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인카운터 신드롬-[2. Encounter 나-이시호는 한탄하면서도 손을 뻗는다.](4)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16:12 May 07, 2013
  • 15141 views
  • LETTERS

  • By Leth
협업 참여 동의

“인간은 어디까지 상대적으로, 주관적으로 상대를 보는 존재다. 비슷한 상대는 있을 수 있지만 같은 상대는 없다. 그리고 그녀도 인간이다. 넌 그녀의 비밀을 알고 그녀 또한 너의 비밀을 안다. 그것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비슷한 처지인 너를 여태까지 만나왔던 사람들과 비슷하게 볼 수 있을 리 없다. 이 정도도 유추할 수 없었다니. 구제불능이군.”

순간 욱하는 감정이 앞서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말했다.

“그래. 난 어차피 구제불능이야. 무능해. 그러니까 그 애한테 시커먼 본심밖에 말하지 못 했어. 심하게 대하지 않으면 귀찮게 할 거 같았으니까.”

그러자 요한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크게 한숨을 쉬며 책을 덮었다. 내 앞에서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가혜와 눈을 마주친 요한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입을 열었다.

“넌 지금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그 애의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을 겹쳐본 탓이겠지.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편법을 쓰도록 하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한 요한은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이시호. 자각하지 못 하고 있겠지만 ‘넌 유하임에게 질투하는 거다.’”

“!!!”
 머리에서 종이 울린 것 같은 충격에 잠깐이나마 눈앞이 새카매졌다. 시야가 돌아왔을 때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다음 수업 선생님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난 그것도 상관 않고 요한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질투하다니. 내가? 그 애를?”

“너는 언행뿐만 아니라 겉마음과 속마음까지 모순됐다. 이론은 받지 않겠다.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네가 제일 잘 알 터다. 자신의 마음을 알았으면 똑바로 행동해라.”

 내가 날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요한의 말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믿을 수가 없었다.

 설령 그게 진짜 내 마음이라고 해도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수업을 듣던 나는 곧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


 

소년은 일상을 사랑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랑했다.

그와 같이 일상 안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을 사랑했다.

일상 옆에 있는 이상(異常)은 바로 후각에 잡힌다. 소년은 언제나 그 냄새를 쫓으며 진심으로 즐겁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이 놓쳐버리는 것을 자신은 찾아낼 수 있다는 감각. 한없이 높이 솟는 우월감을 만끽했기에 소년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깨를 펴고 지낼 수 있었다. 주변의 비난에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소녀는 일상을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이상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소녀는 마치 근처에 있는 맹수를 감지한 초식동물처럼 떨고 있었다. 보통 초식동물이면 달아나겠지만 그녀는 그대로 맞서고 있었다.

어째서?

그건 괴로운 일일 것이다. 몇 번이고 도망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저돌적으로 이상에 몸을 던지고 있었다.

‘그만 둬.’

소년은 그 말이 하고 싶었다.

‘넌 언젠가 한계에 부딪칠 거야. 그 때 네 곁에서 널 이해해줄 사람 따위…는.’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생각이 멈췄다.

‘난’ 왜 당연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소녀는 그때의 나와 같지 않다.

 소녀에게는 절망이 없다. 소녀에게는 즐거움이 없다. 소녀에게는 우월감이 없다.
 외부로는 예전의 나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내면은 나와 전혀 다르다. 요한이 ‘거울’이라 비유한 것은 타당하다. 거울은 겉모습만 같을 뿐이다. 거울 안에 있는 것은 ‘나’가 아니라 단순한 형상뿐.

난 아직 소녀의 마음을 모른다. 그리고

소녀와 그때의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차이점이 있다.

일단 그걸 증명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


 수면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잠들었다가 깼더니 학교가 끝나있었다. 이정도면 정말 보이지 않는 음모를 느낄 정도다. 내 신체시계는 얼마나 편의주의적인 거냐는 의문을 뒤로 한 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긴 나는 반 친구들과 함께 교실을 나와 무작정 1학년 교실 쪽으로 향했다. 막연하게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 그 때

-‘냄새’가 났다.

실재하는 냄새와는 전혀 다른 감각의 냄새. 재채기를 자극하는 그 냄새는 흐릿하지만 탁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느끼고 있다면 하임도 느끼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방향을 바꿔 냄새를 쫓기로 했다.

밑으로 갈수록 냄새는 더 강해졌다. 먼지가 많이 쌓여있는 곳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몇 번이고 재채기를 했다. 희미하지만 녹은 쇠 냄새와 오랫동안 세탁하지 않은 옷감 냄새가 났다. 이정도 되자 어느 한 장소가 떠올랐다.

“구식 체육창고인가?” 

 내 후각은 사건의 일어났을 당시의 그 장소의 냄새를 맡는다. 사건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후각으로 대략적인 추측은 가능했다. 체육창고로 갈수록 코가 아파왔다. 사건이 터지기 일보직전. 내 코피도 터지기 일보직전. 그야말로 절체절명!

넓은 운동장 옆쪽에 있는 창고에서 문단속을 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문에 사슬을 걸고 자물쇠를 걸려고 하는 것을 포착한 나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잠깐!!!”

내 목소리를 들은 학생들이 내 쪽을 바라봤다. 교복에서 녹색 넥타이가 눈에 띄었다. 넥타이는 학년마다 색이 다르며 녹색은 1학년이라는 뜻이다.

“미안한데. 안에서 꺼낼 게 있어서. 열쇠 나한테 줘라. 문단속은 내가 할게.”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상급생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자 1학년 학생은 얼떨결에 ‘네.’하고 대답하며 열쇠를 넘겼다. 흘깃 배지를 보니 금빛이었다. 괜한 오해를 받을 것을 염려한 나는 최대한 배지가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체육창고 문에 감긴 사슬을 풀고 문을 열었다. 쓸 만한 것들은 작년에 새로 지은 체육창고로 옮겼기 때문에 남은 것은 먼지가 쌓인 오래된 것들뿐이었다. 다 뜯어진 매트리스나 녹슨 허들 등을 살펴보던 나는 구석에 쌓인 뜀틀을 유심히 보았다.

애초에 누군가 숨거나 고립되어 있을만한 곳이 그곳밖에 없어보였기 때문에 바로 뜀틀 가장 위층을 들어 올려 안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체육복을 입은 누군가가 몸을 잔뜩 구긴 채 자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참까지 흘리고 있는 게 딱 봐도 땡땡이를 치려고 이쪽에 몸을 숨긴 모양이었다.

코에 느껴지던 통각이 멎었다. 이걸로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안에 있는 학생을 흔들어 깨웠다.

“흐에? 으으. 인제 끝났어?”

흐리멍덩한 눈으로 일어난 것은 핑크색 하트 머리핀으로 앞머리를 고정시켜 이마를 훤히 드러낸 여자였다. 무릎까지 걷은 바지와 짧은 머리카락을 보면 귀여운 머리핀에 반해 보이시한 면이 두드러졌다. 키 또한 170은 훌쩍 넘은 것처럼 보였다. 잠이 덜 깨서인지 인상이 상당히 불성실해 보이는 그녀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날 보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머리를 긁적이며 두리번거리다가 이어폰을 빼고 물었다.

“어…누구세요?”

분명 1학년이다. 그런 확신이 들어서 말했다.

“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기 갇힐 뻔했단 건 알겠냐?”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이어폰과 이어진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보려다 ‘어라?’하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액정을 눌러도 화면이 켜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오지 않았으면 완벽한 고립상태가 됐을 거다.

“하교 시간이다. 인사는 됐으니까 당장 교실로 돌아가.”

그제야 대충 상황파악이 된 그녀는 황급히 뜀틀에서 나와

“흐아. 으. 죄, 죄송합니다!!!”

라고 소리치고 창고에서 도망쳤다. 새빨개진 그녀의 얼굴을 생각하며 난 오랜만에 느끼는 성취감에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운 느낌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난 결국 이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창고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곳에는 빛을 등진 작은 몸집의 소녀-하임이 있었다.

“…….”
 당분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날 보던 하임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도망치려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소리쳤다.

“거기 스톱!”

도망가려던 자세에서 바로 얼음이 된 하임에게 다가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내게는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단 거…좋아해?”

뜸들인 끝에 입에서 나온 것은 부끄러워서 죽고 싶어질 만한 대사였다.

 

Writer

Leth

Leth

히스이후돈보쟈바뷰드곤~!!!!

comment (2)

cloud.9
cloud.9 13.06.01. 13:06
'넌 유하임을 질투하고있는거다' 부분 작은따옴표를 '질투'에만 씌우는 쪽이 좋겠네요 따옴표 두 개가 같이 닫히는 것도 보기에 좀 안좋고
cloud.9
cloud.9 13.06.01. 13:08
강조를 위해 작은따옴표를 쓴거같은데 강조하는 부분이 길면 강조효과는 떨어지므로 가급적 작은 부분에 씌우는 것이 좋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최종 글
공지 『경소설회랑 창작공간』 비영리 공간 선언 (1) file 수려한꽃 2012.05.17. 78587
공지 글 올리기 전에 꼭 읽어주세요!! (3) file 수려한꽃 2012.01.21. 84259
406 단편 내 방과 그녀와 휴지통과 침대와 아즈망가 대왕 Winial 2013.07.27. 3171  
405 자유 히어로 슈트 메이커의 일상입니다.(1) 륜니어 2013.07.23. 3409  
404 단편 지랄병 (1) Winial 2013.07.22. 3489
403 단편 Double Mind, World Confusion 엔젤김쨩 2013.07.20. 2562  
402 팬픽 마마마 팬픽 上 Winial 2013.07.19. 3564  
401 자유 10일간의 멸망하는 이야기(1/10) PHNTM 2013.07.17. 3422  
400 단편 소혹성 B-625의 그녀 月主 2013.07.15. 3771  
399 연재 영웅에게 필요한 5원소 방해공작 2013.07.06. 3370  
398 연재 영웅에게 필요한 5원소 (1) 방해공작 2013.06.30. 3146
397 단편 Romantically Attorney(가제) - 핵전쟁과 변호사간의 상관관계 - 수정 bluejack 2013.06.10. 3339  
396 프롤로그! 블레이드 브릿지: 프롤로그 CodeR 2013.05.28. 3612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2. Encounter 나-이시호는 한탄하면서도 손을 뻗는다.](4) (2) Leth 2013.05.07. 15141
394 연재 절름발이 늑대 이야기 프롤로그 4편 이시하 2013.05.05. 3784  
393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2. Encounter 나-이시호는 한탄하면서도 손을 뻗는다.](3) Leth 2013.05.03. 14447  
392 연재 인카운터 신드롬-[2. Encounter 나-이시호는 한탄하면서도 손을 뻗는다.](2) Leth 2013.05.01. 15024  
prev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59'이하의 숫자)
of 59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