을 해주었다.

"좋아하니까."

"덕분에 둘 다 다시는 못 만나게 되었는데도?"

"맨날 봐도 좋아한다고 말을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나는 기운이 쭉 빠져 캔을 바닥에 내려놓고 팔을 베고 누웠다. 낡아빠진 형광등 속 벌레시체가 눈을 어지럽힌다. 다른 한팔로 눈을 가리며 한탄했다.

"피곤하게들 산다. 정말."

"걔 입장에선 널 이해할수 없었겠지. 자기는 좋아해도 만날수 없는데, 너는 계속 만나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니."

캔따는 소리가 들렸다. 주량이고 뭐고 이쪽은 배가 불러서 더 못 마시겠는데 잘도 들어간다. 내가 말했다.

"제 입장도 마찬가지라구요. 선생은 선생이고, 학생은 학생이죠."

"근데 왜 넌 선생에게 징징 댔어? 선생은 왜 매년 너에게 징징대고. 그게 확실히 선을 그은 관계같진 않은데? 그러고 보니 더이상 선생과 제자도 아니잖아?"

"거 표현하곤..."

나는 시야를 막고 있던 팔을 치우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고 한숨을 내쉰다음 다시 집주인을 본다.

"그냥 서로 울어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요. 꼭 좋아해야만 서로의 상처를 핥아줄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주인은 긴 머리를 쓸어넘기고 시원하게 웃으며 내게 맥주를 던졌다. 나는 누운 채로 받아서 캔을 딴다.

"좋은 소리야. 근데 너 말고 그 선생도 너처럼 그렇게 생각할까?"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내가 말하긴 좀 그렇지만, 같은 여자로서 말하자면." 하고 길게 뜸을 들이고 나서 주인은 말했다.

"나라면 싫어하는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진 않을거야."

"싫어하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건 아니죠. 그녀랑 같은 착각을 하시네요."

"이봐, 너는 딱 그렇게 선을 그었지만, 감정이란 건 말이지 마치 그 선 안에서 영구보존되는 건 아니라고. 시간이 지나면 변한단 말이지. 싫어하지 않는 사람과 꾸준히 만나면 어떻게 될거라고 생각해?"

"꾸준히라고 해도 일년에 한번이에요."

"일년에 한번 그 선생님은 너한테만 눈물을 보이는 거야. 어때? 이렇게 말하니까 로맨틱하지 않냐?"

나는 참다 못해 일어나 맥주를 한번에 넘기고는 눈을 치켜떴다.

"대체 뭔 말을 하고 싶은 거에요?"

주인은 이죽거리며 검지를 뻗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만 정상적인 사제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그걸 말해주고 싶다 이거야."


주인의 말은 돌이켜 생각하면 옳았다. 물론 선생님이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한 것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나는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딱히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으며 딱히 무엇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웠다.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그해 스승의 날, 좀 더 능숙해진 선생님의 운전 솜씨를 느끼며 떠난 저녁 바닷가. 수면에 비치는 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나 올 겨울에 결혼해."










comment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최종 글
공지 『경소설회랑 창작공간』 비영리 공간 선언 (1) file 수려한꽃 2012.05.17. 78805
공지 글 올리기 전에 꼭 읽어주세요!! (3) file 수려한꽃 2012.01.21. 84467
386 연재 절름발이 늑대 이야기 프롤로그 1편 (1) 이시하 2013.04.25. 3488
385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5) Leth 2013.04.24. 12572  
384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4) Leth 2013.04.23. 13494  
383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3) Leth 2013.04.22. 13184  
382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2) (1) Leth 2013.04.19. 13149
381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 Leth 2013.04.18. 12678  
380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 <프롤로그> Leth 2013.04.18. 3222  
379 자유 THE Beast kira1350 2013.04.13. 3083  
자유 [중편]사제지간-2 miiin 2013.04.13. 3871  
377 단편 수영복 전쟁 라세 2013.04.10. 3963  
376 단편 무제 워너비 2013.04.03. 3661  
375 프롤로그! Road to the Rome 1 엄마는소중해 2013.03.26. 2982  
374 프롤로그! The Fool[어느 광대 이야기] 프롤로그-1 주댕 2013.03.23. 3237  
373 단편 플래그 워너비 2013.03.22. 4139  
372 자유 시지프 의뢰소(1) (1) 으이구불쌍! 2013.03.14. 3390
prev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61'이하의 숫자)
of 61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