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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브릿지: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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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43 May 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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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CodeR
협업 참여 동의
한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나머지 가진 것 하나 없는 소녀였습니다. 

소녀에겐 낭송할만한 기도문도, 기도를 올릴 십자가도 없었습니다. 빵 굽는 연기가 동 트는 지평선을 가로지르는 풍경이 그녀의 십자가를 대신할 뿐이었죠.

그래도 소녀는 행복했습니다. 실은 소녀의 곁에는 자신을 너무나도 끔찍이 아껴주는 두 소년이 있었거든요. 소녀는 두 소년이 해주는 일은 무엇이든 기뻐했고, 그 이상은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소녀는 벨뱃으로 감싼 책도, 아늑한 잠자리도, 반짝이는 보석도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소년들이 자장가 대신 들려주는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으니까
소년들이 해주는 팔베개가 더 아늑하니까
소년들이 짚어주는 밤하늘의 별자리가 훨씬 더 아름답게 빛났으니까- 

그래서 소녀는 늘 여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자신에게 두 소년을 보내줘서 감사하다고, 두 소년과 함께 사는 나날이 여신님이 내려준 가장 큰 축복이라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왕성의 한 높은 분이 찾아와 소녀를 성녀님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는 사악한 마족이 빼앗아간 낙원을 되찾도록 인도해달라고 엎드려 부탁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원하는 소원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말했어요. 성녀를 해치려는 마족들에게 위협을 받게 될 테니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주겠다면서요. 그래서 아늑한 저택이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든 으리으리한 성이든 뭐든 주겠다고 떠들었죠. 

하지만 소녀는 저절로 굴러온 행운 앞에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소녀의 소원은 이미 이뤄진 상태였으니까요. 

그러나 그 순간이었습니다. 


"아저씨, 그 말 정말이야? 성녀님이 되면 위험해지는 거야?"


두 소년이 소녀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과 위험해진다는 말에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왕성의 높은 분이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덤으로 이런 말도 덧붙였죠. 설령 성녀님이 왕성으로 가지 않더라도 마족들이 가만 안 있을 거라고. 


"그럼 데려가. 그리고 우리도 데려가줘. 시키는 건 뭐든 할게."


소년들은 이런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두명이서 소녀를 지키기에는 세상이 너무 험난하다고. 그리고 가난한 자신들은 언제까지 소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그래서 소녀를 왕성으로 보내고 자신들은 병사들의 시종으로 시작해 소녀를 지키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소년들은 몰랐던 게죠. 자신들이 바로 소녀의 행복이자 소원이라는 사실을요. 

그리하여 소녀는 성녀가 되고 말았고 소년들은 전장으로 떠나갔어요.  이제 소녀는 벨뱃으로 감싸진 책을 머리맡에 두고 푹신한 베개를 베고 잘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성녀로서 바깥에 나설 때마다 반짝반짝거리는 보석을 두를 수 있게 됐죠. 기도할 십자가도 얻었고요.

대신 소녀는 두 소년과 함께 있고 싶다는 소원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리고 소년들이 다칠까봐 가슴을 졸이는 나날이 계속됐습니다.

세월이 지났습니다. 병사들의 시종으로 출발한 두 소년은 왕국을 대표하는 기사로 성장했습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싸움, 마족의 신으로 불리는 사악한 용을 처치할 선발대로 뽑힐 정도로 소년들은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끝내고 소녀의 곁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싸움터로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소녀는 기뻐할 수 없었어요. 여신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듯, 하지만 심장을 도려낼듯이 아프게 들려왔으니까요. 


"두 사람은 결코 낙원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소녀는 예언에 소스라치게 놀라 애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원이라고, 두 소년 없는 세계를 낙원이라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여신님은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보며 재차 고개를 저었습니다. 예언은 뒤바뀔 수 없다면서요. 그래도 소녀는 여신에게 거듭 부탁하고, 소년들이 겪을 위험을 차라리 자신에게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제서야 여신은 소녀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소원은 이뤄졌다. 너는 소년들을 대신해 죽음을 짊어졌다. 그들이 지옥불에 몸을 던져도 나는 너만 데려가리라. 그들이 심장이 용의 송곳니에 꿰뚫려도 잃는 것은 오직 네 심장 뿐이니라. 

그들은 결국 너의 희생을 딛고 용을 이겨낼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너의 넋을 기려 기도할 테고, 나는 그 기도를 들어 너를 낙원으로 인도하리라."


여신님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소녀의 심장은 뜨거운 피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피는 소녀의 새하얀 법의를 적시고 바닥까지 흥건히 퍼져나가기 시작했죠. 

소녀는 흐트러진 숨결을 토하며 여신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두 소년의 죽음으로 자신의 낙원이 무너지지 않게 됐다면서요. 

하지만 소녀는 듣지 못했어요. 자신이 숨을 거두고 난 뒤 여신님이 한 말을요.


"하지만 이걸로 그 소년들은 영영 낙원에 이르지 못하게 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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