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17:07 Apr 18, 2013
  • 12680 views
  • LETTERS

  • By Leth
협업 참여 동의

안면에 통증이 느껴진다.
 특히 코 부분이 매우 아프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정신을 차린 곳은 양호실이었다. 결벽적인 하얀색으로 둘러싸인 곳에 햇살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주변을 가려야할 커튼은 활짝 열려있어 빛이 그대로 내 몸을 쬐었다. 창가 쪽 자리는 이래서 싫다. 교실이든 잠자리든 음지가 좋은데 왜 굳이 안쪽이 아닌 이곳에 눕혀져있는 건지 심히 신경 쓰인다.


“보건실에서 눈부신 햇살에 눈을 뜨는 주인공이라니. 실로 범작(凡作)이다. 이런 도입부라면 안이함이 도를 지나쳐서 구역질이 나올 정도다. 좀 더 참신한 방법은 없었던 거냐?”


 날 사정없이 비꼬는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백발의 미소년’이 보였다. 푸른 계열의 교복 상의와 붉은 넥타이를 풀어헤친 채 한손으로 심오한 무늬가 표지인 두꺼운 책을 덮고서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날 보고 있던 소년의 입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껏 일그러져있다. 중성적인 외모에 안 어울리는 썩은 미소다.


“신학기 첫 날부터 뻗은 사람한테 할 소리냐?”


“위로의 말이 필요한 거냐? 그럼 예문을 주지. 1번, 정말 친구로서 창피하다. 2번, 거울이라도 갖다 줄까? 3번, 지금 넌 너무 한심해서 보기 싫은 얼굴이다. 4번, 얼굴 괜찮은 거냐? 자. 정답은?”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 소년의 미성으로 날 갖고 노는 이 녀석은 ‘진요한.’


“4번.”


“틀렸다. 정답은 4-3-1-2순이다.”


“문제가 이상해! 그리고 위로할 맘은 추호도 없잖아!”


 보다시피 타인의 마음을 전혀 헤아려주지 않는 독설가. 말투와 행동이 망상과 현실의 경계선에 선 듯한 위태로운 녀석이다. 이래 뵈도 초등학교부터 알고 지낸 질긴 악연이다.
 이 녀석은 그나마 친구라고 여겨주는 것 같기는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그나저나 소리를 질렀더니 안면에 시린 통증이 몰려온다. 특히나 코 쪽이 아프고 답답하다. 손으로 만져보니 양 콧구멍을 막고 있는 휴지가 느껴졌다. 당장 빼자 진득한 피로 젖은 휴지뭉치가 보여 표정이 절로 변했다.


“정말 훌륭한 박치기였다. 당한 직후 기절한 네 표정은 아주 큰 볼거리였다고. ‘박가혜’가 있었다면 바로 사진을 찍었을 텐데. 학교의 대처가 너무 빨라서 아쉬울 뿐이다.”


 쓰러지기 전 기억을 되살려본다. 이 녀석과 만나 같이 등교하던 중 심히 개선이 필요한 가파른 등굣길에서 경사를 이기지 못 하고 미끄러져 달려오던 누군가를 받아주려다가 타이밍 좋게 넘어진 누군가 덕분에 거센 일격을 맞고 장렬히 쓰러졌다. 그리고 분홍색…흠?


“저기, 분홍색은 뭐지?”


“분홍색? 아아, 기억을 되짚어보고 있던 거냐? 때가 이르게 핀 벚꽃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거겠지. 다른 건 기억나지 않는가? 그 후배는 울고불고 난리였다.”


“후배?”


“너한테 부딪힌 녀석 얘기다. 일의 자초지종은 내가 정리했으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수업에 들어가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행동하면 모두 모른 척하며 어설픈 웃음으로 널 받아주겠지.”


“그 편이 더 괴로워! 차라리 웃으면서 놀려주는 게 훨씬 편하다고!”


 내 반응을 보며 일그러진 웃음을 짓던 요한은 곧 강당에서 여기까지 들려오는 교가 소리에 표정을 바꾸었다. 입학식이 슬슬 끝나가는 모양이다.


“시간을 보니 별 탈 없이 끝났나보네.”


“당연한 일이다. 시범으로 1년 정도 운영했으면 저 정도 노하우는 쌓아야지.”


 학교가 ‘개혁’을 한 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입학식. ‘아람 고등학교’가 받아들인 것은 입학식이 사고 없이 끝났다는 걸 안심해야할 정도 터무니없고 놀라운 체제다.

 

-힐링스쿨

 

「학생은 누구나 배우고 성장할 기회가 주어져야하며 차별되어서는 안 되며 도태되어서도 안 된다. 설령 정신적, 정서적인 병이나 장애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커버할만한 열린 교육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을 극복하고, 나아가 사회를 극복해내는 거대한 인재가 될 수 있다.」


 작년 이사장님이 입학식에서 했던 그 말은 아직도 내 맘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단순한 ‘특수학교’의 개념을 넘어서서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기본적인 정신치료부터 심화적인 과정까지 전부 학교에서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의 이 프로젝트는 기존 학부모들에게는 큰 반발을 샀지만 자신에게 이질감을 느끼던 학생들과 절망에 빠져있던 가정들에게 큰 희망의 빛이 됐다.


“학교를 이상자(異常者)들을 위한 정원으로 만들겠다니. 뭐, 그 이사장도 제법 미쳐있었으니 할 수 있었던 거겠지. 아직 완성된 건 아니지만 제법 볼만은 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참고로 이 녀석이 이렇게 비틀린 성격을 가졌음에도 입학할 수 있었던 건 다 이 학교 덕이다.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 전과로 인해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학생들의 개인적 이력을 숨겨주고 있으며 철저하게 관리한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말이다.


“이번 신입생들에게는 제법 기대를 걸고 있다. 작년에는 한 반 밖에 안 됐던 이상자들이 올해는 입학자 중 반수를 넘었다더군. 어떤 의미로는 여기서 부터가 관건이라 할 수 있지. 이 학교가 이 정도 인원을 어떻게 통제하고 인도할 것인가? 그에 반하는 꼴통들의 반역도 구경할 수 있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하다.”


 여전히 지독하게 삐뚤어진 유열(愉悅)이다. 난 슬슬 풀린 몸을 일으켜 다가간 후 꿀밤을 날리려했지만 요한은 내 주먹을 가볍게 피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돌아가지. 너는 어쩔 거냐? 어차피 오늘은 별다른 일도 없을 테니 좀 더 땡땡이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다만.”


 참으로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난 성실한 학생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단 말이다.


“수업 중 교실로 들어가는 건 그림이 이상하잖아. 시선집중이라는 느낌이고.”


“남자 둘이서 나란히 교실로 돌아가는 것도 이상한 그림이라 생각한다만. 정 그렇다면 함께 가도록 하지. 네가 공, 내가 수인 느낌이면 되는 거냐?”

 

“…먼저 가라.”

 

“그럼 사양 않고 가도록 하지.” 

Writer

Leth

Leth

히스이후돈보쟈바뷰드곤~!!!!

comment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최종 글
공지 『경소설회랑 창작공간』 비영리 공간 선언 (1) file 수려한꽃 2012.05.17. 78845
공지 글 올리기 전에 꼭 읽어주세요!! (3) file 수려한꽃 2012.01.21. 84501
391 연재 절름발이 늑대 이야기 프롤로그 3편 이시하 2013.04.30. 3684  
390 연재 절름발이 늑대 이야기 프롤로그 2편 이시하 2013.04.28. 3379  
389 연재 도나도나 불쏘시개 2013.04.27. 3768  
388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2. Encounter 나-이시호는 한탄하면서도 손을 뻗는다.](1) Leth 2013.04.27. 14985  
387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6) Leth 2013.04.26. 13383  
386 연재 절름발이 늑대 이야기 프롤로그 1편 (1) 이시하 2013.04.25. 3488
385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5) Leth 2013.04.24. 12572  
384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4) Leth 2013.04.23. 13494  
383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3) Leth 2013.04.22. 13184  
382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2) (1) Leth 2013.04.19. 13149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 Leth 2013.04.18. 12680  
380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 <프롤로그> Leth 2013.04.18. 3222  
379 자유 THE Beast kira1350 2013.04.13. 3084  
378 자유 [중편]사제지간-2 miiin 2013.04.13. 3871  
377 단편 수영복 전쟁 라세 2013.04.10. 3964  
prev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62'이하의 숫자)
of 62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