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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 늑대 이야기 프롤로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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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 Apr 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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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이시하
협업 참여 동의

/프롤로그


짙고 어두운 한기. 그리고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숨결들.


늑대는 어둠을 마시며, 어둠을 느끼며, 걸어간다. 어둠이 늑대를 짙게 반길수록, 늑대는 고통을 느낀다. 어둠의 숲을 벗어나려고 했던 한 짐승의 움직임이 점점 약해지고, 이내 멈추게 된다. 빛의 갈증이 끝에 다다른 몸이 굳어져 갔다.


잠식 되는 육체. 그리고 메말라가는 정신 속에서 늑대는 항상 궁금했다. 빛의 갈증마저 잊게 만드는 고통의 나락으로 안내하는 어둠의 숨결 속에서, 늑대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왜 난 눈을 뜬거지?”

왜 깨어나 있지? 빛이 아름다워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빛을 만지고 싶어 달릴 뿐인데, 내가 당신에게 저항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익숙해지라는 걸까?

난 모르겠어. 당신을. 지금도 눈을 뜨면, 내가 느끼는 건 고통이니까. 고통밖에 없으니까. 무엇을 해도,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고통이니까.

늑대는 어둠으로 물들여진다. 잠식의 조임과 숨 막히는 끝없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 되듯 걷고 있을 때, 그의 심장에서부터, 빛이 느껴졌다. 늑대는 몇 번이고 안에 있는 빛을 느꼈다. 어루만지고 싶다. 뜻밖이었다. 늑대는 이 빛을 의심했지만, 심장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감정의 끈은 마음을 움직였고, 이윽고 천천히 빛이 안내해주는 길을 보았다.

그 길은 평온했다. 아니. 그 길을 안내해주는 그녀의 얼굴이 평온하게 느껴졌다. 늑대는 언제부턴가, 어둠에 먹힌 자신이 아닌 그때, 빛을 찾아가던 그때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힘없이 늘어지며, 움직일 수도 없는 이런 그에게 그녀는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일어나요. 나의 빛이며, 나의 아이여. 언제나 그랬듯 당신에게 빛이 되어주고 싶으니까.”

왜 이런 걸 나에게 주는 거지?

왜 나에게 이 따스함을 주는 거지?

물음을 느낀 것일까? 그녀는 늑대에게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건 제가 아니라 당신이 알고 있겠죠.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전 당신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


빛? 그것이 무엇일까? 왜 그렇게 좋아하듯 쫓아왔던 것일까? 그렇게 상대를 제거한다는 것에 대한 끝없는 환상에 사로잡힌 채로, 달려왔던 것일까? 이성도 감성이라는 생각도 없이 그저 달려왔던 것일까? 너무나도 닿을 것 같았던 나머지 손조차 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망상 속에 사로잡혀버리고 만 것일까?

이진은 그렇게 빛의 냄새에 가득히 뿌려진 달콤한 꿈에서 벗어났다. 깨어난 그에게 반겨주는 것은 짙고 참혹한 어둠의 한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추악하고 더러운 약품 냄새와 끝없는 신음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비명이 들려와서야 그는 이곳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병원인가? 그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이진의 눈동자는 빠르게 주변을 인식했다. 참혹함의 증거처럼 남겨진 피의 흔적. 그리고 고통에 허덕이며, 뜯겨져 나간 것 같은 군용병원마크를 확인하고 나서야 이곳이 야전 병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 둘 꿈에서 깨어나는 몸을 움직이려고 했을 때, 단 한 부위에서 어긋난 움직임을 느꼈다. 그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두 팔도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심장도 아니었다. 그의 두 다리 중 오른쪽 발목이 피로 가득 칠해진 붕대로 감겨져 있었다. 지독한 상처였다는 것처럼, 피냄새가 풍겼지만, 이상하게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몇 번을 어루만져도, 고통보다는 기분 나쁜 정상적인 감각만이 느껴졌다.


이진은 붕대를 풀고 일어나려고 했을 때, 이내 주저 앉아버렸다. 그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막 의약품을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던 간호사가 그를 부축했다. 간호사의 품속에서 이진은 생존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느꼈다.

“왜 날...... 죽이지 않은 거지?”

“그만 안정을 좀 취하세요. 막 일어나시면 어떡해요!”

간호사의 짜증스러운 목소리 속에서, 그를 침상에 눕혔지만, 이진은 생존에 대한 끝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왜 깨어난 걸까? 왜 눈을 뜨며, 살아있는 것일까?

“왜 도대체...... 날 살린 거죠? 난....... 그때......”

이진은 머리를 감싸며, 몇 번이고 자신에게 소리쳤다. 그에게 남아있는 건 살아있다는 기쁨보다는 홀로 남아있다는 것에 대한 증오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는 혹시나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가위를 쥐며, 목을 찌르려고 했지만, 간호사가 그의 행동을 저지했다.

“뭐하는 거에요!? 여기요! 여기!”

간호사가 가까스로 그의 손에 쥔 가위를 뺏어서야, 이진은 피를 흘리는 손의 감각을 바라보았다. 핏빛으로 가득히 칠해진 의사가 그에게 진정제를 놓을 때까지, 이진은 피로 얼룩졌던 손의 상처가 서서히 회복되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


“이해할 수 없군요. 우습게도 신이 당신의 생명을 꼭 쥐게 한 것처럼, 상처를 회복시키다니 말입니다.”

야전병원 의사의 말에서는 당장 내보내도 나쁘지 않다는 목소리처럼 들려왔다. 발목에 총알이 박힌 것 외에는 전반적인 신체기능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이진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상담을 했지만, 그의 귓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였다.

‘왜 날 죽이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몇 분이고 며칠이고 퇴원하는 시간까지, 그의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던 생각이었다. 생존을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이 고통 속에서 평생을 붙잡으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한 사냥꾼의 고결함으로 얼룩진 선물인 것일까? 이진은 몇 번이고 발목에 박힌 총알을 빼내고 싶었지만, 그 생각만으로도 고통이 퍼졌다. 손을 대고 싶었지만, 그의 나약한 육체와 정신은 닿기도 전에 저절로 손이 멀어졌다.

‘그건 네가 모든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뽑을 수 없을 거야.’

무엇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무엇을 알기를 바라며, 자기 발목에 올가미를 놓아둔 것일까? 이진은 끝없는 재생과 불멸의 총알이 박힌 발목 속에서, 그를 향한 분노감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한 순간. 그것도 단 한 발의 총알으로 그는 절름발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동료들을 유유히 제거한 칠흑빛 코트로 뒤덮은 그는 유일하게 이진에게는 고통을 잊게 해주는 머리가 아닌 평생의 고통을 퍼뜨리는 발목에 총알을 박았다. 그리고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전멸될 수도 있었던 레기온 군의 작전 중에서 생존한 자는 바로 이진 자신이었다. 그렇게 쾌락과 희열을 품으며, 동료들을 제거했던 암살자는 경고용으로 그를 살린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평생 끊어버릴 수 없는 치욕의 낙인이 찍힌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야전 병원에서 나온 후, 이진은 이제 더 이상 뛰거나 달릴 수 없었다. 그렇게 찾아갔단 빛을 향해 추적할 수 없었으며, 빛에 대한 달콤한 맛이라는 환각조차도 가질 수 없었다. 이런 절름발이에게 과연 무엇이 남아있을까? 영원한 절름발이라는 이름의 낙인?


‘이제 끝났다. 그의 내달림은.’


이진은 이를 악물며, 절뚝거리며,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레기온 군의 임시 사령부로 발걸음 옮겼다.


/


레기온 군은 현계에 소속된 인간들로 이루어진 군대이며, 이계에서 현계로 진입하려는 어둠. 사이크레스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대규모의 부대를 파견한 상태였다. 이진이 절름발이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이크레스는 이계와 현계를 연결하는 교두보인 몽환의 숲을 장악하기 위해 2만명의 병력을 투입했고, 레기온군은 사이크레스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몇 배에 달하는 병력을 투입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최신형 무기와 장비로 무장한 레기온은 병력 수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이크레스를 2주내로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 했지만, 도리어 역으로 2주 만에 어둠에게 몽환의 숲 중앙을 빼앗기면서 전세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진은 어둠의 고위 장교라 부르는 케르드스트를 제거하는 작전을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지휘관의 무능력으로 인해 자신을 포함한 동료 5명이 한 명의 암살자에게 무자비하게 제압당했다. 그는 가장 최악이라는 이름의 낙인이 찍힌 채로, 절름발이가 되었고.


그는 당장이라도 이 작전을 지휘했던 지휘관의 머리를 저격총으로 갈겨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멍청한 절름발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작 그의 충동과는 다르게, 사령부에서 퇴역 신청을 하고 있는 자기가 비열하고 멍청하게 느껴졌다. 퇴역신청을 하면서, 이진의 발목을 힐끔 바라보는 담당자나, 몽환의 숲을 재탈환하라. 라는 이름의 문구가 걸린 낡아빠진 선동적인 문구와,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다리나 팔이 없는 군인들이 줄줄이 퇴역신청을 하는 열을 보면서, 그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그가 죽음으로 인도하는 총알을 박아버렸다면, 그게 더 편했을지도 몰랐지만, 이제 죽음조차도 불멸의 벽에 막힌 채로, 실행할 수도 없었다. 그저 멍청한 절름발이에 불과할 뿐이었다.


퇴역 신청이 끝나기 무섭게, 이진은 사령부 밖으로 나왔다. 이제 현계로 돌아가는 차량에 탑승하면 되었다. 지면을 질질 끄는 비틀거림 속에서, 이진은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대령 휘장을 장식한 한 장교가 이진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진.”

“이런 꼴은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망할 자식들.”

“괜찮아. 밀턴. 그렇게 열 받을 필요 없어.”

밀턴. 이진은 그제야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밀턴. 이진의 유일한 친구였던 것으로 기억이 났다. 한 때, 훈련시절에는 같은 동기였었지만, 사이크레스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이진은 저격수로, 밀턴은 사령부 장교로 길을 선택했다. 그 후로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밀턴의 다급한 호흡에서부터, 자기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안전한 곳에서 근무하자고 했잖아. 괜히 그런 고집을 부려가지고는.”

이진이 사이크레스의 케르드스트를 제거 작전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반대했던 것은 밀턴이었다. 사이크레스가 빠르게 레기온 군을 제압하는 상황에서의 그 작전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밀턴은 이제 소령이었고, 지휘관은 무능과 자만에 빠진 대령이어서, 도리어 밀턴은 작전에 대한 권한을 빼앗긴 채로, 쫓겨나고 말았다. 결국 그 장교에 휘둘리다가 참혹한 꼴을 당한 이진의 모습에, 밀턴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당장이라도 대령이었으면, 목을 날려버렸어.”

“늦었어. 이미.”

이진은 덤덤하게 인정해버리듯 대답했다. 그는 지긋지긋한 레기온 군 이야기를 끝내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밀턴은 낡은 군복과 새 붕대로 감겨진 오른쪽 발목을 느껴지는 초라한 감정들을 죽이듯, 입을 열었다.

“퇴역할 거야?”

“어. 이제는 못 달리니까. 빛을 쫓았던 하티의 운명도 이렇게 끝나버리고 만 거지.”

“그리운데, 하티. 그렇게 어둠과 빛을 쫓아다니며, 달렸던 네가 떠올랐는데,”

하티는 이진의 또 다른 코드네임이었다. 어둠의 흙더미 속에서 피어난 빛을 달리는 늑대. 사이크레스 작전 전까지만 해도, 이진은 하티란 별명이 불릴 만큼 노련하며, 날렵한 저격수였다. 사격 면에서도, 다른 저격수들보다 더 정확하고 빨랐었지. 밀턴은 그때의 이진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디로 갈 건데?”

“아직 정하지 못했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럼, 같은 동기이며 친구로서 너에게 괜찮은 곳을 추천해줄까?”

“어딘데?”

밀턴은 이진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여러 번 접힌 지도를 이진에게 주었다. 이진이 지도를 폈을 때, 지도에서는 사이나의 수도인 천예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천예란 이름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익숙한 이름을 들은 듯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곳이면, 더러운 현계 도시보다는 나을 거야. 널 추악한 곳에서 버리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이곳으로 가라고?”

“그냥 가. 더 이상 대령으로서 명령하게 만들지 말고.”

“참.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데, 그냥 버려도 될 텐데,”

이진은 애써 고마움을 숨기듯 귀찮은 척을 한다는 것을 밀턴도 알고 있었다. 이진은 그의 작은 선물에 감사의 인사를 건네지 않은 채로, 몸을 돌렸다.

“지도 안에 허가증도 있으니까. 그걸 보여주면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알았어. 그 전에, 좀 만날 사람이 있어.”

“스쾰을 만나러 가는 거야?”

밀턴의 물음에 이진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결국 만나는 거군. 밀턴은 이진의 어색한 거짓말을 파악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코드네임 스쾰.

어쩌면, 하티라 부르는 이진에게 경쟁자 격이라 부를지도 모르지만, 스쾰은 이진의 스승이기도 했다. 만약 썩어빠진 몰골로 찾아오면,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고 대답했지만, 이진은 만나고 싶었다.


‘물론 그녀에게 저격 당할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스쾰은 현계의 도시인 가디언에 살고 있었다. 그녀 모르게 낡아빠진 종이에 적은 주소라면, 그녀를 찾는 것은 수월할 것이다. 그녀가 빛의 냄새를 맡고 달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유일하게 현계를 지키고 있는 도시인 가디언은 전직 군인들이 휴식을 취하는 도시이기도 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지상과 공중의 차량들. 그리고 서로의 거대함과 위압감을 내뿜는 웅장한 빌딩들은 부패한 군인의 조그마한 몸 하나정도는 짓밟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빛을 좋아하는 그녀가 있을 법한 도시지만, 그녀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웅장함과는 다르게 그녀는 눈을 감고, 숨을 쉴 수 있을 만큼의 은신처 외에는 어떤 물질적인 것도 원하지 않으니까.

차량은 깨끗함으로 칠해진 바닥에서, 더러운 부패의 손길들로 뒤덮어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바닥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자 속도가 더뎌졌다. 웅장한 도시 아래로, 하수구만큼이나 추악한 층이라 할 수 있는 ‘언데드’ 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이계 외에도 현계에서 빈번하게 발발하는 내전이나 전쟁의 부상자들. 가디언 도시의 관리자는 팔과 다리와 걷지 못하는 그들을 언데드라 부르며, 도시에서 가장 악취가 풍기는 시궁창 구석에 버려놓았다. 그리고 죄책감이 들지 않게 끔의 먼지만도 못한 퇴역 연금을 내던져 주며, 그들의 생명을 유지시켰다. 물론 공식이라는 가면에서는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질기고 역겨운 생명이 끝장나기를 바라는 신에 바라는 역겨운 헌금일 뿐.


언데드에서는 생명이라 할 수 없는 팔과 다리가 없는 '고철인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먼지 조각 같은 돈을 가져가기 위한 향락소 같은 여자들이 돌아다니며, 그들을 유혹해 먼지조각을 대가로 모든 영혼과 육신을 바쳤다. 언데드들은 먼지나 다름이 없는 생활을 연명하며, 사신이 끝없는 죽음의 끝을 전해주기를 기다렸다. 그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는 모를 뿐.


차량이 멈춘 후 이진은 스쾰의 주소가 적혀진 곳으로 절뚝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새로운 언데드의 동료인 건가? 역겨운 니코틴과 마약이 뒤섞인 침을 뱉는 군인들과 서로 부둥켜 앉은 노리개들은 한 명의 절름발이 저격수를 주시했다. 시선이 집중되자 그는 가져온 위장막을 쓴 채로, 묵묵히 스쾰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데드들의 쾌락과 지옥의 열기를 내뿜는 신음의 골목으로 들어간 그는 뭔가에 의해 뜯겨져 나간 주택가로 진입했다.


다행히 그곳은 언데드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조용한 편이었다. 그 주택 앞으로, ‘saint apartment’ 란 이름의 낡아빠진 주택 간판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이 너덜너덜 흔들려 있었다. 성자의 아파트. 한 때, 스쾰이라 부르던 빛의 암살자에게 그 이름은 사치에 불과할 텐데, 이진은 쿡 웃으며,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다다르기 무섭게, 덕지덕지 붙은 문의 숲에서 이진은 바로 앞에 문을 주시했다. 수많은 문들을 지나 하나의 문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문 앞에서는 누군가가 쓴 듯한 103이란 숫자가 쓰인 마린색의 문이 이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진은 자동권총인 클로즈 데드를 쥔 채로 문을 두드렸다.


“누구죠?”

문을 두드리자마자 익숙한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라고 하기에는 평범한 20대 중반의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니란 생각에 지나칠지도 모르지만, 이진은 호흡을 가다듬고, 정체를 밝혔다.

“달을 쫓는 늑대.”

“..........”

이진의 정체를 밝히자마자 문 안과 밖에서 침묵의 기운이 번졌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음산함도 잠시 문이 열리자, 이진은 빠르게 클로즈 데드를 꺼냈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스쾰은 이진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찾아오지 말라고 했잖아. 버러지 같은 자식아.”

“그래도 스승님의 제자인데, 이렇게 압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너 같은 밤의 빛이나 쫓아다니는 머저리 늑대자식을 제자로 둔 적이 없는데?”

스쾰은 언더웨어 차림으로 이진을 조준 한 채로, 노려보고 있었다. 핏빛의 장발 머리와 곳곳에 전투의 흉터가 보이는 그녀의 몸에서는, 노장이라 부르는 군인임을 알게 해주었다. 원래는 댕기 머리였지만, 막 일어났는지, 헝클어진 머리와 반쯤 감겨진 눈으로, 하티라 부르는 이진을 조준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이 깬 상태에서는 바로 머리통에 총알을 먼저 박으려고 했지. 이진은 잘못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총을 내려놓았다.

“참. 너도 못 말린다. 그렇게 망설여가지고는.”

스쾰은 한숨을 내쉬며, 총을 내팽긴 채로 몸을 돌렸다.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는 권총을 쥔 손으로 손짓해서야 이진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검은 색의 언더웨어 차림 그대로, 다리를 꼬고 앉은 스쾰은 이진에게 저격을 가르친 교관이면서 동시에 스승이라 통하는 존재였다. 이진이 훈련소에서 저격실력을 확인한 스쾰은 곧바로 가디언이라는 도시에서 그에게 사격술을 가르쳐주었으며, 다양한 전투 훈련등을 도맡아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쾰은 이진에 대한 확신을 가졌었지만, 레기온 군 장교에 휘둘리는 그를 보면서, 이제 멍청한 놈들이 뿌리는 섬광에 쫓기는 멍청한 개가 되었다며, 거칠게 욕을 퍼부었다. 그가 레기온 군에 입대한 이후로 스쾰은 이진을 두 번다시는 보지 않았다. 그가 집적 찾아올 때까지는.


스쾰은 막 입을 대었던 담배대를 문 채로, 이진을 보았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 듯 싶었지만, 그의 절뚝거리는 오른쪽 발목을 보고,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국 당했어? 머저리 같은 자식. 그렇게 지껄였으면 닥치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정말 못 말린다. 못 말려. 뭐, 너도 짐승이긴 하지. 추적의 본능을 타고난 늑대처럼 말이야.”

“그래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스승님이 열 받을 거라는 건 예상했긴 했으니까요.”

“됐어. 그런 건, 가뜩이나 푹 자고 있는데, 너 같은 절름발이 늑대가 짖는 것만 봐도 즉사시켜버리고 싶으니까.”

스쾰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무사히 돌아온 이진에 대한 안도를 느끼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해가 되지 않게, 담배 연기를 밖으로 피우며, 스쾰은 냉장고에서 사과주스가 담겨진 종이팩을 꺼내 그에게 던져주었다. 이진은 스쾰의 주스를 받고, 서로 자리에 앉아 주스를 마셨다.

“끝났어?”

“그렇습니다.”

“너의 그 잘난 친구들은?”

“제거 됐습니다. 사이크레스에게.”

“뭐, 네 대령 친구가 알려주긴 했어. 조만간 네가 날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그 꼴되더니 잘도 날 만나고 싶어 한다며 말이야. 말했지만, 난 너에게 할 말은 다했어. 물론 널 동생이라 생각한 적 있고, 너의 누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대규모의 용병군단을 머저리 장교의 밑에서 움직이는 건 자살행위긴 했으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이크레스가........”

“네 탓이 아니야. 멍청아.”

 

‘그건 어둠을 멍청하게 본 그 놈들 탓이지.’

 

“그래서 나의 동정을 바란 거야? 네가 그런 마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곳으로 가는 길에 스승님하고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습니다.”

“참 너도....... 뭐, 이런 시간도 나쁘지는 않겠지. 변태들이 들락거리는 것보다는.”

스쾰과 하티. 란 이름의 두 마리의 늑대는 주스를 마시며, 처음으로 서로의 시간을 즐겼다. 주스를 한 모금 마시는 와중으로 스쾰은 그에게로부터 안쓰러움을 느꼈다. 모처럼의 만남. 그러나 그에게 어설픈 위로는 그녀에게는 우습기 짝이 없는 눈물의 행위에 불과했다.

“너.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 꼴이 된 이상, 레기온이란 작자들의 손아귀에는 놀아나지 않을 텐데,”

“사이나라 부르는 천예에서 지낼 겁니다.”

“천예? 혹시 중간계에 존재하는 곳?”

“네. 그곳에서 정리를 좀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동료들도 만나봐야 하니까요.”

스쾰은 마음 속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있을까? 이제 전투도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조차 가지지 않는 그가 언데드처럼, 세상에 대한 감흥도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기계가 된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쾰은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점점 불쾌하게 다가왔다. 거칠게 담배를 피운 후 사과주스를 마시면서도, 그녀의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머저리 같은 자식. 그렇게 빛이라는 멍청한 정의를 쫓아다니다가 결국 뛰지도 못하고..... 멍청한 하티 녀석.”

“그래도 좋았습니다. 그 빛 속에서, 보인 적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었으니까요.”

그의 멍청한 대답에 스쾰은 바로 다그치듯 대답했다.

“그게 자비라고 생각해? 두 번 다시 빛을 쫓아가지 못하고 어둠에 먹힐 너에게 준 선물이 자비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경고로 보낸 거야. 아니. 더 치욕스럽게 살라고 준 선물이겠지. 넌 그게 분하지도 않아? 그런 놈들에게 휘둘렸다는 게 더 짜증나지도 않아?”

“너무 늦었습니다. 그렇게 화를 내기에는요.”

"아 진짜!"

그의 부패된 목소리에 스쾰은 감정이 폭발하며, 주스를 다 마시기 무섭게 쓰레기통에 부셔버릴 듯 내던져버렸다. 찌그러진 채로 내팽겨진 주스 속에서, 일어난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작에 막았어야 했다. 레기온 군에 들어오라는 추천이 왔을 때부터, 당장이라도 막았어야 했지만. 이미 하티라 불렸던 이진은 두 번다 뛰기조차 버거울 것이다. 코앞에 빛이 다가와도 달릴 수도 만질 수도 없겠지. 이런 그에게 도대체 스승이라는 작자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녀는 생각할수록 레기온에 대한 분노가 폭발할 것 같다.

“내가 괜히 온 게 아니야. 여기를. 물론 넌 아니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이 바닥에서 기어 다니는 것들과는 다를 거라고 믿어왔는데, 왜 그렇게 선택했지? 네가 쫓는 빛이라는 건 정의란 것도, 선이란 것도 선이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신념하고 믿었기에, 네 다리를 절름발로 만들어서라도 얻으려고 한 거야?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너의 행동을 그리고 네가 만든 그 결과물이라는 게, 그동안은 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참을 수 없어. 알어? 이제 너 어떻게 할 건데? 평생 절름발이로 살아가면서, 얻어먹으면서 살려고 하는 거야? 그들의 죄책감을 풀 정도의 먼지만도 못한 연금을 받으면서? 그래. 좋겠다. 이제 놈들의 쓰레기통이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건 제 의지였습니다. 물론 스승님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망할 의지가 뭐가 대단하다고 네 자신을 그렇게 만든 거야? 난....... 솔직히 말해서 널 죽이고 싶어. 알어? 차라리 네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버려야, 언데드들처럼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해. 그게 편할 거야. 그 자식에게 절름발이가 된 것보다 편했을 거 아니야?”

스쾰은 나이프를 만지작거리다가 바로 쥐며, 이진의 목에 겨누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나도 답답한 나머지, 그의 절름발이 견딜 수가 없는 나머지.

“그렇게 해줄까? 어차피, 너에게 이제 가질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러고 싶습니다. 스승님의 손에서.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쾰은 이진의 심장을 찔렀다. 강한 찌름에 피가 솟구쳤지만, 스쾰은 순간 나이프를 좀 먹듯 다가오는 불멸의 능력에 바로 나이프를 뽑아냈다. 그녀가 찔렀던 상처는 온데간데없이 서서히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몸이 됐습니다.’

 

스쾰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이진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그도 서로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 이후로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이진은 반 정도 남겨진 사과주스를 손에 쥔 채로, 천천히 그녀의 집밖으로 나갔다.

“이진. 너......?”

“주스. 고맙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진은 스쾰의 문을 닫았다. 스쾰은 떨리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의 참혹한 낙인의 저주가 나이프 끝에서 온몸에 퍼지는 것 같은 깊은 저주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


언데드. 이 도시의 부패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진은 언데드였다. 영원한 불멸의 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패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추악한 피로 얼룩진 그의 군복과 얼굴 귓가에서 들려온다. 인간의 비명. 전쟁이라는 죽음의 허덕이는 자들이 끝없는 비명들. 너무나도 절망적인 나머지. 언데드란 부르는 그들은 깊은 내면에서 서로 허우적되며, 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도,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존재는 없었다.


이진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한 마리의 하티는 그렇게 빛이 아닌 어둠의 냄새를 맡고, 차량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라도 들킬까봐 알게 될까봐, 그는 애써 위장막으로 피로 뒤덮인 군복을 숨겼다. 위장막의 뒤덮은 무게감이 느껴지기도 전에, 한 늑대의 몸 위로 한 방울 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축축하며, 차가운 무게감이 서서히 번지며, 그의 몸을 억누르기 시작했을 때, 이진은 비에 얼굴을 씻으며, 차량에 올라탔다. 이진을 태운 차량은 천천히 고통의 비명을 토해내는 언데드의 손길에서 벗어나 사이나의 도시 천예로 향하기 시작했다.

comment (1)

Leth
Leth 13.04.26. 17:57
오리지널리티가 넘치는 작품이군요 ㅇㅅㅇ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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